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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대화 / 염재호 전 고려대학교 총장] “SKY 졸업장 10년 내 의미 없어질 것”

강동균 (SD)·이명호 (디지털플랫폼팀장)

2020.05.26

“21세기는 예고된 大전환의 시대, COVID-19는 촉매제일 뿐”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한국 사회의 지적 리더이자 ‘스타 프로페서’다. 벌써 오래전부터 21세기 초가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것을 대학 교육 내용뿐 아니라 대학이라는 교육 제도의 변화에 결합시키기 위해 행동해왔다. 염 전 총장은 동시에 ‘스타 프로페서’다. 2002년 처음 도입된 대선 후보 TV 토론회 사회를 봤다. 외교부 자문위원장,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15년 네 번 도전 끝에 고려대 총장이 됐다. 그가 일한 4년 동안 고려대는 ‘다른 학교’가 됐다. ‘출석부’ ‘시험감독’ ‘상대평가’ 세 가지를 없앴다. 대학은 줄 세우기 하는 곳이 아니며, 또한 대학의 자존심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또 대입에서는 논술전형을 폐지했다. 사교육 시장에서 1000만 원 내고 기술을 배워서 오는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다. 입학 후에는 성적장학금도 없앴다. 그는 4년 동안 고려대 울타리를 넘어 ‘변화의 상징’이었다. 염 전 총장은 올해 정년퇴임한 뒤 현재 SK 이사회 의장으로 일한다. 연초부터 (재)여시재 이사도 맡아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염 전 총장을 만나 COVID-19 이후 대학과 기업, 사회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대학로 넘어 종로가 내려다보이는 이화동에 작은 개인 연구실 겸 서재에 매일 나간다고 했다. 파란 대문 옆에는 “Think Factory”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인터뷰는 COVID-19 이후의 뉴노멀에서부터, 대학과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일만 하는 시대 지나
로봇세·AI세 매기면 돼
기본소득도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Q. COVID-19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이전에도 뉴노멀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COVID-19 이후에 새로운 뉴노멀이 오는 것인가?

모두 COVID-19 이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전부터 21세기 초가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정하는 것을 주저했다. 이번 COVID-19가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45년에 ‘특이점(singularity)’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고,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2050년에 ‘신인류’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한 것처럼 21세기 전반기에 인류 문명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cf. 레이 커즈와일
2005년에 낸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로 잘 알려진 미래학자. 그때 이미 “2045년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에 도달하여 신인류가 탄생할 것”이라고 썼다. ‘특이점’은 기술 변화의 영향이 매우 깊어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 현재 구글의 기술고문을 맡고 있다.

Q.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으로 이해해도 될까? 주로 어떤 변화가 올까?

2005년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20~30년 후에 주 3일 근무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집중적으로 일을 하면 주 3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AI, 로봇으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일을 나눠서 하면 현재의 고용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 북유럽에서는 주 35시간 정도 일한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주 70시간 이상 일했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마치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듯, AI세와 로봇세를 매기면 되지 않을까?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도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이제 열심히 일만 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 보람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행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원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고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힘들게 더 많이 일하면서 더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미래는 바뀌어야 한다,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cf. 제레미 리프킨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노동·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를 지냈다. 대표작 ‘엔트로피(Entropy) 법칙’에서 후세를 위해 자원을 보존하는 ‘엔프로피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2003년 ‘수소혁명(The Hydrogen Economy)’에서 2028년에 화석연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수소 에너지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시대라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재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재택근무가 알게 한 세 가지 인재형>
- 숫기 없지만 제대로 일하는 유형
- 실력 없는데 정치 잘하는 유형
- 무임승차형

Q. 재택근무를 이야기했는데, 기업문화는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COVID-19 이후, 이전에 보이지 않던 직원들의 진짜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숫기는 없지만 일은 제대로 하는 유형, 실력은 없는데 상급자들에게 정치를 잘하는 유형,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고 무임승차(freeriding) 하는 유형 등 세 가지 유형의 직원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기업들이 COVID-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해보니 이제 누가 진정한 인재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과정(process)이 아니라 결과물(product)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Q.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약 70%로 OECD 평균 보다 30%가량 높다. 뉴노멀 시대에 대학은 꼭 가야 하는가?

앞으로 10년이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장이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모두 일류대 입학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 입학률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진정한 능력으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의 폭을 넓히고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는 아니다. 만약 고등학교 졸업하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면 준비해서 몇 년 뒤 대학에 가도 된다.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다.

