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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가마우지 경제, 칠면조 경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 대기업의 자본과 스타트업의 혁신성을 엮어야
2008년 금융위기가 ‘블랙스완 단편’이라면
미중무역전쟁은 ‘블랙스완 미드’
경제는 복잡계다. 경제 활동 주체와 환경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그 상호작용의 영향은 가변적이며 비선형적(non-linear)이다. 시야를 글로벌 경제로 옮기면 복잡계는 더욱 그 복잡성을 더한다. 국가 간 경제 전쟁에다 국제 정치역학까지 겹쳐진다.
무작위성과 가변성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복잡계에서는 단순한 불확실성을 넘어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正(+)의 되먹임(positive feed back)’이나 ‘負(-)의 되먹임(negative feed back)’으로 인해 상호작용은 어느 순간 비선형적·비대칭적 변화를 초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유명해진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 이야기는 복잡계의 특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키워드이다.
나심 탈레브는, 복잡계적 특성을 가진 시스템에서는 가변성과 무작위성에 의해 ‘깨지기 쉬운(fragile)’ 단위와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는(anti-fragile)’ 단위가 있다고 했다. 앤티프래질은 단지 단단함이나 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변성으로부터 이익을 얻거나 더욱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나심 탈레브《안티프래질》2013)
앤티프래질 화두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통찰을 제공한다. 2018년 봄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은 <일본-한국-중국-미국>으로 연결된 단순한 무역 가치사슬의 취약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울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 분쟁을 시작할 때도 미국의 또 다른 통상압력 정도로 치부했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늘 그랬으니까.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우리 시스템의 취약성을 단번에 노출시키는 ‘블랙스완’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블랙스완 ‘단편’이라면, 미중 무역전쟁으로 초래된 경제침체는 블랙스완 ‘미드’시리즈인 셈이다.
30년 전 日 경제평론가
‘가마우지 한국경제’ 비아냥
그래도 한국은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對) 중국 수출 비중은 홍콩과 합칠 경우 34퍼센트에 달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이 정도의 대외 의존은 정상이 아니다. 일본 소재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단기간 대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취약성을 높인다. 복잡계에서는 이런 집중성과 의존성이 극단적 취약성을 노출하고 만다. 고리 중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취약성이 바로 전체화-현재화된다.
잠깐 되돌아보자. 중국은 사드 사태로 중간 고리에서 먼저 문제를 보여주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마지막 고리에서 중국을 통해서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이런 취약한 고리를 아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직접 겨냥할 필요가 없다. 중국과의 무역을 줄이면 한국은 저절로 영향을 받는다. 한국경제에 굳이 싫은 소리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첫 번째 고리에 대한 타격에 해당한다. 한국 반도체 아성을 견제하는 동시에 과거사 문제에서 레버러지도 확보하려는 의도이다. 한국이 꼼짝 못 하는 수단을 일본은 진작 들고 있었다. 일부러 속내를 숨기지도 않았다. 30년 전 일본 경제평론가가 ‘가마우지 경제’라고 비아냥거려도 진지한 대응은 없었다. (‘가마우지 경제’는 1980년대 말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라 나오키가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처음 썼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소재를 가공해서 수출하기 때문에 그 이익이 일본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마우지 낚시에 비유해 썼다.)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는 세계경제 상호의존성의 연쇄고리를 타고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경기 위축은 한국, 일본, 동남아 경제 전체를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나아가 유럽 경제의 주축인 독일의 경제까지 하방위험을 높이고 있다. 3분기 연속 逆 성장 중이다.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고 있다.
지구 반대쪽 남미라고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나비가 그쪽으로 날아가 산불을 일으키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미국이 흔들기 시작한 가변성에 그들 역시 ‘프래질’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축소 지향적 무역질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특히 우리가 직면한 취약성은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 아니다. 30-50 클럽에 진입한 대형 경제가 되었지만 취약성의 크기도 같이 커졌다. 오히려 문제를 일시적인 경제침체로 오인한 억지 주장만 거셀 뿐이다.
가변적 상황일수록
더 큰돈 벌 수 있는 경제 만들어야
나심 탈레브의 통찰에서 문제 해결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프래질 구조의 경제가 가변성과 무작위성이 있는 복잡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앤티프래질’ 구조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티프래질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강 국면 보다 상승 국면에 더 많이 있고, 비대칭성을 띠는 것과 무작위성을 오히려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틀렸을 때 잃는 돈보다 옳았을 때 버는 돈이 더 많다면, 결국 무작위성으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나심 탈레브, 《안티프래질》 p.265)
한마디로 ‘앤티프라질’은 비대칭·비선형적 수익구조(pay off)를 가진 옵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앤티프래질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선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분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옵션은 특정 자산을 미리 정해진 시기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한이 붙은 금융상품이다. 손해에는 한도가 있지만 이익에는 한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상품 航海 루트 따라
한국형 산업단지 개발해보자
무역 가치사슬부터 보자. 특정지역과 국가에 집중된 무역구조, 그리고 단순한 무역구조는 ‘프래질’하다. 우리 수출산업과 경제를 앤티프래질 구조로 바꾸기 위해서는 全 지구적으로 다변화된 새로운 국제 분업체계를 건설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한국형 산업단지’를 우리 수출품의 항해 루트를 따라 지역적으로 분산하여 개발하는 것이다. 동남아, 북아프리카, 남미 등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들 지역은 장차 대형 경제가 될 후보 국가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분산된 산업지구 개발이 ‘앤티프래질’하게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한국형 산업단지’이지만 개방성, 다국적성, 진출국과의 통합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개방성은 한국 기업만을 위한 산업단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과 업종의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만 진출하거나 한국 기업 관련 산업이 집중되는 경우 다시‘프래질’ 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국적성은 한국이 개발한 산업단지에 모든 나라의 산업이 자신의 상업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입하는 국가와 산업이 무작위적이고 잘 분산되어야 앤티프래질의 이점이 발휘될 것이다.
