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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 식탁 안보] ‘세계 농-식품 체제’에서 한국은 강한 고리

이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2020.05.17

콩·옥수수 등 사료 곡물 안정적 확보가 관건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세계 농업 시스템에
오늘날까지도 영향

COVID-19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전문가들은 치료약이나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상당 기간 확산과 수렴을 반복할 것이라고 한다. 더 비관적인 예측은 새로운 바이러스로 진화하면서 토착화하여 일반 감기처럼 영원히 우리를 괴롭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COVID-19가 우리의 식생활과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COVID-19 사태는 식량 수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식량위기 가능성은 없는가?
둘째, COVID-19 사태는 식품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셋째, COVID-19 사태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 농업과 식품산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이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역사적 사례로서 유럽의 흑사병 대유행이 농업과 식량체계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현재의 식량 상황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1. 역사적 교훈

전염병 대유행은 농업과 식량체계를 변화시킨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의 농업을 변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전 세계의 농업과 식량체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흑사병 발생 이후 유럽 농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12세기 초부터 13세기 말에 걸쳐 유럽의 농업은 발전기를 맞이했다. 화폐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여 장원제¹가 쇠퇴했고 2포제 대신 3포제(마을 공동 경지를 세 부분으로 나눠 여름 곡물, 겨울 곡물, 휴경으로 운영하던 제도)가 시작됐으며, 개량된 농기구가 보편화됐고 농사에 말을 이용하게 됐다. 인구가 증가했고 곡물가격이 상승했다. 좁은 농지에서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소득을 올릴 수 있었으므로 농지는 작게 분할됐다.

¹ 화폐유통이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장원의 영주가 소득을 얻는 제도. 영주는 장원에 속한 농노들로부터 부역을 제공받거나 장원에 속한 농민들로부터 현물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비록 농업이 성장했지만 농업 생산성 보다 인구가 더 빨리 증가했으므로 결국 사람들의 영양섭취는 부실하게 됐다. 이것이 다음 세기에 찾아온 흑사병 피해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됐다.

15세기 농업 불황
농민들에게는 고통
귀족들엔 오히려 풍요

14세기 중반 흑사병 대유행(1348-1351)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자 유럽의 농업은 침체에 빠지게 됐다. 농산물은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도 농산물 수요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농산물 공급의 가격 탄력성 또한 높지 않으므로 농산물 생산도 충분하게 감소하지 않는다. 결국 농산물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여 농산물을 생산해도 이익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농업 공황으로 많은 경작지가 황폐화되고 농촌의 촌락이 버려졌다. 경종 작물(밭을 갈고 씨를 뿌려 재배하는 작물)을 포기하고 축산으로 전환하는 농민이 증가했다. 흑사병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높은 임금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촉진했다.

농민들은 농업 불황을 생산성 증대, 한계지 경작 등으로 극복하려 했으나 이것은 공급을 증가시켜 농업 불황을 더욱 악화시켰다.² 특히 영국에서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말에 걸쳐 곡물가격이 하락하고 양모 가격이 상승하자 농지에 울타리를 쳐 목초지로 전환하는 현상(인클로우져, encloser)이 널리 발생하게 됐다.

² 반 바트는 농업 불황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극적인 해결책은 끝내 마지못해 취해진다. 농민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1. 농업을 온통 포기하고 공업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방법
2. 농업경영의 부업으로 방적이나 방직과 같은 형태의 가내공업에 종사하는 방법
3. 경종농업에서 축산업으로 전환하는 방법
4. 경종농업을 대규모로 경영하고, 부업으로 환금작물이나 원예농업에 종사하는 방법”
반 바트[반 바트, 베르나르트 슬리허(이기영 역), “서유럽 농업사 500-1850년,” 까치, 1999] p.171 참조

이와 같은 농업 불황은 농민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성직자, 귀족, 그리고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이들의 육류 소비와 설탕, 향신료, 비단 등과 같은 사치 농산물 소비는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이들의 향신료에 대한 욕망은 대항해시대를 촉발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 유럽인들은 동양의 사치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콜럼버스 교환’으로
농식품 세계 체제 구축 시작

1415년 포르투갈 왕자 엔리케(Prince Henry the Navigator)는 동방 항해도를 작성하고 유럽 최초의 원양 범선 카라벨(Caravelle)을 건조하여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양 대륙 간의 농작물 교환, 소위 ‘콜럼버스 교환(Columbian Exchange)’³이 일어나게 되었다.

