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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왜 정규직 노동자의 出産만 보호받고 자영업자의 出産은 보호받지 못하는가? - ‘현재 對 미래의 충돌’, 20세기 제도론 더 이상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N잡러와의 대화 |
그는 영락없는 미래의 노동자다. 자신이 선택한 만큼의 일을, 자신이 선택한 시간만큼만 한다. 한 장소에서 일하는 대신, 모든 장소에서 일한다. 한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회사를 위해 일한다. 부당한 지시를 하는 회사와는 바로 인연을 끊을 것이다. 일과 삶을 유연하게 배합한 하루를, 일주일을 보낼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이다.
그러나 현재로 눈을 돌리면, 4대보험과 노동 3권을 누리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다.
또한 평생 한 직장에서 도제식으로 훈련받으며 능력을 익힌 선배 세대와 달리, 떠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청년이다.
우버 택시기사 300만명, 우버 직접 고용은 2만 2000명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먼저 나타났던 미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커티스1)는 회사가 지긋지긋했다. 사내정치는 심해지기만 했다. 결재라인은 길고 비효율적이었다. 자율성을 전혀 주지 않는 문화도 참기 힘들었다.
어느날 ‘긱스터’라는 소프트웨어 제작 플랫폼을 알게 됐다. 직무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채팅으로 검증받은 뒤,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다. 정치도 결재도 없는 시스템이 매력적이었다. 실력으로만 승부하면 되는 세계라고 여겼다. 스타트업 프로젝트에 참여해 돈도 벌고 보람도 느꼈다. 결국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자유인이 되어 플랫폼에서 일을 선택해 수행하며 살기 시작한다.
플랫폼에서는 일만 잘하면 점수가 오르고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평가 알고리즘의 선순환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한 프로젝트에 매어 있지 않아도 되니 자유로워졌다. 일하는 양도 일할 시간도 스스로 선택하면 됐다. 안정적 생계유지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사에 취직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였다.
그는 긱스터 플랫폼을 통해 일하면서 유급휴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재판 배심원 역할을 하는 날이라도 무급이었다.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를 자기 돈으로 사야 했다. 다행히 스페이스X는 플랫폼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경력을 인정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회사원이 될 수 있었다.
브랜든의 경우2)를 보자. 그는 어쩌면 ‘N잡러’라 불릴 수도 있다. 두 개의 플랫폼에 등록해 두고 1년 넘게 일했으니 말이다. 브랜든은 우버와 그 경쟁사인 리프트의 두 군데 플랫폼에 기사로 등록되어 있다. 근로자로 고용되어 있지 않은 독립사업자라는 점에서도 커티스와 같다.
하지만 커티스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가 운전으로 버는 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집 월세를 아끼려 자동차 뒷좌석에서 잔다는 점도 다르다.
단테3)는 사정이 달랐다. 우버가 기세를 올리며 사업을 확장하던 로스엔젤레스에 살던 단테는, 자동차에서 자는 홈리스였다. 카운티 안의 홈리스에게는 2000대가 넘는 자동차가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10년 만에 50%나 늘어났다. 2만명이 넘는 우버 기사들이 있던 로스엔젤레스이지만, 우버 기사들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버를 통해 좀 더 많이 일할 기회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홈리스는 여전히 홈리스였다.
단테는 우버 운전으로 월 1200달러(130만원)를 번다. 그리고 의료용 대마초를 배달하면서 2600달러(290만원)를 더 번다. 그런데 집이자 사무실인 자동차를 빌려야 하니, 매달 렌트와 보험으로 1000달러(110만원)를 지출해야 한다. 게다가 기름값과 생활용품 구입비 등으로 또 1000달러(110만원)가 나간다. 1800달러(200만원)로 한 달을 지내야 한다. 뭔가 계산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단테는 현금이 없고 돈을 빌릴 신용등급도 낮아 이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고 한다. 저축을 할 수도 없고 빚도 줄지 않는다. “내 돈을 아끼기 위해 내 차에서 잘 겁니다.” 그는 자동차에서 사는 것 이외의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플랫폼을 통해 일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커티스. 플랫폼을 통해 일하다, 자동차에서 거주하며 그곳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단테.
