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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黨校 교수가 쓰는 중국공산당 이야기]
가치 선택의 갈림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게 인간”
중국청년보에 실린 글이 논쟁 촉발
97년 ‘독서’ 주필 왕후이 논문 발표로
신좌파와 자유주의자 논쟁 본격화
자유와 평등, 효율과 공평의 갈등 해결
직접·간접 민주주의 놓고 열띤 공방
덩샤오핑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노선
두 이론 사이 균형 잡는 형태로 전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실용주의 이념에 따라 개혁·개방으로 국가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 생필품 공급이 많아지게 되면서 국민은 개혁·개방의 단맛을 맛보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사상 해방의 물결이 전 사회적으로 일기 시작했고 그 물결은 노(老)좌파와 계몽주의 지식인들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인기 일간지인 ‘중국청년보’에 실린 익명의 글 한 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국가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게 인간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국가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념이 절대우위였던 중국에서 이 글은 폭발적인 파문을 일으켰고, 노좌파와 계몽지식인 간의 논쟁을 불붙게 했다.
1980년대 초 필자는 동북의 어느 시당 선전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무엇을 개혁하는가, 무엇 때문에 개혁하는가, 어떻게 개혁하는가, 개혁하여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 등 네 가지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앞의 세 가지 질문에는 나름대로 답을 만들어 강의할 수 있었으나 네 번째 질문에는 대답을 못 찾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개혁을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제도에 잘못된 것을 뜯어고친다는 것인데 개혁의 방향은 절대 자본주의는 아니라고 당에서는 분명히 주장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있다. 한데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방향으로 고치는 것은 또 아니라고 하니 그럼 도대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 고민이 결국 선전부장을 그만두고 베이징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되기도 했다.
개혁·개방, 심각한 사회 불평등 야기
그 시절 계몽주의자들은 중국은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봉건사회에서 사회주의 단계로 건너뛰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단계에서 거쳐야 할 것들을 보충수업 받는 것이 바로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노좌파는 어떻게 개혁을 하더라도 평등주의는 절대 버릴 수 없는 기본원칙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개혁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덩샤오핑은 ‘네 가지 기본원칙’, 즉 ‘사회주의 방향, 인민민주독재, 당의 영도,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마오쩌둥 사상’을 견지하는 것은 기본원칙이기에 개혁·개방은 이 네 가지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고 노좌파들을 다독였다. 덩샤오핑의 절대적 권위로 개혁은 점진적으로 추진되어 90년대까지 별탈 없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이르러 개혁·개방은 물질의 풍요와 함께 심각한 사회 불평등을 야기했다. 그 결과 노동자·농민 대중은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렸고 일부 관료와 국영기업인, 신진 민영기업인들이 사회 중심에 서게 됐다. 이런 상황을 대변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젓가락을 들고는 고기를 먹고 밥사발을 내려놓고는 어머니를 욕한다(拿起筷子吃肉,放下筷子罵娘)” 이 말은 중국 공산당을 어머니에 비유해 온 배경에서 나왔는데, 생활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으나 새로 생겨난 심각한 불평등으로 인해 공산당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아졌음을 이야기한다.
이런 배경에서 계몽주의와 노좌파 간의 논쟁은 신좌파와 자유주의자 간의 논쟁으로 전환됐다. 신좌파라고 함은 노좌파의 좌장들이었던 덩리췬(鄧麗群)·왕런즈(王忍之)·위안무(袁木) 등 노세대 학자 내지 관료들에서 왕후이(汪暉)·추이즈위안(崔之元) 등 30~50대 신진 학자들로 좌장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좌파는 마오쩌둥의 공과 과를 7대 3으로 나누었는데 신좌파는 8대 2로 공을 8, 과를 2로 평가하면서 노좌파보다 더 좌로 기울었다.
97년 중국에서 수백만 권이 발행되며 큰 인기를 끈 잡지 ‘독서’의 주필이던 왕후이 박사의 논문 ‘당대 중국의 사상 현황과 그 현대성 문제’의 발표로 자유주의와 신좌파 간 논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 논쟁은 자유와 평등, 사회공정을 실현하는 대안,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등 세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됐다.
