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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교수, “9시 공장 출근, 6시 퇴근? 옛날 얘기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산업혁명에 COVID-19가 겹친 ‘복합 위기’ ‘복합 전환’의 시기다. 당장은 방역과 재난구호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더 이상 예전의 그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동의 기본 성격 자체가 엄청나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과 피고용 관계 자체는 물론 보험 등 사회제도 전반에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재)여시재는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과제 발굴을 위해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초청, 세미나를 진행했다. 박 교수가 발제하고 여시재 연구원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박 교수는 “노동 시간의 경계, 공간의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며 이번 계기에 노동법 전반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교수 발표내용 요약>>
1. 노동법 개편 왜 필요한가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공장법’이다”
COVID-19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다. 보통 언택트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산업혁명 이후 노동은 네 단계를 거쳐 왔다. 1차 산업혁명은 노동의 기계화를 의미한다. 노동법은 여기서 출발했다. 노동법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와도 같다. 2차 산업혁명은 대량생산 대량고용이다.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 일반화됐다. 보통 ‘노동 2.0의 시대’라 부른다. 그 다음이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인터넷 보급을 시작된 ‘노동 3.0의 시대’다. 그리고 네 번째가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노동 세계의 키워드는 ‘해체’다. 노동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 플랫폼 중심 노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의 노동법은 전통적인 공장 노동 시대에 맞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말하자면 ‘공장법’이다. 9시 출근해서 12시에 밥 먹고 6시에 퇴근한다. 연장, 야간, 휴일에 일하면 수당을 받게 되어 있다. 이 틀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지 않다.
우리 스타트업들 중 잘나가는 회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채용하는 순간부터 해고하지 못하게 되면 끔찍한 현상 발생한다. 해고가 법에 어긋나면 모두 복직시키게 되어 있다. 그러니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금전 보상 등으로 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열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기준을 명확하게 변경해 줄 필요가 있다.
“한국에만 남아 있는 호봉제”
현재의 노동법을 기업 입장과 노동자 입장에서 살펴보자.
먼저 기업 입장이다.
‘국가가 기업의 인력 관리에 과도하게 개입한다. 임금 규제, 근로시간 규제가 너무 획일적이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은 한국에만 존재한다. 소송 가액만도 1년에 7~8조 원에 이르는데 로펌만 살찌운다. 호봉제도 한국에만 남아 있는 유산이다. 일본도 1960년대부터 조금씩 바꿔왔다. G20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유연근무제는 노조 반대로 안된다. 근로 조건과 상황이 계속 바뀌는데 현재 노동법 아래서 노사는 해결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자꾸 법정으로 간다.’
“노동법은 머지않아
박물관에 가야 할 것”
<젊은 취업자 입장>에서 보자.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그렇게 분류되는 순간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다. 사각지대는 점점 커진다. 현재의 노동법은 전통적 산업 노동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제조업이 20%도 안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통 블루칼라라 부르는 사람들 중심으로 노동법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아마 조금 지나면 현재의 노동법은 박물관에 가야 할 것이다. 노동법이 적용되는 현장이 급격히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상황으로 가게 될 것이다.’
<노동법 개편, 무엇을 어떻게?>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법의 현대화가 필요”
노동 세계의 변화는 노동법의 위기를 가져왔다. 이는 곧 우리의 위기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드 이코노미를 기초로 한 노동과 뉴 이코노미를 기초로 한 노동이 병존할 수 있는 다층적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첫째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법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법규정을 개선하고 새로운 노동 방식과 근로시간 규제의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근로시간 자기결정권(근로시간 주권) 확대와 근로시간 총량규제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자율과 재량 중심의 유연근무제 실현이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재량 근무를 회사가 근로자를 신뢰하고 근로자도 회사를 신뢰하는 신뢰근로시간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근로시간 총량 규제 방식의 ‘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는 이미 유럽이 199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cf. 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
연간 단위로 근로시간을 정해놓고 회사와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제도. 예컨대 2시간 더 일했다면 이를 계좌에 저축해놓고 나중에 휴식할 수 있게 한다. 독일에서 처음 도입됐고 지금은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 운용되고 있다.
“현재의 노동법은 ‘All or Nothing’,
중간지대 근로자 보호장치가 없다”
두 번째는 취업 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법의 다층화 과제를 들 수 있다. 현재 국내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All or Noting’의 형태를 띤다. 근로기준법상 규율 대상이 되는 근로자가 될 경우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모든 보호 혜택을 누리게 된다. 채용부터 퇴직까지 혜택을 누린다. 연금 보험도 절반만 내고 회사가 나머지를 부담한다. 하지만 근로자가 아닐 경우 아무런 보호도, 혜택도 얻지 못한다. 한마디로 절벽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획일적이고 표준적 조건 중심 근로기준법의 한계다.
미국에선 연봉 10만 달러 이상이면 근로기준법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본도 1000만 엔 이상 금융 근로자는 법정 근로시간 대상이 아니다. 그데 우리는 연봉이 1억이든 2억이든 야근수당, 연장수당 모두 받게 되어 있다. 노동법상 이쪽에 주는 혜택을 줄이고 1인 사업자와 플랫폼 노동자를 더 보호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도 중간지대(자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법 확대 방안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유럽에서는 중간 형태의 모델이 존재한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모두 중간 모델이 있다. 기존 근로자 중 Exemption 범위를 확대하고, 경제적 종속성을 가진 1인 자영업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법 제정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위한 공정 계약 조건의 마련 등의 노동법 다층화가 시급하다. 우리는 늦었다.