<키워드: 암묵지와 형식지>
암묵(暗默)지는 학습과 체험을 통해 습득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의 지식.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형식(形式)지는 암묵지가 문서나 매뉴얼 형태로 표출돼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앞으로 대학의 경쟁자는
다른 대학이 아니라 기업이 될 것”

Q. 평소 ‘개척하는 지성’을 강조하고 같은 이름의 책도 펴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대학의 역할을 무엇일까?

IT가 발전하면서 형식지와 같은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21세기에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나만의 지식 즉, 암묵지를 많이 가져야 한다. 개척하는 지성은 암묵지로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980년대까지 대학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학생들에게 형식지를 주입하고 훈련시켜 전문가로 만들어 사회로 내보내는 것. 둘째는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하며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 21세기 뉴노멀 시대에는 대학의 역할이 변할 것이다. 기존의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곳으로서의 대학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보다 더 잘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형식지만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새롭게 만드는 공작소 역할도 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에 박사가 3000명 정도 있다고 한다. 이제 대학의 경쟁상대는 다른 대학이 아니라 삼성이나 SK와 같은 기업이 될 것이다. 대학에서 지식을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지식으로 인류에게 공헌하고 부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강좌수 2500개
우리 대학들은 1만개”

Q. 미래에도 대학이 존재할까, 변한다면 어떻게 변할까?

1997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현대 경영학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학자)는 30년 후에 대학 캠퍼스는 역사의 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대학이 완전히 없어질까? 나는 교육의 방식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국에서 교환교수할 때, 노팅엄 대학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교수가 두 대학 빼고는 진정한 의미의 대학이 없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미국식 대형 강의 중심 교육은 진정한 대학 교육이 아니고,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이 튜터링 시스템 교육이 진짜 대학 교육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대형 강의 위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도 강의 중심 교육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버드, 스탠포드는 1년에 2500개의 강의가 개설되는데 반해,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대략 1만 개의 강의가 개설된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강의의 절반 정도를 강사가 맡는다. 세계 유수 대학 중에서 강사가 이처럼 많은 강의를 하는 강의하는 대학이 얼마나 있을까? 한 학기에 경제학 원론만 15개 정도의 강의가 열린다. 미국에서는 주요 강의에 400~500명이 듣는데, 50명씩 조를 짜서 대학원생이 토론을 주도하게끔 한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미리 책을 읽고 와서 교수와 함께 토론하는 수업이 많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외워서 시험 보는 경우가 많다.

교수 시절에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문제를 내곤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책을 봐야 하냐고 묻더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는데 책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COVID-19 이후 온라인 강의가 많이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외국 유명 대학 강의를 시청하고 지식을 습득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수업 시간에 다양한 토론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교수는 문제 제기하는 데 도움을 주고 토론 등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는 대학원생들이 도우면 된다. 미래에는 현재와 같은 대학 교육 방식이 바뀔 뿐이지, 대학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온라인 교육에 학생 다수 만족”
“나노 학위의 시대에
대학 학부 전공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Q. 총장 재임 중에 추진한 ‘미래 대학’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학생들이 강의 동영상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후에 수업에 와서 토론을 하는 역진행 수업(flipped class, 거꾸로 수업) 방식을 도입하는 등 미래 교육으로 가고자 했다. 최근 COVID-19 이후 많은 대학 총장님들에게 온라인 강의에 대해 물어보니, 많은 학생들이 만족한다고 하더라. 온라인 강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곁가지는 건너뛰고 핵심 내용을 집중적으로 시청할 수 있으며, 지방 학생들은 하숙비 또한 아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고려대는 얼마 전부터 대면 수업을 허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학과 행정실에 가서 물어보니 남은 학기 동안 오프라인 강의로 바꾸어서 진행하는 수업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처럼 대학도 이제 많이 달라진 것이다.

많은 교수님들은 전공과목을 가르치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학부에서는 전공보다는 기초과목 혹은 교양과목이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생각하는 힘, 즉 지식의 근육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고대에서 일찍이 이중전공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각 과의 교수들은 자기 학과를 이중전공으로 하려면 먼저 자격이 되는 학생들을 심사하여 일정 학점이 넘는 학생들만 받아 자격을 부여했다. 결국, 학생들은 자율성을 잃은 채 이중 전공을 하기 위해 먼저 자기 학과 수업의 학점을 높게 따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출석부, 상대평가, 시험감독 대신 자율출석, 절대평가, 무감독시험 시행이라는 ‘3무정책’을 도입한 것도 학생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었다. 특정 분야를 단기간 내에 공부해서 나노 학위, 마이크로 학위를 수여하는 세상에 학부에서 전공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대학 교육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대학들도 튜터링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본에서는 세미나를 ‘제미’라고 하는데, 동아리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같은 지도교수 밑의 ‘제미’ 안에서는 박사과정생이 석사과정생을 지도하고, 석사과정생이 학부생들을 지도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께 공부하면서 생각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형식지를 외우는 것이 공부가 아니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에두케레(educere)로 ‘끌어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학생들이 자신만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순위 평가는 미스터 트롯과 같은 것
재미로 볼 뿐 절대적 기준 아냐”

Q. 한국 대학들이 외국의 대학평가 순위 장사에 끌려다닌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이런 글로벌 평가가 대학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지?