진출국의 경제와 통합되어야 한다. 진출국의 창의성과 특성이 한국형 산업단지와 어우러져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모습으로 ‘진화’해 갈 때 앤티프래질이 강화된다.
우리 입장에서 앤티프래질의 이점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개발하고 운영(BOT)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영면에서 주도권을 가질 때 업사이드 기회를 적기에 활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종의 옵션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개방적이고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게 되면 산업단지의 안정적 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복잡계로서 상호작용하면서 업종별 부침이 지속될 것이다. 운영권을 가지는 경우 성공적인 기회의 포착과 추가 진입이 쉬워진다. 한국이 일종의 콜옵션을 보유하는 셈이다.)
다양하게 발달되고 성장하는 한국형 산업단지는 국내 연관산업의 발전을 촉발할 것이다. 가치사슬 측면에서 국내 산업은 R&D·브랜드·유통·광고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성장을 꾀할 수 있다. 해외 산업단지의 발전은 국내 연관산업의 ‘공진화(共進化)’를 유도하게 되어 앤티프래질이 강화될 것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탈 조속히 허용해야
현 제도로는 구글벤처스도 국내 활동 안돼
대기업과 중소기업, 특히 스타트업들과의 상생 협력은 우리 경제의 앤티프래질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또 다른 취약성은 대기업 위주의 10~13개 주력 업종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소수의 ‘크고 무거운’ 것은 다수의 ‘작고 가벼운’ 것에 비해 본질적으로 ‘프래질’하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활발하게 성장, 발전하는 것만으로 경제의 앤티프래질이 강화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협력적 혁신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상호 옵션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앤티프래질을 강화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혁신적 창안을 대기업의 역량(자본, 기술, 생산, 개발, 실험, 경영, 마케팅 등)으로 지원하는 경우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대기업 입장에서 조그마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비용은 그다지 크지 않다.
대기업은 계약구조에 따라 스타트업의 성공으로부터 다양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스타트업과 합의하는 경우 인수할 수도 있고 추가적인 지분(계약에 따른 옵션 행사)을 확보할 수 있다. 대기업은 적은 비용(초기 출자와 지원)과 위험으로 더 큰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옵션적 이익 기회를 갖는다. 우선 초기 실패 위험이 획기적으로 통제 가능하게 되는 반면 업사이드 기회를 최대화할 수 있다.
앤티프래질한 협력적 혁신을 지원하는 방식은 이미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다. CVC는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적 혁신을 통해 촉진한다. 주력 업종의 디지털 전환 과정 속에서 소재부품산업의 독립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벤처캐피털이 일종의 ‘금융’이기 때문에 금산분리 규제에 막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속히 허용되어야 한다. 미국에선 2018년 금액 기준으로 벤처 딜의 50% 이상이 CVC다. 전 세계 CVC 1위인 구글벤처스도 우리나라에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작고 가볍고 기민한 구조로 가야
칠면조 신세 되지 않는다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서비스화는 앤티프래질을 강화한다. 주력산업이 어렵다고 당장 이를 대체할만한 산업을 단기간에 찾기 어렵다. 우선 이들의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면서 신산업을 육성해 나갈 수밖에 없다. 사실 신산업도 이들의 혁신에서 씨앗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 시작은 디지털 전환, 융합, 서비스화(servicetization)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제품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계산업 또는 비연계산업과의 융합은 제품군의 층을 두텁게 확장할 수 있다.
제조와 공정혁신을 통한 주력산업의 혁신은 기민성(agility)을 부여함으로써 앤티프래질한 산업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돕는다. 스마트 공장은 단품종 대량생산체제를 다품종 맞춤형 생산체제로 전환을 쉽게 한다. 크고 무겁고 둔한(프래질) 산업구조를 다수의 작고 가볍고 기민한(앤티프래질)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문제를 앤티프래질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앤티프래질의 개념은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자유무역의 이상’이 어느 한순간 그 방향을 수정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를 준다. 오랜 기간 먹이를 주던 주인을 믿고 따르던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전날 갑자기‘블랙스완’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보게 되는 순간 칠면조의 목은 이미 잘렸다.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본에게는 가마우지, 미국에게는 칠면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명분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실용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기업을 터부시부터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와 국민경제라는 복합적 틀 속에서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일본 경제 보복으로 우리 사회에서 형성된 공감대를 시간이 지났다고 가벼이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금기시되던 것들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해온 것들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가마우지도 칠면조도 되지 않는다. 실용의 눈으로 경제를 봐야 지금 해야 할 것들,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최적기일지도 모르겠다. (노파심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실용은 철학적 기반이 취약하거나 결여된 경제 만능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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