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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 군대연구 ①] ‘완벽한 군인’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사로잡힌 한국군 - 여시재, ‘군대’ 연구 결과물 첫 공개
(재)여시재는 이 사회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를 8가지로 분류하고, 포스텍 연구팀과 함께 그 각각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해왔다. 8개 분야는 기업·관료·정당·자치단체·싱크탱크·대학·군대·미디어 등이다. 여시재는 이 중 올해 대학·군대·미디어 3개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 ‘군대’에 대한 첫 번째 연구 결과가 나와 공개한다. 연구는 각종 국내외 문헌 분석과 함께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한국군이 외국군 벤치마킹 등을 통해 규모 면에서는 급속도로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나, 그 운용에 있어서는 모방에 치우쳐 독자적 혁신 능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완벽한 군인’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사로잡혀 잘못된 작전규범과 인사정책의 왜곡이라는 실패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 군대에서 도입된 제도라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훌륭한 군인상’부터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용감하고 솔선수범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전문성까지 갖춘 군인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현대전을 이끌어나가는 데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시가 단순명료하고 위임이 과감한 지휘관이 현대전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또한 현대 미군이나 독일군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는 개념으로, 이 또한 무분별하게 이식하려 해서는 안 되며 우리만의 독자적인 개념 정립부터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시재는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전문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것은 보고서 작성을 위한 시안 성격의 요약문이다.
‘완벽한 장교’에 대한 신화 파헤치기
1. 한국군 인재 선발·관리 모델의 딜레마: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군인’
한국군은 선발국가 군대의 교육·훈련, 조직·편제, 무기·장비를 벤치마킹하면서 발전해왔다. 모방과 집중으로 짧은 시간 내에 외형적으로는 강한 군대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스스로 발전, 변화, 혁신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변화와 혁신의 동력을 내부로부터 얻지 못한 채 외국 군대에서 새롭게 창안한 원리, 개념을 수입하여 쓰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군『야외령』, 미군 『지휘관 및 참모』와 같은 외국 군대의 교리를 번역하여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외국 군대의 거의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 제도, 규정이 곧바로 한국군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성급히 수입해 갖다 쓰다 보니 양복에 갓 쓴 것처럼 우리 사정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좋은 것만 뽑아서 추려 쓰다 보니 프랑켄슈타인처럼 이상한 결과물도 나왔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완벽한 군인’, 그중에서도 ‘완벽한 장교’에 대한 신화이다. 그 폐해는 크다. 한국군 장교 인사관리제도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제도는 장교를 선발, 보직, 진급, 관리하는 기준이다. 창군 이래 7번 바뀌었는데 ‘여러 외국 군대의 인사관리제도에서 모방 사례를 선별하여 벤치마킹하다보니 각종 조미료를 이것저것 잔뜩 넣은 스프처럼 되었다’는 것이 군의 인사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한 한 관계자의 평가다.1) 조직의 필요에도 안 맞고 개인으로서 가능하지도 않은 인재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소리다.
현재 인사관리제도가 추구하는 기본 방침은 ‘통합성’과 ‘형평성’이다. 한 인사전문가는 “군이 겉으로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 선발·관리’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 실제 내용과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지금도 우리 군은 계량화된 항목을 골고루 충족한 평균적 인재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선발, 관리의 통합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고 지적했다.2) 쉽게 말해 인사 제도와 시스템의 유지보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 됐다는 얘기다.
2. 독일군 “임무형 지휘(Auftragstaktik, Mission Command)” 모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휘관
독일군 육군 원수인 에리히 만슈타인은 저서 “잃어버린 승리(Lost Victories)”에서 저 유명한 ‘네 가지 종류의 장교’에 대해 언급했다. “세상에는 네 가지 부류의 장교가 있습니다. 첫째, 게으르고 멍청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 둘째, 부지런하고 똑똑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훌륭한 참모 역할을 할 겁니다. 셋째, 부지런하고 멍청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모두 해고해야 합니다. 넷째, 똑똑하고 게으른 이들입니다. 이들은 군 최고위직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제법 많은 이들이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슈타인은 이 예시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똑똑하고 게으른 이들이 최고위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단순명료한 해법을 고르기 때문입니다. 단순명료한 해법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전장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똑똑하고 게으른 이들의 가장 훌륭한 장점은 위임을 잘한다는 겁니다.”