³ 역사학자 크로스비가 1972년 저술한 책 이름. 콜럼버스 교환을 통해 경종 작물의 경우 옥수수, 감자, 토마토, 고추, 담배, 카카오, 고무 등이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밀, 쌀, 설탕, 감귤류, 사과, 양파, 커피, 차, 향신료 등이 유럽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해졌다. 축산물의 경우는 소, 말, 양, 돼지, 닭, 거위, 토끼 등 대부분의 주요 가축이 유럽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됐으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가축은 칠면조와 알파카 외에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한국어 판은 2006년에 출판되었다. 크로스비[크로스비, 알프레드 W., (김기윤 역),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The Columbian Exchange: Biological and Cultural Consequences of 1492),” 지식의 숲, 2006] 참조.

콜럼버스 교환은 세계의 농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대항해시대 이전 유럽의 농업은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농가가 소규모 경지에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여 지역 시장에 내다 파는 양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 이후 새로운 작물을 가지고 새로운 땅에 진출하여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을 전 세계에 판매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농업은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향신료, 설탕, 커피, 차, 담배 등 운반이 용이하고 무역으로 이익을 얻기 쉬운 농산물을 기후와 토양이 적합하고 땅값이 저렴한 식민지에서 재배하게 되었다. 거대한 단일 작물 농장에서 생산하여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소위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노예노동을 이용했으므로 비참한 결과를 야기했다. 스탠디지(Tom Standage)에 의하면 “4세기에 걸쳐 대략 1100만 명의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이송”되었는데 절반 정도가 노예 상인에게 잡혀서 해안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죽고 또 3분의 1 정도가 항해 중에 죽었다고 한다.

스탠디지[스탠디지, 톰(박중서 역), “식량의 세계사 (An Edible History of Humanity),” 웅진지식하우스, 2012] 참조.

무역이 용이한 환금작물로 시작한 플랜테이션 농업은 19세기 후반에 교통과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거의 모든 농산물에 적용되게 됐다. 많은 지역의 농산물 생산이 단작화, 대규모화 되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다르게 되는 ‘농업의 분업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콜럼버스 교환 이후 현대에 이르러 전 세계적인 농업의 분업화가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를 연결하는 ‘세계 농‧식품 체제(global agro-food regime)’가 형성되게 됐고 농업은 더 이상 지역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러시아는 최대의 밀 수출국이다. 사진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한국 기업이 개간한 밀밭 (출처: 연합뉴스)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남수단의 모습 (출처: AP)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세계 인구 9명 중 8명이
식량부족 두려움에서 벗어나

2. 현실적 상황

오늘날 가장 필수적인 식량은 곡물이다. 인류는 필요한 영양의 적어도 반 이상을 곡물에서 얻고 있다. 곡물을 사료로 사용해 얻은 축산물까지 고려한다면 그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곡물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또 매우 값싼 것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쌀의 양은 약 170g인데 이는 400원이 채 안 된다. 곡물이 처음부터 이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는 곡물을 얻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노력들이 결실을 보아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인구 9명 중 8명은 식량부족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삶을 누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 FAO(세계식량농업기구) 통계에 의하면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간 세계의 5대 곡물(밀, 옥수수, 쌀, 콩, 보리 ; 재배면적 순서) 재배면적은 5억 ha에서 7억 5000만 ha로 증가했고, 이들 곡물의 평균 단수(1ha 당 생산량)는 약 1.5 톤에서 약 4.2 톤으로, 총 생산량은 약 7억 5000만 톤에서 약 32억 톤으로 증가하였다. 그동안 세계 인구는 30억에서 75억이 되었으며, 1인당 5대 곡물 소비량은 약 300kg에서 약 420kg으로 증가하였다.

