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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보는 미국’과 ‘미국인이 사는 미국’은 달라
‘트럼프 4년’으로 미국은 리더십 실추와 내부 분열이라는 큰 상처를 입었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구호로 내세운 조 바이든 당선인의 책상에는 당장 코로나19 종식과 경제 회복의 시급한 과제와 함께 미국 리더십을 회복시키고 분열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놓이게 됐다. 바이든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바이든 시대 미국 외교안보정책과 북미관계, 미중 대립의 판도와 통상 정책 등 주요 분야에서 예상되는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점검해봤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올바른 대응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세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첫 순서로 김영준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국방대 교수)가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상황을 미국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을 싣는다.
<글 싣는 순서>
1. 미국 정세 분석
2. 외교 전략
3. 미중 갈등
4. 북미 관계
5. 통상 정책
한국에 미국은 절대적이지만
미국에 한국은 여러 동맹국 중 하나
미국 역사에서 유례없는 상황으로 기록될 2020년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전 세계 대통령’을 왜 미국인들만 선출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번 미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아마 세계 뉴스 시청률을 종합하면 월드컵 결승전 시청률을 능가했을 것이다. 이토록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4년 임기 대통령 선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자국 지도자 결정이 국민의 모든 삶, 일자리, 외교와 국방, 자녀들의 교육, 주택, 복지, 환경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듯이,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인들의 모든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이란 노인이 외국 방송 인터뷰에서 자기 평생에 펜실베이니아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미국의 지역 투표 결과를 신경 써야 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수 주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던 기나긴 선거도 이제 마무리 단계에서 각국은 차후 펼쳐질 새로운 미국 대통령 주도의 세계 질서와 자국에 미칠 영향, 자국과의 관계에 대한 셈법 계산에 집중하고 있다. 나아가 이미 계획했던 모든 수단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당선자와 물밑 접촉을 통해 국익 극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마다 매번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국의 대선 못지않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정전협정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케네디 행정부 시절의 민주화 요구와 이어진 존슨 행정부 시절의 베트남 전쟁, 닉슨 행정부 시절의 데탕트와 카터 행정부까지 이어진 주한미군 철수 사안, 레이건 행정부의 신냉전과 신자유주의,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냉전 종식과 걸프전,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북핵 위기와 해소, 이어진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의 악의 축과 테러와의 전쟁,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와 북핵 위기 고조, 최근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한반도 전쟁 위기설과 북미 회담까지 간단히 돌아보아도 지난 70년 넘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한미와 남북 관계사의 이중주라고 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경제와 발전도 이루었지만, 동시에 여러 국내 정치적 상황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전략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미국에게 한국은 수많은 주요 동맹국들 중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한국에게 미국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의 전통적 중심이었던 중국 그 이상이었다.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넘어 미국화를 선진화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의 모델을 미국으로 설정하고 달려온 지난 반세기 이상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미국은 부인할 수 없는 중심 국가였다. 반미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도 시위하는 동안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맥도날드 점심을 먹고, 시위를 마치고 나면 미국 유학 준비를 하러 토익학원에 가면서 스타벅스 커피숍을 들른다. 청년 시절부터 미국을 시종일관 비판하던 정치인 지식인들도 자녀들을 미국 유학을 보내고 미국 시민권자인 손주 손녀 보러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걱정도 미국에 대한 신화가 깨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민주당 내 젊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끼어
이제 바이든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은 대미 정책을 점검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이다. 바이든의 집권은 전통적인 민주당 주류 인사들의 복귀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멀게는 클린턴 행정부, 가깝게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거나 간접적으로 관여된 인사들이다. 한국의 정관계 외교계 학계 언론계 등에서도 클린턴-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많은 인사와 인연이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 집권 때 당황스러워하던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클린턴-오바마 민주당 정부의 전통은 이어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같을 수는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 그리고 민주당 내에 급부상한 샌더스-워렌 지지자 중심의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포용하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는 무역, 방위비 분담금, 전작권 전환, 미사일 협정, 원자력 협정 등 한미관계 혹은 대북 정책에만 초점을 맞춘다.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여러 다양한 위기들을 경시하고, ‘The Winner Takes It All(승자독식)’의 관점에서만 바이든 행정부의 對한국, 對북한 정책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매우 협소한 시각이며 경계해야 하는 관점이다.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현재 상황을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미국’이라는 관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보아야 한다.
