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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 오세정 서울대 총장 “기득권과 고집, 특히 대학이 그렇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 “학생 진로에 가장 큰 적은 부모” 김도연 포스텍 총장 “대학∙기업∙정부가 손잡아야” - “대학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 여시재 ‘미래인재’ 토론회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산업의 현주소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저 기업의 일로 미뤄두었든 것들이 실은 치열한 국제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활의 문제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고, 특히 국제 분업구조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재)여시재는 연초 한국의 산업이 60년 성장기를 지나 이제 결정적인 대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보고 ‘미래산업위원회(위원장 이헌재)’를 구성해 활로를 모색해왔다. 20여 차례에 걸쳐 산업 분야별 육성 방안과 함께, 미-중 갈등, 일본의 무역보복 등 상상을 넘어서는 대외 환경의 변화를 내부적으로 논의해왔다. 그 논의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부터 ‘대전환의 시대, 산업의 방아쇠를 당기자’는 대주제 아래 바이오헬스 생태계 구축, ‘소비 국방에서 투자 국방으로’, 스마트시티 등 어젠다별 토론회를 6차례 열었으며, 지난 16일 연세대 장기원국제회의실에서 ‘미래산업 인재 육성’을 주제로 마지막 토론회를 열었다.
6차례 토론회에서 나온 결론은 한국의 산업이 경기 변동 상의 위기, 디지털혁명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적 위기, 국제분업 구조의 동요에서 오는 지경학적 위기가 겹친 중첩 위기라는 데 모였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고통의 밑바닥을 보겠다는 자세와 함께 적확한 처방 및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도 공감대를 이뤘다.
7차에 걸친 연중 토론회의 마지막 주제를 ‘미래인재’로 한 것은 결국은 인재 육성 없이는 어떤 산업 정책이나 R&D도 제대로 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대학과 공직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를 집중 논의했다. 기업(스타트업 포함)에 인재를 공급하는 곳이 대학이며, 기업과 대학에 밀착해 문제를 발굴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곳이 공직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오세정 서울대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등 3개 대학 총장을 비롯,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김판석 연세대 교수(전 인사혁신처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윤종록 가천대교수(전 창조과학부 차관)가 발제를 맡았고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신상철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대표가 지정토론 했다. 이경태 국제캠퍼스 부총장이 좌장을 맡아 토론회를 진행했다.
다음은 주요 토론 내용 요약이다.
<여시재 미래산업위원회> |
“부모가 가장 큰 敵”
연세대 김용학 총장은 젊은 과학 인재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 창업할 수 있는 생태계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안전 위주의 길로 몰아가려는 부모가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부모들이 자기 살아온 방식대로, 안전 위주로 아이가 살아가길 원하니까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부모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했다. 김 총장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부모가 가장 큰 적”이라며 “부모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김 총장이 말하는 ‘부모’는 협의의 부모이자 광의로는 사회 전체라 할 수 있다. 인재가 안전만을 추구하는 사회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오 총장은 “얼마 전 서울대 생명과학부와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아이의 부모를 만났는데 그 부모가 생명과학 해서 먹고나 살겠느냐고 하더라”며 “이것이 우리 사회”라고 했다. 그는 문과에서 가장 가기 어렵다는 곳이 서울대 경영대인데 여기 졸업생 중 성적이 좋은 ‘톱 20’ 대부분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간다고 했다.
좌장을 맡은 이경태 연세대 부총장은 “이래서는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인재,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능 이대로 둘 것인가”
여러 사람이 수능 중심 대입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경계를 뛰어넘는 인재, 잉어처럼 솟아오르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전부 정육면체로 깎여서 들어온 학생들을 대학이 무슨 재재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며 “원흉이 수능”이라고 했다. 그는 “수능이 공정하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해오고 있는데 이것을 하고 있는 한 희망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 기술 수준으로도 AI가 주관식을 채점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주관식 비율을 높여가야 한다고 했다.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은 “다른 나라는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데 몰입하는 동안 우리는 학원에 어마어마한 민간 자원, 민생 자체를 흔들 정도의 돈을 넣고 있다”며 “아예 수능을 없애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충분히 믿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학을 못 믿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기초가 약한 사회
청중석에서 발언권을 얻은 연세대 수학과 박승경 교수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대학 들어온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서 배웠어야 할 기초 미적분을 두 학기 동안 가르치는 데 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수학 물리 F 받는 학생들이 상당하고 4학년이 되도록 1학년 과목을 패스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이 어떻게 길러지겠느냐”고 했다. 그는 “알고리즘을 짜거나 코딩이라고 하는 것은 인가 두뇌가 생각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을 기계어로 바꾼 게 코딩일 뿐이고 그 기본이 다 수학인데 지금 고교 교과 과정에서 수학이 다 빠졌다”고 했다.
