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시재와 함께 해주십시오. 회원가입으로 여시재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전망 2019] 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고난의 한 해 … 전환기적 고통 깊어야 미래 기약할 수 있다”
“고난의 한 해 … 전환기적 고통 깊어야 미래 기약할 수 있다”
“촛불, 한번 정리하고 갈 때 됐다”
“대기업들 2세 3세 승계과정서 모두 관료화, 創新 나올 수 없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2019년에 대해 “전환기적 고통,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한 해”라며 “고통의 강도가 강하고 깊을수록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까만 검은색엔 붉은빛이 잉태되어 있다”며 “그러나 적당히 타협하면 어둠이 오래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IMF 구제금융 신청 시기에 비유하면 2019년이 1998년과 같은 해라고 했다. 97년에 IMF가 왔지만 98년에 바닥이었듯이 2018년에 시작된 위기가 2019년에 극심한 고통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5년 갈지, 10년 갈지 알 수 없게 된다”며 “결국 정책당국자, 시장참여자, 국민 전체의 (고통을 겪으려는) 자세에 달렸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20년 전 50대 중반의 나이에 IMF 위기극복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경제부총리로서 “경제만은 책임지겠다”고 말해 정치적 혼돈 속에서도 경제를 안정시켰다. ‘이헌재 효과’라는 말이 이때 나왔다. 이 전 부총리는 이제 70대 중반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도 매일 국제 금융 흐름과 세계정세를 점검한다. 우리 산업의 활로에 대해서도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그치지 않는다. 이념과 세력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에서 진영을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몇 사람 되지 않는 ‘국가 지성’이다. 현재 싱크탱크 (재)여시재 이사장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 설계를 독려하고 있다. 이 이사장을 새해 벽두 만났다.
“자칫 하면 위기가 5년, 10년 갈 수 있다”
“일본은 챔피언 좌석엔 없지만 필요한 곳 모두에 있다”
- 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경기 변동 상의 위기인가, 아니면 보다 넓고 깊은 국가적 위기인가?
“경기 변동 상의 위기 그 이상이다. 전환기적 고통,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국가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 경제로 좁혀놓고 볼 때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97년엔 유동성과 기업의 문제였다. 지금은 사회 전체의 문제다. 경기변동상의 위기, 구조적 위기, 3차 산업에서 4차 산업 시대로 넘어가는 혁명적 위기가 중첩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도 치열하다. 그래서 전환기적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 경제가 올해 바닥을 친다고 보나
“바닥을 치기를 희망한다. IMF가 97년에 왔지만, 바닥은 98년이었다. 위기는 작년에 진행됐다. 올해 바닥을 치기를 바란다. 자칫 잘못하면 5년 갈지, 10년 갈지, 20년 갈지 아무도 모른다. 정책 당국자와 시장참여자, (고통을 겪으려는) 국민들의 자세에 달렸다. 국민 의식 속에 전환기라는 의식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한 머릿수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과 행동의 총화가 국가다. 불가능하지 않다. 우린 황무지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일류병에 빠져있다고 하잖나. 그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일류가 될 수 없는 사회가 문제인 거지. 정부가 깃발 들고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벌떼처럼 덤벼들 거다.”
- 올해 반등의 기회가 올 것인가
“기회까지는 안 온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고통의 바닥을 쳐야 한다. 불화(火)변에 검을 현(玄)을 쓰면 밝아질 현(炫)이다. 암흑(玄)에서 변화(火)가 생긴다. 올해는 혼돈이다. 상황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혹할 것이다. 엄혹이 피크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해졌으면 한다. 그래야 문제가 드러나고 해결이 가능해진다. 97년에도 깨졌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 고통을 겪으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나.
