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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 / 동북아 변화와 홍콩 사태] 홍콩 시위의 본질은 ‘중국化’ 자체가 싫다는 것 - ‘NO 위챗, YES 텔레그램’은 中의 디지털 감시에 대한 강력한 저항

성균중국연구소

2019.09.23

홍콩에서는 지난 6월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강행에 반대해
시민 1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이후 지금까지 16주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 AP 뉴시스)

“9를 만나면 반드시 어지럽다”
2019년에도 피하지 못한 중국의 아홉수

중국에도 ‘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인민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9를 만나면 반드시 어지럽다(逢九必亂)”는 말이 유행해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9’로 끝나는 해에 항상 나라에 큰 환란이 터졌다는 얘기다. 1959년에는 티베트에서 대규모 민중 봉기가 있었고, 1969년에는 소련과 중소분쟁이 벌어졌다. 1979년에는 베트남과 전쟁이 있었고, 1989년에는 나라를 크게 뒤흔든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에는 구(舊)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이 발생했으며 파룬궁(法輪功) 시위가 있었다. 2009년에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졌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분쟁이 지속되는 속에 홍콩의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반송중·反送中: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시위가 몇 달 동안 계속되며 베이징 당국에 큰 위기를 안겨주고 있다. 중국은 2019년에도 아홉수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 국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과연 중국은 과거 그랬던 것처럼 이번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재’ 대 ‘민주화 요구’의 대결만으로는
홍콩 시위의 전체상을 볼 수 없어

홍콩의 이번 ‘반송중’ 시위가 한국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시위 초기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시위 한편에서 불렸던 한 동영상이 알려지게 되면서였다. 이런 이미지에 더해 홍콩 시민들의 주요 요구가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한 철회뿐만 아니라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 그리고 행정장관 선출과 관련한 직선제 요구가 있었기에 한국의 지난 여러 민주화 운동과 대규모 거리 시위와 오버랩되었다. 직선제 요구와 경찰들의 최루탄을 이용한 시위 진압은 동아시아의 대표적 민주화운동인 19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잘못된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매 주말 대규모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비폭력을 외치며 목소리를 모아 내는 모습은 2016년 대통령 탄핵 국면의 촛불 시위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이런 연상은 현재의 국면을 전체주의적인 독재 중국과 그에 반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의 시민들이라는 구도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의 다층적인 면모를 살펴보면 그런 구도로만 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 감정 표출도

이번에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홍콩 시위의 일부 참여자들 중에는 인종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광둥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사람, 즉 중국 대륙 출신의 홍콩 이민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시민권을 부여하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일부 시위대가 중국의 국가 휘장 등의 상징물을 훼손하고 입법회 점거 시 영국 식민지 시기의 홍콩기를 걸었던 것은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단순히 독재 대 민주의 틀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는 식민 대 탈식민이라는 또 다른 구도도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는 식의 인식은 한편에선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여겨지는 우려를 낳을 수도 있다. 여기에 시위에 종종 등장하는 미국의 성조기나 미국이 현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를 회복시켜 달라고 하는 요구의 안팎에서는 냉전 시기의 반공 정서마저 등장하기도 한다. 즉, 홍콩이 겪어온 지난한 역사적 과정에서 식민/탈식민, 냉전/탈냉전이라는 구도가 민주/반민주의 구도와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 몇가지 개선한다고
홍콩 시위 해결되지 않아

홍콩 시위는 위에서 살펴봤듯 긴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동시에 홍콩이 가진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서 봐야 한다. 단순히 몇 가지 제도 개선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대의 가장 큰 요구였던 ‘범죄인 인도 조례’를 홍콩 당국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전히 폐기했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되는 상황은 바로 그 점을 증명한다. 현재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는 ‘민간인권전선’이 내걸고 있는 5대 요구는 ①홍콩 범죄인 인도 조례의 완전한 철회 ②홍콩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③홍콩 경찰의 시위대 무력진압에 대한 공식 사과 및 독립적 조사 위원회 설치 ④체포된 시위대 전면 석방 ⑤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및 홍콩 입법회 보통선거/평등선거이다. 이 중에서 현재 해결된 것은 범죄인 인도 조례의 폐기뿐이다. 현재 시위대는 5가지가 전부 해결되어야 시위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수용할 수 없을 것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

중국 입장에서 보면, 많이 양보해서 나머지 조건들에 대해서 일부 수용하더라도 마지막 요구인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및 홍콩 입법회 보통선거/평등선거는 절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일국양제(一國兩制)라 하더라도 홍콩의 자치권을 그 정도까지 용납하기란 현재 중국의 공산당 일당 통치라는 정치제도에 비춰봤을 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인들에게 ‘홍콩은 홍콩인들이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과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를 약속했다. 이것이 이른바 일국양제다. 그러나 이 약속은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인 2014년에 발표된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라는 백서에서 홍콩의 관할권은 중국 중앙정부가 전면적으로 보유하며,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새로 규정했다.

