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시재와 함께 해주십시오. 회원가입으로 여시재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세계 질서의 재건축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공동 참여해 공간 확보해야
- 외교 4대 현안(미중관계, 남북관계, 한일관계, 포스트코로나 세계질서) 철저한 준비 필요
- 신뢰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설득할 공간 있어... 운신의 폭 확대할 신뢰외교 신경 써야
코로나19의 혼돈이 여전한 가운데 2021년이 문을 열었다. 팬데믹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렸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백신은 나왔지만, 신속한 공급을 위해 협력해야 할 국제 사회는 강대국들의 자국 중심주의 속에 각자도생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앞에 놓인 외교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가변적인 세계 정세는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면밀한 분석과 민첩한 대응을 요구한다. 여시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도전과제를 이해하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석학과의 신년 대담을 진행했다.
두 번째 순서로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을 만나 바이든 신정부 출범으로 예상되는 미중 관계와 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물었다. 하 이사장은 세계 질서의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뤄지게 될 것이며 한국이 대국과 소국을 연결하는 ‘링커’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이사장은 33년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20여권의 저서를 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다. [편집자주]
세계 질서의 ‘재건축’ 누가 주도하느냐
코로나 극복 레이스의 승패 가를 것
Q. 2021년 한국 외교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2021년을 내다보고 떠오르는 키워드를 잡는다면 부동산은 아니지만, ‘재건축’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의 최대 이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중 문제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대란을 극복하려는 전 세계 국가들의 대응을 400미터 계주에 비유하고 싶다. 첫 번째 100미터 구간은 코로나 방역이다. 한국은 첫 구간에서는 비교적 잘 달려서 선두 그룹을 유지했지만 승리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두 번째 100미터 구간은 백신과 치료 구간인데 첫 구간에서 뒤처졌던 미국이 선두에 나서기 시작하고 있으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세 번째 구간은 코로나 백신의 효과가 본격적 나타나면 닥쳐 올 경제 회복이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그리고 유럽은 치열한 각축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계주의 진짜 핵심은 마지막 100미터에 달렸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세계질서에서 누가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면서 가장 먼저 도착 선을 통과하느냐는 마지막 결전이 벌어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중국도 본격적인 고민을 하지 못한 채 본격적 구상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마지막 구간의 존재 자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레이스의 마지막 승리는 세계질서의 ‘재건축’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중 관계를 보기로 하자.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1월 취임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외교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대중 정책이다. 새 정부는 새 설계도에 따라 전면적 신축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재건축을 할 것이다.
2021년은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맞이하고, 코로나 이후의 세계 질서를 겪기 시작하면서, 이중적으로 세계질서 재건축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재건축’의 심각성을 미리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빠르게 진행될 재건축의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공동 참여해서 공간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Q. 2021년 한국 외교의 키워드로 ‘재건축’을 꼽았는데, ‘Build Better Again’을 내세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일맥상통한 문제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도 바이든의 외교정책 핵심 중 하나로 ‘회복(Restoration)’을 꼽았다. ‘회복’이 현재 미국에 주어진 유일한 솔루션이라고 보는가? 어떻게 평가하나?
A. 바이든 신정부의 키워드는 대통령 인수위 웹사이트의 제목인 ‘미국 리더십의 회복 (Restoring American leadership)’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슬로건이었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미국 리더십’으로 바뀌었는데, 가장 큰 차이는 혼자 가지 않겠다는 의지다. 동맹 또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겠다는 면에서 ‘미국 우선주의’보다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회복(Restoring)’은 바람직한 표현이 아니다. ‘회복’은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에서 본격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미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이 약화되는 가운데 세계 질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과거의 리더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미래지향적 리더십의 제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공생의 생태와 기술 무대 선도할 수 있어야
Q. 미국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리더십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A. 탈냉전 이후 등장했던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는 분명 장점도 있었지만,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났던,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적인 반세계화(deglobalization) 역시 해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현재 잘 보여 주고 있다. 결국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는 복합적인 성격을 띤 재세계화(re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구상의 복합적 ‘재건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선 자기 우선의 배타적 리더십이 아니라 모든 주인공들을 함께 품고 뒤에서 미는 포용성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무대의 복합화를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익숙한 부국강병의 무대 이외에 생태, 문화, 기술 무대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 질서의 새로운 리더십은 기존의 경쟁과 갈등의 군사와 경제 무대를 협력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뿐만 아니라 공생의 생태와 기술 무대를 동시에 재건축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리더십이 코로나의 전세계적 감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탈냉전 이후 평등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충분히 배려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나 민중주의적 미국 우선 세계질서의 건축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질서가 겪은, 테러와 지역 분쟁, 세계금융위기, 미중 갈등,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의 지구 감염은 살아 있는 증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단순히 과거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은 가치를 공유하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중국처럼 가치를 달리하는 주인공도 포용하는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근대적인 경쟁과 갈등의 ‘부국강병의 무대’같은 경쟁, 갈등, 협력의 무대와 ‘생태 무대’같은 공생의 무대를 잘 엮어서 새로운 복합 무대를 건축해야 한다. 특히 백신 개발에 선두에 서 있는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은 코로나의 전세계적 감염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생의 생태와 기술 무대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본보기의 힘(power of example)’