세계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 in the World,’ 2020년 5월 10일 접속)에 의하면 2018년 현재 세계 인구의 9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2,000만 명이 영양부족(undernourishment) 상태에 있다고 한다.

곡물 1위 수출국과 1위 수입국

식량작물인 쌀과 밀의 최대 생산국은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이고, 사료작물인 옥수수와 콩의 최대 생산국은 경작지가 가장 넓은 미국이다. 보리의 최대 생산국은 러시아이다. 2017년 쌀의 최대 수출국은 인도이고, 밀의 최대 수출국은 러시아, 옥수수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 콩의 최대 수출국은 브라질, 보리의 최대 수출국은 오스트레일리아다. 5대 곡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세계 전체 수출량 약 6억 톤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억4000만 톤을 수출하고 있다. 이들 수출국의 고객은 누구인가? 대체로 인구가 많거나 땅이 좁은 나라이다. 2017년에 쌀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중국(약 400만 톤)이고, 밀은 인도네시아(약 1000만 톤), 옥수수는 멕시코(약 1500만 톤), 콩은 중국(무려 9600만 톤!), 그리고 보리 역시 중국(약 900만 톤)이다. 중국의 5대 곡물 수입량을 모두 더하면 1억 2000만 톤이나 된다. 한국의 수입량도 적지 않아서 1500만 톤이 넘는 데 주로 사료용 옥수수(약 900만 톤)와 밀(약 400만 톤)이다.

올해 말 세계 식량 재고 9억 톤
전 세계 소비량의 3분의 1

FAO의 예측에 의하면 COVID-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로 2020년 말 세계 곡물 재고는 약 9억 톤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세계 곡물 소비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이다. 식량 작물인 쌀과 밀의 경우는 2020년 말 세계 재고가 각각 1억 8000만 톤과 2억 70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것들 역시 각각 세계 소비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세계식량 농업기구의 ‘곡물’은 이 글에서 다루는 ‘5대 곡물’에서 콩을 제외하고 다른 잡곡들(수수, 호밀 등)을 포함시킨 것. 세계식량농업기구 ‘FAO Cereal Supply and Demand Brief’ 참조 (2020년 5월 10일 접속)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2018년 현재 5대 곡물 소비량은 약 2000만 톤(옥수수 1000만 톤, 쌀 480만 톤, 밀 370만 톤, 콩 140만 톤, 보리 30만 톤)인데, 생산량은 약 450만 톤이어서 자급도가 4분의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식용으로 소비되는 약 320만 톤인 쌀과 100만 톤인 밀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료용으로 소비되고 있어서 사료 등 비식용 용도를 제외한 자급도는 약 47%이다. 가장 중요한 쌀의 경우는 2018년 생산량이 식용 소비량을 25% 정도 초과하는 약 400만 톤이고 연말 재고가 연평균 소비량의 40%를 초과하는 140만 톤이다.

한국의 경우 쌀의 생산량과 재고가 지나치게 많다는 견해가 있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자포니카 쌀은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이 많지 않으므로 생산량과 재고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식량 절대량은 부족하지 않아
유통망 고장 나면 큰 문제

3. 전망

앞에서 살펴본 바를 바탕으로 COVID-19 이후의 농업과 식량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망을 해 볼 수 있다.

