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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 무인기 개발 ③·끝] “나는 영혼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 국가 연구전략, 깊게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죽을 것인가?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 (사)출연(연) 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 정책연구소장)

2019.06.05

연재 순서
① 창업 13년만에 100억달러 가치 중국 DJI, 기술 먼저 개발하고도 완전히 밀린 한국 드론산업
② 미국 벨社 보다 뛰어난 성능 國産 틸트로터 무인기, 개발엔 성공 사업화엔 9년째 실패
③ “나는 영혼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국가 미래 전략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탄식

스마트무인기 사업과 관련하여 1편(3월 15일)에서는 한국이 세계적 드론(무인기) 기업인 중국 DJI에 앞서 최첨단 드론(‘틸트로터형’ 무인기)을 개발하고도 사업화가 실패 또는 지연되면서 DJI에 세계 시장을 통째로 내준 사례를 분석했다. 2편(4월 26일)에서는 ‘틸트로터형’ 무인기가 어떻게 ‘위원회’라는 기회주의적 의사결정 시스템의 함정에 빠져 사업화에 실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뤄보았다. 3편이자 마지막인 이번 편에서는 국가기술전략과 산업생태계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의 부재가 스마트무인기 사업을 비롯한 여러 국책 연구과제들을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혁신해야 할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현재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소는 25개다. 연구자만 1만 2000여명, 지원 인력을 포함하면 1만 5000명가량 된다. 이 연구소들에 투입되는 돈이 1년에 5조원 수준으로 정부 R&D 예산의 25% 수준이다. (8조 규모 즉 40% 수준으로 알려진 것은 경제인문사회연구소 24개 기관과, 수많은 부처직할기관 (KAIST, GIST, IBS 및 연구관리전문기관, 산업부 산하 16개 전문생산기술연구소 등)을 포함한 수치이다.) 이 연구소들에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만들어낸 CDMA 원천기술 등 수많은 성과들이 쌓였다. 그러나 몇몇 탁월한 성과들의 이면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비 따내기 경쟁’ ‘단기 성과 경쟁’의 늪에 빠져 “국가 미래전략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탄식”이 쌓이고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시스템적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사례 분석이 칸막이(Silo)화된 문제 인식(우리 기관, 부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머물지 않고 과학기술정책 차원의 거시적-맥락적 성찰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기술전략’이라는 관점에서 깊은 변화(Deep Change)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기술의 사업성, 유효성에 관한 질문과 답변은 산업 생태계와 국가 기술전략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기술사업화의 사이클에서 연구자들 앞에는 ‘죽음의 계곡(수월성 높은 과학지식이나 원천기술을 제품화로 확장하기 위해 건너야 할 응용개발 과정의 난관을 의미)’을 건너더라도 ‘다윈의 계곡(제품화에 성공 또는 제품화 가능성을 보이더라도 사업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난관)’이 가로 놓여 있다.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국방 항공 우주 분야는 더욱 ‘다윈의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다윈의 계곡’ 영역에서 국내의 산업 생태계와 여러 혁신주체들이 함께 구상하는 사업화 전략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기술전략의 공동구축 과정은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배제와 카르텔 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또한, 시스템 차원의 문제를 단순히 기업체의 사업가적 마인드 부족 탓을 하거나 정부의 지원의지 부족 탓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대자동차의 세계 최초 수소연료전지차 양산

