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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한국의 전략은 ④] 내년 3~4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대 고비... 북미대화 재개 위한 적극적 역할 필요
북, 비핵화 카드 통한 대미협상 끈 놓지 않을 것
도쿄·베이징올림픽, 동북아 평화 분위기 만드는 기회로
트럼프 집권 4년은 많은 것을 바꿨다.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에도 ‘톱다운’으로 이뤄지는 파격적인 전환이 있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당선은 또다시 북미관계의 방식에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여시재는 바이든 시대 미국 외교안보정책과 북미관계, 미중 대립의 판도와 통상 정책 등 주요 분야에서 예상되는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점검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3편까지 바이든이 직면한 미국의 정세와 한국의 대미 외교 전략, 앞으로 펼쳐질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봤다. 이번 편에서는 바이든 시대 북미관계를 전망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의 글을 공유한다.
<글 싣는 순서>
1. 미국 정세 분석
2. 외교 전략
3. 미중 갈등
4. 북미 관계
5. 통상 정책
1. 트럼프 시대의 유산과 바이든 시대의 새로운 구상
트럼프 시대의 정책 유산
바이든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열어 놓아
어느덧 요란했던 4년간의 트럼프 시대가 지고 새로운 바이든의 시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미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수장들을 보면, 이들은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해 온 인사들이어서 벌써부터 외교안보 분야에서 ‘트럼프 지우기’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 특히 대북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이것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제1차 정상회담을 약속한 뒤 존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고 이란 핵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으며 북한의 핵 실험장 폭파 직후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을 못 믿고 중국에 다가가게 만드는 우(愚)를 범했다.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가 코언 청문회에 몰두하면서 대북 협상에 소홀히 하는 바람에 강경파들에게 휘둘려 합의문 도출이 불발로 끝났다. 이처럼 그의 정치계산을 앞세운 태도로 인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도 트럼프 시대의 정책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톱다운 방식으로 ‘은둔의 지도자’를 양지로 끌어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바이든 당선인도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에 대해 독재자를 정당화하고 위상을 높여줬다고 비판하며 실무협상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공약하면서도, ‘북한의 핵 능력이 감소된다’는 조건 아래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북・미 양측이 합의한 공동성명과 잠정 합의도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게 될 북・미 협상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제1차 정상회담의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이 합의됐다. 비록 결렬되기는 했으나, 제2차 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회담에서 북·미 양측은 ▲평화선언 ▲미군 유해 추가 송환 ▲상호연락사무소 설치 ▲영변 핵 시설 생산 중단 ▲한미 공동경제계획을 위한 유엔 제재 일부 해제 등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바이든의 일관된 목표
‘비핵화된 북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밝힌 대북 정책의 일관된 목표는 ‘비핵화된 북한’이다. 그는 이 같은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협상팀에게 힘을 실어주고 동맹국들과 중국을 포함한 그 밖의 세력과 함께 지속적이고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비확산과 핵안전에 관해 진행해 온 협상들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것이며, 새로운 시대의 군비 통제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비핵화된 북한’을 장기 목표로 두면서 북한 핵 위협을 감소하기 위한 핵 군축 협상과 군사적 억제 강화의 병행을 현실적인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핵합의(JCPOA) 방식의
단계적이고 점진적 핵군축 협상 추진
바이든 신행정부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제사회와 협력해 지속적인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경우에는 트럼프 방식의 일괄타결이 아니라 이란핵합의(JCPOA)를 청사진으로 삼아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핵 군축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핵 개발 초기의 이란과 달리 국가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단기간 내에 핵 무기를 제거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단계적으로 핵 무기 위협을 줄여나가는 군비 통제 방식을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협상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의장국을 맡았던 6자 회담의 복원을 상정하는 같지는 않다.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도 비핵국가인 한국, 일본의 다자협상 참여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6자 회담 방식보다는 한・미・일 3자 협의체를 복원하여 동맹 간의 공조를 강화하면서 합의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미중관계를 지렛대로 중국을 활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종 합의는 이란 핵 합의 때의 ‘5P+1 방식’처럼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모두 참가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바이든 신행정부는 북한이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지속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후퇴시키는 작고 검증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경우에는 스냅백 조항을 전제로 선별적 제재 완화가 가능하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또한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에 대해 북한 정권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며, 비핵화 진전과는 별개로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의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cf. 스냅백 조항 (Snapback Clause)
이란이 ‘핵합의안(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합의한 서명국들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협상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
2. 북한의 제8차 당 대회와 새로운 국가전략 모색
기존 자위력 강화 군사노선
견지할 가능성 높아
2021년 1월로 예고된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향후 북한이 어떠한 국가전략을 채택할지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새로 채택할 국가 노선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당대회가 연기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조선중앙통신이 1월 하순에 최고인민회의 제14기 4차 회의를 평양에서 연다고 발표함으로써 그 직전에 노동당 대회를 예정대로 개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선, 제8차 당대회에서 발표될 북한의 군사노선은 기존의 자위력 강화 노선에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년 6월 12일 리선권 외무상이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고, 7월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7월 27일 제6차 전쟁노병대회연설에서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데 이어, 10월 10일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는 “우리 인민이 영원히 전쟁을 모르는 땅에서 자자손손 번영할 수 있게 평화수호를 위한 최강의 군력을 비축해놓았습니다”면서 “우리의 군사력은 우리 식, 우리의 요구대로, 우리의 시간표대로 그 발전 속도와 질과 량이 변해가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기존 군사노선을 그대로 견지해 나갈 것임을 표명하고 있다.