첫째, 전체적으로 식량의 총량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은 식량의 공급 보다 수요를 더 많이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 본 흑사병 사례나 FAO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 농‧식품 체제가 원만하게 작동하기만 한다면 식량의 수급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COVID-19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 강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WTO(국제무역기구) 출범 이후 자유무역의 틀 안에서 작동해 온 세계 농‧식품 체제가 COVID-19 사태로 인하여 일시적, 지역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농‧식품의 세계적 저장과 수송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세계 농‧식품체제를 잘 이용해서 전염병의 영향을 덜 받을 확실하고 안전한 농‧식품 수입경로(특히 옥수수와 콩 같은 사료곡물의 수입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COVID-19 이후에는 가격 보다 확실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유통망이 더 높게 평가받게 될 것이다.

(출처: 중도일보)

가정용 식품 소비 증가
식당용은 감소할 것

둘째, 농산물 또는 식품별로 다른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새로 각광받는 농‧식품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소비 측면에서는 가정에서 주로 소비되는 농‧식품(대부분의 국산 농산물, 인터넷 유통과 배달이 용이한 간편 식품, 계란, 삼겹살 등)의 소비가 증가하고 회식이나 학교 급식을 통해 소비되는 비중이 큰 농‧식품(대부분의 수입산 농산물, 인터넷 유통과 배달이 어려운 식품, 우유, 돼지갈비 등)의 소비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처리하는 과정(도축, 수동 선별 등)을 거쳐야 하는 농‧식품은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생산의 자동화율이 높은 농‧식품(도정, 자동 선별 등)은 생산에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쌀의 경우는 앞의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생산량과 비축량이 충분하고 도정과정도 자동화되어 있으므로 공급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축산은 수입된 사료곡물을 이용하고, 도축에서도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처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현재 한국의 사료 수입 경로와 도축 공정의 수준은 상당히 높으므로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흑사병 이후 유럽에서 향신료의 수요가 급증했던 것처럼 COVID-19 이후에도 새로운 전염병 문화에 재빨리 적응한 농‧식품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농‧식품 생산이, 플랜테이션 농업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농업을 완전히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도축과정을 거치지 않는 인공육이 유력한 후보자이기는 하나 다른 가능성도 많이 있으므로 농‧식품 기업인들의 창의성을 기대해 볼만하다.

셋째, 소득과 연령 계층 별로 어려움을 겪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소득이 높아서 다양한 유통경로를 이용해 농‧식품을 구입할 수 있거나, 분리된 식생활 문화(혼밥, 혼술 등)나 간편식에 익숙한 젊은 연령층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서 원하는 유통경로를 통해 농‧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거나, 가족적, 집단적 식생활 문화를 버리기 쉽지 않은 노령층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배려하는 농‧식품 정책이 필요하다.

내일도 마트에 쌀이 있을 것이라는
신뢰 있으면 어려움 극복 가능

넷째, 사회 또는 지역별로 다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전염병과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각 사회나 지역의 개별적 농‧식품 유통 역량이 드러나게 된다. COVID-19는 주로 후진국이 담당하고 있는, 세계 농‧식품 체제의 약한 고리를 공격해서 이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FAO는 아이티, 콜롬비아, 수단, 남수단, 짐바브웨, 타일랜드 등이 COVID-19 사태가 초래한 식량 유통 체계 혼란으로 인하여 심각한 식량가격 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ITC를 기반으로 하는 배달 유통 체계의 맹활약으로 COVID-19 사태를 비교적 무난히 넘기고 있으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유통 체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 보고서[FAO, FPMA(Food Price Monitoring and Analysis) Bulletin, May 2020] 참조. (2020년 5월 12일 접속)

이상에서 COVID-19가 우리의 식량에 미칠 영향을 간단히 전망해 보았다. 전망한 내용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 간의 신뢰와 연관되어 있다. 식량은 단순한 수요,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로 신뢰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내일 마트에 쌀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하는 순간 식량 안보는 사라진다. COVID-19가 공격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신뢰이다. 사람들 간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치료약이나 백신이 없어도 COVID-19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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