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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자유노동자’ 5억 4000만 명 시대 맞춰 시스템 재설계 필요
문명의 발전방향
단번에 뒤집은 COVID-19
COVID-19가 던지는 도전은 묵직하다. 누구나 알듯이 핵심 메시지는 ‘비접촉’이다. 사람이 숙주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마라, 접촉하면 퍼진다, 목숨을 지키려면 비접촉 원칙부터 지켜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서로 간의 접촉면을 점점 더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마을은 도시로 넓어졌다. 마을과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국가 전체를 이동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세계화 바람은 그런 이동이 전 세계로 확대되게 만들었다. 도시 간 무역은 국가 간 무역으로, 다자무역질서로 넓어져왔다. 유럽연합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FTA는 세계화 속의 블록화였다. 전 세계 누구나 만나고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다는 특징이, 현대 문명의 중요한 차별점으로 여겨지는 데까지 왔다.
‘접촉하지 말라’고 하는 코로나의 주문은 이런 문명의 발전 방향을 단번에 뒤엎는다. 국경은 가로막히고, 도시는 봉쇄되었고, 무역은 축소되었다. 이동과 접촉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는 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 중단됐다. 국경은 다시 높아졌고, 보호주의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게 됐다. 세계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초유의 공동 재난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생산’ 자체가 위기인 시대
깊이가 다르다
“지금 세계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최근 쓴 칼럼 제목이다.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을 보고 쓴 글이다.
IMF는 지금 세계의 상태를 ‘대봉쇄(great lockdown)’라고 불렀다. 마틴 울프는 그 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대폐쇄(great shutdown)’ 상태라고 했다.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 중 절반이 봉쇄 상태를 경험했다. 경기 부진이나 불황이나 심지어 공황과도 다른 상황이다.
이전 위기들은 공급 과잉으로, 금융 경색으로, 환율 변동으로, 수입 급감으로 위험이 커져서 거래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지금은 접촉 자체가 위험이고, 접촉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거래 자체’가 위험이고, ‘생산 자체’가 위험이라서 경제가 위축되는 위기다. 깊이가 다르다. 뿌리를 건드리고 있다.
2009년 6% 국가에서 소득 감소
이번엔 90% 국가에서 감소
IMF는 올해 선진경제국은 마이너스 6.1%, 신흥경제국은 마이너스 1% 역성장 할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동시에 역성장을 하는 것 자체가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처음 나온 전망이다. 189개 회원국 중 90%가 넘는 국가에서 1인당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09년 당시에는IMF 회원국의 64%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했고, 국민소득은 평균 1.6% 줄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큰 4.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IMF는 또한 지금까지 90%의 기간 동안 2.5%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2.5%를 밑도는 성장률을 ‘글로벌 경기침체(recession)’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차도 매우 낙관적 전망이다. IMF는 2020년 2분기까지는 COVID-19가 문제가 되지만, 3분기부터는 바이러스가 잡혀서 봉쇄가 풀린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선진국 경제가 돌아온다고 봤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COVID-19 2차 피크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2022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런 예측이 맞다면, 경제성장률 하락폭은 IMF의 원래 예측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다. IMF는 감염이 2020년 말까지 이어질 경우 경제성장률은 기존 예측보다 2% p 이상, 2021년에도 새로운 감염이 일어날 경우에는 4% p 이상 더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 충격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 달 동안 3천만 건이 넘는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가 있었다. 미국의 고용은 거의 완전한 붕괴 상황이다.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지만, 한국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2020년 3월 일시 휴직자는 16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지난 5년간 50만 명 안팎을 오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에 사실상 무급휴직자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한국 역시 미국처럼 대량실업 사태를 곧 겪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노동의 변화도 시작됐다
단순히 경제 위기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과 고용감소만 따지는 것은 어쩌면 한가한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일터에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분산일터’ 실험이다. 어쩌면 ‘비접촉’이라는 바이러스의 명령으로 나타난 초유의 사회 실험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 실험들은, 우리 사회 생산방식 및 고용구조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구조적 변화를 향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대공장 근무체제를 기본으로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일터에 노동자들이 모여 자본의 위임을 받은 경영자들의 관리 감독 아래 일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이런 기본틀은 대공장 중심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 고용의 중심으로 바뀐 21세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인간 노동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최근까지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시장원리라기보다는 관습에 의해 사회에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보험 등 20세기 유럽 사회에서 집중적으로 발전한 노동 및 복지제도들은 이런 관습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노동 측에서 보기에, 이런 관습을 급격하게 바꾸면 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제도가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자본 측에서 보기에도, 하나의 기업 조직체계를 다른 조직체계로 완전히 바꾸려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섣불리 관습을 바꾸려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비접촉’이라는 명령이 이런 기본틀을 흔들고 있다. 밀집근무와 대면회의 관행이 상당수 일터에서 깨져나가고 있다. 밀집근무가 정상이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비정상이며, 대면회의가 중요하고 정상적인 회의이며 원격회의는 덜 중요하고 비정상적인 회의라는 관념도 무너지고 있다.
