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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 “북 학자들은 우리 학생들과 같이 경제 경영 산림 과목을 수강한다” - 9년 동안 북 교수 46명 연수시킨 캐나다 UBC 박경애 교수, 여시재서 간담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의 ‘캐나다-북한 지식교류 협력 프로그램(KPP)’은 2011년부터 매년 북한 대학에서 6명의 학자들을 초청해 6개월 과정의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핵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2016~2017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인민경제대학, 원산경제대학, 평양상업종합대학의 6개 대학에서 46명의 교수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수를 마치고 돌아갔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캐나다 정부와 UBC의 협조를 이끌어내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등 전 과정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사람은 이 대학 박경애 교수(정치학)다. 박 교수는 매년 북한을 방문해 연수 대상자를 선발해 캐나다로 초청한 뒤 6개월 동안 연수자 뒷바라지까지 책임져왔다. 작년에는 이와는 별도로 12명의 북한 6개 대학 총장/부총장 대표단을 UBC에 초청해 학술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UBC 측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북한에 답방단 파견을 검토 중이라 한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10년간 교수로 있다가 1993년부터 UBC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 이후 캐나다 대표단의 일원으로 90년대에만 북한을 세 차례 방문, 양국 수교에도 기여했다.
박 교수는 올해 연수자 확정을 위해 최근 북한을 방문한 뒤 2월 26일 한국에 왔다. 여시재는 27일 박 교수를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박 교수의 모두발언과 질의응답 순서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식 접근권은 보편적 인권
- 연수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일수록 ‘트랙 2’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받을 권리야말로 보편적 인권이라는 생각, 소프트 파워를 국가 간 관계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쓴 조셉 나이도 ‘University soft power’라는 말을 썼다. 그런 차원이었다. 이것을 통해 나라 간 관계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나다 외무성과 얘기를 했고 2010년에 북측에 제안서를 보냈다. 북측은 제안서의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연수자들이 주말에는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 하나만 추가했다.”
- 다른 프로그램도 있나
“6명 학자를 초청하는 방문학자 프로그램 외에 두 번째 지식교류협력 채널로 평양에 외국 학자들을 데리고 가서 국제회의를 여러번 했다. 2013년과 2014년엔 경제특구를 주제로 회의를 했고 특히 2014년에는 나진-선봉부터 원산까지 현장 견학을 한 뒤 평양에서 회의를 했다. 세 번째 채널은 북한 대표단을 외국에 데리고 나와 견학하는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스위스에서 13명이 농업과 목축업에 관한 워크숍과 견학, 그리고 14명의 경제대표단이 인도네시아 경제특구 견학도 했다.”
- 6명의 학자 연수는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나
“연수 교수들은 영어 등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한다. 7~8월은 영어 수업을 듣고 9월부터는 경제, 경영, 무역, 금융, 재정, 삼림학 등 일반 수업을 듣도록 한다. 그룹 프로젝트를 수행토록 하고 필드 트립을 통해 실제 기업인들과 토론 기회도 마련한다.”
- 경제학에도 미국 캐나다 등 신자유주의 모델과 협동조합 등 유럽 쪽 모델이 차이가 있는데 북한이 개방할 경우 어느 쪽을 원할 것 같은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UBC에서 가르치는 것은 두 모델 모두를 가르친다고 본다.”
원산경제대에 MBA 과정 생겨
- 연수를 마친 학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여러 사람이 각 대학의 ‘강좌장(학과장)’이 되어 대학을 이끌고 있고 새로운 과목을 여럿 개설하며 새로운 교과서들과 연구서적을 많이 집필한다. 인민경제대학에서 개발학과가 신설됐을 때 KPP 학자들이 많은 공헌을 했다 한다. 북한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정책자문 역할도 하곤 한다. 작년에 총장/부총장들이 UBC에 왔을 때 핫이슈가 MBA였다. 질문과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원산경제대학에 얼마 전 파일럿 프로그램 성격으로 MBA 과정이 신설됐다. 북한에선 원래 대학원 마치면 ‘학사(우리의 석사)’학위를 주고 박사학위는 교수를 하다가 나중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도 국제 스탠더드에 맞게 변화하는 중이다. 우리 프로그램이 나름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북한 입장에서 연수자 선정은 누가 하나
“각 대학과 교육위원회가 주로 한다.”
- 국내 대학과 비슷한 제휴가 생기면 어떤가.
