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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뉴욕을 만든 사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시대를 연 사람 –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 15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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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환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KAIST와 성균관대에서 경영과학 및 조직 이론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경영전략실장과 산업전략실장 등으로 일했다. 2017년 ‘기업 진화의 비밀: 기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로 ‘정진기언론문화상’을 받는 등 주목받았다. 세계 산업과 기업의 역사를 중심으로 실용적 글쓰기의 영역을 열고 있다. |
경제사는 개인보다는 구조적 변화를 중시한다. 위인의 결단이나 리더십보다는 경제 시스템이나 기술과 같은 구조 요인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사는 상대적으로 개인에 대한 언급이 적다. 우리는 냉장고, 세탁기, 퍼스널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등을 만들고 시장에서 성공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와 산업의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이 덜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개인들이다. 다만 경제 분야에서는 정치나 군사 또는 예술에 비해 소수의 영웅보다는 보다 더 많은 수의 주연과 조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산업혁명을 이끌어 간 인간 군상, 그 중에서도 너무 뚜렷한 주연이 아니라 조연의 활약상을 다룬다.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지만 차츰 조연, 감독, 더 나아가는 촬영감독, 음악감독 등 스태프의 관점까지 살펴보게 된다. 조연을 보는 관점은 산업혁명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증기기관의 개발자인 제임스 와트 대신 그의 동업자 매슈 볼턴을, 최초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저명한 과학자로서 높은 사회적 기대 속에 비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새무얼 랭리, 그리고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이 아닌 나사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마거릿 해밀턴에 포커스를 맞췄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과연 과거 산업혁명의 교훈이 요즘에도 먹힐까? 흔히 현대의 변화는 ‘광속’에 은유되며,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변화라고 한다. 전화기 사용자가 1억 명을 돌파하는 데 75년이 걸렸지만 페이스북은 5년 만에 이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속도 보다 가속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시속 100km의 차량이 120km로 가속했을 때와, 멈춰 서 있던 차량이 20km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충격이 클까. 파발마와 전서구밖에 없던 시절의 전화기와, 이미 전화 팩스 이메일을 모두 갖춘 시대의 페이스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격변기였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과거냐가 중요하다. 산업혁명은 ‘진실의 순간’이었고 지혜와 통찰이 빛나던 ‘창조의 시대’였다. 이 책이 전하는 혁명의 지혜를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혁명은 생각 보다 점진적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 되돌아보면 바다가 육지가 되어 있더라도, 그 시기를 살아간 사람에게는 세상은 생각보다 천천히 변한다. 혁명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진행된다. 범선과 증기선의 교체는 급진적 혁신의 가장 유명한 사례지만, 이것도 70년 이상이 걸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기차, 수소차가 뉴스를 장식한다. 하지만 가솔린 자동차가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 얼마가 걸릴지는 사람마다 말이 다르다.
2. 급진적 혁신은 시작일뿐, 승부는 점진적 혁신에서 난다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 혁신이 점진적 혁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 혁신은 반쪽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맞지만, 동시에 반 이상 도달할 때까지는 시작한 것도 아니라는 말도 옳다. 전기차와 수소차가 멋진 아이디어인 것은 옳지만 이들이 정말 위대한 혁신이 되려면 수많은 점진적 혁신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 증기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범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너무 무거웠고 조작이 어려워서 바다에 띄우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증기기관도 백열전구도 비행기도 모두 그랬다. 최초의 발명은 출발점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길고도 험한 마라톤의 출발 총소리가 울렸을 뿐이다.
3.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미래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답이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가솔린차와 전기차의 경쟁이 어떻게 될까? 양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어떤 혁신을 하고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승리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전략적 입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적의 출발점이란 없다. 마담 워커는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모발 케어 사업을 벌였다. 백인 여성조차 미용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탁월한 전략으로 시장을 창조했다. 최고의 경영전략 전문가가 그 당시로 돌아갔다면 19세기 미국 중하류층인 흑인 여성의 미용 시장을 대안으로 제시했을까? 기존 데이터에 입각한 예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담 워커는 그 자신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을 거울삼아 동족의 잠재 수요를 들여다보았다. 가장 좋은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다. 지금 서 있는 그곳이 최적의 출발점이다.
4. 크게 보아야 더 잘 보인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단위를 확장하면 그나마 어렴풋이 그림이 보인다. 비트코인이 터질지 이더리움이 터질지는 알 수 없어도 블록체인이 미래의 금융을 바꿀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어느 곳에 어느 시점에 기회가 있을지를 알 수는 없지만 높이 멀리 조망하면 큰 그림은 보인다. 문제는 이런 큰 그림은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성공해야 하고 내 자식이 잘 되어야 하는 오늘날에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기는 하지만, 혁명의 시대에는 이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산업혁명은 불확실성 그 자체이고 이 와중에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담합과 유착 등 반칙을 쓰겠다는 말이다.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가능한 모든 대안을 탐색하면 그 중 하나가 터진다. 그런 자세로 남들이 하지 않은 시도를 할 때 전략의 다양성이 극대화되고 성공의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의 보상을 사회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실패의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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