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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 미·중 경쟁과 중간국가의 ‘생존전략’①] 호주 “미국을 완전히 믿지 않으며 중국엔 당당하다”
미 국무부 스키너 정책기획국장은 미중 경쟁을 ‘문명충돌’로까지 묘사했다. 이 주장은 전문가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그만큼 두 강대국의 충돌이 구조적이고 심각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각국의 전략적 선택의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특히 미국의 동맹이며 중국과 교역에 의존도가 큰 국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왜 호주인가?
호주에게 미국은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한 전문가는 호주에게 미국은 ‘친구’이고 중국은 ‘고객’이라고 표현했다. 호주와 두 강대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호주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관계는 한국의 양국에 대한 관계와 흡사하다.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이 안보에 사활적이며 중국과의 교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또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호주는 한국과 같은 중간국가(middle power)이다. 중간국가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에 위치하며 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모색하는 국가이다. 한국과 호주의 유사점이 호주의 국가전략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호-미 동맹 강화와 동시에 자주국방도 추진
호주 국가전략의 핵심은 안보를 위한 미국과의 동맹이다. 호주와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Mateship (우정)’이라고 표현되는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역내 영향력 확대 및 주도권 확보를 위해 힘의 투사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은 호주의 전통적 우방국인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들에 진출하려고 한다. 중국의 일련의 팽창정책은 호주의 안보 우려를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은 호주를 핵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확장억지력을 제공한다. 미국은 동맹국인 호주에게 미국의 고급 기술과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서 양국 간 군사적 상호운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상호운용성을 보장하는 다른 요소는 호주가 무기의 약 60%를 미국으로부터 획득하는 것이다. 상호운용성이 증가하면 호주와 미국은 합동작전에서 통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2014년 호주와 미국이 ‘군사태세 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미국은 호주 북부의 다윈에 순환배치 방식으로 해병대 병력을 주둔시키게 되었다. 여기서 해병대는 해상 능력 구축, 인도적 지원과 재해구조를 위한 훈련을 해오고 있다. 더불어 호주는 개방되고 안전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질서의 구축에 관심이 많아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한편 호주와 미국은 정보협력에서 특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와 미국은 ‘다섯 개의 눈(Five Eyes: FVEY)’이라는 정보 동맹의 일원이다. 이 정보 동맹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및 뉴질랜드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포함된 국가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독일도 이 정보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호주에 있는 미국의 정보시설인 파인 갭은 미국이 신호정보를 수집·처리하는 세계 3대 인공 위성국 중의 하나이다. 이 시설은 신호정보 수집, 탄도미사일 발사 조기경보,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방어 집중 지원, 미국 무인기 공격에 대한 표적 데이터 제공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호주와 미국의 정보협력 수준에서 알 수 있듯이 호주와 미국의 동맹은 매우 견고하다.
그러나 호주는 미국의 안보 공약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호주는 동맹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자주국방력을 구축하고자 한다. 호주는 병력을 증가시키고 해군력을 증강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12척의 공격형 잠수함을 포함한 54척의 군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호주는 72기의 F-35A 합동폭격전투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호주는 일본 및 인도와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안보를 위한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의 수출 중 중국 비중이 31%
호주는 광활한 영토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호주는 영어권 국가이며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계 이주자들이 1850년대부터 골드러시 붐을 타고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를 배경으로 호주는 중국과 무역, 관광, 교육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호주의 중국에 대한 수출이 총수출의 31.1%를 차지한다. 호주는 총수입의 18.9%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호주 경제에서 중국의 중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평균 교역 성장률은 8.1%이며 2018년 증가율은 17%를 기록했다. 호주의 대중국 총수출 증가율은 지난 5년 평균 7.9%이고 2018년 17.5%이었다. 호주의 대중국 수입도 지난 5년간 8.6%, 2018년에만 16.1% 증가했다. 호주는 중국에 주로 원자재를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철광석, 석탄, 천연가스 등이다. 중국은 필요한 철광석 수입의 60%를 호주산에 의존한다. 호주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은 16만 5,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매년 140여만 명의 중국 관광객이 호주를 방문하고 있다. 2018년 중국은 호주의 서비스 수입 1위 국가이다.