미군을 포함한 나토군 소속의 군대들이 리더십의 요체로 삼고 있는 모델이 있다. 바로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Auftragstaktik, Mission Command)’이다. 한국 육군도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임무형 지휘 연구를 시작하여 2008년에는 임무형 지휘를 육군 리더십의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임무형 지휘란 “지휘관이 의도와 임무를 명확히 제시하고 임무수행을 위한 여건을 보장한 가운데, 임무수행 방법은 예하부대와 부하에게 최대한 위임하여 임무를 자율적, 창의적으로 수행케 하는 지휘기법”이다.3) 즉, 임무형 지휘의 핵심은 만슈타인이 강조했던 ‘위임’이다.
3. ‘완벽한 장교’에 관한 신화
세계 각국의 군대는 대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웅상’을 장교단의 투사 이미지로 갖고 있다. 재래 전쟁(Traditional Warfare) 발발 시 장교가 수행해온 임무와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 때문이다.4) 장교의 언행과 의사결정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 직결됐으며, 이들은 신화나 구전설화에 등장하는 영웅과 동일시됐다.
그래서인지 군의 교과서인 야전교범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장교’이다. 영국군의 ‘야전교범(Field Manual)’을 보면 솔선수범, 여건조성, 신상필벌, 지휘능력, 신뢰성, 부하육성, 성과창출을 장교상으로 제시한다.5) 미군은 지휘능력, 신뢰성, 영향력, 솔선수범, 의사소통, 여건조성, 자기개발, 헌신, 성과창출을, 이스라엘군은 솔선수범, 전문성, 신뢰성, 철저한 교육훈련, 불굴의 용기를 꼽고 있다.6)
과연 영국군, 미군, 이스라엘군이 제시한 ‘완벽한 장교’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둘째 치고, 임무형 지휘 모델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기 요건을 다 갖춘 장교는 현대전(Modern Warfare)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완벽한 장교라면 현대전 의사결정의 핵심인 단순명료한 해법 제시, 임무의 과감한 위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벽한 장교가 아닌데 평생 ‘완벽한 장교’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만슈타인이 경고했던 ‘부지런하고 멍청한 이들’처럼 조직의 목표 달성에 위해가 되는 해법을 내놓고, 능력 있는 부하에게 임무를 위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무형 지휘의 본고장 독일군은 어떨까? 독일군은 신뢰성, 솔선수범, 철저한 교육훈련 등 세 가지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만을 간단히 제시했다.7) 독일군은 ‘완벽한 장교(perfect officer)’가 아닌 ‘더 나은 장교(better officer)’ 육성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장교 개인의 역량은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장교, 적을 이길 수 있는 장교’면 되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예하 부대에 단순명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임무를 과감히 부하에게 위임할 수 있는 조직 문화, 개인의 태도(attitude)’라는 것이다.8)
4. 미군 “역량에서 적응성으로 (From Competency To Adaptability)”: 불확실한 미래와 복잡한 문제에 적응할 수 있는 리더
2000년대 들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에서 크게 고전한 미군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장교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왔다.
인상적인 실험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첫째, 핵심 보직에 ‘우수한 현역 장교’ 외의 요소를 채워 넣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안정화 작전에서 미군의 일부는 작전팀에 임상 심리학자, 패션 디자이너 등 해당 분야 전문가를 고용하여 운용했다. 장교들이 날밤을 새워 작전을 준비하고 부대원들은 죽기살기로 싸워 목표를 달성하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임무 완수에 부대 운용의 초점을 맞춰 정부와 민간의 최고 전문가를 과감히 기용하는 것이 최근 미군 군사작전 수행의 특징이다.
둘째, 우수한 역량이 요구되는 직위에 복수의 인원을 보직하는 것이다. 작전 수행 부대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것은 작전이다. 작전을 담당하는 부서장은 밤낮이 없다. 그러다보니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미군은 작전 담당 부서장을 복수로 배치했다. 한 명이 감당이 안 되면 두 명, 두 명으로 부족하면 세 명이 함께 혹은 돌아가면서 일하면 된다고 본 것이다.
