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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56년 전 레이첼 카슨과 4년 전 나오미 클라인 - 反기후변화 시야의 도약
얼마 전 몇몇 커피 체인점에 종이 빨대가 시범 도입되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함께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탓일까? 종이빨대를 신기한 경험 정도로 여기는 이부터 종이가 눅눅해져서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사람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하지만 한가지는 공유되고 있는 듯 하다.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런 노력들이 기후변화를 저지 또는 지체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한다.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문제는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개개인의 생활 방식만의 변화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회용 용기를 더 많이 사용하고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바로 당신 때문에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가 초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생활양식 변화를 통해 아픈 지구를 보듬어 줬다고 생각하던 수많은 선량한 이들에게 이러한 주장이 약간은 거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길! 나오미 클라인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개인의 생활양식 변화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얽히고설킨 구조에 더 주목을 하자는 것이니까! 탄소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 거시적 구조, 즉 ‘채취경제’와 그로 인한 가치체계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이 책은 강론한다. 이 책의 부제가 ‘우리의 생활양식 대 기후’가 아니라 ‘자본주의 대 기후(Capitalism vs. The Climate)’인 점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이...’는 2014년에 출간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어로 번역됐다. 이 책을 새삼스레 꺼내든 이유는 56년 전인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낸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떠올랐고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당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혁명적 전환을 불러온 책이었다. 이번에 클라인이 한번 더 그 일을 했다. 내가 그렇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환경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침묵의 봄’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이 단기적으로 자연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연결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산업혁명이 자연과 인간의 건강에 끼친 폐해에 경악하여 환경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던 인물들은 카슨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을 위해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개발되어야 할 자원 창고’였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국립공원 설치 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과학기술로 이를 뒷받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에 도전한 카슨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로 과학기술이 인간과 자연에 가한 야만을 고발하였고, 새로운 성격의 환경운동을 촉발시켰다.
‘침묵의 봄’이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이야기라면, 50여년 뒤에 출간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변화 논의와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논의가 동시에 등장했던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이다. 이때는 자본주의 체제의 발목을 잡던 제한들이 제거된 신자유주의의 성공시대이자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매우 역설적인 시기였다.
이제 환경문제는 ‘침묵의 봄’이 상정한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도를 벗어났다. 목가적인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거나 과학기술을 남용하지 않겠다거나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인식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판’이 너무나 복잡해져 버렸다. 레이첼 카슨 이후의 환경주의자들은 환경문제를 오로지 환경문제로만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카슨과 달리 클라인은 기후문제를 만들어내는 체제와 구조에 주목한다. 문제는 인간의 욕망과 과학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욕망과 과학기술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드는 체제와 구조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제시하는 새로운 방향이다.
환경운동이 환경을 갉아먹는 역설
5년간의 조사 경험을 800쪽에 풀어낸 이 두꺼운 책에서 클라인은 오늘날 만연한 기후변화 부정론의 근원, 획기적인 탄소 감축 아이디어로 평가받던 탄소 거래제의 참담한 실패, 주요 환경단체와 석유기업과의 ‘불편하나 효과적인 뒷거래’,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정부의 비호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기후변화 방지 활동이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해결책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사업이 되기도 하였다. 항공 사업으로 유명한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2011년에 개최한 ‘버진 어스 챌린지(Virgin Earth Challenge)’가 그 사례다. 온실가스인 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여 저장 처리하겠다는 목적으로 알려진 공모전이 어느 순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여 상품화하는 기술”을 찾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폐유전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계속해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원유 회수 증진기술’이 등장하면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필요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채취법에 비해 세 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결국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는 ‘탄소를 제거’하려는 것에서 ‘탄소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더 효율적인 태양광 모듈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개발하거나 전기자동차를 사용한다고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될까? 클라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로 체제 전환이라도 해야 된다는 말인가?
사회주의도 또 다른 ‘채취경제’일 뿐
클라인은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후변화가 “인류 조직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클라인은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역이용하여 새로운 성격의 정치-사회-가치체계를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살충제가 가져온 폐해에 맞서기 위해 레이첼 카슨이 화학산업계에 맞섰듯이, 나오미 클라인은 이제 전 인류의 위기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의 정치-경제체제와 그에 기반한 가치체계에 맞서 싸우자고 외친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가 저지른 환경파괴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체제 역시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채취경제’일 뿐이다. 책의 상당 부분을 자본주의와 미국 산업계에 대한 비판에 할애했음에도 나오미 클라인이 생각하는 기후문제는 좌파 대 우파,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선진국가 대 개발도상국, 가진 자 대 빼앗긴 자 간의 대립을 넘어선 인류 문명 전체의 문제이다. 성장주의 및 채취경제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면 그리고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 전체의 위기라면, 답은 자명하다. 인류는 이 위기를 계기로 신(新)문명을 만들어야 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화석에너지 채취 지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블로카디아(Blockadia)’ 운동 그리고 이 운동의 목표인 공동체주의와 근원적 형태의 민주주의를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한다. 미약해 보이는 이런 움직임으로 거대한 체제에 맞설 수 있을지는 물론 회의적이다. 그러나 기후문제와 환경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해석하는 나오미 클라인에게 인간의 욕망과 과학기술은 도리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이것이’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결론이 주는 약간의 허망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인사이트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든 과학기술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였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미 충분히 발전된’ 과학기술을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파괴적이지만 창조적인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체제와 구조이지 인간의 욕망이나 과학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56년 전 ‘침묵의 봄’과 2년 전 ‘이것이’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침묵의 봄’의 초점이 욕망과 과학기술이었다면 ‘이것이’의 초점은 체제와 구조이다. 50여 년만에 환경문제에 대한 인간의 시야가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환경재앙이 진화한 것일까.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1970~ )은
캐나다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기업주도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평으로 유명하다. ‘No Logo (랜덤하우스코리아, 2002)’와 ‘쇼크 독트린: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살림Biz, 2008)’ 등의 책이 한국에도 소개되어 있다. 2014년 9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맞춰 발간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인류가 당면한 환경 제가 자본주의와 같은 채취경제와 어떻게 구조적으로 얽혀있는지 밝혀낸 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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