제조업·서비스업 추가 자동화
피할 수 없다
두 번째 변화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자동화의 가속화다. 음식점과 마트에서는 계산원 자리를 키오스크와 자동계산대가 대체하고 있다. 비접촉을 권하는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레 자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 서비스업 자동화의 경우, 이미 관련 기술은 도입되어 있었으나, 인건비에 비해 비용이 덜 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 관행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이미 상당 수준의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는 제조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따라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제조업 현장에서도 불확실성 제거를 위한 추가 자동화가 한층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 거래가
이미 오프라인 거래를 넘어섰다
일터의 변화는 고용계약 형태의 변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도 이미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온라인 거래의 확대로 플랫폼 경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대감염에 따른 대봉쇄와 비접촉 사회문화의 확산으로 이런 추세는 확고하게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3월 기준으로 상거래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풀타임 고용에서 파트타임 고용으로, 플랫폼에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 및 긱 노동으로 고용 형태는 점점 변화해 갈 가능성이 높다. 소상공인 업종의 지속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점포가 없는 자영업자 숫자는 늘거나 유지되고 있는데,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런 수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긱노동
Gig.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로 임시로 섭외해 짧은 시간 공연을 하게 했다. 이를 ‘긱’이라 불렀다. 긱 노동자는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를 띤다. 플랫폼 경제 시대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맥킨지는2025년 전세계 긱 노동자가 5억4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자가 자본에 종속 의탁하고
자본은 생활을 책임진다’는,
산업혁명식 근로계약 형태 퇴조
플랫폼 경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경제다. 기업이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고용한 뒤, 이 노동자가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제다. 개인과 개인이 직접 만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고용주와 근로계약’이라는 매개가 사라진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를 지배하던 노동 방식이 퇴조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노동 방식이 출현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개별 노동자는 특정한 자본과 일종의 ‘종속계약’을 맺고, 대신 자본은 국가와 협업해 그 노동자의 삶 전반을 책임지며 보호한다는 묵계가 깨지고 있다. 노동자는 삶이 아니라 다시 일 단위로 자본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제 ‘자유노동’으로 간다
그러나 누가 ‘보장’할 것인가가 문제
이런 변화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전통적인 노동 보호 장치에서 벗어난 노동자가 늘어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종속노동과 대비되는 근로형태인 ‘자유노동’이 늘어나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이라 흔히 불리지만, 필자는 ‘자유노동’이라는 정의로 이를 소개한다.
자유노동은 ‘고용주에게 종속되지 않는 계약 형태를 통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높은 자율성과 통제권을 개인이 갖고,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여 소득을 얻는, 임시 계약을 통해 수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일’로 정의할 수 있다. 노동 3권, 사회보험 등 전통적 노동 보호장치가 부분적으로만 적용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동시에 작업지시와 감독이 없으며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형태의 노동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으로 정의된 ‘노동’은 고용주에 대한 높은 종속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종속되어 있어야 법적 보호도 받는다. 휴가나 임금이나 단체협상 등의 권리도 종속성이 있어야 주어진다. 종속된 노동자들은 결정권이 매우 작은 대신 경영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다. 종속된 노동자는 지시받는 대신 보호도 받는다는 틀이다.
자유노동은 이런 전통적인 일자리와 ‘종속성’이라는 점에서 핵심적으로 구별된다. 자유노동 종사자에게는 고용주가 없다. 계약 대상이 있을 뿐이다. 일의 과정을 통제받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일하되 성과를 내놓으면 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정년도 없다.
‘자유노동’ 확산은
국경도 넘고 있다
플랫폼 노동, 혹은 자유노동이 최근 빠르게 확산된 것은 디지털 기술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버, 업워크, 태스크래빗,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 같은 주문형 작업 플랫폼은 플랫폼 경제 성장의 주역이면서, 전통적 고용관계를 깨뜨리는 주범이기도 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을 업무 단위로 조각내어 주문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선 일의 유연한 이동 역시 가능해졌다. 한 국가 안에서 고용계약을 맺고 노동법과 사회보험 등의 보호를 받으며 행하던 전통적 노동 개념은 빠르게 깨지고 있다.
생산기술의 변화로 노동 수요자인 기업은 점점 더 ‘균열 일터’로 변화하고 있다. 대규모 고용을 통해 대부분의 기능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대기업 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계약직 고용과 외주 하청화로 노동을 외부화하다가,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확보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데까지 와 있다. 기업이 점점 더 자유노동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자유노동 확산 과정에서 수요 쪽에서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동 공급자 쪽의 변화도 있다. 개인들의 문화적 변화다. 노동 공급자인 개인들이 기업조직의 위계구조 아래서 일하는 대신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기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이후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기술 활용에 능하고 유연한 삶을 선호하며 독립적으로 일하기를 원한다.