“언어도 같고 정서적으로도 통하니까 괜찮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정치적 환경이 아직은 성숙되지 않았다고 본다.”
원산서 택배로 하루 만에 생선회가 평양 도착
-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셈인데 최근의 변화 중 특기할만한 것이 있는가
“개인의 경제활동이 굉장히 증가한 것 같다. 600여개 장마당 중 가장 크다는 통일장마당에는 외교관들을 위한 주차장까지 따로 마련돼 있다. 시장에는 물건도 많고 외교관들도 이곳에서 쇼핑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일반 주민들에게는 너무 비싼 물건들도 많은 것 같다. 택배 개념도 생긴 것 같더라. 휴대폰으로 원산에 싱싱한 회를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한다고 하더라.”
“중산층이 생겨나는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의 요리사를 했던 후지모토 겐지가 낙원백화점 3층에 스시집을 하는데 저녁 코스가 100불이 넘는 것도 있었다. 장사가 될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더라. 이 외에도 이탈리안 식당 등 많은 식당들이 생기고 있다. 레스토랑들 간에 경쟁이 붙어 요리법도 새로워지고 있다 한다. 그만큼 신흥 중산층들의 소비가 활발한 게 아닌가 한다. 제재가 강해지니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내수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2012년에 생긴 광복상업중심(백화점)을 당시 가봤을 때 거의 대부분이 중국산이었는데 최근 몇 번 가보니 대부분 국산품 대체가 이뤄졌더라.”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아파트 살림집에 실제로 들어가 봤는데 50~60평쯤 되는 좋은 집들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이 전원 입주했는데 가구와 가전까지 구비되어 있어 몸만 들어갔다고 하더라.”
경제개발 위해 과학자 우대
- 교수들, 과학자들이 주로 입주했다는 데 왜 그런가
“경제를 위해서는 인재와 과학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가보면 어딜 가나 “인재중시” “과학기술 중시”를 강조한다. 대학을 세계적 기준의 교육기관으로 키우겠다는 지도부 차원의 의지도 강한 것 같다. 우리에게 세계 대학랭킹 관련 책과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우선 김일성대학만이라도 세계 톱랭킹에 드는 대학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본다.”
-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 권력 안정성은 어느 정도라고 느끼는가.
“북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측면이 결합돼 있다. 김 위원장의 정당성의 기초는 물론 백두혈통이라는 데 있다. 이념적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 없이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느낀다. 안보와 외교면에서도 지금 보다시피 북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경제고 김 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 2013~2014년에 외국 학자들을 북한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어떻게 진행됐나
“9개국에서 16명의 학자들을 초청해 평양에서 경제특구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북 전역에서 전문가들이 참가해 외국학자들과 토론기회를 가졌다. 북한에서 커다란 반향이 있었고 2014년에 다시 후속 회의를 조직했다. 2013년도 회의가 다른 나라 특구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한 학술적인 내용이었다면 2014년엔 북한이 발표한 13개 경제특구를 돌아보고 전문가 의견도 받는 방식이었다. 그때 참석한 외국 전문가들은 청진이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항만 공항 철도가 잘 갖춰진 교통요지인데다 제철소도 있고 대학도 있어 전문가 교육도 용이하다는 의견이었다.”
“개성공단식 노동 집약 산업은 안 하려 할 것”
- 북한이 개방을 한다면 어떤 방향을 지향할 것으로 보나
“개성공단식 노동집약적 발전은 지양할 것으로 본다. 인건비가 낮은 다른 나라도 많아서 비교우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기술집약적 산업을 하고자 할 것이다. 베트남 신천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등 여러 모델 얘기가 있지만 결정은 자신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지는 않는다. 베트남이든 중국이든 따라가지만은 않고 자신들만의 모델을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토론회 때 보니 그들은 ‘BOT(건설해서 일정기간 운영한 뒤 양도하는 개발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했다. 또한 외국 기업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는지, 합영으로 했을 때 국내 기업은 토지 외에 무엇을 투자 하는 지 부터 외국 자본의 국적이나 외국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위한 해외 기업 등록까지도 관심이 있었다.”
- 탈북민 중 한국에서 학위를 받은 전문가들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나
“쉽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탈북한 사람들은 그래도 심각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의 탈북이거나 범죄를 저지른 뒤 탈북한 사람들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탈북민들에게도 북한이 잘 되어 주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북한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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