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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ODA 정책 (3) 러시아 - 러시아의 공적개발원조(ODA)
저자: 김동혁 (고려대), 이상준 (국민대)
2018-008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ODA(정부 개발원조) 정책’ 입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국가별ODA 정책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그 가운데 국가전략 혹은 대외정책과 연계된ODA의 중점 과제는 무엇인지도 살펴봅니다. 또 만약 각국이 특정지역에 중심을 둔 ODA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도 분석해볼 것입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세계에서 가장 큰 원조국가 가운데 하나였지만 소련 해체 이후 원조 수혜국으로 몰락하였다가 경제가 다시 부활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원조 공여국으로 복귀한 독특한 경험을 가진 국가이다. 소련 시절 공적 원조 규모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측 전문가들은 연 평균 총국민소득(GNI)의 0.20~0.25%를 집행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금액을 산정하면 1954년부터 1991년까지 총780억 달러를 원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의 개발 원조는 1950년대 중반부터 흐루쇼프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원조수혜국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소련의 정치적 목적을 투영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련 개발원조의 핵심 목표는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대신 그 자리에 소련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진영 내에서 소련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대응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개발원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이 자신들의 경제를 해결하는 해법으로 소비에트 공산주의 외에 대안이 없음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즉 사회주의 세계를 완성하는 수단으로서 개발협력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소련의 개발원조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개발원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련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소비에트 계획경제체계에 포함되어 집행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행정적이면서도 매우 관료적인 방식으로 집행되었다. ODA를 목적으로 1957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대외경제문제위원회를 설치하고 제3세계에 대한 원조 문제를 총괄적으로 지휘하도록 조정하였다. 소련은 원조를 받는 국가들이 소련을 식민화 세력으로 인식하거나 주변부를 착취하는 제국으로 보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대로 제3세계 국가들이 소련의 독특한 근대화 경험을 자국 발전에 필요한 경험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적극 유도하였다.
1981년까지 소련은 81개 개도국과 경제와 기술 협력에 대한 합의를 체결했는데, 그 중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제 3세계 개도국이 65개였고 이외에는 사회주의 진영의 개도국들도 포함되었다. 1991년 1월까지 개도국에서 수행된 대규모 프로젝트의 수는 모두 907개로서 중공업 분야, 금속공업 분야, 기계 제작 분야, 전력 분야, 화석연료 및 원자재 분야 등 주로 인프라 및 산업기반 마련을 위한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발전소와 송전선로 등 전기에너지 분야 프로젝트가 전체 대외원조의 30%를 차지하는 것은 소련의 개발협력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한편 대외원조의 5%는 30여개 국가의 지리탐사 분야에 공여되었다. 소련은 이러한 지리적 탐사에 대해 경제적 대가를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서방의 에너지 메이저 기업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탐사를 하는 것에 대항하여 소련의 지정학적 이익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소련이 내부적 경제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됨에 따라 개도국들에 대한 원조는 계속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1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캄보디아, 쿠바, 에티오피아 및 니카라과에 대한 개발원조는 아예 중단되었다. 더욱이 소련 해체와 계속된 경제 위기로 인해 러시아는 역설적으로 원조 수혜국이 되었다. 1990년에서 2005년까지 다른 중부 및 동구 유럽 국가들 및 이행경제들과 함께 러시아는 DAC의 Part II에 해당하는 원조 수혜국 명단에 포함되었다. 러시아가 DAC 회원국으로부터 받은 공적 원조 금액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경제가 부활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이후부터 러시아는 ODA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러시아 원조 프로그램을 구축하는데 있어 과거 소련시기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수혜국이라는 위치를 경험하였다는 점에서 좀 더 변화된 개발 원조 개념을 포함하기를 원하였다. 또한 소련 해체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한 제한된 재정 수단 때문에 최근까지 러시아의 개발원조 참여는 그 규모와 원조 형태면에서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감안하였다.
새로운 개발협력 개념에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따라 개발협력의 방향과 규모가 가변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하였다. 구체적으로 2006년 러시아 정부가 국제개발원조 참여 개념(Concept of Russia’s Participation in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istance)을 채택할 당시 러시아 정부의 ODA 예산은 자동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포함하였다. 이 개념은 러시아가 2006년 G8 정상회담 의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되었고 2007년 푸틴 대통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러시아의 개발 원조 개념은 수혜국들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고, 자연재해 및 국제 분쟁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며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와 신뢰성을 강화시키는 국제적인 금융, 기술, 인적 요소 및 다른 원조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개발 협력 정책의 기본 골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정부의 개발 원조 개념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개발협력의 목표치와는 다르게 러시아 국가의 형편에 맞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OECD DAC은 GNI의 0.7%를 ODA로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준은 현실적으로 러시아가 당장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치이다. 물론 이러한 목표치를 여타 OECD DAC 회원국들도 달성하지는 못한 상태여서 이러한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을 대부분 국가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명문화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제개발원조 목적으로 최소 GDP의 0.7%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원조 제공을 늘리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부채 감액을 포함하지 않은 러시아 연방 개발 원조 지출 예산은 9,700만 달러 수준이었다.
