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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2019] ②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脫냉전 후 한반도에 가장 중요한 해 … 정부는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脫냉전 후 한반도에 가장 중요한 해 … 정부는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만나준 자체가 큰 선물 … 김정은이 이제 응분의 결단을 할 때 됐다”
2017년이 전쟁 위기에 휩싸인 한 해였다면 2018년은 ‘잠정 평화’ ‘불안한 평화’의 해였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한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라는 큰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 비핵화와 평화의 제도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실감하게 했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선순환의 궤도 위에 올려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자칫하면 악순환과 충돌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동북아 각국의 각축 속에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될 우려까지 나온다. 올해는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 협력 실질화의 성패가 결정적인 흐름을 잡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시재는 (재)한반도평화만들기 홍석현 이사장을 만나 올 한 해 한반도 외교 안보 상황에 대한 통찰을 들었다. 홍 이사장은 지난 1년 반 사이에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저서 2권을 내는 등 ‘한반도 시대 개막’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왔다. 주미 대사를 지냈고 작년 9월 원로자문단의 일원으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참여했다. 현재 여시재 이사를 맡고 있다.
홍 이사장은 “2019년은 탈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북 비핵화의 고비를 넘는다면 한반도는 비핵화 과정의 진전과 함께 상당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고비를 넘지 못하면 북핵문제 악화, 한미동맹 균열, 동북아 안보 불안, 미중 무역갈등이 겹치면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커다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초당적으로” 접근해가야 한다고 했다.
홍 이사장은 “만일 동북아에 다자 질서가 존재했다면 북핵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북핵문제는 이 지역에 없던 다자 안보와 경제 질서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련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 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은 2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과의 양자 문제로 국한해온 북한이 이번에 처음으로 정전협정 당사국, 다자간 협상 문제를 거론한 것은 매우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다자협상에 중국의 참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이는 북미협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완충하는 장치로서 제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보고서 요지다.
“미국이 내민 손 오래가지 않을 수도”
“북은 이 기회의 창을 열고 나와야”
-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지 않은 시기에” 만날 것이라고 했다.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다. 만약 2차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거기서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례에 비춰볼 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경계해야 할 점은 북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자기식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일이다.”
- 선비핵화(미) 대 동시행동(북)이라는 입장 대립이 여전하다.
“미국이 제재 유지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약간의 유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자세는 오래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이 이 기회의 창을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잃으면 ‘강화된 제재의 장기화’로 북한경제와 민생이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 지난달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인도적 지원에 국한해 제재를 일부 완화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비건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점심을 함께했다. 비건이 남북 철도 연결 문제를 묻길래 조사연구사업에 큰 자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미리 해둘 필요도 있으니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또 인도적 지원 부분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성이 있지 않겠느냐 했더니 비건 대표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하더라. 이제 워싱턴도 조금씩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의 요구 수준 하고는 잘 맞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이 (제재 유지라는) 기본 입장을 수정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 북미 2차 정상회담은 이뤄지겠는가?
“북은 실무협상은 까다로우니까 top-down 접근을 원한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마주 앉아서 뭔가 위에서 크게 한 번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나,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게 좀 위험하다. 6-12 싱가포르 1차 회담 때도 기대 이하 수준의 협의가 이루어졌고, 그 후 작금에 이런 어려움을 맞이한 것이 그때 단단히 못 해놓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2차 회담을 하더라도 나는 근본적 제재해제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 2차 회담 날짜를 우선 정해주고 그러고 나서 실무선, 비건이나 그 위 폼페이오 선에서 협상을 통해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는 조치를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미국이 그렇게 움직인다면 북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국제사회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상식인데 과연 그렇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 국제사회 대세는 북이 돌이킬 수 없는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북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구가 있다고 보나?
“국제관계에서 상대를 믿을 수 있어야만 협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상대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여러 장치를 만드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결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결정적 출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노련하고 유능한 참모가 많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치밀하고 정교한 논리와 전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단은 김 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다. 경로 의존성의 악습을 끊는 것은 김 위원장 몫일 수밖에 없다.”
“흔들림 없는 제재 공조가 중요
… 하지만 협상 동기도 부여해야”
- 일각에선 북이 핵실험장 폭파 등 몇 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나준 것 자체가 큰 선물이다. 김 위원장의 국제적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있기 힘든 일이 벌어진 거다. 미국 주류, 백악관, 국무성 모두 찬성하지 않았다. 이제는 북한이 한번 움직일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선물을 하나 줄 때가 됐다. 국제사회가 볼 때 북이 이제 정말 움직이는구나 하는 정도의 행동을 할 때가 됐다.”
- 홍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제재 공조”라면서도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속도를 내도록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 시점에서 제재가 완화되면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물거품 된다. 강력한 제재 공조는 필수적이다. 북은 부정하지만, 북이 협상 테이블로 나온 가장 큰 이유가 제재일 것이다. 북 주민들은 지금 장마당에서 수입의 70%를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제재의 체감 강도는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연한 카드를 내밀어 상대로 하여금 이익을 교량(較量)하도록 해서 타협을 선택도록 유도하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타협함으로써 얻을 편익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입게 될 피해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북 IMF 가입 유도가 핵심
… 우리 정부가 구체안 만들어야”
- 동기라면 역시 경제 아니겠는가.