자유노동은 종속적 노동에 견줘 장점도 많다. 업무과정의 자율성이 주는 성취감이 높을 수 있고,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개인이 잘 통제하기만 한다면 일과 생활 균형을 더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화 가속
‘자유노동자’ 소득 불안정은 필연
그러나 다양한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는 데 대한 사회적 인정체계가 없다는 데서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의 불안정성이다.
고용계약에 맞춰 일정한 금액을 매달 지급받는 종속노동과 달리, 자유노동은 시장 상황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고객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초단기 노무를 제공하며, 길어도 1년 미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일거리와 소득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반대로 아예 없을 때도 있다.
플랫폼 기업의 힘이 점점 더 커지면서, 일하는 사람과 플랫폼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더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은 속성상 국경을 넘나들며 독점화되는 경향이 있다.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유튜브 영상서비스와 검색과 이메일 등의 영역에서 전세계 독점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구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존이 미국 전자상거래의 절반을 점유하고, 알리바바가 중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은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세계인의 휴대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의 플랫폼 앱이 차지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에 접속해 일하는 사람들의 협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소득의 불안정성은 필연적이다.
고용 안정도 중요하지만
생활 안정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자유노동의 확산이 가속화된다면, 고용정책의 기조를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을 기조로 삼는 정부 정책은, 생활 안정을 기조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고용 안정 대책의 대상도 줄어든다. 일감이 있을 때만 일하는 자유노동 종사자들은 상당 부분 고용 안정 대책과 관련이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기업을 통해 전달하는 복지는 불평등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개인에게 직접 전달하는 복지만이 공평하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노동 종사자들의 삶의 안정을 위해 기본소득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 여당이 검토한다고 했던 ‘전 국민 고용보험제’ 등 실업급여를 강화하거나,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실업부조를 강화하는 방안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고용이 와해되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자유노동 종사자들의 경우, 고용보험이나 실업부조 등의 제도에서도 불이익을 보거나 참여를 꺼릴 가능성이 높다.
실업급여는 실업자가 구직활동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의 원래 소득에 비례해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변동하며 소득이 들쭉날쭉할 경우, 이들 제도에서는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금이라도 소득이 생기는 순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자유노동 종사자들에게 불리하다.
알래스카의 ‘원유펀드’ 기본소득
핀란드 네덜란드 정책실험 중
기본소득제는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는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구직 조건 등의 조건이 없다는 점에서 무조건성을, 가구 대신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점에서 개별성을 지닌 제도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현금성과 정기성을 갖춘 급여가 기본소득이다.
아직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국가 단위에서 도입한 곳은 없다. 다만 미국 알래스카주는 원유 펀드의 수익금을 매년 전 주민에게 배당하는 형식의 기본소득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 네덜란드, 인도, 나미비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부분적인 정책실험을 시행하며 연구 중이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주어지는 소득이기 때문에, 자유노동의 소득 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도다. 특히 소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더 그렇다. 민간 싱크탱크 ‘LAB2050’은 ‘국민기본소득제’를 연구해 발표했는데, 이는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하는 등 소득세 중심으로 재원을 마련해 월 30만 원~65만 원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재정 모델을 포함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 소득이 작을 때는 기본소득을 근로소득에 더해 소득을 보충하다가, 일감이 늘어 소득이 많을 때는 세금을 더 내서 기본소득의 재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기본소득제가 불안정해진 소득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게 되고 투자하고 성장할 여유도 찾을 수 없게 되기 쉽다. 국가로부터 보장된 소득이 있다면 글로벌 플랫폼에서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자기 가치를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면, 소득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사회에 가치를 더해주는 문화예술활동이나 비영리활동, 돌봄활동 등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과 함께
육아·학자금·주거·의료 등
사회서비스 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물론 소득만으로 자유노동 종사자들의 삶을 안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주거, 교통,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받지 않고서 인간답게 살기는 어렵다.
특히 원격근무,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아예 출근 개념이 없는 자유노동 종사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맺고 기업과 일하는 분산일터 시대에는, 현재의 밀집도시와 다른 형태의 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자유노동이 확산되는 시대에는 이런 사회서비스 역시 시장이나 기업을 통해 전달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좋은 기업에 취업한 사람만 직장 어린이집부터 대학 학자금까지, 고급 건강검진부터 무료 통근버스까지 제공받는다면, 또는 일부 취약계층에게만 주거 의료 교육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면, 광범위한 자유노동 종사자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분산일터 시대에 맞는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설계하고 제공할 필요가 있다.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해주길
큰 정부를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다. 따라서 현명하고 책임 있는 국가 재정의 역할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때 최대한 재분배 요소를 가미해 재정중립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분산일터에 맞게 제공되어 자유노동 종사자들의 생산활동을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무상급식은 논의 초기 많은 논란과 반발을 불렀다. 서울시장이 이 문제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기본소득도 그런 길을 가야 할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2년, 그리고 21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논의해주기 바란다. 야당이 검토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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