물론 기존 영국 식민지 시기의 홍콩이 완전한 민주적 제도와 자치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행정권자는 영국이 임의로 임명한 홍콩 총독이었으며, 입법회는 자문 기구에 불과했다. 경제적 자유를 제외한 다른 시민적 권리는 보장된 적이 없었다. 어쩌면 홍콩 사람들에게 영국 식민지 시절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홍콩에 남아있는 것은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식 애국교육 강화
중국 경제 의존 심화에 좌절

그럼에도 홍콩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 반환 이후 반중 감정이 심화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에서도 중국식 애국교육이 강화되는 등 중국화 정책이 가속화되고 경제적으로도 중국 의존이 심화되어가면서 홍콩인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변해갔다. 그나마 영국 식민지 시절 마지막에 누렸던 폭넓은 언론의 자유마저도 제약당하고 중국의 억압적인 태도가 강화되자 오랜 기간 동안 쌓여왔던 홍콩 사회의 모순이 여러 번의 시위 끝에 결국 대규모 시위로 폭발하고 만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디지털 감시에 대한 공포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도 쓰지 않아

한편 기존 세계 여러 지역의 대중 시위와 비교했을 때, 이번 홍콩 시위에서 드러나고 있는 독특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디지털 감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대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일부러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걸어가거나 심지어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을 이용해 표를 구매하여 본인의 행적이 당국에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다. 보다 적극적인 시위대는 거리의 CCTV 렌즈를 페인트로 칠하거나 심지어 파괴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시위를 조직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이번 반송중 시위에서는 2014년 우산 시위 때 앞에서 나섰던 지도자들이 시위가 소강국면에 접어들자 전부 구속되고 실형을 살게 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이번에는 시위의 지도부가 몇몇 특정 인사로 좁혀지지 않는다. 해킹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텔레그램이라는 SNS를 이용하여 대규모 익명의 인원들이 시위의 방식을 토론하고 주장을 정리하고 있다. 중화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위챗 등의 프로그램은 해킹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디지털 판옵티콘에 대한 우려

판옵티콘[Panopticon]
공리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감옥으로 최소한의 감시자가 많은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셸 푸코는 근대국가의 권력작용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로 판옵티콘을 사용했다.

이러한 디지털 감시와 검열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저항은 현재 중국의 기술 굴기가 처한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현재 자국에 구축한 안면인식 기술, CCTV 2000만 대를 활용한 보안 감시 시스템, 개인 정보를 취합하여 빅데이터를 활용해 적용하려 하는 사회신용시스템 등은 이미 디지털 판옵티콘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중국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사회통제 및 관리 체제가 국가의 안정 및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적으로 이번 홍콩 시위를 통해 드러나듯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빅브라더의 다른 면모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첨단 기술 굴기가 실제 사회에 적용되는 모습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기보다는 두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출처: AFPBB)

시진핑 권력 집중이
주변 지역엔 위협

현재 중국이 직면한 여러 복합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솔루션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중앙으로의 권력 집중을 통해 사회 관리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의지를 모아 현 국면을 일점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시적으로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에게 권력을 집중하여 정책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시도는 오히려 주변 지역에게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위기 해결을 위해 구심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경향은 오히려 주변 지역의 원심력도 강해지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주변 지역과 세계를 향해 책임 있는 강대국, 인류 운명공동체 등을 역설하고 있지만 현재 홍콩 시위에 대한 여러 모습과 논쟁에서 나타나듯이 강한 중국이 주변 지역에 보여줄 모습이 디지털 빅브라더와 지역의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는 이미지로 비친다면 이는 중국의 향후 글로벌 소프트파워에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내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권력 집중과 강화라는 솔루션이 대외적으로는 중국 위협론으로 드러나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는 한 중국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글로벌 강대국으로 자리 잡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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