“당연히 그렇다. 북은 체제보장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도 말로는 했을 것인데 결국은 경제일 것이다. 인민들에게 경제번영을 안겨주는 것이 김 위원장으로서도 사는 길이다. 한국과 미국이 포함된 국제사회가 북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북 경제발전의 주체는 물론 북한이고 한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북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유럽부흥은행(EBRD) 같은 국제 다자 개발은행들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을 포함한 국제 민간자본이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안전하고 경제성 있는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다행히 이들 다자 개발은행들은 북한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 세계은행, IMF와 손잡고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준비를 더 단단히 해서 구체성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상당히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 받는 쪽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도 ‘과학기술 집약형 경제개발 추진’을 강조하고 북한을 기술 기반 지식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북은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컴퓨터로 기계를 제어하는 기술)를 산업 전반에 확산하려는 전략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북이 경제발전과 과학입국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들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라는 결단을 내리게 되면 세계적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단박도약(leap frogging)’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 올해 동북아 주요국들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의 입지가 축소되거나 강요된 선택의 길로 내몰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코리아패싱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북이 미국과의 협상을 위주로 하고 우리와의 대화를 경시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북과 대화를 진전시키면서도 한미공조를 탄탄히 할 필요가 있다. 북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운신할 공간을 크게 내주지 않아야 한다. 미중 대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시해야 한다. 강대국의 치열한 국익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코리아패싱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기우로 만드는 것은 우리 하기 달렸다.”
- 한국 정부 역할은 어때야 한다고 보나.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전환해야 한다. 당사자로 전환하면 눈이 뜨이고 길이 열린다. 돌아보면 한반도비핵화선언(1992), 6자회담, 9-19공동성명(2005), 북미정상회담 모두 남한의 선제적 이니셔티브로 이뤄졌다. 북미 이견으로 막혀 있는 북핵 문제 해법도 반드시 한국이 제시해야 한다. 능히 할 수 있다. 다만 북핵 문제가 한국의 손을 떠나 북미 간 대결로 치닫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개성-금강산 폐쇄 아쉬워
… 재개는 미국 및 국제사회와 보조 맞춰야”
- 한국 정부는 미국에 제재 완화, 특히 남북 협력 분야에 대한 선별적 제재 완화를 요청해왔다.
“지금은 한미 간에 워킹그룹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으므로 제재완화 등 정책 조율을 하기 위한 환경이 나아졌다. 그렇다 해도 한국이 지속적으로 제재완화를 요구하며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도적 지원을 포함해서 유엔결의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제재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섣부른 전면적 제재완화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다 국제공조가 파기되거나 북핵문제를 그르칠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북한에게도 핵을 포기하지 않아도 남북관계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북이 핵 국가가 되었을 때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것이다. 당사자로서 우리가 가장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비핵화 진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비핵화 진전을 위해 적극 나서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재 완화 등 비핵화를 추가적으로 진전시키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나서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내야 한다.”
- 북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워싱턴의 분위기상으로는 북미회담 이전에 어떤 구체적인 제제 해제는 힘들 것 같다. 한미공조 속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남북관계 특수성에 대한 어떤 인정을 우리가 시간을 두고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서둘러서 공조 자체가 깨져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과거 제제 국면에서도 했던 것이다. 닫힌 상황에서 다시 여는 데는 여러 논란이 따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걸 닫은 게 참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여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시간을 갖고 미국 및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부에선 한국 정부가 선제적, 주도적으로 나서서 북미 관계를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음은 이해하는데 현실에 있어서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미국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북에 대해서도 오히려 미국에 대한 신뢰, 국제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이도록 하는 작업을 우리가 하는 게 맞다. 풀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립서비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日이 워싱턴에 기울이는 노력 절반만큼이라도 하고 있나”
- 얼마 전 통일부 장관이 미국에 다녀온 뒤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상하원 의원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한반도 상황을 너무 모른다는 취지였다.
“우리 정부가 워싱턴 분위기를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워싱턴의 민주 공화 양당, 특히 젊은 국회의원들은 역사를 잘 모르고 과거 한미관계도 잘 모른다. 농담 삼아 얘기하면 미국도 정치인들은 특히 국제관계에 굉장히 무식하다. 미군이 왜 큰돈 써가며 서울에 있어야 하냐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그런 것을 전제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 남북문제를 잘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거다. 우리가 설명을 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인 이스라엘, 일본, 타이완 이런 나라들이 워싱턴과 미국에 들이는 노력의 절반이라도 과연 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미국과 동북아 질서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로비라고 하면 표현이 좀 그렇지만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외교 어젠다에 북핵 문제를 1번으로 올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차관보 수준의 이슈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과연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만나줬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이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남남갈등 해결되어야 남북문제도 해결”
- 여론조사를 보면 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남남갈등도 여전하다.