이번 COVID-19로 긴급 편성된 예산이 1, 2, 3차 추경과 앞으로 추가될 것을 더하면 100조 원은 된다. 이 돈은 공짜가 아니다. 앞으로 회수해야 한다. 노동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다.
“19세기 공장법 폐기하고
새로운 기본법 제정해야”
세 번째 과제는 근로계약기본법 제정이다. 현재의 노동법은 19세기 공장법을 근대화한 근로기준법으로, 이를 대신할 새로운 취업 형태를 포괄하는,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계약 중심의 새로운 기본법이 필요하다. 국가가 획일적으로 감독하고 단속,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스스로 정한 계약 규범에 따르고 준수하는 방식으로의 혁신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역할 축소될 수밖에 없어
노사 자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네 번째 과제는 새로운 집단적 노사관계 구성을 통한 노사 자율규제 확대를 들 수 있다. 산업 구조와 취업 형태의 변화에 따라 노동조합의 역할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를 대신해 근로자의 참여 확대를 위한 집단적 노사 자치 시스템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협약 자치와 사업장 자치의 이원 구조로 성립되며 노동조합의 역할을 산별, 업종별 차원으로 확대하고, 사업장은 모든 종업원의 대표성을 확보한 평의회(Works council)로 재편한다.
“감염병 등 국가위기에 대응할
새로운 규칙 필요”
마지막 과제로는 감염병 유행 등 국가 위기 시 대응이 가능한 노동법 구축이 필요하다. 경제활력을 위한 노동 규제 개혁으로 재정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고, 신속한 위기 대응을 위한 한시적 규제 완화 등의 노사정 간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 이 외에 기업 및 고용안정 지원, 근로시간 규제완화 등의 한시적 조치 검토, 재택근무 활성화를 위한 제도 보완 등이 구체적 내용에 해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노동법은 지난 60년간 산업화 시대의 규칙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사회경제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특히 노동의 디지털화는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COVID-19는 우리에게 불확실한 위기를 증대시켰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노동법 구상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 해외 사례-독일과 네덜란드 중심으로
‘COVID-19 노동 특별법’ 제정한 독일
노동법을 정보관련법, 경쟁관련법과 같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업 조직, 이해관계자와의 합리적 이익 조정을 위한 규범적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노동법을 구상하고, COVID-19 팬데믹에 대응하는 위기관리를 위한 한시적 장치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하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의 변화와 법 제도의 괴리를 줄여나가는 작업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독일이 앞서 있다. 2020년 3월 27일 독일은 세 가지 패키지로 구성된 ‘COVID-19 특별법(감염병 보호법, 근로시간법, 휴업수당령)’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근로자 재택근무 청구권 법 만든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독일은 재택근무에 관한 법률안도 준비 중이다. 현재는 재택근무 실시 여부가 사용자의 결정 사항이며, 근로자 이니셔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은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에 대한 자율권을 높임과 동시에 사용자의 거부권 행사(객관적 조건에 의한)가 가능한 방안으로 2020년 하반기 입법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사업자와 근로자 양 측에게 필요한 방안으로써 사업 이익과 고객의 희망사항을 반영한 것이며, 이에 대한 벤치마킹 사례로는 2015년 네덜란드 모델이 있다.
3.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
기본소득 온건론과 급진론
우리 노동법은 60년간 경제성장의 규칙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 할 수 있다. 그 핵심은 감독과 벌칙, 채찍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근로자 중심으로 사회안전망이 구축됐고 노조도 정규직 중심이었다. 그러나 사회 경제 환경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 규제를 놓고 완화 또는 폐지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또 진영 갈등이 생기게 되어 있다. 새로운 노동법을 구상해야 한다. 아직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 논의도 올해 하반기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래디컬한 사회개혁론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주류였으나 갑자기 주류적 위치가 됐다. 현재 기본소득을 둘러싸고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기존 복지 시스템에 행정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국민들에게 월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주고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자는 게 온건론에 해당하고 기존 복지에 기본소득을 추가로 얻자는 것이 급진론이다.
당연히 동시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미래세대가 우리 세대의 기반 위에서 더 발전토록 해야 한다는 원칙도 가져가야 한다.
나는 하이브리드 모델 입장이다. 급진적 기본소득 도입은 보수적인 분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적합한 모델 구축을 위한 데이터도 더 축적해야 한다. 한번 선회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시작할 때 방향 잘 잡아야 한다.
고용보험 소외된 근로자 전체의 51%
노동 고용 전반 걸친 대논쟁 필요
고용보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임금 노동자가 2000만 명이다. 자영업이나 프리랜서가 700만 명이다. 전체 2700만 명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1350만 정도, 49% 불과하다. 절반 이상이 구직급여, 고용유지지원금, 직업훈련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특수고용직, 비정규직, 파트타이머 등이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감염병이 오면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를 좁혀나가야 한다.
현재 실업보험 기여율이 회사와 개인 각 0.8%씩 1.6%에 불과하다. ‘저부담 저급여’인데 ‘중부담 중급여’로 가야 한다고 본다. 연금, 의료보험 다 마찬가지다.
노동과 복지 전반을 놓고 사회적 대논쟁과 타협이 필요하다. 노동법이 그 핵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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