민주주의라는 명분력 강조하겠다는 표현
Q. 바이든 시대의 미중관계는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는가?
A. 바이든 외교는 두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동맹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미국의 리더십 회복(restoring American leadership)’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트럼프 외교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대조적이다. 두 번째 원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통한 ‘본보기의 힘(power of example)’이다. ‘힘의 본보기(example of power)’가 아닌 ‘본보기의 힘(power of example)’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이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최근에도 반복해서 쓰고 있는 표현이다. 물리력이 훨씬 강조되는 ‘힘의 본보기’와 달리, ‘본보기의 힘’은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 규범을 가장 중요한 힘의 요소로 보고, 군사, 경제, 또는 기술적인 물리력만 강조하지 않고 동시에 민주주의라는 명분력을 강조하겠다는 표현이다. 결국 바이든은 이 두 원칙을 통해서 2021년에 미중 질서를 풀어 나가게 될 것이다.
두 원칙에 기반을 둔 바이든 외교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인도 태평양’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인도 태평양’이라는 개념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아시아태평양’대신 쓰기 시작했는데, 가치적 의미에서 시작해서 경제적 의미로 확장되고, 군사적인 의미의 구체적인 전략 개념으로 발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 태평양’ 구상을 이어 받아 본격적으로 예산을 확충하게 될 것이다. 중국 문제를 미국 외교의 핵심으로 다루는 것은 전 정부와 마찬가지다. 다만 적용하는 원칙이 다르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와 차이가 있다. 첫 번째 원칙에 따라 미국은 혼자가 아니라 동맹국들과 함께 대중 정책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원칙에 따라 경제, 기술, 군사 무대에 못지않게 가치 무대를 중시하게 될 것이다.
미중경쟁의 바둑판은
경제판∙기술판∙가치판∙군사판의 복합
미중대결이 쉽게 군사대결로 갈 것이라
전망하는 것은 조심스러워
Q. 미중 관계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가? 군사적인 충돌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A. 현재 미중이 싸우고 있는 것은 좁은 의미의 안보와 경제만이 아니다. 미중 경쟁이라는 바둑판에는 무역, 투자, 금융이 포함된 경제판이 하나 있고, 동시에 경제판의 승패를 크게 좌우하는 기술판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21세기 미중 관계는 두 판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번째로 가치 또는 규범판이 벌어지고 있고 마지막으로 군사판이 얽혀있는 복합적인 판이다. 바이든 외교도 경제나 기술판을 중시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가치판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지나치게 물리력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대신에, 민주주의 규범력을 포함한 복합판을 조금 더 균형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미중 관계가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대단히 빠른 속도로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조금씩 악화되거나 개선될 것이다.
