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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중국연구소 소장 / 국제인문학부 교수 |
중국 단체 관광객이 다시 늘어나고 면세점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한류도 다시 중국에 진출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반발로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가 경제와 문화 부문에서부터 점차 해빙되고 있다.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한중 정치 채널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인 한중관계 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향한 한국인의 마음은 여전히 차갑다. 높아진 반중 혐중 정서가 이제는 한국이 중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탈중국 정서로, 그리고 노골적인 중국 때리기, 이른바 차이나 배싱(China bashing)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이 중국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탈중국 전략을 촉구하기도 한다.
추석을 맞아 개봉하는 영화 ‘안시성’은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는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5천 고구려 병사가 20만 당나라 병사를 물리쳤듯이, 오늘 우리도 패권주의 중국에 당당히 맞서고 중국을 격퇴시켜야 한다는 밑바닥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의 반중 혐중 정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중 관계사 만큼이나 유구하고 뿌리 깊다. 전통 시대부터 그러했고 근대 이후에는 냉전적 적대 구도 속에서 그러했다. 한중 관계에서 반중 혐중 정서는 늘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다만 잠복하느냐 수면 위로 부상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직접적 계기는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이다. 사드 배치에 찬성한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사드 배치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중국의 대응에 실망했다. 박근혜 정부가 느닷없이 결정을 바꾼 사드 배치가 잘못된 결정이고, 중국이 반발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여기던 일부 사람마저도 중국이 불매운동을 벌이고 민간 교류마저 강압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 것이다.
사드 배치 갈등으로 인한 반중국 정서가 채 가시기 전에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중국이 주석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개헌을 하고, 미중 무역 갈등이 일어난 최근 일련의 상황이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던 진보 진영도 중국의 개헌을 보고서 중국에 실망하면서 반중국 혐중국으로 돌아섰다. 중국이 정치 민주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정치적 제도화를 이루고 있고 나름대로 안정된 집단지도 체제와 주기적 권력 교체 속에서 대안적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이것마저 접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보수적인 한국인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이 이번에 제대로 중국을 때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이 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제동을 걸고 굴복시켜 주길 바란다. 그래서 미국의 무역 보복 공세로 중국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뉴스에 고소하고 통쾌하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혐중 반중 정서가 방어적이라면 지금의 이런 중국 때리기는 공세적이다. 중국이 다시는 사드 보복 같은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나아가서는 중국이 세계 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공세적이다. 한국 사회 보수 진영의 전통적인 친미 반중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탈중국과 중국 때리기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우리 내면의 불편한 진실도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이 나날이 강국이 되어 가면서 한국인 느끼는 심리적 초조감과 위기감이다. 이 초조감과 위기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중국과 관련한 민족감정이자 집단무의식의 일종이다. 머지않아 한국이 중국에 추월당할 것 같은 민족적 위기감과 초조감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한중 관계사를 되돌아보면, 한국인들이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고, 중국은 우리보다 낙후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근대 이후 약 100년 동안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제 그 구도에 재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많은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당분간은 중국이 해체되거나 붕괴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은 전통 제조업 분야는 물론이고 4차 산업 분야 등 미래 신기술 방면에서 우리를 바짝 뒤쫓거나 이미 추월하고 있다. 우리는 제자리걸음, 옆걸음을 하는 사이 중국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를 집단적으로 초조하게 만들고 위기를 느끼게 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중국이 동아시아 강국이 되면서 일본이 밀려나는 것에 초조와 위기를 느끼듯이 우리도 한국이 중국에 뒤떨어질까봐 초조하다. 그래서 최근 중국을 때리는 우리의 반응이 갈수록 감정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되어 간다.
우리가 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겪은 쓰라린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지금 중국이 보여주는 패권적 행태로 보나 중국을 경계하고 방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가 부정한다고 해서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나라도 아니고 우리가 망하길 바란다고 해서 쉽게 망할 나라도 아니다. “이웃집은 선택할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선택할 수 없는 숙명”이 한중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을 보는 겹눈이다. 중국은 위협인 동시에 우리 경제와 동아시아 평화, 남북 화해에 여전히 중요한 나라다.
그럴 때 성찰의 교과서는 역시 역사다. 우리 역사가 파국을 맞거나 도탄에 빠졌던 시기는 동아시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서 동아시아 판이 흔들릴 때였다. 고려 때 동아시아에서 몽골이 일어나자 몽골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를 맞아 부상할 때 임진왜란을 당했다. 만주에서 청나라가 신흥 강자로 등장할 때 인조는 머리를 아홉 번 땅에 조아렸고 50만 백성이 끌려갔다. 일본이 근대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하여 동아시아를 제패할 때 우리는 나라를 잃고 식민지가 되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동아시아 판이 흔들릴 때마다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나라를 잃고 위기에 처했는가? 깊은 역사적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 다시 동아시아 판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여기에 남북관계 변화가 맞물리면서 동아시아 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새롭게 열린 절체절명의 중대한 고비이자 기회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걸린 이 시기를 잘 헤쳐나아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역사에서 지혜를 얻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간 것은 명나라가 망한 지 136년이 지난 때였다. 명나라는 이미 지상에서 사라졌고 청나라만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조선 지배층은 명이 조선을 구해주었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면서 여전히 명나라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망한 명나라 연호를 여전히 쓰던 그들은 청나라를 야만의 오랑캐라고 비난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청나라가 하루 빨리 멸망하기를 고대하였고 청을 치자는 북벌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류 지식인들에게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말했다. “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은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를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 법이 오랑캐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연암은 백성의 삶을 기준에 둔 이용후생의 눈으로 청나라를 볼 것을 촉구하였다. 그에게 중국의 장관은 만리장성도 자금성도 아니었다. 연암은 “정말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다”고 말했다. 왜 하필 이것이 중국의 장관인가? 연암은 중국 사람들이 깨진 기와를 버리지 않고 그것으로 담을 쌓기도 하고 질퍽거리지 않게 마당에 까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말똥을 주어서 거름으로 쓰는 것에도 눈이 갔다. 연암은 명나라를 사대하는 눈으로 청나라를 보지 않았다. 청나라의 무엇이 조선 백성의 삶을 두텁게 하고 쓰임을 이롭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눈으로, 이용후생의 눈으로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를 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암이 청나라를 보던 이용후생의 눈이다. 오직 백성의 삶을 기준으로 삼아서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고 두텁게 하는 눈으로 중국을 보고, 우리 주변 강국을 보아야 한다. 과거의 눈이 아니라 미래의 눈으로 동아시아를 보고, 일본의 눈과 미국의 눈을 우리의 눈이라고 여기는 습관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눈, 특정 정치 세력이나 특정 이념의 눈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삶을 위한 눈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성찰할 때다. 동아시아 지각 판이 다시 크게 요동치는 이 고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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