이들을 취재한 영국 신문 <가디언>이 홈리스 기사에 대해 질문하자, 우버는 이렇게 어중간하게 답했다.
“사람들은 우버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 얼마나 운전할지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우버와 함께 운전하는 것이, 당신이 어떻게 일할지를 선택하는지와 무관하게 보상이 있는(rewarding) 경험이 될 것을 확실히 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버 기사는 300만명이다. 그러나 우버가 직접 고용한 직원은 173개국에 2만20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2019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사업보고서 ‘사업상의 위험’란에 우버는 ‘300만명 우버 기사가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는 일’이라고 썼다.
스마트폰과 앱과 데이터처리기술은 소비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플랫폼 경제는 그래서 가능해졌다. 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는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방식의 고용이 노동 3권과 사회보험을 통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래서 플랫폼 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커티스는 결국 회사원으로 되돌아갔다. 브랜든과 단테는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N잡러는 재미도 있고 수입도 좋은데 여전히 불안을 겪는다.
왜 어떤 노동은 다른 노동보다 덜 보호받는가
사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플랫폼 경제 종사자뿐 아니다. 대규모 사업장에서 안정적으로 고용된 ‘정규 노동’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보호받은 일이 없다.
한 방송작가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쫓겨났다. 방송작가는 방송사나 제작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단위로 움직인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성과에 따라 종종 개편된다. 개편 때마다 시청자에게 무엇을 전달할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게 누가 어떤 일을 맡아야 할지를 중심으로 진용을 다시 짠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PD가 정점에 있는 벤처기업과 같다.
매일 방송이 나가고 매일 평가를 받으니, 방송은 유연하게 진화해 간다. 일하는 사람의 능력도 금세 드러난다. 결국 일 잘 하는 사람, 특정 형식과 내용이 가장 잘 맞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팀이 끊임없이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조직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출산조차 보호할 수 없다는 구멍이 있다.
그 작가가 안정적인 기업에 다녔다면 출산 전후 3개월 동안은 유급 출산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웬만한 직장인이었다면 그 뒤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고, 육아휴직수당까지 받았을 것이다. 공립학교 교사였다면 육아휴직을 3년 동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아무 걱정 없이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동네 중국음식점은 몇 년 전 배달을 접고 홀에서만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물었다.
“왜 배달을 중단하셨나요?”
“배달하던 아이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다쳤는데, 몇 백만원을 물어줘야 했어요.”
“산재보험을 가입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까지 지출하면서 벌 돈은 없는 것 같고요. 그걸 관리할 능력도 없어요.”
산재보험을 들 생각도 하지 않은 사업주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챙겼을 리 없다. 하루아침에 배달을 접고 내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 고용안정성도 있었을 리 없다. 휴가든 뭐든 모든 권리는 주인 마음대로였을 것이다. 퇴직금이나 제대로 챙겨줬는지 모르겠다. 배달앱이 나오기 전의 배달원의 처지는 오히려 더 열악했다.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문조차 한 사업주에게 의존적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음식점 주인 본인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이니,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없다.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오롯이 본인 책임이다. 개인택시기사도 스스로 사업주다. 오롯이 혼자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져야 한다.
괜찮은 대학 나와서 다니던 안정적 회사에서 부품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수입을 희생하며 꿈을 찾아 창의적인 예술가로 변신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독립적으로 일하는 디자이너와 작가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어떨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당연히 없지만, 잠시 일을 쉬고 나면 다시 돌아오기는 정말 어려울지 모른다. 혼인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가능성도 높다.
플랫폼 이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불안정 노동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일하는 사람이다. 그들이나 ‘정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친다는 점에서 같은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노동도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그들이 낳은 아이도 출산율을 높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회사원이라면 기업에서 절반을 내주는 반값 국민연금도 반값 건강보험도 없다. 노후는 자기 돈으로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없고, 일이 끊어져도 실업급여는 없다. 물론 자녀 대학 학자금을 대신 내주는 사람도 없다. 명절 때 들려주는 선물과 상품권도 없다. 휴가 때 지급되는 휴가비도 없다. 직장 동아리에 주어지는 취미생활 지원금도 없다. 복지포인트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개인 책임이다. 안정적 직장에 다닌다면 기업이 해주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는 왜 어떤 출산은 다른 출산보다 더 지원하고, 어떤 노후는 다른 노후보다 더 보장할까? 왜 이른바 ‘정규 노동’을 차별적으로 지원할까?