“남남갈등이 해소되어야 남북문제도 해결된다. 통일을 이룬 동서독은 전쟁을 한 적이 없었다. 반면 우리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했다. 수많은 희생자와 그 가족이 있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무척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부 분열이 심화되면 대외정책이 힘을 받을 수 없고 다른 나라들은 이를 이용하려 한다. 독일 동방정책은 진보 정부가 만들어 보수 정부로 연결됐다. 제3당인 자유민주당 출신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18년간 외무장관을 하면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했다. 진보와 보수가 대타협을 통해 일관된 대북정책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우리도 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을 보면 답답하다. 진보 정부가 10년간 추진했던 정책을 보수 정부가 모조리 없애는 상황에서 남북문제가 풀릴 수 있겠나. 국회에서 비준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서 굳혀가는 작업이 대북정책이고 남남갈등을 줄여가는 첫걸음이다. 내부의 신뢰를 높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도 부족하지 않나.
“또 한 가지 감안해야 할 것은 경제 여건이다. 올해 세계 경제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빨리 가시화되고 있고 미중 관계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내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남남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갈라진 나라에서 문 대통령이 혼자서 해나갈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같이 가자고 설득하는 그런 게 절실하다.”
- 김정은 답방이 남남갈등을 폭발시킬 수도 있다.
“문 정부가 보수를 설득해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제 주변 보수 성향인 분들은 ‘김정은이 서울 오면 엄청난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을 열심히 설득하는 만큼 야당 지도자, 보수와도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도 100% 환영받을 수는 없겠지만 답방 분위기를 만들려면 비핵화 조치를 행동으로 옮기고 종전선언과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 중·일·러는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보나
“세 나라는 역사적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세 나라는 한반도 평화 유지, 북 비핵화 및 제재 동참이라는 세 가지 기조를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라도 여기에서 벗어나면 비핵화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활용해서 북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미중갈등의 와중에서 북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핵을 가진 북을 용인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재앙을 부르는 일이다. 일본이 핵무장하고, 중국이 핵무장을 강화하고, 대만-베트남과 한국이 어쩔 수 없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최악의 사태가 올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의 틀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 비핵화와 함께 결국 동북아 다자안보 질서 구축 문제가 떠오르게 되지 않겠는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미국이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100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비핵화와 함께 다자안보질서 구축 문제도 개념적으로는 떠오를 것이다. 만일 동북아에 다자 질서가 존재했다면 북핵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북핵 문제는 이 지역에 없었던 다자 안보와 경제 질서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북핵 위기가 극복되면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은 안보와 경제의 대외적 안정을 위해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다자질서가 개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 대국으로, 당장은 아니지만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100주년까지는 가겠다는 거 아닌가? 그럼 일본이 가만있겠나?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그렇게 가야 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여갈 것으로 보나.
“중국은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발걸음을 같이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북한이 갖는 군사안보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너무 빨리 미국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이 갖는 미국에 대한 불신 이런 것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중국은 제제 국면을 근본적으로 흐트러뜨리지는 않으면서도 지금도 상당이 위반하고 있다. 공해상에서 또는 중국 영해에서, 선박에서 선박으로 거래를 하는 방식 같은 것 미국도 알고 있고 또 어느 정도는 봐주고 있는 상황 아닌가. 중국이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국이 국제공조를 잘 유지하면서 북중 특수관계를 잘 활용해서 구체적인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 북한이 어떻게 나와야 한다고 보나
“북한이 성의를 보일 때라고 생각한다. 2차 정상회담 날짜가 잡힐 경우 2차 정상회담의 결과가 국제사회에서 이만하면 싱가포르를 발판으로 해서 구체적인 비핵화의 길로 가고 있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다면 큰 성공이다. 그 길로 가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실무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것을 결단할 때다. 이거 불안하니까 돌다리만 두드려보고 안 건너는 것은 북한의 미래에 좋지 않다고 본다.”
“비핵화 고비 넘지 못하면 큰 위기 직면”
-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지만 올 한 해는 특히 중요한 것 같다.
“2018년은 전쟁을 막고 평화의 길로 들어선 한 해였다. 아쉬움은 있지만 큰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한다. 2019년은 구체적인 진척이 일어나야 하는 해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시작되고 부분적으로라도 제재 완화가 되면서 남북교류뿐만 아니라 북이 국제사회로 나오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올해는 탈냉전 세계화 이후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비핵화 고비를 넘는다면 한반도는 향후 비핵화 과정의 진전과 함께 상당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비를 넘지 못하면 북핵 문제 악화, 한미동맹 균열, 동북아 안보 불안, 미중 무역갈등이 겹치면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안팎의 위기가 동시에 몰려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각별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 정부도 새해부터는 좀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움직였으면 한다. 먼저 초당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 여론을 모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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