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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중국의 본격적인 부상으로 미국과의 세계 패권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문제를 관찰하는 데 있어 무역분쟁 등 현재 벌어지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지난 50~60년간 미국의 힘과 패권 유지의 주요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조명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힘의 원천을 알아야 앞으로의 향배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냉전기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중요한 한 축은 미국이 주도해온 독특한 에너지 세계체제였다. 주로 중동의 걸프 지역 국가들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에 기반했던 이 체제는 상업적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오일 메이저 기업들이 기술과 가격체계를 지배하고 운송과 물류는 미국 해군력에 의존했던 체제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에너지와 물자 운송을 위한 글로벌 해운산업도 파나마운하와 수에즈운하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과 동남아의 해상 수송로의 안전한 통과를 위해 미국은 항공모함 2척을 상주시키는 등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했다. 매년 5000억 달러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중동이라는 정치적 불안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서 미국 주도 무역 루트를 통해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액과 맞먹는 비용을 지불했다.
이러한 고비용의 에너지와 글로벌 물류체제는 미국 세계 패권 차원에서 미국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순기능의 효과를 가져왔다. 러시아 근대화의 상징 표트르대제는 1725년 유언에서 터키, 페르시아, 인도로 끊임없이 뚫고 들어갈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는 이란과 파키스탄이 근접해 있는 아라비아해 혹은 나중엔 한반도였다.
러시아는 19세기 말 이후 동방정책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과 함께 남진 정책을 통해 한반도 부동항(不凍港)을 기반으로 태평양 해양무역을 도모했다. 미국은 이 러시아를 대륙에 가둬 성공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패권전략의 양대 핵심축은 중동과 한반도였으며 북극 긴 해안의 항구들을 통해 무역을 할 수 없던 러시아로서는 발트해와 흑해의 항구들이 봉쇄당하고 중동과 태평양에서도 무역항을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후 러시아에서는 유럽 쪽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아시아 쪽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은 동맥경화 현상처럼 낙후되어 넓은 영토의 러시아가 반쪽짜리 국가로 남게 되었다. 아시아 대륙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되어 해양무역 세력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최근 몇 가지 장기간의 구조적 추세에 의해 지난 반세기 동안의 미국 주도 에너지와 물류 체제에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의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면서 동북아 3국이 중동의 공급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대륙 에너지 연계를 다시 시도해 오고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극동, 태평양의 부동항만 개발과 함께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한중일 동북아 3국으로 석유, 가스, 전력을 수출하려는 동북아와 태평양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동시베리아의 러시아 석유가 2010년부터 송유관을 통해 한중일 동북아 3국에 이미 상당량 공급되면서 대륙 에너지 물류망의 한 축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 석유의 동북아 연계가 비교적 수월하고 미국의 경쟁과 견제 없이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러시아 가스의 동북아 연계는 진전이 매우 느리고 아직은 가시적 성과가 없다. 2009년 사할린 액화천연가스(LNG)를 한중일 3국에 장기 수출하는 계약을 맺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2011년 고유가 시기에 750만 톤 규모의 남북러 가스관 연결에는 막판에 실패하였다. 한국에서 실패한 러시아는 2014년 중국과의 대규모 가스관계약을 체결함으로 동북아 진출의 불씨를 살리게 된다.
2017년 중국의 탈석탄 가스 전환 정책이 실제 실행단계로 진입하면서 동북아 가스 시장에 다시 가스 부족 현상이 돌아왔다. 한국도 탈원전 탈석탄 정책으로 가스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러 가스관 연결의 재부상과 함께 러시아 가스의 동북아 연계는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020-2025년 기간은 향후 러시아 가스의 동북아 수출 향배 결정에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가스의 동북아 진출에 한반도는 다시 한번 결정적 지정학적 가치를 입증할 것이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과 함께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역동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북한 변수를 고려할 때 현 한국정부의 우선 순위는 북한 통과 남·북·러 가스관 건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의 상황과는 달리 현재 푸틴 정부의 동북아 가스공급 우선순위는 LNG다. 2018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시 체결한 북극 야말 LNG 프로젝트 참여와 캄차트카 환적항 투자에 대한 MOU 체결 이후 한국의 후속 조치를 러시아는 기다리고 있으나 현재 한국으로서는 이미 미국에서 LNG 도입계약 체결을 충분히 한 상태이며 향후 추가 계약을 미국과 체결해야 한다. 때문에 한국은 러시아와 LNG보다는 가스관 계약을 원한다.
한국과 일본은 중동에서 오랫동안 장기 공급 물량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들로 2020년대 이후 장기물량 만료로 계약선 변경을 앞두고 있다. 현재 텍사스 서부의 퍼미안유전(Permian)에서 석유와 가스가 너무 많이 생산되어 2020년이면 셰일오일을 포함한 미국의 석유생산량이 15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다. 가스는 더욱 많이 생산되어 현재 1500만 톤을 수출하고 있으며 2019년 3500만 톤, 2020년 7000만 톤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수출량이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 시장을 선점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트럼프는 재임후 한국 첫 방문시 한국의 미국 LNG로의 도입선 추가 변경을 약속받았고 일본으로부터도 같은 약속을 받아냈다. 이미 한국과 중국은 작년부터 갑자기 미국 LNG 도입량 세계 2, 3위가 되었다.
최근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 ‘간헐성’의 문제가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주변국과의 국가 간 전력망 연계를 필요로 한다. 주변국과의 전력망이 연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은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생산하는 전력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의 경우 국가 간 통합된 전력망을 이용하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있다.
동북아 전력망 연계는 몽골 고비사막 지역의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동북아 지역 국가 간 광역 전력망을 구축하여 상호간 전력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전력망 네트워크 구축 내지 통합 운용 구상을 지칭한다. 고비사막의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풍력이 1,100TWh/year, 태양광이 1,500TWh/year 가량으로 각각 추정되며 러시아 극동지역의 수력 잠재량은 1,391TWh/year로 추정된다. 2017년 한국이 소비한 전력이 534TWh임을 감안하면 이 지역들이 매우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러시아, 중국, 몽골만이 서로 소규모로 전력을 거래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전력계통상 ‘고립된 섬’과 같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동북아 전력계통망 연계가 우리나라의 불리한 조건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검토해 볼 만하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동북아 역내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다양한 연계 방안이 논의되었다. 몽골-중국 간에는 고비사막-텐진 전력계통 연계가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와의 연계는 한-중간, 한-일간 연계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고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 간에는 웨이하이에서 서해안을 관통하는 연결망이, 한-일간에는 전남/경남 지역에서 마쯔에까지 연결하고, 러-일간에는 블라디보스톡-가시와자키 연계 구상이 검토되고 있다. 한-중-일간 전기요금의 차이는 가장 저렴한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전력을 보내는 것이 3국의 소비자 후생을 가장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1,000km 구간에 3GWh 고압직류송전을 연결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21세기 한중일 동북아 3국은 동북아 전력망 연계, 가스관, 철도 연결 등을 통해 에너지부족, 미세먼지 감축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러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에너지로 연결해 경제공동체 구축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동북아 국가들이 역외 지역에 의존하지 않고 역내 에너지를 이용해 자주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파괴적 에너지가 분출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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