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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수소 혁명② 910℃에서 영하 180도로… 거칠게 다룬 천연가스에서 찾은 친환경 에너지

김도년

2017.12.11

여시재-카이스트-중앙일보는 <난제위원회>를 구성하고 ‘인류 10대 난제’를 선정했습니다. 선정된 난제는 핵융합발전, 암 극복, 뇌의 비밀, 우주 개발 등 인류가 풀고자 하고 풀어야 하고 난제들입니다. <난제위원회>는 중앙일보 창간특집 기획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를 통해 끊임없이 난제에 도전하며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인류의 현장을 찾고, 한국의 위기와 도전을 점검합니다.


<중앙일보 난제위원회 프로젝트> 시리즈 순서
①핵융합발전
②암 정복
③줄기세포 치료
④뇌의 비밀
⑤수소 혁명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⑤수소 혁명

독일 쾰른에 있는 프랑스 에너지기업 에어리퀴드의 수소
공장. 이곳에 들어가려면 전신을 보호하는 작업복에 핼멧·
고글·방독면 등의 안전 장비를 갖춰야 한다. 유독가스
유출 사고에 대비한 것이지만, 2014년 수소 첫 생산 후
지금까지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사진: 에어리퀴드)

독일 퀄른에 있는 에어리퀴드 수소 생산 공장. 3층 빌딩 높이의 보일러 안에는 붉게 달아오른 니켈 기둥 수십개가 중대급 병력처럼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습니다. 보일러 안으로 들어온 천연 메탄가스(CH4)와 수증기(H2O)·이산화탄소(CO2)는 섭씨 910도에서 분자 구조가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니켈이 높은 온도에서 이들 분자를 깨뜨리는 촉매 구실을 하는 것이지요. 쪼개진 탄소(C)와 수소(H)·산소(O)는 보일러 안을 떠돌다 다시 결합해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로 변합니다.

독일 쾰른 에어리퀴드 수소 공장, 메탄가스 분해해 수소 생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공정에 재투입해 온실가스 최소화
“부생수소 생산, 물 전기분해 방식보다 싼 값에 수소 대량 생산”
“한국, 석유 안나도 수소는 넉넉…운송비 절감 방법 고민해야”

공장 운영 책임자인 에어리퀴드의 페드로 오테로 감독관은 “견고하게 구성된 메탄가스의 분자 구조를 해체하려면 섭씨 910도에서 영하 180도를 오가는 거친 공정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얻은 일산화탄소는 플라스틱 원료로 팔고, 수소는 에너지원으로 쓰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소는 바람이나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로도 얻을 수 있지만, 기존 석유화학·제철 공정으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수소를 ‘부생수소(副生水素)’라고 부릅니다. 플라스틱 원료나 철강·나프타 등을 만들려다 그 부산물로 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화석 연료가 투입되는 굴뚝 산업에서 친환경 연료 수소를 얻는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대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도 함께 나오는 것이 이런 방식의 가장 큰 단점이지요. 하지만, 이 온실가스를 수소 생산 공정에 다시 투입해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곳이 있어 지난달 3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에어리퀴드의 수소 생산 공장은 독일의 중화학 공업 지대가 밀집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최대 도시 쾰른에 있습니다. 라인 강변에 자리 잡은 화학 단지 캠파크(Chempark)는 세계 각국 기업이 세운 공장들로 거대한 화학 도시를 이루고 있지요. 에어리퀴드 공장도 이 단지 안에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갖춰야 할 안전 장비가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우선 온몸을 가릴 수 있는 작업복을 입고 발목을 덮을 수 있는 워커를 신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헬멧과 고글을 착용한 뒤 방독면을 둘러매야 합니다. 만에 하나 새어 나온 유독성 가스에 질식되는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수소 생산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복장을 갖추고 안전 교육을 받는 데만 1시간 30여분이 걸렸습니다. 파비안 라딕스 에어리퀴드 과장은 “이곳은 80만 시간 동안 무사고로 운영됐지만, 직원들이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일 쾰른에 있는 프랑스 에너지기업 에어리퀴드의 수소
공장. 이곳에선 천연 메탄가스와 수증기·이산화탄소를
혼합해 섭씨 910도의 고온에서 가열,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얻는다. 일산화탄소는 플라스틱 원료로 팔고 수소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사진: 에어리퀴드)

공장은 미로처럼 얽힌 가스관과 탱크·냉각탑 등이 한 데 뒤엉켜 있었습니다. 대단히 복잡한 작업이 이뤄질 것 같았지요. 하지만 수소 생산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단 세 줄짜리 화학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1. 메탄가스(CH4) + 수증기(H2O) → 일산화탄소(CO) + 3개의 수소분자(H2)
2. 메탄가스(CH4) + 이산화탄소(CO2) → 2개의 일산화탄소(CO) + 2개의 수소분자(H2)
3. 일산화탄소(CO) + 수증기(H2O) → 이산화탄소(CO2) + 수소분자(H2)

메탄가스와 수증기·이산화탄소는 섭씨 910도의 열기 속에서 분자 구조가 해체된 뒤 일산화탄소와 수소·이산화탄소로 헤쳐 모입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습이 다른 것이지요. 이후 영하 180도까지 떨어지는 냉각기를 통해 일산화탄소만 따로 빼고 불순물 제거 공정(PSA)을 거쳐 순수한 수소를 얻게 됩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3번 화학식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이 이산화탄소는 2번 화학식의 공정,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결합해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변하는 과정으로 다시 투입됩니다.

페드로 감독관은 “메탄가스로 수소를 얻게 되면 불가피하게 이산화탄소가 생기지만, 반복되는 공정에 계속해서 투입하는 방식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을 최소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화학 공장에서 대량으로 수소를 얻는 방식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싼 값에 더 많은 수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의 수소를 얻으려면 부생수소 생산 방식으로는 현재 1~2달러가 들지만, 전기분해 방식은 4달러가 들지요. 결국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부생수소 생산 방식에서 갖춰야 할 핵심 기술인 셈입니다.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한 한국에서도 울산·창원 등 공업도시를 중심으로 연간 190만t(2016년 기준) 가량의 수소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소차 충전소 1기를 운영하려면 매년 250t가량의 수소가 필요한데요, 충전소를 100개로 늘려도 2만5000t의 수소만 있으면 됩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진 않아도 수소만큼은 넉넉한 나라가 한국인 셈이지요.

권성욱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실장은 “수소 충전소 보급 초기에는 지금 산업 현장에서 생산되는 부생 수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수소 파이프라인 설치 등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도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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