오세정 총장은 “대학도 문제가 있다”며 “수능에서 과학2 라는 심화과목이 있는데 대학들이 요구하지 않으니까 (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를 제외한 다른 대학들이 지원자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 서울대 이 과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총장은 기초 과학과 수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교에서 대학까지 이르는 전체 체계를 새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두가 기득권 집착하는 사회”
오세정 총장은 “서울대 컴퓨터과학과 정원이 55명인데 스탠퍼드는 1000명”이라며 “정원을 조정하겠다고 하면 난리 난다”고 했다. 입학정원이 제한돼 있는 속에서 특정 전공을 늘리면 다른 전공 인원이 줄고 그렇게 되면 교수 인원도 압박을 받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오 총장은 “그래서 강구한 것이 정원은 그대로 두되 부전공을 획기적으로 늘려 거기에 맞는 수업을 개설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방법”이라며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 별로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오 총장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여러 기득권과 고집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는 것이고, 특히 대학이 그렇다”고 했다.
대학∙기업 겸직 금지 빨리 풀어야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주장했다. AI 등 디지털 혁명 분야의 해외 선도학자들을 데려오려면 보통 100만달러를 줘야 하는데 국내 대학 형편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이다. 오세정 총장은 제도적으로 가능한 이것저것 다 모아도 20만달러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학과 기업 겸직을 금지한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학 급여와 기업 급여를 동시에 지급해서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도연 총장은 “삼성전자에 가보면 하버드대 교수들이 몇 개월씩 와서 일하고 있다”며 “하버드대 교수들은 되고 한국 교수들은 안 되는 이유가 뭔가”라고 했다. 김 총장은 “이 겸직 금지 뿐만 아니라 대학 간 겸직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서울대나 연세대 교수가 그 학교에서만 강의를 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라고 했다.
김판석 전 인사혁신처장도 동의했다. 그는 “중국에 갔더니 세계적인 미국 행정학자가 기존 학교는 유지한 채 중국에서 몇 개월 동안 강의하고 있더라”며 “세계 추세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오세정 총장은 “이제는 (한국 국적 석학들에게) 애국심만으로 호소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고 했다.
데이터 규제가 문제다
오세정 총장은 “결국 한국 대학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을 가지고 해외 학자들을 불러오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용학 총장은 “한국에만 있는 데이터가 그 방법일 수 있다”며 한국 대학들의 의료원에는 ‘금싸라기 데이터’가 쌓여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그런데도 현행법상 그것을 공개하거나 공유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연세대의 경우 입학처가 가진 자료를 교무처와 공유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한국은 수 십년 전국민 의료보험 경험으로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의료 데이터가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학∙기업∙정부 3각 트라이앵글 만들어야
김도연 총장은 오픈 이노베이션 시대에 대학과 기업, 자치단체 사이에 놓인 칸막이를 제거해야 한다며 지역별로 ‘市-産-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3년 째 진행하고 있는 ‘유니버시티(Univer-city)’ 개념도 소개했다. 지역의 대학과 연구소, 기업을 연결하고 이를 자치단체가 추동하며 여기에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를 결합시키는 시스템이다. 김 총장은 이것이 지역 대학을 살리는 길이라고도 했다. 김 총장은 이 3각 트라이앵글 구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겸직 금지’라고 했다.
수만명 학생들에 100만원 연구비 지원하자
이외에도 많은 제안들이 쏟아졌다.
김용학 총장은 ‘스몰베팅’을 제안했다. 수천명, 수만명 학생들에게 100만원 단위 연구비를 주자는 것이다. 거기서 큰 성과라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창업에 한번 실패한 학생들을 대학이 다시 받아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 군에서 창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윤종록 가천대교수는 ICT와 생명과학을 융합한 일명 ‘알파공대’를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25개 정부 출연연구소 중 일부가 유수의 의과대학과 1년 단위의 의학통섭과정을 운영해보자”고 했다. 미국 벨연구소가 피츠버그 의과대학과 전략적인 통합R&D를 제휴했던 사례, 이스라엘의 AI, ICT 전문가들이 생명공학 기업을 창업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김판석 전 인사혁신처장은 공무원 채용 때 4차 산업혁명 관련 직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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