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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 in the end: 코로나 위기를 IMF 극복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전병조 (여시재 특별연구원·전 KB증권 사장)

2020.04.16

필자 전병조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 아이오와大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관료와 ADB(아시아개발은행)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뒤 증권사(KB증권) 사장을 지냈다. 이론과 실물에 모두 밝은 이코노미스트다. 현재 (재)여시재 특별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제4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 (출처: 청와대)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
분배 욕구는 확대

지난 1월 발생한 코로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정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의 경우 확산세가 꺾일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충격은 세계화된 글로벌 경제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국제 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경제에 가늠하기 어려운 충격을 가하고 있다. 주요 교역국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경제적 파장의 크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사태를 우리 경제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느냐다.

우리 경제엔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대내외적인 제약요인이 누적되어 왔다. 내부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 분배구조 악화로 인한 소득·자산 양극화 심화, 중국·신흥국의 추격에 따른 주력산업 경쟁력의 약화 등으로 투자와 소비의 모멘텀이 약화되고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어 왔다.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만성화 되는 반면 분배에 대한 욕구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국제 분업망의 취약한 고리

대외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중국몽(China Dream)’이 충돌하면서 표면화된 미중 무역 갈등이 자유무역주의에 기대어 온 우리 경제에 전례 없는 시련을 안겨 주고 있다. 중국의 추격 자체도 문제이지만, 일본-중국-미국으로 연결되는 단순한 국제무역의 분업구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거시경제의 안정 기조를 뿌리째 흔들 가능성이 커져왔다. 취약한 고리는 경제 외적 갈등이 등장할 때마다 주변국에게 이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제공해 왔다.

코로나 사태는 이미 누적되어 온 우리 경제의 대내외 취약점을 한꺼번에 더욱 극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만 해도 세계 주요 경제단체들은 2분기 逆成長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젠 올 한해 역성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IMF는 올 한 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대로 전망했고, 한국은 성공적 코로나 방역으로 그나마 나은 –1.2%로 전망했다. 실제 어떨지는 코로나가 진정되는 속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2분기 내 진정세가 자리 잡는다 해도 금년 한 해는 전 세계가 경기 하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충격의 강도를 완화하는 긴급 대책들이 상황에 따라 속도감 있게 마련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 경제 체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

우리 경제가 가진 기저적인 취약요인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문제 제기와 논의가 있어 왔지만, 담론의 빈도만큼 해결방안에 대한 공감대나 실행은 큰 동력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저성장 기조의 안착 속에서, 문제가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당장 눈에 띄는 어려움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확장적인 재정·통화 정책으로 유동성이 풍부하게 공급되어 어려움을 가려 온데도 원인이 있다. 풍부한 유동성은 여러 가지 거품을 만든다. 갈 데 없는 돈은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의 ‘오버 밸류에이션’을 만든다. 과잉 유동성은 또 부실기업의 문제를 이연시키는, 보이지 않는 거품을 만든다. 겨우 버티는 게 분명한데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코로나 사태는 거품을 걷어내고 민낯을 드러내게 만든다. 전방위적인 위기는 충격의 강도만큼이나 문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고 해결방법을 찾도록 하는 강한 압력을 가한다. 1997년 IMF 위기가 그러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차례의 위기는 지금 위기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우리 경제의 문제를 근본부터 들여다보고 개선을 찾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위기 극복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더 나은 경제로 발전하는 긍정적 효과를 만드는 것은 단기적인 위기 탈출에 그치지 않고, 위기를 계기로 종전까지 하지 못했던 개혁조치들을 과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가 제시하는 우리 경제의 개선과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살펴보자.

과도한 중국 의존 리스크
글로벌 대기업들 이미 전환 시작

미중 무역분쟁 이후 경제계의 화두는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 대한 위험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위기는 이 문제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오래 기간 중국 진출로 굳어진 무역 가치 사슬을 단기간에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전환을 시작하고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기업들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통상외교 정책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핵심 산업 6개월 버틸 수 있는 국내 생산 기반 구축해야

새로운 가치 사슬 구축을 위해서는 중간재 조달과 수출시장의 다변화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더욱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핵심 산업의 경우 국내의 생산 기반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수준까지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는 산업마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강의 법칙은 코로나와 같은 세계적인 공급망 충격이 있을 경우 적어도 6개월 이상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별로 산업별로 구체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핵심 산업을 국내에 두는 방법으로서 우리 기업의 ‘리쇼어링’을 촉진하는 정책을 본격으로 고민할 때이다. 과거 여러 차례 ‘유턴 정책’이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다지 큰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세제지원, 공장 용지 공급 등 다양한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였지만 해외 저임금 유인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노동비용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국내 생산 단가를 낮추어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생산’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전의 지원책과 함께 ‘스마트 팩토리’의 대대적 확대를 통해 해외 공장들의 리쇼어링을 촉진하는 정교한 대책을 고민할 때이다.

