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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미래 사회·도시 변화
제목: 국가 R&D전략과 시산학 혁신체제
저자: 이명호 (여시재)
컴퓨터를 시작으로 인터넷, 인공지능까지 점점 빨라지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산업사회를 다시 한번 새로운 사회로 인도할 것입니다. ‘신기술에 의한 미래 사회·도시의 변화’ 프로젝트는 신기술이 가져올 기술적 특성을 파악하고 미래 사회와 미래 도시의 변화를 탐색하고자 합니다. 미래 사회와 미래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여시재는 신기술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술 발전 수준을 파악하고, 기술 발전이 불러일으킬 사회적 변화를 전망합니다. 변화의 동력, 흐름, 장애 등 이슈별 현황과 쟁점을 분석해 솔루션을 도출합니다.
요약
Q. 혁신 생태계의 성장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R&D 정책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경제 성장기에는 정부 R&D가 산업과 기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 국민이라는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할 때입니다.”
한국의 R&D 예산은 규모가 상당히 큰 편입니다. 미국에 비해서 적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사실 1980년대 CDMA와 같은 R&D 성공 사례 이후 예산은 가파르게 상승해왔어요. 문제는 ‘시스템 전환의 실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1980년대 중반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R&D 예산이 증가해오는 과정에서 R&D 시스템 또한 효율적으로 변화해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단순히 양적 규모를 키우면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기존 R&D 정책 혹은 방식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여전히 산업을 지원하는 R&D에 집중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R&D 선정 시스템은 관료가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최종 승인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의 입맛이나 관료와 밀착된 특정 산업계가 있으면 비교적 수월하게 과제화될 수 있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R&D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해당 R&D를 받는 기업체도 많아지게 되고, 결국 R&D만 받아서 유지되는 좀비 기업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은 두 가지 차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선 첫번째 수요자는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분야에 R&D 투자를 하고, 그 편익을 국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R&D 예산의 52%가 국방 분야에, 20%가 보건 분야에 투입됩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안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R&D 예산을 쓰는 것이지요.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세월호 사건, 조류 인플루엔자 피해, 미세먼지 문제 등 사회적 필요가 커진 안전, 보건, 환경 분야의 획기적인 대책, 시스템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도 국민의 삶과 연결되는 주요한 국가 문제를 R&D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R&D의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할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아젠다로 목표를 설정하면, 그 성과도 명확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동안 특정 산업, 기술을 지원하는 접근으로 R&D 정책을 펼쳐오면서는 그 실효성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연구개발 결과물이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고, 그것이 기업의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는 실적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것을 방증합니다.
수요자 중심 R&D의 두번째 수요자는 기업체입니다. 현재 우리의 R&D 체계는 ‘대리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확한 수요처가 없이, 연구자가 산업체 수요나 해외기술 동향을 조사한 후, 기술 개발에 대해 기업과 협약을 맺었다는 수준의 기획을 올리면 R&D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주계약이 완전히 체결되지 않아도 계획만으로 R&D예산을 따올 수 있는 겁니다. 그 결과 R&D 결과물이 기업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기업이 확실한 수요처로 들어오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프라운호프 연구소는 각각 정부예산과 기업체 수주 절반씩으로 운영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체 수주가 되지 않으면 정부가 매칭펀드를 해주지 않는 것이지요. 따라서 기업의 수요가 있음에도 그 기업의 R&D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정부가 보조해주는 거예요. 이는 혁신 생태계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한국은 이런 작동 방식이 없습니다. 연구 이후 실질적으로 제품화하기 위해서는 조율, 튜닝 등과 같은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부분을 연구자 없이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수요조사 없이 개발부터 하고 나서 수요자를 찾으니 기업은 기술 연구만 되어있고 상용화 방안이 없는 일종의 반쪽짜리 R&D결과를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이죠. 결국 상용화를 위한 추가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구조예요. 따라서 수요자 중심의 R&D 체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일 사례와 같이 기업수주를 조건화하거나 정부예산 지원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면서요. 또한, 앞서 말한 안전, 국방, 보건과 같이 수요자의 욕구와 과제가 명확한 분야의 정부 R&D를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R&D 에이전시 기관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R&D 추진에 있어 처음부터 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즉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서 무언가를 개발한다고 하면 그 때 되어서야 시작할 수밖에 없고 개발을 하고 나서도 해당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모르게 되거든요.
기존 흐름에 따라 기술 개발부터 해놓고 이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복지와 안전이라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새로 필요한 기술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경쟁력 있는 혁신 R&D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의식, 이를 어떤 기술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축적하고 상호 연결시키는 역할을 에이전시 기관이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현재 정부가 R&D 자금을 지원하는 데 연구자들의 자율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R&D 자금이 보조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는 가급적 많은 곳에 쪼개서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과제를 제대로 평가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과제에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지원 혹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에 좋은 과제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평범한 과제를 선정하거나 지나치게 예산이 세분화되어 필요한 곳에 충분히 지원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R&D 관련 전문 에이전시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학기술과 산업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국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와 같은 에이전시 기관은 R&D 수요 또는 요구사항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역량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알아보면서, 확신을 갖고 해당 R&D 추진 여부를 판단합니다. 또한 R&D 진행 상황을 보고 예산 규모를 유연하게 조율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명확히 사명 의식이 있는 연구자나 기업체에게 과감히 많은 예산을 지원해줄 수도 있어야 해요. 공무원은 에이전시 기관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큰 틀에서만 관리하고 세부적인 기획, 집행은 맡겨두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R&D 전문가들은 더 이상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보다 적실성 높은 R&D를 추진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과학기술계가 해 온 연구는 성공하지 않으면 이상한 평범한 과제였습니다. 이미 외국에서 하는 것을 따라하다 보니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과제들을 해왔기에 성실실패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죠. 보여주기에 좋은, 안정적인 과제에 R&D 투자를 하기 보다는 획기적인 과제를 선정해야 하고, 과제를 평가하는 방식 또한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최종 승인을 하는 구조가 아닌, 전문성을 갖춘 R&D 에이전시 기관이 주도적으로 역할 해야 혁신적인 R&D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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