자력갱생 추구해 온 경제노선
유엔 제재·COVID-19·전염병 삼중고
다음,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북한 당국이 과연 어떠한 경제 노선을 내놓을 것인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경제에서의 자립’을 내세워 자력갱생을 추구해 왔으나 사회주의 세계 체제의 해체로 석유·기계설비의 우호 가격 공급이 막히자 한계에 부딪쳤다. 그 뒤 핵 포기를 협상카드로 삼아 체제 안전의 보장과 함께 국제 경제 편입을 시도했다가 2019년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북한은 자력갱생의 경제 노선으로 되돌아갔다.
유엔 안보리 제재에 따라 2019년 12월 22일까지 해외근로자들이 전원 귀국하게 됨에 따라 북한은 당 중앙위 제7차 5기 전원회의를 열어 ‘자력부강’을 내세워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당초 북한은 해외근로자들의 외화송금 중단에 대비해 정면돌파전의 핵심 사업으로 관광 산업을 진흥해 경제 발전에 필요한 외화를 충당하려는 쿠바식 모델을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삼지연 관광단지, 원산·갈마 해안관광단지, 양덕 온천관광단지를 집중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3대 국책사업을 추진했다.
내수주도형 자력갱생 경제노선
공급능력 부족 해결이 성공의 관건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북한은 방역을 위해 북·중 국경을 걸어 잠갔고, 설상가상으로 태풍에 의한 수해를 입음으로써 북한 경제는 제재·전염병·수해의 삼중고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서비스업인 관광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자, 북한은 기존 관광 산업 육성 방안을 뒤로 미루면서 당 창건 75주년 기념사업으로 평양종합병원의 준공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조차도 기한 내에 준공하지 못하였다. 결국 북한은 국가경제개발5개년 발전전략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북한은 더욱더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북한 대외무역의 98% 이상을 차지하던 북중 교역액은 2020년 1~10월 기간 동안에 5억 3천만 달러로서 전년 대비 ¼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10월의 교역액은 전년 대비 99.4%나 감소해 사실상 대외무역이 전면 중단되었다. 지금 북한 당국은 시장 경제를 수용하고 달러화 사용 금지 및 북한 원화 사용을 장려하며 새로운 경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급능력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때문에 지금 북한은 공급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80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
대중 경제협력 강화로
대미 장기전 기반 마련 가능성 주목해야
에너지와 주요 자본재를 절대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내수중심형 자력부강 경제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당국이 대중 경제협력을 강화해 대미 장기전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은 자국 주도의 새로운 새로운 글로벌 가치사슬을 만들려는 쌍순환[兩个循環] 경제 전략과 일곱 번째 경제회랑 추진의 시범사업인 북중양강경제대[中朝兩江經濟帶] 구상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쌍순환 경제전략은 중국이 내수에 기반한 ‘국내대순환’을 중심에 놓고 고부가가치 첨단 기술은 한국, 일본과 협력해 기술혁신을 도모하며 저부가가치 상품은 동유럽이나 아세안, 북한과 생산협력관계를 통해 ‘국제대순환’을 구축해 나간다는 당 제19기 5중 전회에서 채택된 경제 구상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의 쌍순환 전략에 편승할 경우,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역가치사슬의 하청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북·중 양강경제대 구상은 중국이 추진 중인 기존의 6대 경제회랑 외에 7번째 경제회랑으로 구상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회랑을 구축하기 위한 일종의 시범사업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6대 경제회랑은 철도·도로 등 물류망을 중심으로 주요 경제권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이 동북3성 지역에 광범위한 철도망·도로망을 깔면서 북한 지역과 연결하려는 구상을 세워놓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보낸 축전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10월 29일 공개된 시진핑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新)중국 건국 71주년 축전에 대한 답전에서는 “우리는... 보다 훌륭한 복리를 마련해주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동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국은 중국은 인도적 지원과 같은 ‘복리’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 번영’을 내세워 북한을 새로운 가치사슬에 편입하고 지역경제권으로 묶여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대화 재개 기대감 버리지는 않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새로운 돌파구 필요