4대 보험은 20세기 ‘공장 자본주의’의 산물
20세기 자본주의는 공장으로 노동자를 모으기 위해 정규고용 중심의 사회정책을 도입했다. 노동자를 위한 보호장치를 만들면서 정당성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노동자‘만’의 권리를 인정(노동3권)한 것과 노동자‘만’을 위한 복지(4대보험)를 만든 것이 핵심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 ‘공장’에 있어서였다. 생산수단인 대규모 자본과 정규직 노동자가 만나는 물리적 장소였다. 노동자를 공장에 모이게 하고, 그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이윤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그 결과 공장에 모여든 노동자라면 단결해 파업할 수 있게 되었다. 대공장의 기계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고, 노동자는 기계 주변에 모여 일해야 했기 때문에, 파업은 위협적인 권리행사 수단이었다. 기계를 멈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멈추는 순간 가치 생산이 멈추는 시스템이었다.
정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후위험과 건강위험과 실업위험으로부터 보호받도록 기업과 국가가 책임을 졌다. 이른바 ‘4대 보험’이라 불리는 사회보험 체제다. 그들을 공장에 묶어두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사회보험은 특이하게도, 정규 노동자의 가족까지 보호해줬다. 직접적으로 기계를 돌리지 않는 노인과 어린이와 배우자들에게도 건강을 보장해줬다. 이는 사회보험이 노동자 개인의 위험을 나눠 갖기 위한 제도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를 포괄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처는, 노동자들을 공장에 묶어두고 기계를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하루의 특정 시간 동안 노동력을 판매해 생계를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은 일의 성과에 따라 공정하게 지급되는 시장 임금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특히 20세기 이후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기계의 속도와 형태에 맞춰 인간의 활동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고용주, 즉 기계에게 묶여 있는 이유는 생계 때문이 아닌 경우가 지배적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전체적으로 볼 때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으로 교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벤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역사적으로 인간이 노동을 한 이유는 노예처럼 일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거나, 세속적 권위나 종교적 권위에 봉건적으로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자신들이 소유한 도구로 자신들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는 토지에서 직접 생계작물을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다.4)
노예제는 왜 자본주의 초기에 더 번성했을까
산업혁명 뒤 자본은 노동자들을 공장에 묶어두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처음에 강요하다가, 그리고 설득하다가, 나중에는 유혹하는 데까지 다다랐다.
초기 자본주의는 무기는 주로 강요였다. 노예노동이 자본주의 초기까지도 지배적이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을 촉발한 기술은 증기기관이었다. 증기기관이 가장 먼저 위력을 발휘한 곳은 면직산업이었다. 유럽에서는 18세기 생산성 향상으로 면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주로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면화 채취는 노동집약적이었다. 노동력 동원 능력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했다. 이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던 제도가 노예제였다.
노예를 사올 수 있던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변화하는 수요에 적기 대응할 수 있었다. 가혹한 감독 체제도 필수였다. 플랜테이션에서는 작물의 생육 상황에 맞춰 노동력을 무제한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면화가 “미국의 번영에 무한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남부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북서부 카운티의 노예 비중이 1790년 18%에서 1820년 39%로, 1860년에는 61%로 높아진다. 조지아의 노예 인구는 3만명에서 6만명으로 두 배 늘어난다. 면화 생산량은 1790년 68만㎏에서 1820년에는 7500만㎏까지 커졌다.