“적당한 타협은 안 된다. 문제를 모두 드러내놓아야 해결도 된다. 올해는 드러내고 준비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일본에 대해 ‘잃어버린 20년’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잃어버린 10년’과 ‘준비한 10년’이라고 본다. 죽기 살기로 세계 제일을 추구하던 데서 벗어났다. 지금은 배싱(bashing, 공격)과 패싱(passing)을 모두 피하면서 질시와 주목도 피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 스스로의 자각인지, 독일에서 배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독일이 글로벌 챔피언 되려다 2차 대전 거치며 거지가 됐잖은가. 거기서 배운 것인지, 중국이라는 존재를 전제로 한 전략적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일본 전문가들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10년은 미래에 대한 준비였다고 느꼈다. 그 시기를 거친 뒤 경제뿐만 아니라 거버넌스, 헌법, 노동시장 모두 의제화하고 있지 않나. 일본은 챔피언 좌석에는 없지만 있어야 할 곳,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석구석에 다 있다.”
- 대전환의 본질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전환인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1기를 지나 완전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대량생산 산업화시대가 끝나가고 있지만 다음 생산 형태는 아직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모색 중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발생한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의 가격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이런 괴리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 뭔가 사회 전체에 정리가 필요한 듯하다. 어떤 정리를 해야 하는가.
“누가 앞으로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정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지금의 거버넌스로는 안 된다. 70년 만에 모두가 기득권화됐다. 크든 작든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건 전환기적 두려움 때문이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국민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시절의 거버넌스가 잘못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헌법 얘기가 아니라 행동 얘기다. 협치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안되면 몇 날 며칠이라도 국회 가서 살든지 해야 한다.”
- 적당하게 타협해선 안 된다고 했다. 지금 타협해선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
“아날로그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이 불러오는 변화는 불연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지금의 변화는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전환이 아니다. 미지의 길로 가고 있다. 두려워해야 한다. 또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까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에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미래는 지금까지 건너온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니다.”
- 국민들에게 ‘각자도생을 할 준비를 하시오’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국민은 각자도생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에서 얻은 것들을 내려놓되 국가는 ‘최소한’을 깔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 33조와 34조다. 33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또 34조는 국가에 대해 사회보장을 증진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고 하고 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장은 세이프티넷(Safety net, 안전망)이고 복지는 거기서 조금 나간 것으로 웰페어(Welfare)인데 기반은 같다. 비 맞지 않고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첫 번째 의무다. 지금부터라도 원점에서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국민 여러분 움직이는 데 지장없이 해드리겠다, 원룸에서 가스에 희생되지 않도록 하겠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출산도 돈 몇 푼 주고 해결하려 하는데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커서 어떻게 된다 하는 것을, 당장은 어설퍼도 해외전문가들까지 동원해서 인생의 생태계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선택권을 줘야지 배급권을 쥐려고 하면 안 된다.”
-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이 산업의 지각 자체를 움직여 가고 있다. 어떻게 될까?
“산업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연결’이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벼를 키워 밥을 먹고 배설하는 것은 아날로그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우리가 강한 우리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중국도 일본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부품과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 때문이다. 우리도 기존 산업을 과보호는 하지 말되 강점을 살려 나가야 한다.”
- 아직도 정부의 산업정책이 필요한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엔 그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정부가 민간을 앞설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정책을 하려고 하면 과오가 커지고 낭비가 발생한다. 구글이 무슨 미국의 산업정책 때문에 지금의 구글이 되었겠나. 전혀 아니다. 시장의 변화 속에서 미래를 향해 투자해나가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정부가 그 생태계를 만들어야지 무슨 산업을 키운다, 아니다 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독자적인 인간을 키우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아이디어맨과 비즈니스맨과 사기꾼의 집합체다. 그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변화와 전진이 일어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정부가 위에서부터 뭘 키우겠다고 나서면 부작용이 커진다. 정부는 재정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걸 전제로 해놓고 기회를 분배하는 것이 말하자면 1970년대식 산업정책이다. 이제 이것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미래를 향한 투입이 오히려 과거를 늘려주게 된다. 기득권 강화다.”
“文 정부를 촛불에서 자유롭게 해줘야”
“적폐청산은 새로운 적폐를 만든다”
- 촛불혁명도 한번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촛불혁명이라 하지 않고 촛불현상이라 한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다. 누군가 기획하고 의도한 것이 아니다. 촛불의 본질은 변화 추구다. 우리 국민들은 일류가 되려 한다. 의지 지향형이다. 그런데 수십 년간 줄 세우기를 해왔다. 촛불은 여기에 대한 저항이다.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현상이다. 각계각층이 촛불에 영혼을 담았다. 지금 과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느냐.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정 집단이 촛불을 독점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를 여기서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적폐 청산도 그 자체가 또 다른 적폐를 낳는 측면이 있다.”