따라서 미중 바둑이 바로 군사 무대판으로 악화될 가능성은 훨씬 작다고 봐야 한다.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 12월에 흥미 있는 두 연설을 했다. 12월 11일에 열린 “2020년 국제 형세와 중국 외교” 회의에서 2021년 중국 외교 7대 임무를 밝혔고, 12월 18일에 열린 아메리칸 소사이티 비디오컨퍼런스 회의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중국의 공식 견해를 자세히 설명했다. 두 연설을 종합해 보면 중국이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경제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의 첫 목표를 달성하고, 그 다음으로 신중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의 두 번째 목표를 위해서 새롭게 전진하는 해다. 동시에 14차 5개년 계획의 첫 해이기 때문에 당연히 첫 번째 주요 임무로 국내 및 국제 경제를 꼽고 있다. 그 다음으로 ‘신형국제관계’의 건축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말하는 ‘신형국제관계’는 중미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신형대국관계’와 ‘신형주변국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의 중미 관계에 대해서는 기존의 ‘불충돌 불대항, 상호존중, 공동번영협력’의 3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 한 다음에 중미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고 신뢰를 회복해서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 감염, 경제 회복, 기후변화 등의 시급한 문제를 협력해서 풀어나가자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국내, 국제 및 경제 안보와 같은 핵심 이익에 대한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대해서는 필요한 대응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유난히 호전적이고 중국이 평화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중국은 군사력에서 미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매년 세계 총군사비 1조 9천억 달러의 40% 가까운 7천억 불 이상을 사용하는 초군사대국이다. 2천 6백억 불을 사용하는 중국과 비교하면 거의 세배 규모다. 군사 전문가들은 2050년이 되어야 중국의 군사비가 미국의 군사비와 대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중국의 핵심 이익이 부당하게 훼손된다고 판단하면, 미국과 정면충돌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절한 군사적 대응을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6자회담 같은 다자 협상 중요성 커질 것
Q. 한반도 문제를 묻고 싶다. 여러 무대가 얽힌 복합적 판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어떻게 진행되리라고 보는가?
A. 바이든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코로나와 미중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한 문제는 비중치가 떨어져 있다. 하지만 최소한 트럼프 정부와 네 가지 정도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첫 번째로 일방적인 톱-다운 외교는 없을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더 이상 북미 정상회담처럼 TV 쇼 같은 외교는 안 하겠다, 일방적인 하향식 외교는 안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상향식 외교에 상대적 중요성을 둘 것이다. 두 번째는 관련 당사국과 함께 풀어 나가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미중관계에서 중국 문제를 미국의 리더십 아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풀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도 상향식 외교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혼자가 아니라 관련 당사국과 함께 할 것이다. 따라서 6자 회담 같은 다자 협상의 중요성은 커질 것이다.
세 번째는 비핵화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되 핵 동결에 대해 우선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바이든 팀은 핵 동결을 1차적인 징검다리로 삼을 수는 있으나, 궁극적인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핵 동결 협상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는 신뢰를 줄 수 있게 모든 핵 시설과 핵 능력의 완전한 보고를 해야 미국은 핵 동결 협상을 진행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부분적 비핵화를 할 생각은 있으나, 현재 리더십의 생존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억지가 가능한 핵 보유 능력까지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한 적이 현재까지 없고 또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당장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완전한 신고를 하고 국제 검증을 받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과 미국이 원하는 동결과 완전 신고의 협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다.
네 번째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구(自求)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이를 자기 생산적(self-production) 노력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보의 소통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북한에서 정보의 소통 문제는 보다 중요하게 제기될 것이다.
Q.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국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전망은 한국 정부에게 긍정적인 것 아닌가?
A. 바이든 외교의 두 번째 원칙인 민주주의 원칙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휴전선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한국의 정부 당국 및 여당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 구축 방안의 하나로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관계 개선 협상을 하려면 협상 당사자인 북한이 권위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요구하는 정보 차단을 안 들어주면 신뢰 구축이 되지 않아 협상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궁극적인 완전 비핵화를 위해서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진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노력의 핵심은 정보의 소통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풍선을 통한 대북전단 살포의 경우도 민주주의를 위한 정보의 소통을 막는 상징적인 의미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군사 억제, 포용 정책에서도 편차가 있을 것이다. 미국은 시그널 외교로서 포용 정책을 생각하고 북한이 21세기의 비핵 정상 국가로 진화하는 경우에 본격적인 햇볕정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고,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관여 정책을 추진하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정부는 미묘한 시간차를 보여주고 있다. 한쪽은 시그널을 보내서 북한이 스스로 자기 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라는 것이고, 다른 한 쪽은 일방적 관용을 먼저 시작해서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하느냐는
유아적 생각 할 시기 지났다.
중진국으로서 신뢰를 기반으로
미중 설득할 공간 있어
Q. 2021년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1년이라는 측면에서 막판 스퍼트를 해야 하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앞으로 1년 동안 반드시 해결해야 할 외교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2021년 한국 외교는 4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복합적으로 갈등하는 미중 관계 속에서 한국의 생존번영전략을 재건축해야 한다. 둘째, 북미관계 개선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속에서 비핵화를 비롯한 남북 관계를 현명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셋째, 난관에 봉착해 있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넷째, 포스트 코로나 세계질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미국과 중국이 2021년에 새롭게 양국 관계를 재건축하는 속에서 한국도 대미중 관계의 재건축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나 또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냐 같은 단순 논의를 하루 빨리 졸업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중 관계는 주인공, 무대, 연기의 모든 면에서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한국의 재건축 청사진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앞으로 한 세대 즉 2050년 정도를 내다보면, 힘의 상대적 쇠퇴를 겪고 있지만 미국이 여전히 세계질서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존의 한미일 네트워크는 계속해서 심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국의 부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한중 네트워크의 확대도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중 관계의 복합성 때문에 한국은 경쟁, 협력, 갈등, 공생의 무대에서 각기 걸맞은 대응을 해야 한다.