자본주의는 노예노동으로 시작되었다. 정규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며 생애 위험도 보장받도록 해주는 근대적 노동 동원 시스템이 생기기 이전,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이 방대한 노동력을 동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예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념과는 달리 노예제는 자본주의 초기, 이른바 상업자본주의에서 번성했다. 인신구속을 하므로, 기본적으로 강제노동의 성격을 띤다. 자의에 따른 취업을 하는 ‘근대적 노동자’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시기 자본가들은 농노제, 노예제, 도제와 같은 개인적, 전근대적 종속관계가 쇠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게으름이 확산되고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그래서 산업혁명 초기의 공장에도 강제노동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고용주들은 노동자에게 매질을 하고,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특히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어기면 국가가 나서서 처벌을 하는 법률을 운영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프로이센, 벨기에 등이 모두 그런 법을 시행했다. 1823년의 주종법은 “고용 노동자들이 노동계약을 위반할 경우, 영국의 고용주들은 최대 3개월까지 그들을 교정소에 보내 중노동을 시킬 수 있다”고 했다. 1857~1875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만 매년 1만여 명의 노동자가 ‘계약 위반' 혐의로 피소되었고, 그들 중 많은 이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세기 프로이센에서는 “허가나 법률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직장을 이탈하거나 직무 유기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장인과 조수, 공장노동자들에게는 20탈러(달러의 원형)의 벌금형이나 24일의 구금형을 내린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에도 1918년 혁명 이후에야 노동자들의 계약 파기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는 관행이 종식되었다.
노동자들이 떠나고 싶을 때면 언제든 직장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수십년에 걸친 투쟁의 결과로 얻은 성과다. 노동운동은 긴 싸움으로 강제노동을 종식시켰다. 하지만 ‘고용’을 압도적으로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노동운동은 자본의 고용을 거부해도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는 대신, 자본의 고용 안에서 지시에 순응하며 노동을 하는 데 동의한다. 또한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를 받아들인다. 반대급부로 고용 중심 복지체제와 노동권 보장을 얻어낸다. 그런데 이 때 ‘노동자의 권리’들은 매우 배타적이어서, 당시 자본주의에 핵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아르바이트, 자영업자, 전업주부, 문화예술가 등)을 혜택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20세기의 정규 고용 중심 복지국가가 들어선다. 자본 쪽에서 이윤을 독점적으로 가져가는 대신, 사업상의 위험도 먼저 가져가도록 틀을 짰다. 노동자들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 위험까지도 줄여주는 제도를 얻어냈다. ‘자본가가 이윤을 차지하되, 자본가가 노동자를, 노동자가 노동자 아닌 이를 돌보도록’ 설계한 게 4대 보험과 노동권 중심의 사회정책이었다.
단순화하면 ‘자본가와 노동자’가 ‘노동자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먼저 차지하도록 설계한 게 20세기 자본주의/복지국가 체제였다. 보호받는 정규 노동이 공장의 기계를 둘러싼 채 고속성장의 스크럼을 짰다. 유럽은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20세기 빠른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함께 이뤘다.
정규 고용 중심의 사회정책은 이런 시대의 유산이다.
자본은 더 이상 노동자를 공장에 불러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의 작동방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가 나오는 장소는 더 이상 노동자들이 둘러싼 공장의 기계가 아니다. 모두의 집이고, 지역이고, 가상의 인터넷 공간 안이다.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가 빅데이터 시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2019년 5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우버는 상장시 시가총액이 83조원 규모였다. 현대자동차 당시 시가총액의 3배 규모다. 우버는 지금까지 300만명의 운전기사를 가입시키면서, 그들의 운행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 우버가 보유한 그런 데이터의 가치에다,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노하우까지 겹쳐지면서 미래 운송서비스를 주도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를 받은 셈이다.
이렇게 데이터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이윤의 원천이다. 그래서 데이터가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앱을 통해 차를 부르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나 플랫폼의 주문을 받아 일하는 운전기사나 배달원이나, 결국 데이터를 채굴하던 광산 노동자 같은 역할을 한다. 플랫폼기업들이 금융시장에서 높은 미래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21세기의 광산에서 채굴권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풍요는 공장의 기계에서 나왔다. 자본이 가져간 이윤의 원천도 거기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공장에서 나오는 가치만 중요한 게 아니라면?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 사방에 점처럼 존재하며 돌아다니는 수많은 소비자와 동네 음식점 사장들과 배달원들과 운전기사들이고, 그들이 생성하는 데이터라면?