꼼꼼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시행되고 있는 한, 중국이 추진하는 쌍순환 구조나 북중 양강경제대 편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과도한 중국 의존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미 대선 결과에 대해 관망, 신중 자세를 보이면서 북한 해외공관에 ‘미국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지 마라’고 훈령을 내리는 등 아직까지는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 북한으로서도 당 대회 결정문과 관계없이 대미 비핵화 카드를 통한 국제경제체제 편입의 가능성은 열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미대화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한 현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오는 당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내수중심형 자력부강 경제 노선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자력갱생 경제 노선을 더욱 강화해 감에 따라, 핵 포기 카드로 국제 경제 편입을 시도하며 전개되었던 기존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 한 그대로 작동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
3.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과 한국의 역할
북, 핵무기고 확대 통한
대미 협상력 제고 및 대미 억제력 비축
앞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은 오는 제8차 당 대회에서는 자위적 핵 억제력 강화의 군사노선과 내수주도형 자력갱생의 경제 노선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핵 무기고를 계속 늘려나가는 것은 한편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 결렬에 대비해 대미 억제력을 비축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북한은 북·미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고 재개되더라도 단기간 내 타결이 어려워 유엔 안보리 제재가 해제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해 내수주도형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자력갱생 노선으로 체제의 생존까지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성장과 번영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비핵화 카드를 통한 대미 협상의 끈은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21년 봄에 핵 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의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은 한국에 이은 미국의 리버럴 정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한 제재, 감염병, 수해의 삼중고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내 안정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도록 작용하는 요인이다.
군사도발의 경우
미국 ‘전략적 인내’ 회귀,
또는 ‘적대시 철회’ 거부할 수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고 이에 맞서 미 신행정부가 당분간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전략적 인내’로 돌아서는 비관적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 신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선이 늦어지고 대북 정책 검토가 지체되고 당면한 국내 문제와 시급한 국제 현안에 쫓겨 대북 정책이 후 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제시한 적대시 철회에 대해 미국이 거부할 수도 있다.
만약 금년 8월 코로나19 사태로 축소 실시된 한미군사연습이 내년 3월에 대규모로 실시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이 인내하지 못하고 준비된 전략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이 전략도발을 감행하게 되면 바이든 신행정부도 과거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정기 한미군사연습 외에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전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등 북한 위협을 억제하는 강경 정책을 취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강경 대응을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 중국은 한층 엄격하게 국경 밀무역 단속에 나서며,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및 유엔 안보리가 허용한 정제유, 중유마저도 축소 제공 내지는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도쿄올림픽 개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즉각 보복조치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만약 코로나19와 북한 도발이 결합돼 올림픽 개최가 무산된다면 모든 책임을 북한에 돌리면서 유보된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론’을 재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대북 공세에 나설 것이다.
향후 북미관계의 관건
1. 대화재개에 대한 미국의 조건 수용 여부
2. ‘적대시 철회’에 대한 미국의 제시 조건
3. ‘적대시 철회’ 언제 제시할 것인가
금년 7월 10일 대남 및 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현 시기 북한의 대미정책 방향을 담고 있는 사실상의 ‘대미 독트린’을 발표했다. 여기서 안보-안보 교환, 능력 기반 군사 전략, 선제 핵 불사용 원칙, 단계적 비핵화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 가운데 대미 협상과 관련해 ① 북‧미 대화 재개⇆ 적대시 철회, ② 비핵화 ⇆ 상응조치의 두 단계로 나눈 점은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미관계의 첫 번째 관건은 과연 미국이 북한이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제시한 ‘적대시’에 대해 답을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조건 없는 북미대화를 요구하며 거부할 것인가, 두 번째 관건은 만약 미국이 전제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북한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적대시 철회’의 내용이 무엇이 될 것인가, 세 번째 관건은 이러한 방안을 언제쯤 내놓을 것인가 하는 세 가지이다.