기계연-생명연-화학연에서 나온 세계적 첨단기술

출연연들의 연구가 ‘갈라파고스화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를 상용화했다. 그러나 학계와 출연연들의 이 분야 연구 결과들은 여기에 전혀 결합되지 못했다.(국내 대기업의 혁신 방식, 즉 완성 기술 도입을 통한 빠른 제품화 특성과 그 외의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국내 산학연 역량 단절의 상징적 사례) 삼성전자의 5G 모뎀칩 개발 도전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역량은 연결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지적 자산 공유체제의 부재로 인한 의도적 배제) 그 외에도 리튬이온배터리, 토목 엔지니어링,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등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선도기술 투자와 국가의 지원이 각 부처의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산학연 혁신역량의 결집에 있어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나의 시사점이 있다. 국내외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선도형 기술일수록 갈라파고스화가 더 심화되는 역설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갈라파고스’에서 발원한 첨단 기술의 원천성, 수월성으로 인한 성공사례 또한 다수 존재한다. 한국기계연구원 송영훈 박사의 저온 플라즈마기술은 원천기술 개발 후 약 20년 만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생산공정과 제품의 혁신에 활용되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최인표 박사의 제대혈 줄기세포를 활용한 말기 암 치료기술은 국내외 대형제약사에 기술이전이 진행 중이며 향후로도 다양한 정밀 의료 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는 대형 잠재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박용기 박사의 신화학 공정기술은 “백 년의 화학 플랜트 공정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해외 유명 엔지니어링 업체 전문인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기대감 속에 성장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십여 년 전에 개발한 틸트로터기술은, 그 혁신성으로 인해 기술 진부화라는 문제를 견대내고 현재 국내 2개의 대기업에 이전되어 국방과 민간 부문의 미래 경쟁력 위협에 대비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이런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대비한 이유는 선도형 기술의 사업화 실패문제가, 전문가 중심의 기능분화와 같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적재산권 인정 범위 등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지만 나는 혁신기술의 사업화에 대한 전략의 공동 구축을 위한 논의 가능성 자체가 부재하거나 왜곡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국방과 공공부문이 선도형 기술의 첫 시장으로 나서며 혁신 수용성을 보이는 반면 우리는 감사 회피 기제가 더 크게 작동한다. 더 큰 문제는, 감사를 완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듯이 상황을 대증적으로 축소하는 현상이다. 감사 회피만의 동기가 아니라도, 국방 수요를 활용한 혁신 유인에 관한 다수의 기회요인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전략 실패, 시스템 실패는 여러 모양으로 발생하고 있다.

싱가포르 이스라엘 스웨덴 터키는 하는데
우리는 왜 성공하지 못하고 있나

벤처 투자 전문가인 이용관 대표는 국내의 기술혁신 사업화로 연결되는 특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삼성과 현대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조차 기술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미리 저가에 구매하여 사업화로 이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해외의 경우에는 엔지니어링 컴퍼니와 컨설팅이 발달하여 이러한 거래가 성숙한 반면, 우리는 제품화되어 시장성이 검증된 이후에 M&A 등을 통해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위험은 축소하고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적 특성을 보인다.”

해외 글로벌 기업의 경우에는 새로운 사업화 가능성을 주도적으로 탐색하며 여러 벤처기업·연구기관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그중 유망한 기술에 대해서는 투자자로서 지원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삼성벤처투자 등 전자부문에서는 이러한 시장기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고, 바이오 분야는 글로벌한 기술거래 시스템이 발달해 있지만, 거대-첨단복합기계 분야는 역부족인 생태계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중 가장 어려운 영역이 바로 국방-항공우주 산업군이다.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