스마트 팩토리, 대대적 확대 필요

대외 경제적 충격이 올 때마다 내수 경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반성은 여러 차례 있어 왔다. 하지만 대기업 제조업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너무 높아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수출 주도 경제의 보완으로서 내수 경제 활성화의 주된 논의는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제 서비스업 활성화의 관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산업의 문제는 지식서비스 산업과 생계형 자영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종합적인 정책 대응이 지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내수 경제 활성화의 또 다른 관점은 중소기업의 활성화와 관련되어 있다. 고용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활성화는 산업 측면 뿐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분배와도 관련되어 있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부문도 있지만 대개 대기업과 협력관계 속에서 영위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많다. 따라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적 발전이 중요하다.

대기업이 소재부품 중소기업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대기업의 견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몫을 확보한다는 측면보다는 양자 간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모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정책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핵심적인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협력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기업 차원은 물론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지원 하에 협력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경험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대중소기업 기술협력과 상생경영에 대한 정책적 지원방안을 더욱 정교하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 기조 하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투자 부진과 일자리 창출의 어려움이다.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8년 이후 각국이 확장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전환이 어렵다. 이번 위기도 마찬가지다. 우선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하여 파격적인 재정통화정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위기 탈출 모드가 진정되고 난 후에 대한 대비도 동시에 해야 한다. 위기만 벗어난 후 종전과 같이 돌아가는 경우 저성장 기조는 변함없이 지속되어 안정 성장 기조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롬 파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출처: 로이터)

구조 전환 위해선 단기 생산 감축 감수해야

위기 탈출을 위한 긴급 지원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실행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을 純 고용 창출 없이 유동성 지원에만 의존하여 연명시키는 것은 투자 촉진과 고용 창출을 지연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구조조정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위한 ‘자원의 再配分’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묶여 있는 경제자원을 경쟁력 있는 부문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단기간의 생산 감축은 일어날 것이지만, 새로운 투자와 일자리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신산업의 원천은 혁신기업
혁신 금융 공급 붕괴 경계해야

부실기업에서 방출되는 새로운 자원을 활용할 새로운 산업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바로 혁신을 통해 등장하는 新 산업이다. 이러한 새로운 산업은 다양한 원천에서 발생한다. 경쟁력을 상실한 주력산업들이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스마트 공장의 확대 적용을 통한 내수산업의 육성과정에서 산업이 탄생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의 디지털 솔류션 적용은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 산업의 탄생을 가져온다.

신산업의 가장 근본적인 원천은 스타트업 등 혁신기업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금융경색은 그간 모양을 갖추어가던 혁신 금융 공급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특히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체계를 유지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외환 유동성 문제, 이젠 건전성 규제만으론 안돼

글로벌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문제는 외환유동성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예외 없이 외환 유동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다행히 한미 통화 스왑이 체결되어 급한 불은 끈 셈이지만, 향후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이 재발하는 경우 다시 불거질 소지가 있다.

과거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외환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대비해 왔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환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고 보유고를 충분히 확충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융상품의 헤지 수요에 의해 다시금 외환 유동성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건전성 규제 차원에서 상정하기 어려웠던 문제이다.

우리 금융의 국제금융시장 지배력 한 단계 확충해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외환유동성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건전성 규제만으로 외환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반성이다. 개방된 금융시장에서 복잡다기해지는 금융거래의 모든 측면을 ‘규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건전성 규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요 측면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규제는 곧 이들의 외환 사용을 더욱 옥죄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이제는 공급 측면에서 유동성 확보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 즉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환유동성에 대한 우리 경제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우리가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하여 일정 수준 이상 시장점유율을 가진 ‘글로벌 금융기관’을 육성하거나 보유하는 방법이다. 신흥국 금융시장 위주로 진출하고 있는 우리 금융기관의 국제화 수준에서는 요원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본다.

위기는 또 하나의 힘
합의 도출에 좋은 기회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위기만이 제공하는 특별한 기회들이 있다. 위기는 문제점에 대해 다양한 이해집단들도 비교적 합의 도출을 쉽게 한다. 또 하나는 해결방안에 대한 실용적인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과거 두 번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한 경험이 있다. 성공적 위기 극복이 된 것은 단순히 위기 탈출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노출된 취약 요소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차례의 위기가 어려움 속에서도 ‘종국에는 축복(Blessings in the end)’이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개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훈을 이번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면서 다시 한 번 실천에 옮길 때이다.

앞으로도 유사한 글로벌 위기는 다시 올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코로나로 위기로 얻게 된 교훈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어야 한다. 위에서 제시한 논제들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구체적 실천 방안을 찾는 화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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