첫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남겨놓은 시급한 국내문제들을 정리하기 위해 북한의 요구에 즉답을 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신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코로나19 수습, 경제 회복, 인종차별 해소, 기후변화 대처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한반도 정책을 담당하는 동아태 차관보의 미 의회 인준이 보통 6월에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대답이 늦어질 수 있다.
둘째, 북한이 철회를 요구한 ‘적대시 정책’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까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3일 새벽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해 상징적이고 가역적인 정치 선언으로 ‘종전선언’을 적대시 철회의 내용으로 제시했다. 굳이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미국은 평양과 워싱턴의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핵 전략 자산의 한반도 이동·배치 금지, 대화 기간 중 대북 군사행동 금지를 ‘적대시 철회’의 내용으로 북한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에게 ‘적대시 철회’를 언제 제시할 것인가 하는 시점도 중요하다. 내년에는 3월 한미군사연습, 4월 한국 보궐선거, 7월 말 ~ 8월 초 도쿄올림픽, 9월 초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등이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답변이 늦어질 경우 북한이 먼저 전략 도발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의 선제 도발이 있게 되면 상당 기간 북·미 대화의 복원은 어려워진다. 이처럼 답변 여부, 적대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내수중심형 자력갱생 노선 채택 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 어려워
미국 신행정부가 실무형의 버텀업(bottom-up) 협상 방식과 같은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하고 북한이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면서 한층 강화된 내수중심형 자력갱생 노선을 채택할 경우,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재개되기 어렵게 된다. 설령 재개되더라도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사태 전개를 방관해서는 안 되며,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재개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조기에 재가동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021년 3~4월 중대고비
북에 대화 신호 보내도록 미 설득해야
먼저, 2021년 3~4월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여기서 미 신행정부가 북한과 조기 대화의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정책을 담당할 동아태 차관보는 미 의회의 인준을 거쳐 내년 6월이 돼서야 임명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대미 접촉을 통해 미 의회의 인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조기 임명해 북측에게 대화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관계개선 분위기 전환할
춘궁기 식량, 코로나 백신 제공 등 고려
북한이 요구한 ‘적대시 철회’에 답하기 위해서는 춘궁기를 맞는 3월 경에 맞춰 인도적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제공하거나 백신 개발이 완료될 경우 코로나19 백신의 제공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3월 한미군사연습을 연기하거나, 전략 자산의 한반도 이동·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함으로써 관계 개선 의사를 전할 수도 있다.
국내적으로 2021년 4월의 보궐선거가 치러진 다음에는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이 전개될 전망이다. 한미 양측이 북미대화의 재개 조건을 충족시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된다면, 미 신행정부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법에 따라 비핵화에 관한 공동의 정의와 비핵화 로드맵 작성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이룬다. 남북 및 북·미가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상대에 대한 크고 작은 군사적 도발이나 군사행동 위협을 자제하도록 합의한다.
올림픽 활용해 평화 분위기 조성
안전 보장 및 폭력 행위 자제 유도해야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내년 10월 자민당 총재와 일본 총리 선거를 앞둔 스가 정권으로서는 어떻게든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2021년 7월 23일 ~ 8월 8일 및 8월 24일 ~ 9월 5일 사이에 제32회 도쿄하계올림픽 및 하계패럴림픽이 있을 예정이며, 2022년 2월 4일 ~ 20일 및 3월 4일 ~ 13일 사이에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열릴 계획이다. 이와 같이 잇달아 열리게 되는 도쿄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을 활용해 일정 기간 동북아 지역의 평화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유엔총회는 올림픽 기간 동안 참가 선수와 임원진의 안전을 보장하고 전쟁이나 테러 등 과격한 폭력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2020 도쿄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20년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올림픽을 차례로 개최하는 한·일·중 3개국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일본 정부가 북일 접촉을 재개하고 올림픽 참가 목적의 북한 선박 입항 허용, 조총련 단속의 완화에 나서도록 후원할 필요가 있다.
2021년은 한반도 정세가 평화 국면으로 가느냐, 아니면 또다시 전쟁위기 국면로 치닫게 되느냐를 가를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내년 4월 보궐선거와 후년 3월 대통령선거 때까지 1년은 국내적으로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에 휩싸일 위험성도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기에 내년 3~4월 중대 고비를 잘 넘겨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도쿄 및 베이징 올림픽 기간을 잘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좋은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변화된 국내외 환경에서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역량에 달렸다.
필자 조성렬은 한반도 안보와 북한군사, 국방문제 및 한일관계 전문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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