이런 한계는 첨단산업 선도국들도 마찬가지로 고민하는 정책 주제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첨단기업들의 혁신기술 사업화를 국가가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 국가전략에 기반하는 민관 공동 투자형 사업의 총칭으로서 시장·사업 특성에 따라 민간 부담금 비율의 정책적 조정, 경쟁형 개발 등을 포함)와 같은 제도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 제도는 혁신기술을 통한 새로운 산업 창출 또는 국방 등 국가전략기술의 지속적 고도화를 위한 촉매로서 출연연(해외의 경우 공공연)과 산업의 협력을 유인하는 장치로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이 민간 우주용 SAR(레이더 영상기술) 위성 부문에서 미국을 지속적으로 앞서가는 비결도 독일이 보유한 세계적인 레이더 산업 생태계의 기술 경쟁력과 공공연구소(DLR)가 보유한 우주 데이터 활용 연구의 결합을 유인하는 PPP 제도 덕분이다. (즉,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한 독일 기업이 SAR 위성을 제작할 때, 국가는 한 대 더 주문한다. 그리고 그 추가 물량에 대한 사용권을 DLR 연구자들에게 전적으로 넘겨준다. 무려 550명에 달하는 위성 활용 연구진들은 다양한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 서비스를 진화시키고 이에 기반하여 차세대 SAR 위성 개념설계를 한다. 해당 기업은 DLR의 기술 지원으로 지속적으로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며 글로벌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국가는 기술협력의 방향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혁신역량이 결합될 수 있는 토대만 제공한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스페이스-X도 이 제도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PPP 모델은 해외에서는 국방-항공 우주 등 첨단복합기계시스템(CoPS)의 개발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돕는 강력한 정책도구로 활용되지만 이 정책 모형은 국가가 R&D를 주도하는 모델, 특히 부처 간에 경쟁적으로 인기 주제에 투입하는 지형에서는 구축효과만 양성하고 별 실익이 없게 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 좋은 사례가, PPP의 한 형태로서 미국에서 국가연구기관의 지식적 리더십을 활용 연계한 중소기업 신기술육성 모델 SBIR (Small Business Innovative Research)로서, 한국에 들여온지 20년이 넘었고(Ko-SBIR) 연간 약 2조 이상(1조 규모의 중소벤처기업부 전담예산과 별도로)을 투입하고 있지만, 별 실효는 거두지 못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항공 우주와 같은 첨단복합기계 시스템의 산업화는 국가의 미래비전과 리더십에 달려있으며 해외에 잘 작동한 모델을 추종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며 아무리 경쟁력이 높아도 연간 생산량이 100대를 넘기가 어렵다. 양산 1호 제품부터 고도의 안정화와 신뢰성을 요구하지만, 시험 제작은 고작 2~4대 정도이다. 그러니 시험 제작(탐색개발) 단계부터 고도의 시뮬레이션과 체계공학적 설계와 관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지속 가능한 전략적 토대가 없을 경우 그저 예산 부풀리기의 구실로 전락하고 만다. 현장은 그런 사례들의 무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권국들만의 전유 산업도 아니다. 싱가포르, 이스라엘, 스웨덴, 터키 등 우리보다 작은 경제규모 국가에서도 분야별로 항공우주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규모보다 국가 리더십이 관건이며 국가 리더십의 진화를 자극하는 현장의 변화 또한 관건이다.

우버가 2023년까지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비행택시 ‘Uber Air(우버 에어)’

스마트무인기가 사업화 단계를 넘었다면
우버 비행택시의 경쟁 모델이 됐을 것이다

Uber의 Air Taxi(비행택시) 사업 추진으로 다시 촉발된 고정익과 회전익 비행체를 결합한 다양한 하이브리드 개념이 재출현하고 있다. 만일 항우연 기술성과를 알아볼 전문가가 사업화 의사결정 경로에 있었다면, 2편에서 언급한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가 중간 경로에서 무력해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국내 산업체가 수용하기 버거운 첨단 기술성과를 지원하는 PPP형 사업이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현재 미국 Uber 사가 비행택시 개발 후보로 선정한 5개 업체에 국내 기업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선도기술의 불운은 항상 외국이 뛰어나간 뒤에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며, 그때는 이미 후발주자로서 상당한 전략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가능성이 안전하게 확인된’ 기술에 대해서는 모든 부처에서 전방위적으로 투자에 참여한 결과 선도형 중소중견기업이 도리어 시장에서 밀려나거나(‘반도의 진주’라 할 만큼 OOOO 부문 선도 기업이었던 OO의 경우), 중견-대기업 혹은 해외 제품 수입상의 독점적 위치만 강화되는(혁신 제품 공공 획득사업의 대상으로 지목된 OO의 경우) 등의 역효과만 일어나게 된다.