바이든은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만큼 압승하지 못했다. 조지아, 애리조나에서 접전 끝에 놀라운 승리를 거두고 러스트 벨트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마지막에 1골을 더 넣은 축구나 농구의 결승전이 아니다. 바이든이 反트럼프 결집으로 역대 최다 득표자로 선출된 대통령이 되었지만, 트럼프 역시 역대 2위라는 많은 득표를 했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압도적 표차를 예고하던 여론조사와는 달랐다. 애리조나 조지아도 근소한 격차로 이겼고 플로리다는 졌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여론조사 대로 압승을 거두었다면, 주류 언론이 4년간 줄곧 보도했던대로 反트럼프 정서가 미국 전 지역에서 대세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는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을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외연은 더 확장
트럼프와 공화당의 건재 확인해준 선거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어쩌면 공화당이 트럼프의 정당이 되었다는 점일 수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외연을 확장하고 더욱 견고해졌다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시대가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이 여론조사대로 상원과 하원도 블루 웨이브가 아니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의 건재를 확인해 주었다.
정치는 생물이다. 한국 선거로 본다면 간발의 차이로 겨우 이긴 대통령의 5년이 어떠하였는지 멀지 않은 기억을 돌아보면 이해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당으로 완전히 재편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충성도가 견고해진 지지자들은 대선이 패배한 이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를 4년 내내 의회 내와 밖 언론, 광장에서 공격할 것이다. 선거 기간 내내 바이든 후보를 공격했던 것은 친중파,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유약함, 우크라이나 아들 스캔들 등으로 비판받는 민주당의 부패한 워싱턴 정치인, 불법 이민자들을 끊임없이 미국 제도 속으로 받아들여 미국인 저학력 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는 등의 비난들이었다. 이 비난이 4년 내내 바이든을 힘들게 할 것이다. 상원과 하원을 장악하지 못하고, 트럼프 중심의 극렬하고 외연이 확장된 반대자들에게 압승을 거두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 지금 수많은 언론 보도들의 보도대로 완전한 “America is Back”이 가능할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바이든은 선거 공약대로 하겠지만
그렇게만 하기에는 한계 뚜렷
바이든 정부는 선거 때 약속했던 대로 파리 기후협정 복귀, 이란 JCPOA 복원 등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한 미국인들의 절반이 끊임없이 ‘가짜 대통령 (Fake President)’라는 구호로 결집하며, 바이든 행정부를 몰아세우는 상황도 우리는 동시에 인지한 상태에서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맥락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압승하지 못한 바이든, 외연이 확장된 트럼프, 의회에서 여전히 강한 장악력을 가진 공화당 등 바이든이 이들의 입장과 목소리, 예정된 비판들을 고려하고 정책을 집행한다면, 정책의 결과물과 추진 동력은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압승하지 못한 대통령, 여소야대 조건 하의 대통령, 한국 사회에서 그 대통령들의 임기와 정책들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국회에서 바이든 어젠다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연되고, 광장에서는 극렬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시위와 반대가 빗발치며, 친 트럼프 언론들은 반대 담론을 확산(SNS 시대라 더욱 극렬한 방법으로 확장될)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을 고려한 국정철학의 수정과 변형, 이에 대한 핵심 지지자들의 이탈과 비판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바라보는 미국’과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미국’ 사이의 거리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유엔사무총장이나 교황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로의 복귀, 세련된 방식의 미·중 관계 관리, 기후변화 복귀, 국제 비확산 체제 주도 등을 추진해나갈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유엔사무총장’이나 ‘교황’이 아니다.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에 선심을 베풀고 다니고, 불필요한 전쟁에 개입하여, 미국의 노동자 서민들을 소외시키고 실직을 방치했다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비판을 외면하고, 클린턴-오바마 행정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이들 비판 담론과 반대 국민들, 야당 정치세력, 반대 언론들의 비판 속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들은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추진되겠지만, 이전 민주당 시절 (이러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극렬한 비판이 부재하던)의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현재의 미국을 외면한 교과서적인 분석, 지극히 외국인의 눈으로 관찰하는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현지에서 이러한 정치적 다이내믹과 극렬한 정치 양극화를 체험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바이든 행정부 4년이 무난하게 원했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선거 직후의 허니문 기간은 일정 정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앞으로 4년의 바이든 행정부를 전망할 때 이러한 점들을 기준으로 우리의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 김영준은 한반도 안보와 국방, 군사 문제 전문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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