2021년의 대미중 관계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신뢰 강화 문제다. 우선 포스트 코로나 재건축에서 시급한 것은 한미 간의 신뢰 강화다. 상대적 쇠퇴를 겪고 있는 미국도 동맹 국가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심동체 같은 일본도 중국에 대해서 미국과 완전히 동일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한미일 네트워크 속의 한국도 충분히 중국을 적대하는 대신 포용하자는 논의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 한미 간에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충분한 신뢰가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들에서 나오는 최근 보고서들을 보면 한국은 이미 미국과의 네트워크를 이미 벗어났거나 서서히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영향권을 절대 넘어서기는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현재로서 한중 관계는 한미관계와 비교해 보면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중적으로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에 대한 신뢰에 회의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을 택하는데 왜 한국을 반미의 북한처럼 봐줘야 되냐는 인식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21세기 생존번영전략으로서 미국과의 네트워크 유지는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중국을 적대적이 아니라 포용적으로 품어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더 이상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이념적으로 어느 쪽으로 따라가야 하느냐는 유아적 생각을 할 시기는 지났다. 중진국으로서 신뢰를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을 설득할 공간이 있다. 따라서 외교 운신의 폭을 확대하기 위한 신뢰 외교가 마지막 1년 동안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분야다.
Q. 남북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A. 2021년의 남북 관계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 하의 북미관계 개선은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쉽사리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한편, 국제 경제 제재와 코로나 전파 등으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진화적 자기 생산 노력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이 단기적 낙관론에 근거해서 일방적 포용 정책을 추진해도 본격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보다 장기적 신중론의 시각에서 이제까지 추진해 왔던 한국의 강경론과 온건론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의 복합론을 마련해서 다음 정부가 동일한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 당당하게 대응하려면
미국, 일본 경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Q. 한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A. 일본은 상대적으로 절정기를 지난 나라지만 여전히 우리보다 국민총생산이 3배 크고 아세안보다 약 2배 규모이므로 반드시 활용할 국제 역량이다. 우리가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더 당당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 경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 신질서 건축에서,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만 최우선적으로 주장하면서 한국의 핵심 이익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을 때, 한국은 한미일 네트워크의 국제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은 여전히 역사 청산의 어려움과 국내 정치적 제약 등으로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 과거청산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아주 장기적인 문제로 한 세대를 넘어선 긴 시간을 거치면서 치유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과거사 위원회는 계속 가동하면서 문제를 논의하되, 양국의 신세대들이 새롭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양쪽 국내 정치 리더십이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어설픈 정무적인 오판을 거듭했다. 가령 일본은 한국의 과거 문제 다루기에 대해 경제 제재라는 악수를 뒀고, 한국은 일본의 악수에 대해 비밀정보보호협정을 종료하는 악수로 응수했다. 이러한 악수 교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장치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포스트 코로나 신문명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과 공생의 무대에서 새 표준을 만들 수 있다면 두 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위해서도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모두가 패전국
복합적 재세계화 모델의 창조적 구상
중견국에서 나올 수 있어
Q. 마지막으로 포스트 코로나 국제 질서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A.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미국도 실패했고, 중국도 실패했고, EU도 실패했다. 모두 패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일하게 승리한 싸움이다. 이후의 세계질서는 앞서 말했듯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도 안되고, 자기중심적인 반세계화도 안되므로 제3의 모델이 필요하다. 새로운 복합적 재세계화 모델의 창조적 구상은 강대국이 아니라 오히려 중견국에서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신질서 재건축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국 혼자서 리더가 되어 질서 만들기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소국 연합으로 현실적인 질서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대국과 소국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링커의 역할이 절실하다. 그게 한국의 역할이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 4대 현안을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재건축을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미중 관계, 남북 관계, 한일 관계, 포스트 코로나 세계질서의 4대 현안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서 현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1년 후의 신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 권력들은 4대 현안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