국가 미래전략가가 없다

1톤 급 틸트로터 기술사업화의 지체는 우리나라 국방전략에 있어 첨단 기술의 내재화와 생태계 조성을 아우르는 미래전략 부재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국방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소위, 대기업을 비롯한 시장 1위 기업에 숟가락 얹기식 ‘낮은 열매 따먹기’ 혹은 아무 전략 없이 소형 과제를 마구 뿌려대는 양 극단의 모습만 나타난다. 이미 고착화된 현실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왜 이런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 조차 사라졌는가?”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Uber의 비행택시 사업 모델과 미국 국방성의 틸트로터기 사업에서 보듯이 틸트로터 기술은 민간과 국방 부분에서 여전히 가장 유력한 미래기술이며, 특정 임무 영역에서는 유일한 미래기술이다. 한국의 틸트로터 무인기는 왜 사업화 단계를 넘지 못했는가에 대한 핵심 질문은 ‘기술의 혁신성’이 아니라, 이 기술을 활용한 특정 임무 영역을 상상하고 정의하는 ‘전략적 수요 창출 역량’이 발휘되지 못했는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술혁신과 공공·국방 부분 수요의 연결 역할에 있어서 가장 진화한 기관인 방위사업청마저도 바로 이 ‘전략적 수요 창출’을 위한 국방 미래기획 기능이 취약하다. 우리만의 작전개념에 기반한 고유하고 통합적인 기술기획이 이뤄지지 않고 육해공군 각각의 획득 수요에 대한 비용, 전력화 시기, 국산화 가능성 등을 따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이 해외 추종형 기획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각양의 국방 선행연구와 민간의 성공적 기술혁신이 미래의 국방획득 수요와 연결될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관해 그동안 제기된 개혁 방향은 컨설팅형-자문형 평가, 경쟁형 기획 등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뢰와 위임 구조로의 전환, 연구자의 자율성과 윤리의식이 제고될 수 있는 환경의 변화, 이러한 구조적 환경적 변화에 부응하여 혁신주체들의 상호작용성과 연구에 대한 사회적 책무의식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면 ‘컨설팅형 평가체제’ 또한 한계가 있다. 위원회의 함정이나, 특정 선정위원의 안이한 태도 이상의 시스템 문제, 즉 혁신적 성과를 사업화로 확장해가도록, 기술 성과와 잠재 수요처를 발견하고 연결 짓는 공간과 제도, 특히 전문가 집단의 가치 중심 의사결정이 존중되는 체제와 리더십의 부재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 사업화 문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기업가 정신’ 부족을 탓했다. 국방, 공공부문 등 쉬운 시장을 요구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굳이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방 등 국가 수요의 보장 없이 어떻게 기업이 시장이 불확실한 사업에 도전하겠느냐는 반론이 첫째이고, 해외 대비 70% 정도의 성능이라도 군수 지원과 단계적 진화를 고려하여 내재화에 힘을 실어줄 전략가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모든 ‘공 던지기 게임’의 기저에 국가 미래전략가의 부재, 위임형 거버넌스의 부재가 있다고 본다. 항공 우주와 같은 거대-첨단복합기계 시스템을 국가 주도로 사업화하는 데에 성공한 이스라엘, 싱가포르 스웨덴 등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의 정치·행정 경쟁력이 최상위권이며 의사결정을 위임받아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가 있다는 점이다. 항우연이 틸트로터 개발이라는 전략적 방향을 설정한 것도 마음껏 꿈을 꾸되 그 꿈에 책임을 지고 이루어 보라는 암묵적 위임에 따라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도전은 기술 개발 단계까지만 이었다. 사업화까지 이어갈 전략적 위임과 책임의 의사결정 구조는 준비되지 않았다. 항우연이 어떻게 국방 중장기 계획을 바꿀 수 있겠는가?

DJI 초소형 드론과 T-100 틸트로터 무인기

미국 JMR (다목적 중형항공기 통합플랫폼)유력 후보기종인 벨사의 V280 비행시험 동영상(링크)

한국 TR-100의 비행시험 동영상(링크)