셋째, 야전교범에서 공세(offensive), 용감무쌍과 같은 표현, 기술, 뉘앙스를 제거했다. 군이 은연중에 갖고 있는 ‘군인상’의 틀을 깨뜨려야 ‘상자 밖(out of box)’에서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육군의 기준 교범인 『작전(Operations)』에 인내, 합법성, 절제의 원칙을 추가한 것이 대표적이다.9) 당장 공격을 하고 싶어도 인내할 줄 알고, 눈앞의 작전 너머에 있는 전략적·정책적 수준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장교가 필요한 것이다.
상기 실험들의 핵심은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들의 역량에 관한 틀을 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실험을 거쳐 현재 미군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적응성(Adaptability)’이다. 미군은 미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개별 장병이 갖춰야 할 것은 ‘핵심 역량’이 아닌 ‘적응성’이라고 곳곳에 명시하고 있다. 불확실성, 복잡성, 예측불가능성이 배가되고 있는 미래 안보환경과 위협을 고려했을 때, 정형화된 핵심 역량을 제시하고 이를 갖추게 하는 것은 무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은 ‘항구적인 전쟁의 시대에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적응성’이라고 결론 내리고10) 적응성을 미군 교리의 핵심 원리, 개념 등으로 반영하고 있다.11)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통해 미국의 안보환경과 위협에 맞는 고유의 모델을 개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독일군과 미군의 현주소를 소개한 이쯤에서 우려되는 것은, 한국군이 나름의 연구로 새로운 모델을 창안하지 않고,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나 미군의 적응성 등을 수입하여 적용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모방, 벤치마킹으로는 한국군이 가진 문제,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과 위협이 제기하는 도전을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문제만 가중시킬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군 인재 선발·관리를 위해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바꾸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큰 틀에서 인재상과 모델을 정의 내리고 정책과 제도의 방향을 결정한 후에는 ‘더 이상 바꾸지 않는 것’이다. 육군의 인사관리제도는 인재 선발·관리의 중점을 ‘통합성’에 두는 안, ‘전문성’에 두는 안을 교대로 오가며 7번이나 바뀌었고, 핵심 인재 육성의 핵심인 합동참모대학 교육제도는 “대학 총장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바뀐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12) 결국 ‘각종 조미료를 이것저것 잔뜩 넣은 스프’ 같은 정책, 제도는 한국군 스스로 만든 것이다.
5. ‘완벽한 장교’가 있어야 ‘완벽한 국방’을 이룩할 수 있다는 허상에서 벗어나자
한국군은 ‘완벽’, ‘완전’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각종 정책, 제도에는 ‘완벽한 준비 태세’, ‘완전 작전’ 등의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대규모 훈련 취재 말미에 나오는 군인들은 통상 “실전과 같은 완전 작전 성공으로 완벽한 준비 태세를 구비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선상에서, 한국군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군인’을 선발·관리하겠다는 시대에 뒤처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는 부하 역량의 한계를 알고 단순명료한 지시를 하달하는 지휘관,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업을 위임하는 지휘관을 모델로 한다. 이런 느슨한 정의가 독일군 특유의 과감한 의사결정, 창의적인 작전 실행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미군의 ‘적응성’은 미래 작전 환경과 위협의 예측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불확실한 위협을 앞에 두고 창의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를 모델로 한다.13) 이런 매우 구체적인 정의가 관련 제도, 예산, 인력의 집행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각국의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각자의 인재상과 모델을 정립한 것이다. 한국군도 자신의 상황에 맞는 현실적 선택을 해야 한다.
9) U. S. Army, Field Manual 3-0, Operations (Washington D. C. HQs, Department of the Army, 2008), pp. A-3-A-4.
10) Douglas V. Johnson II and John R Martin, “Terrorism Viewed Historically”, in Defeating Terrorism: Strategic Issue Analyses, January 2002. (최종검색일: 2021. 7. 19.)
11) 기준교범인 『리더십』,『작전』에 반영되어 장교 교육과 실제 작전 계획수립과 시행 시에 활용하고 있다.
12) 김00 인터뷰, 2019. 2. 20 / 서울.
13) School of Advanced Military Studies, Art of Design, Version 2.0 (U. S. Army School of Advanced Military Studies, 2010), p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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