먼저 자유가 우선인가, 평등이 지상과제인가(自有優先, 平等至上)에 대한 논쟁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은 이랬다. 개인이 사회 구성 기본단위다. 자유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고, 개인의 재산권 보호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실현하는 권리의 평등이 중요하다. 기회의 절대평등은 있을 수 없다. 정부는 개개인이 본인의 노력을 통해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범위를 임의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결과의 평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만 있을 뿐이다. 진정한 또 유일한 평등은 도덕적 평등과 인격의 평등뿐이다. 경제적인 균등분배는 경제적 진보가 아니다. 개개인의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는 개개인 사이의 부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양성과 복잡성은 문명사회의 중요한 징표다.
신좌파, 세계화에서 발 뺄 것 주문
반면 신좌파는 현실적 시각으로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평등지상 원칙을 주장한다. 자유와 효율보다는 공정(公正) 가치를 우선시한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불공평한 분배의 결과이며 자유효율 우선주의의 발전관과 현대화 전략의 결과라고 봤다. 효율 우선주의는 부패 현상까지도 서슴지 않고 종용(縱容)한다고 지적한다. 신좌파는 현재 중국은 세계 자유자본주의 체제에 완전히 합류했고 이대로 간다면 중국은 결과적으로 희망이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자유방임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세계화에서 발 뺄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둘째로 효율과 공평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현상에 대한 진단부터 다르다. 신좌파는 과도한 시장화 개혁을 빈부격차 심화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생산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고 특권계층의 특권을 강화시킴으로써 사회 불공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자는 빈부격차가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결과가 아니라 특권계층이 자신들이 장악한 공권력을 이용해 거액의 부당이익을 취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계획경제체제와 연관돼 있고 시장화 개혁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 불공평을 해결할 대책에 관해서도 두 파는 팽팽히 맞서 있다. 신좌파는 생산재의 국가 소유, 강력한 정부에 의한 부의 재분배만이 불공정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열세에 처한 서민들의 생존환경을 개선하고 심각한 빈부격차의 해소를 위해 강력한 정부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 공정 경쟁 확대 주장
이에 반해 자유주의자는 경쟁규칙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경제자유를 심화시켜 공정한 경쟁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계층 간의 부의 흐름을 조절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고 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자원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좌파는 시장 개혁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는 반면 자유주의는 시장화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문제도 논란이 됐다. 신좌파는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한다. 현대의 경제 발전은 필연코 사회의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익의 다원화로 사회는 구심력을 잃고 분산화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산되어 가는 사회이익을 취합해 국민 전체의 정치적 의지와 정치적 구심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간접선거를 최소화하고 직접선거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직접선거 주장은 평등 지상주의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민주화는 반드시 사회 등급제를 타파해야 하는데 이는 의회제도의 외형만 갖추고 실제로는 권위주의화되어 있는 행정부를 개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주의 행정부하에서 국민은 자유도 권리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등지상주의에 입각한 신좌파는 마오쩌둥 시대 전체 국민이 총동원됐던 인민공사, 대약진, 문화대혁명과 같이 합리적인 정치자원이 동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신좌파가 주장하는 직접민주는 고대사회의 도시국가에서는 가능한 것이며 현대 민족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이념에 의해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후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등 역대 정권의 실제 정책노선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신좌파와 자유주의 주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덩샤오핑은 실용주의 이념과, 일부 지역 일부 사람이 시장경제로 먼저 부유해지고 점차 그 제도를 전체로 확대해 다 같이 부유해진다는 ‘부채 전략’으로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다. 개혁·개방이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사회 생산력의 발전, 국가 종합국력의 강화, 인민 생활 수준의 향상’에 이로운지 아닌지만이 유일한 판단기준이라는 논리로 개혁·개방 정책노선을 견지했다.
장쩌민 정권은 노좌파들의 저항으로 형성된 열악한 정치환경 속에서도 시장경제 방향으로 개혁을 이끌어 2002년 16차 당 대회에서는 “시장경제는 중국의 기본 경제제도”라고 당의 문건에 못 박으면서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의 쟁론을 적어도 당내에서는 매듭지었다. 후진타오 정권의 정책노선은 과학발전관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빈부격차, 도농격차, 지역격차를 줄이고 자연 파괴를 줄이며 고투입-저산출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성장·분배 두 토끼 잡겠다는 의지
시진핑 국가주석은 시장경제의 기초적 역할을 결정적 역할로 격상시켜 시장경제로의 개혁 방향을 보다 분명히 했다. 도농격차와 빈부격차의 조절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특히 빈부격차의 조절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표방되는 정책노선은 신좌파의 주장과도, 자유주의 주장과도 구별되는 것임은 분명한데 그 구체적인 논리는 아직도 탐색 중에 있는 듯 보인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현재 가치선택의 기로에 서 있고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는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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