자본은 더 이상 노동자를 공장으로 불러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붙잡아둘 이유도 사라져 간다. 오히려 노동자는 흩어질수록 좋다. 기업에 묶여 있는 것보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낫다. 그게 더 높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에, 공장에 매이지 않은, 매이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이 많아진다. 20세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잉여인간’ 취급받던 사람들이다. 일보다 삶을 중시하는 파트타이머들, 통제받지 않고 일하고 싶어 하는 지식노동 프리랜서들, 한 기업에만 속하는 것을 거부하는 N잡러들, 자신이 하던 무급노동의 가치를 찾고 싶어 하는 전업주부들, 시장에서 완전히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활동가들이 그들 중 일부다.
자본 쪽에서도 노동 쪽에서도, 변화의 동기는 커졌다.
문제는 20세기에 만들어 둔 사회제도에는 이런 변화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 해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해법이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해법은 두 갈래다.
첫 번째 전통적 해법은 ‘고용주 찾기’, 또는 일자리 만들기다. 20세기에 국가와 협력해 정규 고용 보호를 지원했던 자본을 끌어들여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든 그 고용주를 찾아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흐름은 이 해법을 투사하고 있다. ‘우버가 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주장에도 이 해법이 투사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점점 이윤을 얻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디자이너에게 고용주를 찾아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과 며칠 일을 맡기고 바로 바뀌는 디자인 발주자들은 고용주로 간주해도 보호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거래하는 플랫폼을 고용주로 여기면 플랫폼은 작동을 멈출 것이다. 실시간으로 일거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도, 원하는 만큼의 일을 지시받지 않고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도 작동을 멈춘다.
앱을 통해 들어온 음식주문을 음식점 주인이 받아 동네 배달업체에 전달하고, 그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하는 기사가 있다고 치자. 이 배달기사의 고용주는 누구인가. 누가 이 사람의 노후와 건강과 실업 위험을 책임져야 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부리며 생산하던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싸움은 계속 이어지는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노동자들은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하기 이전에도 고용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던 이들이다. 디자이너도 배달기사도 원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었다. 그들의 고용주 찾기는 수십년 간 진행됐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자본도 노동도 적극적이지 않은 해법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두 번째의 전통적 해법은 ‘자격 제한’이다. 고용주를 찾아주는 대신, 이런 노동자들을 사업자로 간주하고 진입장벽을 높게 쳐서 경쟁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준다. 이들에게는 작은 독점 이익이 생긴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이른바 지대(rent)이다. 그 지대를 근거로 살아가도록 해준다. 노동자는 삶을 보장해주는 기업은 없지만 대신 경쟁이 덜한 곳에서 사업자로 살아갈 권리가 생겼다고 느낀다.
개인택시에서 변호사까지, 이발소에서 어린이집까지 사례는 많다. 개인택시의 경우를 보자. 손님이 줄면 바로 그날 수입이 줄어든다. 회사택시 역시 사납금제도를 통해 경영성과가 바로 노동자 보상에 반영되는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 자본의 위험을 오롯이 노동이 받아온 모양새다. 개인택시 기사라면 4대 보험도 퇴직금도 본인 부담이다.
그런데 기업에 고용된 운전기사는 회사 수입이 줄어도 임금이 변하지 않는다. 회사가 파산을 선언하거나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해야만 타격을 받는다. 4대 보험료 상당부분을 회사가 내준다. 퇴직금도 보장된다.