- 문 정부는 이른바 ‘우군’과 싸우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발전을 못 했다. DJ는 최소한 대화를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아주 격렬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그걸 극복해나갈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지금 정부는 우군이라기보다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동지와 우군은 같으면서 다를 수 있다. 동지는 서로 주고받아야 될 것이 있는, 청산해야 할 것이 있는 관계다. 우군은 뜻을 같이해서 움직인다. 촛불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민노총 전교조 전공노가 해서 한 거다, 그래서 내가 문재인을 대통령 만들었다, 거기에 경실련 참여연대 몇몇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이렇게 보느냐, 아니면 박근혜 정부의 한계를 느낀 광범위한 중산층과 다양한 계층이 이대로 놓아둬서는 우리나라 거버넌스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행동한 것이냐. 정부가 그 단체들을 우군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들은 정부가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고 하니까 판 자체를 꾸려나가기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정부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를 모을 수 있지 않겠나.”
- 문 대통령에게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도자는 무슨 이념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현재 일어난 문제를 단 한 발짝이라도 편하고 낫게 고치는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진보적 방법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대못을 박으면 문제 되지만 변화의 씨앗만 뿌려놓겠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다. 누구는 대못 박고 누구는 전봇대 뽑고 이런 것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씨앗이다.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정부도 기득권이라는 점이다. 돈 벌어서 생기는 기업 기득권이나 표 얻어서 생기는 정치 기득권, 투쟁해서 얻은 노동 기득권이나 다 본질은 같다. 정부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정부는 룰 세팅에 전력을 기울이면 된다.”
“대기업 집단은 환관정치 시스템과 비슷”
“이재웅과 김범수는 자기 역할 끝났는지도 모른다”
- 우리 대기업들도 다시 생존의 기로에 들어가는 것 같다. 활력이 전 같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기업집단은 한마디로 거대한 관료집단이라 할 수 있다. 관료화된 집단의 꼭대기에서 아래에 대고 혁신해라, 생산성 높여라, AI 기술자 키워라 한다. 이걸 혁신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창신(創新)을 좋아한다. 톱다운(top-down, 하향식)이 아니라 바텀업(bottom-up)이 창신이다.”
- 대기업들이 창신 할 수 있겠나?
“못한다. 2세 3세 4세로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관료화될 수 밖에 없다. 옛날 환관 정치 하던 시절과 비슷하다. 환관이 왜 생겼겠나. 과거 제국 시절 관료제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긴 거다. 지금 우리 대기업이 꼭 그렇다.”
- 정부가 그래서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깨뜨려야 한다고 한다.
“대안이 있어야 한다. 현재와 대안이 함께 가야 한다. 겨울이 온다고 다 죽나. 아니다. 봄이 오면 새로운 힘이 솟아오른다. 대기업 체제는 어차피 깨진다. 대기업은 스스로의 적응성 한계 때문에 스스로 부서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서 그나마 있는 대기업들의 역할까지 없애는 데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나름의 역할을 하게 놓아두면 된다. 대기업들이 정신 차려서 바뀌면 좋은 것이고 주저앉으면 해체되는 것이다.”
- 개념과 접근을 완전히 바꿀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나오겠나.
“빌 게이츠가 튀어나왔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튀어나왔다. 이런 것은 혁신에서 나오지 않는다. 혁신은 위에서 하라는 것이니까. 튀어나올 때도 강하게 튀어 오르는 싹이 있다. 이재웅이나 김범수라면 카풀 같은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기왕에 하던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비즈니스 라인 바꿔가지고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로 연결시켜서 돈 벌려 할 것이 아니라 뛰어넘어야 한다. 피 한 방울 가지고 인간 유전자 분석 하는 것이 한 단계를 껑충 뛰어넘는 것이다. 그게 창신이다. 기왕 있는 곳에서 출발하지 말아야 한다. 이재웅 김범수 같은 사람은 200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 틀 위에 서 있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과격한지 몰라도 그렇게 본다. 이재웅이나 김범수는 자기 역할이 끝나가는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는 내 역할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기는 때려치우고 인재 키우는 데로 가지 않았나. 번 돈 가지고 미래에 던져 보겠다, 생각이 같은 것 같아도 이것은 많이 다른 것이다.”