대학 순위 평가는 흥미롭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미스터트롯과 같은 것이요. ‘진’을 했다고 해서 ‘선’이나 ‘미’ 보다 노래를 훨씬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재미로 순위를 볼 뿐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물론 외국에서도 세계 대학평가 순위를 묻기는 하지만.

“우리 R&D 예산
관습적으로 배정되고 있다”

Q.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을 해왔다. 한국 사회가 꼭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공평과 공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완벽하게 공평할 수는 없지만 공정한 절차는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놀기만 한 사람에게 동일한 대우를 하면 공평하기는 해도 공정하지는 않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을 예로 들어보면 교원 수, 시설 등 대학마다 인프라가 다른데 등록금은 모두 비슷하다. 고려대는 1년 등록금이 800~1000만 원인데,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5만 불, 6만 불 정도 된다. 그렇다고 미국의 학교들이 고려대에 비해 시설이나 교수진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공평의 원칙을 내세워 대학교 등록금을 규제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GDP 대비 R&D에 투자하는 예산이 가장 많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17조 원 가까운 R&D 예산이 새로운 연구보다는 오래된 연구에 관습적으로 배정되는 것을 봤다. 예를 들어, 인수공통 전염병이 신종 전염병으로 심각한 사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연구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지원하나 보았더니 볍씨 개량 연구와 마찬가지로 약 30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유연성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COVID-19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이 부족한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하철에 카페 만들면 어떨까”

Q.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은 싱크탱크가 있다. 주로 관에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주문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싱크탱크는 실천적 지성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문제 해결형 아이디어를 많이 낼 줄 알아야 한다. 엉뚱할지 모르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들에 많이 귀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개조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하철 열차에 한두 칸을 추가하여 카페 칸을 만들어 그곳에서 커피 마시고 음악 듣고 일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출퇴근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시급하다. 시내 중심가에 100층 정도 임대 아파트를 만들어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한 층에는 24시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도와가며 아이를 돌보는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 다른 층에는 소아과, 치과 등을 입점시켜 야간에도 진료하게 하고, 다른 층에서는 파티를 할 수 있는 키친, 바 등의 공간을 빌려주고, 호텔처럼 단기 숙박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아파트로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도 수익성만이 아니라
사회공헌도로 평가”

Q. 팬데믹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의 재발견, 공공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이 부상하고 있다. 정치와 시민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요구될까?

COVID-19를 우울하게만 해석하지 말고 기회로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팬데믹을 이용하여 공포감을 조성하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21대 총선에서도 청년실업을 겪는 20대·30대와 조기 퇴직을 앞두고 있는 수도권 50대의 불안감이 진보 표로 나타났다. 보수정당은 불안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참패한 것이다. 이제는 길게 보며 사회 변화를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수익으로 기업의 가치를 매겼지만, 이제는 사회 공헌도를 기업의 가치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빌 게이츠는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 IT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두려움의 시대,
지식인들의 묵직한 목소리 필요”

Q. 한국의 좌-우, 진영 분열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20세기 초반과 마찬가지로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누스바움(Nussbaum)은 <두려움의 군주제(Monarchy of Fear)>에서 두려움과 정치에 대해 논했다. 인간은 두려울 때, 증오와 시기심이 증폭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정치도 극단적으로 가고 갈등 구조로 변하게 된다. 지식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경고 신호를 주어야 한다. 좌로 쏠리게 되면 우 클릭하게끔, 우로 지나치게 나아가면 좌 클릭하게끔 해주어야 한다. 물론,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치든 언론이든 대중을 선동해서는 안 되고 중간에서 객관적으로 정책에 대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대에 정치인들만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며, 지식인들이 묵직한 목소리를 많이 내야 한다.

cf. 누스바움
21세기 서양철학계의 핵심 화두인 ‘감정 연구’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진행해온 철학자. ‘품위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보람찬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만큼 공동체 의식 강한 나라 흔치 않아
발전 여지 많다”

Q. 방역 성공으로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는 시각에 동의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DNA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임금님이 잘못했을 때 면전에서 ‘아니되옵니다’라고 했을 정도로 목소리를 내는 전통이 있다. 역사적으로 법치주의 전통이 있고, 법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 그만큼 개인의 주장이 강하고 보호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화장품 시장의 테스트 베드가 되는 것도 소비자의 목소리가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해서 사회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대한의사협회에서 COVID-19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강하게 질타하자 이에 대해 정부가 발 빠르게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여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다. 게다가 한국에는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이를 행동으로 옮겨 솔선하여 문제를 풀려는 문화가 있다. 대구경북 COVID-19 중환자 치료를 위해 고려대학교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에서 자원봉사로 전문 의료진을 파견하고 의료물품을 지원하는 등 주위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지려는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서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불평불만도 거침없이 제기하고 성격이 급한 것 같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도 빨리빨리 한다. 뛰면서 생각하는 민족 같다. 이런 한국인의 열기를 응집하면 21세기에 더욱 발전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여시재 대화] 우리는 뛰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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