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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 중국 개혁개방 40년 되는 해였다면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경제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무역, 남중국해, 일대일로 등 발전의 근간에 해당하는 여러 분야에서 도전과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새해 시작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신년사를 내놓았다. 주석 신년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전달하는 중요한 정치 수단이다. 금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표될 <정부 업무보고>에 비해 그 내용이 간결하고 함축적이지만 1년간 중국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6년간 신년사에 등장한 단어 순위>
미 보호주의 염두에 둔 개혁 개방 강조
시진핑 집권 이후 이번을 포함해 모두 6차례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중국은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취사선택된 단어들로 주석 신년사를 구성한다. 그것을 분석해 보는 일은 의미가 적지 않다. 6차례 신년사 모두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는 역시 ‘중국’과 ‘인민’이다. ‘중국’은 ‘아국(我國)’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 2014년에는 ‘개혁’과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상위에 랭크되었고 ▲ 2015년에는 ‘전면’과 ‘개혁’이 중시되었다. ▲ 2016년에는 ‘전면’, ‘개혁’에 이어 처음으로 ‘빈곤’과 ‘샤오캉(小康)’, ‘필승’이 상위 20위 주제어에 포함되었다. 대중을 향해 빈곤 탈출과 샤오캉 사회 달성이라는 국정 목표를 내세운 것이다. 빈곤 탈출이 시야에 들어왔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 2018년에는 기존의 빈출 단어 이외에 ‘인류’라는 단어가 새롭게 상위에 랭크되었다. 중국의 빈곤 탈출이 세계와 인류에도 중요하며, 중국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취지였다. 이는 중국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대외에 시선을 돌리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중국이 ‘인류’를 꺼내든 바로 그 해에 미국의 중국 견제는 거칠어졌다.
▲2019년에는 2018년에 이어 개혁개방 40주년을 전후한 시기라는 점과 맞물리면서 ‘개혁’과 ‘개방’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우리는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개방의 문호는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국내적인 의미만 갖지 않는다.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호주의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금융-신기술 압박에 맞서 다시 한 번 ‘개혁’과 ‘개방’ 진용을 정비하는 모습이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위기관리 모드로의 전환
올해 시진핑 주석의 신년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년도에 대한 전반적 평가와 구체적 성과에 이어 새해 전망 및 국정운영의 방향, 그리고 대국민 호소로 구성됐다. 우선 지난해 “매우 충실하게, 매우 굳건하게 걸어왔다”고 평가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리스크와 도전을 이겨내고 고도의 질적 경제 발전을 촉진했으며, 신구 모멘텀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경제 운영의 합리적 구간을 유지했다”고 했다. 미중 무역마찰 등 국내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목표로 삼았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을 뿐만이 아니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그리고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시 주석은 특히 과학기술과 군사 분야 성과를 강조했다. 달 무인 탐사선 창어(嫦娥) 4호의 성공적 발사(창어 4호는 시 주석 신년사 사흘 후인 1월 3일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항공모함의 출해(出海) 및 시범운항, 중국산 대형 수륙양용 비행기의 개발 성공,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의 글로벌 네트워킹 구축, 강주아오(港珠澳ㆍ홍콩-주하이-마카오) 대교 완공 등이었다.
둘째 2017~2018년 신년사에서 내세웠던 빈곤 탈출 부문에서의 성과 강조다. 125개의 빈곤 현(县)이 빈곤퇴치 지표를 달성했고, 1,000만 명의 농촌 빈곤인구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17가지 항암용 약품 가격이 인하되고 의료보험 목록에 편입됐다고 했다.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다양한 사회제도, 즉 호적 문제 개선과 판자촌 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 공사 착공, 홍콩·마카오·타이완 주민들의 거주증 확보 등을 성과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교 분야와 관련해 시 주석은 “2018년 많은 새로운 벗과 오랜 벗들이 중국에 왔다”며 “보아오(博鳌)아시아 포럼, 상하이 협력기구 칭다오(青岛) 정상회의,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베이징 정상회의 등 외교행사를 개최하면서 중국의 주장을 제시하고 중국의 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중국은 작년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중국 국제수입박람회(CIIE)>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처음 개최된 신생 박람회임에도 불구하고 130여 개국에서 3,000여 개 이상의 기업 및 45만여 명의 바이어들이 방문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타이완의 외교적 입지를 더 축소시키려 했다. 2018년에도 중미의 도미니카공화국,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엘살바도르 등과 국교를 수립했다. 또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상하이협력기구(SCO) 등과 같이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 대외정책의 특징은 각종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중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드는 네트워크 파워의 강화다. 이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세계대국을 향한 교두보 확보 차원이다. 올해 시진핑 신년사에 이런 정책이 강조된 것을 보면 2019년에도 홈그라운드 외교를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일대일로 등 핵심 정책들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내적 단결 위한 애국주의 강조
대체적으로 2019년 신년사의 가장 큰 특징은 대내적으로 체제의 단결과 민족적 자신감을 강화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영웅들을 소환하고 이들의 희생정신을 귀감으로 삼아 단결을 호소해 애국심을 자극하고자 했다. 민생과 인민, 신심(信心, 자신감)과 결심(決心), 성의(誠意)와 선의(善意)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미중간 국력 격차,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무장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국내단결을 위해 강조한 애국심 또는 애국주의가 배타적 민족주의로 비추어지면서 미중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하고자 하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과의 충돌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힘을 비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년을 맞아 미중 정상 간 전화통화를 통해 협력을 과시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의 표출이 “분발유위(奮發有爲)”나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진취(積極進取)”에서 다시 “도광양회(韜光養晦)”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해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고, “도광양회 2.0”을 통해 강대국으로 가는 내실화를 다지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사이서 THAAD 이상의 ‘정책강요 상황’ 올 수도
2018년은 개혁개방 40주년의 해였다. 비록 미중 무역 갈등으로 빛이 바랬지만, 최근 수년 동안 중국 개혁개방의 세계 경제성장 공헌율은 30%에 달했다. 2019년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중미 수교 40주년, 중국과 북한 수교 70주년, 5.4운동 100주년 등이 겹친 중국 현대사의 역사적 분기점이다. 2019년 신년사에는 “기회와 도전이 공존하는 해”가 될 것으로 표현했다. 대내적 통합과 단결이라는 차원에서는 기회이지만, 새로운 100년을 맞아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대변혁의 시기라는 점에서는 도전이다. 따라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내적으로 안정된 지도력을 확보하고 대외적으로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는 방어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다만 일대일로의 지속적 추진과 외교 외연을 확대하는 대외전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에 대처하는 과정은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5G와 AI 등 ‘디지털 표준’을 둘러싼 미중 경쟁 과정에서 미국을 우회해 한국에게 정책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드(THAAD) 배치 상황보다 훨씬 어려운 한중관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기통제 시스템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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