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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대화] “과학기술 중시하는 이스라엘 정부 정책은 50년간 바뀌지 않았다” - 요즈마 그룹 에를리히 회장, 여시재서 젊은 기업가들과 대화
이스라엘을 창업국가로 만든 주역
이갈 에를리히는 이스라엘을 현재의 ‘창업국가’로 만든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물도 자원도 없는 사회주의 국가 이스라엘은 1970년대부터 기술 국가, 혁신 국가, 창업 국가로 대변신의 길을 걷는다. 정치에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사망)이 있었다면 과학과 기술엔 이갈 에를리히가 있었다. 에를리히는 국가의 과학기술 전략의 사령탑인 ‘산업통상노동부 수석과학관실’의 수석과학관(장관급)으로 1984년부터 1992년까지 12년간 일했다. 그전에는 국가연구개발위원회 위원장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에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온다. 구 소련 붕괴로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80만 명이 2년 동안 몰려들었다. 당시 이스라엘 인구가 400만 명 대였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다행히 이들 중에 구소련의 과학자, 기술력을 갖춘 고학력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창업의 길로 이끌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정부가 1억 달러를 출연해서 1993년 설립한 것이 ‘요즈마 펀드’다. 요즈마(Yozma)는 영어로 ‘Initiative’, 우리말로 진취나 주체에 해당한다. 요즈마 펀드는 러시아 귀국자들에 대한 창업 자금 지원에서 시작했지만 곧 이스라엘 젊은이 전체로 확대해 ‘혁신 국가 이스라엘’ 건설을 주도했다. 요즈마 펀드가 투자를 시작하면서 나라의 이미지가 기술 벤처 강국, 미래산업의 나라로 바뀌었다. 지금은 전 세계 벤처 펀드의 35%가 이스라엘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 펀드를 만든 사람이 에를리히다. 그는 수석과학관을 그만두고 요즈마를 맡은 이후 본격적으로 ‘창업 인큐베이터’의 길을 걸었다. ‘창업 인큐베이터’라는 말 자체가 그때 생겼다. ‘창업 인큐베이터’의 시조인 것이다. 지금은 민영화된 요즈마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16년 판교에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요즈마 캠퍼스’를 여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도 깊다. 요즈마 코리아도 중국, 싱가로프 등 주요 혁신 국가 전체에 대한 투자를 총괄한다. 최근엔 요즈마 펀드를 설립하고 성장시킨 과정을 기록한 ‘요즈마 스토리’를 한국과 미국, 중국 3국에서 동시 출간했다.
에를리히 회장이 19일 여시재를 찾아 한국의 젊은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 파트너로는 김종협 아이콘루프 대표, 정원식 블록체인 코리아 대표, 성상엽 인텔리안테크 사장, 이문영 투비소프트 부회장, 하동혁 한국전력 신기술전략실장, 김경훈 아이티언 및 더모우스트AI 대표, 박승환 GPC홀딩스 회장 등이 참석했다. 여시재에선 이광재 원장과 김도연 이사(전 포항공대총장), 윤종록 자문위원(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전병조 자문위원(전 KB증권 사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 스타트업 ‘너무 내향적’”
에를리히 회장은 이날 ‘여시재 대화’에서 “Think globally from the beginning”을 강조했다. 그는 “크게 생각하라. 사회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라”며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활약할 때 한국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의 특징을 한마디로 “너무 내향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들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나가고 있는데 이스라엘과 비교해서 가장 다른 점이 한국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꿈을 크게 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며 “로컬에 맞추면 거기에 맞춰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결국 글로벌의 영향을 받게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경쟁이 심할수록 기회가 많다”며 “세계에서 겨뤄야 세계의 펀드가 온다”며 “이스라엘 벤처는 처음부터 세계로 나간다”고 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네트워크와 파트너들이 나중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창업 인큐베이터의 언어는 영어
한국 스타트업에 영어 잘하는 사람 부족”
그는 “인큐베이터의 언어는 영어”라며 “한국 스타트업에는 영어로 읽고 말하고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이스라엘에서도 영어를 유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했는데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평소에도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사회 전반의 기술 인프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시야가 국내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 한국 공무원들이 요즈마 펀드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한다. 그는 싸이월드가 세계로 시야를 돌렸더라면 페이스북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사례로 스카이프 보다 먼저 창업한 새롬기술의 다이얼패드, 아이팟 보다 먼저 국내 시장을 선도했던 아이리버 등을 들기도 했다.
“사업화 가능성은 기술개발의 전제조건”
에를리히 회장의 또 다른 조언은 ‘유연성’을 키우라는 것이다. 한국이 기술 개발에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사업화 성공이 낮은 데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는 “기술 개발 단계부터 사업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술과 아이디어는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라이선스와 판로를 확보할지가 더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술을 팔 때 국적을 가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외국 기업이 기술만 사 가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인재를 키우게 되며, 결국은 그 쪽의 자본이 더 들어오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율주행차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벤처를 인텔이 500억 달러에 샀는데 이것이 전 세계 자율주행차의 미래가 되었다고 했다.
“기술 중시가 이스라엘의 영속적 태도 될 것”
그는 정부 역할과 관련,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자체적으로 기술로 브랜드파워를 일으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다른 말로 말하면 50년간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술 개발로 발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당시부터 있었다”며 “그 이후 지금까지 정책의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이스라엘의 영속적인 태도가 될 것”이라며 “정부 예산도 그런 방향으로 짜고 국민들에게도 그런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기업가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즈마 펀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도전하고 사업화하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발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패는 물론 달갑지 않지만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요즈마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정부의 역할은 벤처들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역할이 아닌 민간의 벤처 캐피탈을 통해 창업이 활성화활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정부의 벤처 지원금이 기존의 펀드에 집중되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벤처 펀드들이 자체적으로 투자금을 끌어들이지 못해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시장이 선도해 나가도록 유도해 자금의 자급자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2001년 만들어진 서울국제경제자문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20일 열리는 자문단 총회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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