출연연의 역량이 고갈되고 파편적-단기적 과제에 매몰되고 있다

DJI는 청년 창업가의 힘으로 ‘대륙의 실수’를 이끌었다. 항우연의 ‘반도의 실수’, 스마트무인기 개발은 평균 경력 20년 이상의 엔지니어, 소위 ‘한물간’ 고령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20명이 채 되지 않는 소수였지만, 개개인이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경력을 인정받는 전문가들이었다. 많은 사례 중 하나만 소개하면, TR-100의 복합소재 날개는 단 10kg의 무게로 1톤 비행체의 부양력과 2톤 비행 충격하중을 견디도록 설계되었다. 이 날개를 설계한 이정진 박사는 존재하지 않는 복합재 DB 구축과, 존재하지 않는 설계 레퍼런스 상황 속에서 누구의 조력도 없이 이와 같은 초경량 구조설계를 이끌었다. 항공기 구조설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파단 시험(설계하중의 150%까지 견디다가 150%를 넘어서자마자 부러지는 것이 가장 좋은 설계이다)에서 157%에 파단이 일어나는 것을, 단 첫 회 시험으로 증명해 보임으로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T-50 개발부터 시스템통합설계 엔지니어로서 일한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런 수준의 구조설계-해석 전문가는 국보급이다. 그러나 사업의 연속성 부재 등으로 그는 여러 단기성과형 과제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TR-100 개발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연구자들은 현재 흩어져서 여러 방면(국방, 중기, 공공부문 드론 산업 솔루션)에 기술 지원을 하는 등 대부분 4~6개 과제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스마트무인기 개발 때에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불가능한 기술에 도전하여 원천기술도 개발하고, 세계적 성과를 내어 연구자로서 자긍심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3년 정도 내외에 성과를 내야 하는 여러 과제들을 하면서 되새김질만 반복하고 점점 도태되는 느낌이다.” 필자에겐 이 말이, ‘반도의 실수’를 일으켰던 베테랑들이 국가에 느끼는 일종의 배신감, 혹은 비 신뢰 시스템 속에서 소진되어가는 자기 연민으로 들려왔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항우연만이 아니다. 과제 획득으로 인건비 해결이 모든 논리구조를 넘어서는 시스템으로 인해서, 각 출연연은 기관 임무 중심으로 전략적인 기획과 조정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이들에 의해 출연연과 연구자들은 지금도 앵벌이 연구 사업자로 도매금으로 매도되거나, 자체적인 혁신 의지가 없다는 질타만 듣고 있다. ‘앵벌이로 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적응한 것은 조롱받아 마땅한 일일까? 출연연의 자발적 개혁안 토론회에서 한 연구자의 자성의 목소리, “우리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며 단물은 그대로 누리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연구자 사회는 직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국가전략 부재라는 컨텍스트, 위임 구조로의 진화에 관한 논의구조 자체의 부재라는 문제에 비하면 아주 소시민적인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전략 부재 속에 사람 중심성과 자율성을 놓쳤다

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PBS 체제 속에서 자신들이 성과 도구로 소비될 뿐 원천기술부터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절망이 필자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시스템의 문제를 개혁한다고 하면 제도, 평가, 예산 배분 개혁 등을 상상했다. 하지만 사람 자체, 연구자의 자율성 자체가 개혁의 본질적 가치이며 성과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선도형 연구체제의 중심은 거버넌스를 위임해도 좋을 만한 리더십을 키워내고 그들이 Silo를 구축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을 위해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킬 윤리적 의지와 리더십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체제의 진화에 있다. 사업화 전략에 있어서는 경험과 지식이 일천한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며, 연구자들도 이러한 논의구조를 위해 연구의 기획과 진행과정에서 전향적인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

시스템 변화는 몇몇 개인의 영웅적 노력이나 Grant형 연구(연구자 집단의 재량에 연구주제와 방법론을 위임한 연구)를 의미함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기능 중심으로 분화되고 미션 중심으로 재통합될 수 있는, 전문성이 중심적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그 체계는 국가전략의 유효성과 가치(컨텍스트) 중심으로 특정 과제 단위의 전략적 수월성과 공공성에 관해 전문인들이 뜨겁게 토론하고 경쟁(비계획적 콘텐츠의 상호 구축) 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현재는 그 전문성이 작동해야 할 공간에, ‘무난한 공정성’, 과제 획득을 위한 ‘과장된 약속’, 향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최소의 검증 요건 신공’이 대신하고 있고 바로 이것이 감사 만능으로 치달은 현실의 뿌리이다. 감사체제의 진화 혹은 완화보다는, 전문적 결정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공공가치 중심의 경합을 통해 진화-검증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

현장 사례에 기반한 지적 회의와 경합의 환경 속에서만 혁신적인 기술을 국가 미래의 먹거리와 가치로 연결할 수 있는 걸출한 리더십이 성장해 나올 수 있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보신적 기제, 책임 면피 기제, 무난한 의사결정 기제, Silo 화된 연구현장과 산학연 혁신주체들 간의 단절성과 상호 의심 기제가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국가치원의 성찰을 유인하는 전환기형 리더십’이 아니고는 윤리적인 대화와 논쟁을 통한 공공 연구자로서의 의식과 연구전략의 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

관건은 연구자들의 의지를 어떻게 깨울것이냐다

지금 연구현장은 국가 혁신 시스템 위기, 산업 경쟁력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논할 수도 없고, 논해봐야 의미 없는 구조 속에 있다. ‘자체적인 혁신 의지’를 주문하는 외부의 지적은 겸허히 들어야 하지만, 개혁 의지를 갖고 현실에 부딪혀 본 많은 이들은, 이런 주문이, ‘출연연은 갈라파고스화 되었다’는 방관자적 평가만큼 무책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유행을 좇게 되거나 단기 성과만을 요구하는 시스템, 임무 중심으로 자율적 거버넌스를 구축할 토대의 부족, 3년 단임직(연임이 가능해도 실질적으로는 단임직이나 마찬가지인) 거버넌스 등이 그 원인이다. 하지만, 정부 탓을 멈추고,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공공연의 역할은 국가의 상황과 조건에서 스스로 길을 내야 하며, 전술한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해야 그 의지가 깨어날 것이며, 어떻게 그 뜻을 결집할 것인가이다.