호주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으나 중국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호주는 양국 간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되 중국이 경제력을 동원해서 경제 보복을 하거나 호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중국의 무역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을 주저치 않는다. 최근 호주의 모리슨 총리는 한 연설에서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 요구가 불공정하고 지적재산권 도용은 정의롭지 않으며 정부의 산업 보조금은 초과생산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겨냥 방첩법 제정
호주는 중국을 비난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호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했다. 2018년 호주 의회는 일련의 방첩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주요 대상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외국 로비스트들의 등록을 의무화하는 외국인 개입 금지법을 입법화했다. 호주는 핵심적 기간시설에 대한 외국인 투자, 방위 교역, 전기통신 분야, 외국인 자산구매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더욱이 2018년 8월 호주는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5G 통신망 사업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호주의 이러한 조치들에 대해 중국은 한동안 호주 기업인의 비자 발부를 거부하거나 호주의 석탄 선적 선박을 통관절차를 이유로 억류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했다. 호주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경제 다변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주의 중간국가인 일본,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국가와 EU 및 ASEAN 국가와 경제관계를 증진시키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을 동원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전략적 우위를 구축하려는 지경학적(geoeconomic)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상 국가들은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과 안보위협을 각오하지 않는 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균형전략)을 선택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략(편승 전략)이 불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위험분산 전략(헤징전략) 조차 미국에게는 불만일 수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미국의 동맹국인 중간국가에 엄청난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은 실정이다. 강대국의 첨예한 경쟁구도 하에서 이들 국가는 어떻게 안보와 번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쇠퇴?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 하에서 중간국가가 전략적 발상의 전환을 하려면 몇 가지 신화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 미국은 쇠퇴하고 중국은 부강해지고 있는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필연적으로 심화될 것인가? 미중 경쟁은 중간국가에 독인가? 중간국가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신화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수용되기 시작해서 최근에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최고 경제성장률과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면서 경제 상황이 매우 좋다. 반면에 중국은 대미 무역갈등과 상관없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가 순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새로운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쇠퇴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필연적으로 심화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의 경쟁은 단순히 무역 문제가 아니다. 두 강대국은 이데올로기, 정치체제, 군사,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대립하고 있다. 중국에서 경제는 정권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중국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미국과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갈등을 과장하고 조장하는 경향이 있으나 두 강대국은 서로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은 중간국가에 毒 인가?
미중 경쟁은 중간국가에 독인가? 중간국가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미중 갈등은 물론 중간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중간국가들이 두 강대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 미국은 대중국 동맹 및 동반자 국가와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경쟁으로 여력이 없어서 중간국가로 무역전쟁을 확대하기 힘들 것이다. 여전히 중간국가가 두 강대국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면 중간국가가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전략적 선택은 취약성과 복원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해서 강대국으로부터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호주의 공식적인 국가전략은 일종의 헤징전략으로서 ‘미국과 동맹 강화, 중국과 경제관계 확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을 견제하는데 더 치중하는 헤징전략이다. 호주의 양국에 대한 기본 입장은 ‘미국을 완전히 믿지 않으며 중국에 당당하다’는 것이다. 호주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편, 자주국방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호주는 중국과 경제교류와 협력의 강화를 추구하지만 부당한 중국의 행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호주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경제관계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호주는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자신의 전략적 입장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다.
호주는 한국에 세 가지 충고를 던진다. 첫째 강대국으로부터 최대한 자율성을 확보하라. 둘째 미국에 대해서는 신뢰하되 자주국방력을 강화하라. 셋째 중국에 대해서는 교역을 확대하되 수출 다변화를 모색하라.
※ 참고자료
1. Department of Defense, Australian Government, 2016 Defense White Paper
2. Australian Government, 2017 Foreign Policy White Paper
3. The Department of Defense, the United States, Indo-Pacific Strategy Report: Preparedness, Partnerships, and Promoting a Networked Region, June 1, 2019
4. Jamie Tarabay, “As China Looms, Australia’s Military Refocuses on Pacific Neighbors”, The New York Times, June 11, 2019
5.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Australia's Trade in Goods and Services by Top 15 Partners,
https://dfat.gov.au/trade/resorces/trade-statics/trade-in-goods-services/Documents/australia-goods-and-services-by-top-15-partners-2018.pdf(2019.7.15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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