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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이른바 ‘블랙스완(검은 백조)’ 현상은 2017년에도 핵심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통과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권위 있는 여론조사 기관들도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이제 이러한 현상은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올해에는 전 세계가 블랙스완의 여파를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브렉시트 협상이 구체화되고 1월 20일(현지시간)에는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성이 지배하게 될 올해의 국제 정세를 유수의 싱크탱크들이 전망해봤다.
[與時齋 - 중앙SUNDAY 공동기획]
세계 싱크탱크가 전망한 2017년 국제정세
[미국] 안보위협 목록 첫 번째는 ‘미국 내 상황’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17년 전망 보고서’ 첫 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맞이하게 될 국가안보 과제의 목록을 열거했다. 흥미롭게도 서두는 트럼프 행정부 자체에 대한 염려로 시작한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동안 제시한 대외정책은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정서’(sentiment)라는 것이다. 통치는 기분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부 운영의 기술과 현안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올바른 기억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안보위협 목록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내 상황이 거론된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분야도 안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미국 내 사정을 지켜보며 동맹국들은 의구심을 품고 경쟁국들은 과감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하고 있다. 국력이 물리적 역량과 정신적 의지의 함수라고 한다면 군사적·경제적 역량도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 국론마저 분열된 국가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우위가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국들의 모호한 태도와 점차 공세적으로 변해가는 경쟁국들의 도전 역시 미국 안보의 주요 과제다. 경제 기반의 약화는 국방 예산 축소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동맹에 대한 안보 제공 능력의 감퇴와 더불어 미국과 동맹국 간의 상호 불신과 불안감 증폭으로 이어지는 연쇄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제시한 방위비 분담 재협상 및 동맹 전반에 대한 재검토 공약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정서가 정책을 압도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고서는 완전히 평등하게 호혜적인 동맹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특히 냉전기보다 위협의 형태가 더 복잡하고 모호해진 이 시대에 미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음을 지적한다. 개별 동맹국들이 자체적인 군사 역량과 더불어 동맹국들 간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고 있다. 군사 합동성과 상호 운용성을 제고해 안전보장 체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명분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트럼프가 주창하는 동맹 재검토와 책임의 재분배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헌법 9조 재해석을 통해 일본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해외 전력 투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나 한국이 전시작전권 전환을 연기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제 정세가 지속되는 동안은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일본의 군비 강화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릴 공산이 크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 군비 증강은 상수로 고려하되 역사적 선례와 전통적인 세력균형 모델을 명분으로 삼아 최대한 보상을 취하는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CSIS 보고서에서 바라보는 세계 패권 경쟁 구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권력 공백(power vacuum)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들의 도전은 거세지고 있지만 물리적으로나 관념적으로 도전자들의 영향력은 아직 지역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즉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흔들어 놓을 역량은 있지만 대안적 질서를 세울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무주공산, 군웅할거의 양상이 전개될 위험이 있음을 암시한다.
각 지역의 경쟁 세력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들이 단합해 미국에 대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의 전망은 미국에는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는 균형과 편승, 혹은 또 다른 노선으로의 전환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암중모색의 시간이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게다가 북핵 위협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환경의 불확실성까지 가중된다면 한국 외교정책은 자칫하면 방향을 잃고 표류할 위험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또 다른 유명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외교평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산하 예방조치센터(Center for Preventive Action)가 매년 발간하는 예방 우선순위 조사(Preventive Priorities Survey) 2017년 보고서 표지에 북한군 열병식 사진이 실린 것은 일견 의미심장하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수많은 안보 위협을 미국 국익에 미치는 영향과 발생 가능성이라는 두 변수로 평가해 3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2017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무력충돌, 미국 내 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및 테러 공격과 더불어 북한 핵무기 개발로 초래될 위기사태가 1급 위협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다.
2017년 세계 정세의 향방은 미국에도, 그리고 한국에도 앞으로 최소 10년간의 운명을 판가름할 결정적 국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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