권위주의적 접근은 다시 한 번 본질적 개혁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대안은 신뢰기반의 수평적 대화와 논쟁 속에서 함께 찾아가야 할 무엇이며, 그런 대화의 축적 자체가 변화의 본질일 것이다. 권위적으로 어떤 것을 특정하고 반짝 성과를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야 한다. 3년 단임직 기관장이 떠나더라도 후임과 남은 후배들이 가슴에 담고 갈 수 있는 토대와 ‘나무’를 함께 키우도록 논쟁을 자극하고 대화를 유인해야 한다.

‘초격차’의 저자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리더십의 발탁 조건은 성과가 아니라 잠재성이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공공부문이 단기성과주의, 보여주기식의 함정에 빠진 이유도 잠재성 중심으로 사람을 키워가고 세워가는 기제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출연연은 어떠한가? 필자는 이 질문이 무색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을 키워낼 거버넌스 자체가 작동할 수 없다.

앞으로도 본질적인 시스템 전환에 있어서 핵심 걸림돌은 바로 안주하는 사람, ‘무난함에 잠든 리더십’, 또는 지엽적인 위기의식으로 자신의 입지나 Silo만 강화하는 ‘기회주의적 리더십’의 개입으로 인한 담론의 혼돈이 될 것이다. ‘위임과 책임의’ 사람 중심성을 놓친 세월은 현장을 무기력하게 하였고 연구현장에서 쏟아지는 파편적 개혁안들은 기존경로의 승리자들에게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스템 진화의 관건은 혁신게임의 장을 보여주기식 성과게임에서, 사회현실 및 국가미래와 연결된 가치를 위한 윤리적 의지의 실천과 모험의 장으로 바꾸는 데에 있다. 그러려면 우선 감사만능주의, 절차적 공정성 만능주의, 미션 중심의 협력을 저해하고 단절적 경쟁으로 내모는 거버넌스를 철회해야 한다. 매번 고쳐 쓰는 백화점식 로드맵, 100건이 넘는 기본계획, 전방위적이고 반복적인 정책과제 선정으로는 시스템개혁이 요원하다. 자발적으로 열망하는 연구자들의 윤리적 의지가 꽃 필 수 있는 환경, 기술전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기능할 수 있는 환경, 그들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성공경험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는 실패조차 소중한 자산이 되어 연구자의 윤리적 의지를 진화하게 함으로써, ‘기업가적 공공 연구자’(Entrepreneurial Public Researcher)들이 성장하는 토양이 될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는 자발적인 동기부여와 집단적-임무중심적 성과를 향한 ‘행동 부가성’이 넘치던 연구자들마저, ‘가만 있으라’고 길들이는 체제이다.


<에필로그>

“관료사회 권위주의가 연구자 사회에 그대로 들어왔다”

필자가 앞서 쓴 2회의 글에 대해 많은 격려와 비판,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10년에 걸쳐 1천억이라는 적지 않은 투자로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틸트로트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일부 기술이전과 사업화가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 틸트로터기가 현장에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고 싶었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사업화에 실패하는 패턴은 보편적 현상이다. 정부는 그동안 Silo의 문제, 단발성 연구개발에 그치는 문제를 고치기 위해 무수한 제도 개혁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도 현장은 왜 여전히 과제 단위로 Silo 화 되었을까?

이에 대한 탐구 전에, 이런 현상이 수직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조 순 전 총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분열, 부패, 부조리, 몰염치가 당연시되고 있다. 국민의 가치관은 ‘돈이면 그만’이란 식이고, 믿음과 성실이 없어졌다.”고 했다. 정부출연연구소 정책 전문인 홍성주 박사(STEPI)는 “관료사회의 수직적 권위주의와 Silo 문화가 연구자 사회에 그대로 들어왔다”고 했다. 이로 인한 현장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부실한 시스템의 결과적 현상임과 동시에, 본 기고문에서 강조한 바 연구자 사회의 정체성과 상호작용하며 출연연의 미래 잠재성을 좀먹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특정기술 중심으로 해석하며 해외의 기술동향에만 민감한 뿌리도 같다.