- 우리 내부에서도 유니콘 기업들이 커나가고 있지 않은가.
“몸부림은 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득권 과보호체제다. 기왕 심어져 있는 나무에서는 꽃이 핀다. 나머지는 그냥 땅을 눌러놓으면 거기서도 악을 쓰고 뚫고 나오는 게 있지만, 일반적으로 뚫고 나오기 쉽지 않다. 기왕 있는 것들은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꽃잎이 예쁘지 않아도 어쨌든 계속 피어나는 거다. 이걸 바꿔야 한다.”
- 재벌 승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커지는 것 같다.
“능력에 따라 CEO 할 사람은 하고 못 할 사람은 못 하고 망할 사람은 망하면 되는 거다. 그걸 정부가 나서서 할 필요가 없다. 망하면 좋은 게 뭐냐면 경쟁사가 일어선다. 비즈니스는 괜찮은데 CEO가 시원찮아서 잘 안 되면 경쟁사가 클 거 아닌가. 비즈니스가 시원찮으면 2세 3세들이 CEO를 하든 이사회 의장을 하든 부서지긴 마찬가지일 거 아닌가? 그런 거에 왜 신경을 쓰나? 이사회 의장 하는 것하고 CEO 하는 것하고 뭐가 다르나. 의장이 다 결정해버리면 CEO는 뭘 하나. CEO는 안되고 의장은 된다는 것은 형식 논리다. 부당이득을 얻거나 부정행위를 못하게 하면 된다. 문제는 기업 거버넌스에 회색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워 당장 할 것은 하고 경과를 둬야 할 것은 두겠다고 길게 보고 설계해야 한다.”
- 중국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하드랜딩(hardlanding) 될 것이다. 지금 중국 공산당이 총동원되어서 하드랜딩으로 안 가려고 뛰고 있을 거다.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총동원해서 홍수대책 갈수대책 물가대책 하듯이 중국이 지금 국가총동원체제라고 봐야지. 문제는 중국이 우리를 따라올 수 없는 분야를 아직 못 찾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잘하고 있는 회사들을 찾아서 키워야 한다. 일본보다도 잘 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그런 회사 키워나가면 부품회사 연관회사들이 있을 거 아니야? 제조업이 커나갈 수 있다. 정부가 세워야 할 것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기업정책이다.”
- 반도체는 어떻게 될까?
“반도체는 위험하다고 본다. 미국이 중국에 ‘제조 2025’ 뒤로 미뤄라, 하이테크(hightech, 첨단 기술) 하지 말고, 그 대신 반도체는 양해할게, 중간 기술까지만 해라, 이렇게 하면 누가 당할까. 한국 기업이지 않겠나. 미국의 전략은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과도 관계있다.”
“네이버다 뭐다 그걸 하이테크라고 생각하는 것이 큰일이다. 그것은 2000년대 초반 기술이다. 그때의 비즈니스 라인을 잡았을 뿐이다. 미래를 향해서 일을 벌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안되더라도 찌꺼기라도 남는다. IT는 선점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다 새로운 거로 시작한 거다. 구글이 지금 가지고 있는 회사가 590개쯤 될 거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아무리 사기성이 있어도 사들이고 있다. 우리는 살래야 살 수도 없다.”
- 2019년을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를 향해 사회 원로로서 주문해달라.
“다시 말하지만, 전환기적 중첩 위기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위기를 겪고 우리는 더 강해졌다. 6-25 후 새로운 기업집단이 일어났다. 중동 건설 붐도 석유파동에 대한 대응에서 나왔다. 아주 컴컴한 어둠 속에서 아스라한 빛이 나온다. 엄혹하게 인식해야 한다. 한 뼘에 익숙하면 움직임 자체가 두려움이 된다. 지금부터는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 온다. 두려워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 저력이라는 말 쉽게 쓰곤 하지만 나는 우리 민족에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 저작권자 ©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