국가는 그 대신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운전기사들을 위해 사업면허제도를 운영하고 자격을 제한해 택시기사들의 수입을 지켜준다. 물론 그럼에도 시장이 변동하면 그 위험은 오롯이 기사들의 몫이다. 고용주를 찾아주는 것과, 보호 없이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 사이의 중간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이 크게 변화하지 않고 유지될 때, 그리고 독립 사업자가 주변의 일부일 때는 이런 해법도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이 격랑에 휘말리면 이 구조는 지탱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격 제한’ 솔루션은 폐쇄성 문제도 안고 있다. 다른 사업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국가가 ‘파워포인트 디자인 면허’를 발급하고 무면허 디자인을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배달기사 자격증을 주고 수량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에게도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전통적 해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핵심을 꿰뚫은 나라들이 선진국이 되었다
공은 다시 국가로 돌아간다.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는 새로운 노동을 조직하고 수용하는 데 적극적 역할을 했다. 어느 시기에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받아 안으며 형법을 통해 강제노동의 실행자로 나섰다. 다른 시기에는 노동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여 노동 3권과 사회보험의 수호자로 나섰다. 나라마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모델을 받아들였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공장과 노동자의 만남’이라는 핵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방향을 지켜간 국가들이 이른바 선진국이 됐고 그들 중 복지국가도 나왔다. 강제노동과 정규 고용 중심의 사회정책은 규범적으로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 그 지향점이 이제 허물어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지향점을 국가가 기획해야 할 때가 됐다. 새로운 생산자들, 즉 흩어져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업이 평화롭게 만나도록 설계도를 내놓아야 한다. 그 핵심은 ‘정규 고용’의 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사회정책을 기획하는 일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노동은 왜 노동이 아닌가. 배달기사의 노동은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자영업자의 출산은 왜 국가가 보호하는 출산이 아니어야 하는가. N잡러의 사회보험은 왜 본인이 고민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버 기사와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서 나오는 이익은 왜 모두 우버가 가져가야 하는가.
이미 두 가지의 굵직한 제안이 나와 있다.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완전고용제도이다.
기본소득제도는 <21세기 기본소득>의 저자 반 파레이스가 체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국가가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금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전업주부든, 아르바이트든, 프리랜서든, 잠시 쉬는 사람이든 생계 고통을 최소화하고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국가가 보장하는 완전고용제도는 토마 피케티의 멘토인 앤서니 앳킨슨이 <불평등을 넘어>에서 제안했다. 국가가 ‘최후 고용주’ 역할을 해서, 누구든 국가에게 고용을 요구하면 의무적으로 고용해주는 제도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정규 노동자가 받는 것 같은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두 가지 제안 모두 토론해볼 여지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과 미취업’ 사이에 깊게 패인 지금의 경계선은 허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그 핵심이다.
결국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소득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보장을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해주는 것이 미래 노동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20세기 국가가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이룬 시스템을 만들어 냈듯이, 21세기 국가도 그런 역할을 하려면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20세기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다.
岐路에 선 세계, 지금의 선택이 국가 운명 가를 것
이미 상처는 곪을 대로 곪고 있다. 부자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과거 초고소득층은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고연봉 노동자가 고액자산가 자리도 차지하는 분위기다.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이 모두 높은 사람들이 최상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보호도 받고 소득도 높은데다 그 소득을 모아 집과 땅과 주식을 사고 하늘로 치솟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산가이기도 하지만, 기술혁신 덕에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그 기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10%에게 몰리던 소득은 점점 1%에게로 몰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1% 사회가 도래하는 것도 허황된 전망은 아니다. 인류가 그토록 많은 피와 땀을 흘려 구축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과두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수 십년 또는 수 백년 동안 그 후손이 겪을 운명이 달라지기도 했다. 1930년대 일찍이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한 스웨덴과 북유럽 국가들은 20세기 제조업의 주역이 됐고 21세기에도 복지국가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로 추앙받는다. 18세기 러다이트 운동이 확산될 때, 영국은 혁신적 발명을 한 기업가들을 보호하며 동시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조처를 취했으나 프랑스는 주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뒤 수 십년 동안 영국의 기술이 프랑스를 앞섰고, 산업혁명의 주역이 됐다.
지금 세계가 바로 그런 기로에 서 있는지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국가의 수 십년 운명이 달라질 기로에 말이다.
wonjae.lee@lab2050.org
1)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새라 캐슬러. 더퀘스트 2019.
2) The Guardian. Homeless, assaulted, broke: drivers left behind as Uber promises change at the top.
3) 상동
4) 스벤 베케트. <면화의 제국>. 휴머니스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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