시사성 높은 주제가 전략적 내실성을 대체하고, 시사성이 낮아도 국가전략적, 공공적 가치가 높은 기술군(석탄 에너지의 청정화, 원전 기술, 초경량 합금·복합 소재 기술, 복합항법 시스템, 화학안전기술, 첨단복합기계 시스템 기술 등)에 관한 전략은 다뤄지지도 않거나 형식화 되는 구조다.

국방 부문을 비롯하여 중앙부처의 예산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출연연의 임무 정체성과 기술전략적 구심력은 빠르게 도태하였다. 각 부처가 운영하는 개별 과제가 ‘집합적으로’ 어떤 미션과 정책을 이뤄가는지에 대한 평가 지표 자체가 부재하고, 그 집합적·정책적 성과에 대한 견제와 피드백은 하부기관 (연구과제 수행기관)의 파편적인 성과의 합으로 대리되는 구조이다.

차세대 전투기, 거시적 국가전략을 논할 ‘공간’ 자체의 부재

OO조 규모에 달하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사업의 평가에서 개발사업 종료 후, 개발 결과물의 성과 확장을 위한 파생형 개발 전략이 현재의 설계 단계에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외부 제3 기관의 Independent Review에서 제기되었고, 필자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이 사항은 비밀 사항도 아니다. 개발 결과물 자체가 예술적 완성도를 갖는 첨단복합 시스템의 개발 전략에서 가장 기본으로 꼽히는 것은, 개발 성과를 단계적으로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 에 관한 전략을 사업 초기부터 미리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뷰의 부실을 선언하고 다음 평가회가 열렸지만 역시 아무도 답변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국가는 아무 고민하지 않고 있는 사이, 해당 기업의 실무 개발진들은 확장 가능한 기술을 심어두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기회의 문을 열어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은 지엽적인 것일 뿐 본질이 아니었다. 국가전략 부재를 그러한 답변으로 가름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방전략이 관여한 임무중심의 질의와 답변이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점수를 삭감처리하는 수준뿐이었다. 비록 민간에 평가가 개방되어 이런 논의라도 가능했다고 긍정할 수 있지만, 그런 조치가 실효적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해당 건에 대한 점수 부여 항목은 전체 백 점에서 일부분을 차지(OO점) 할 뿐이었다. 이 점수를 낮게 받아도 사업은 계속되고 평가 결과에도 그리 큰 영향이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문가들의 숙의와 토론을 배제한 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소비되는 평가구조는 이러한 한계를 갖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경제규모도 커진 탓에 이제는 이미 개발한 것을 다시 업그레이드하여 사용해야 하거나, 부품 단종으로 경미한 개선을 해야 하는 기회가 다수 도래하고 있다. 세계적인 IT 분야의 빠른 성장기반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기존의 방산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 진입할 기회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즉, 국방 부문의 업그레이드/개선의 기회를 단지 개별 일처리로 끝내지 않고, 보다 새로운 개념과 서비스를 통합한 (예를 들면 무인화, 클라우드 서비스화 등) 신개념 국방시스템 개발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기회요인은 미리 기회요인을 찾고 가치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리더십이 없이는 보이지도 않고, 그 기회가 사라지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략적 자극이 없으면, 시스템은 가던 길을 간다. 즉 방산 대기업 중심의 안정적 획득 연장이 대세를 지배할 뿐이다.

기업 간의 혁신 경쟁을 유인하기 위한, ‘위험 수용형-경쟁형 개발’로의 전환이 요구되지만 이 또한 새로운 제도 도입 하나로써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국방부는 이러한 제도적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전환은 매우 한정적이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존 경로 즉, 위험 회피형으로 갈 것이며, 위에 거론한 업그레이드/개선과 관련한 사안에서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위험 수용형 의사결정을 장려하고 거기에 인센티브를 주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 의사결정의 전환을 유인하는 것은 더 큰 시스템의 문제, 즉 거시적 국가전략을 논하고 경합할 공간 자체의 부재, 혹은 비 개방성에 대한 질문을 요구한다.

드론 관련 연구주제만 400개 이상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결과적으로 세금을 내는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 ‘미래의 먹거리’와 가치로 연결할 수 있는 임무 중심의 축적과 책임은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고, 누구에게 위임되었는지 알 수도 없이 산화되어 버린다. 연구자 사회, 관료 사회, 과제 운영 기관, 산업과 학계 모두 큰 손해 볼 것 없이 국가 예산과 거기서 파생되는 책임을 배분하는 체제이다. 통합기술전략, 연구개발 전략 관점의 부실성, 연구개발 성과의 확장에 따르는 추가적인 위험부담은 미래세대와 산업체에 조용히 떠넘겨지고 있지만, 연구진들은 새로운 기술 주제 발굴 (새로운 연구주제 발굴)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이상의 전략적 안목을 지원-소통-조정하는 체제도 부족하다.

연구자들은 기업들의 기업가적 마인드나 정부의 의지만을 탓했고, 정부와 정책 전문인들은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도적인 기술 즉 ‘연구를 위한 연구’ 때문이거나, 기술의 완성도가 낮아서 그렇다는 탓을 했다. 비개방적 공간에서 교환된 데이터와 수직적 소통 경로는 의사결정자의 시각을 흐렸다. 아무도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고질적 관성은 아무 견제도 없이 계속되었다. 즉, 혁신을 위한다는 기치 아래, 정부의 의지는 또 다른 기술 개발 투입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팽창하였다(통계분석 결과, 지난 5년간 ‘드론’ 및 이와 유사한 주제로 400개 이상의 과제와 4000억원 이상의 민간부문 정부과제가 있었고, 분석이 어려운 국방 부문과 간접적으로 관계된 기술 영역을 합하면 이 수치는 보다 더 커질 것이다). 기업과 연구자 사회도 그렇게 쏟아지는 ‘기회’에 ‘기회주의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기회주의적인 그들’을 인터뷰한 결과 마음 깊은 기업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우리야 기회가 와서 단기적으로는 좋지만, 이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발 국가가 중심을 잡고 확실하게 잘 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아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출연연 역량이 결합될 수 있는 큰 그림 가운데 지원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해 마지않는 미국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PM 중심 운영 체제가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DARPA 체제는 유망기술의 발굴이나, 임무 중심 장기적 정책 과제 발굴을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나라의 미래기술경쟁력을 위한 무한도전과 윤리적 탐색이라는 가치를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알아보고, 그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한 뒤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전적인 위임 체제가 아니고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수용한 도전적 연구는 요원한 일이다. 현재, 출연연 임무 재정립 요구는 이러한 전제조건이 다뤄지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영혼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우리’는 영혼 있는, 국가의 미래를 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출연연의 많은 연구자들이 그런 꿈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그 의식을 일깨우고 꺼내어 결집할 시스템이 관건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중소기업들 중에도 탄탄한 국가전략가운데 제대로 경쟁할 기회를 꿈꾸고 있는 경우를 만난다.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국가전략과, 충분한 시간의 사전적 예고성만 있으면 대기업을 능히 이기겠다는 기업들이 상당수이다. 대기업들도 이전과 달리, 보다 선진화된 PPP 제도나 지적 재산권 공유제도 등이 갖춰진다면 얼마든지 단기성과 탓이나, 출연연 기술성숙도 탓하지 않고 모험적 기술수용에 도전해 볼 의향을 갖고 있다. 국가전략의 부재와 모호성, 단기성, 불안정성, 위임형 의사결정 체제의 부재 등으로 이들의 열망과 역량이 국가자산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있다.

출연연은 국가기술전략의 부실화와 수월성의 갈림길에 놓인 마지막 보루이다. 출연연이 Silo화 된 시선으로 제한적인 기대가치, 제한적인 전략에 머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을 다루었고, 그런 환경적 요인에 대한 몰이해적 비판에 대한 방어 논리도 다루었지만, 그것을 깨치고 나와야 할 책무도 출연연의 것이다. 최소한 그런 변화를 위한 준비와 투자를 긴 안목에서 시작해야 한다. 파편적 PBS 체제에 적응하면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공공연구자로서의 자기 정체성 자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비록 시스템 전환을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 중요한 밑거름을 만들어 두기 위해 씨를 뿌리고 수고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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