한편 오늘날 적용되는 러시아 개발원조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는 2006년 G8 의장국 기간 동안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개발원조의 효과를 둘러싼 실증적 증거 보다는 다소 규범적인 측면에서 결정되었다. 러시아는 현재 에너지, 보건 및 교육 분야를 개발협력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이러한 우선순위 결정은 소련 발전체계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러시아가 해당 분야에서 상대적인 우위와 이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명분에서 러시아 정부는 이렇게 우선순위를 결정하였다.
러시아의 2006년 국제개발원조 지출은 OECD DAC 회원국 뿐 아니라 일부 개도국(중국과 인도)들보다도 낮았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위기(2008-2009) 이후 이러한 경향성은 변화되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러시아는 개발원조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국제개발원조 지출을 대폭 증가시켰다. 그 결과 2009년 러시아의 ODA는 2009년에 비해 3.5배 이상 증가하였다. 물론 러시아의 ODA가 GN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GNI대비 러시아의 ODA 비율은 2004년 0.015%에서 2009년 0.065%에 머물렀으며 이는 OECD DAC 회원국 수준에 비해서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2015년 러시아의 순 ODA는 12억 달러로 2014년 8억 7,600만 달러 대비 95% 증가하였고 GNI 대비 ODA 비율은 0.05%에서 0.09%까지 증가하였다. 러시아의 개발 원조가 꾸준히 중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러시아는 과도한 부채를 진 최빈국들의 부채 탕감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개발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 소련시기 제공한 차관을 갚지 못하는 개도국의 부채를 탕감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의 제한된 재정능력을 보완하고 이들 국가에게 새로운 개발협력을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2005년 G8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갚아야 하는 113억달러 가치의 부채를 탕감시켜 주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부채탕감 금액은 2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채무 탕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다른 G8 국가들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부족한 개발 원조 재원을 보충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다시금 복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국제 다자간 협력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저비용 고효율 개발협력도 러시아의 부족한 재원을 보완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농촌 지역에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계획이다. 러시아는 지구촌 에너지 파트너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형태의 협력도 계속 참여하고 있다. 소규모 발전소, 소규모 수력발전 댐건설, 아프리카 원거리 지역까지 이어지는 전력 송전선 건설 프로젝트가 이 프로그램 하에서 수행되고 있다. 러시아는 2007년부터 이 계획을 위해 약 3000만 달러를 편성하고 지원하였다. 전체 프로그램 대비 금액은 크지 않지만 이를 통해 러시아는 꾸준히 아프리카 개발협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었다.
또하는 러시아는 2008년 10월 개발을 위한 교육 원조 신탁 자금(Russia Education Aid for Development Trust Fund)을 편성하였다. 이것은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기부자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강화할 목적으로 러시아 정부와 세계은행이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저소득국가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이었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서 7개국을 선정하였다. 신탁 기금은 5년 기간 동안 3200만 달러가 배정되었다.
과거 소련 시기 소비에트 교육은 소련 ODA 프로그램의 주요 도구이자 중심이었다. 외국인들은 과학과 문화 협력 합의와 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무료로 교육을 받았다. 소련 국제 교육의 상징은 콩고 혁명가 파트리사 루붐바의 이름을 따서 1960년 모스크바 남부에 설립된 루붐바 민족친선대학이었다. 한때 루붐바 민족친선대학의 외국인 학생 수는 전세계 외국인 학생 수의 10.8%에 달하기도 할 정도로 소련 교육원조의 상징이었다. 소련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 80%는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학생들이었다. 이러한 인적자원 개발협력 요소는 냉전시기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1970년대 소련의 대학을 졸업한 상위 엘리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의 최상위 권력층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2010년 기준으로 러시아는 전세계 외국인 유학생 중 3.9%만이 목적지로 삼는 나라가 되었고, 러시아 유학중인 학생들의 국가별 비중도 큰 변화를 보여 OECD 국가 출신이 45,000명인 반면, 개도국 출신은 23,000명에 그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교육 분야의 원조 감소로 과거와 같은 인적 영향력 요소는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최고위 권력 상층부에서 러시아의 인적 네트워크 영향력은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교육분야의 개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시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외국인 학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20년까지 러시아의 장기 사회경제 발전 개념』(러시아 연방 경제개발부 2008)에서는 이러한 교육 분야의 개발 협력을 목적으로 외국인 학생 지원 체계 개념을 수립하고 있다.
러시아는 2007년 3월 2010년에서 2019년 사이에 백신 개발을 위한 선생적시장조성에 8000만 달러를 기여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의 G8 참여와 특히 2006년 G8 의장국이 되면서 선행적 시장조성 기여 결정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 소비자 보호 및 복지국(Роспотребнадзор)에 따르면 2000-2005년 동안 세계 보건 이슈에 러시아의 전체 기여는 5293만 달러였고, 2006년 한 해 2985만 달러였으며 2007년과 2008년 4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국제적 위상이 추락하였던 러시아 국제 개발 원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유가 상승과 더불어 경제가 부활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러시아는 국제 개발 원조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istance) 분야에서 러시아 연방의 정책 개념을 2014년 4월 22일 러시아 연방 대통령령 제259호에 의해 수립하였다. 러시아 개발 원조의 대상 지역에 새롭게 편성된 국가는 좋은 이웃으로 또 다양한 형태의 동맹 정책을 추구하는 독립 국가 연합,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또한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 국제 지원의 핵심 우선순위이다. 2015년 러시아 연방은 주로 시리아, 세르비아, 기니 뿐 아니라 독립 국가 연합 회원국들에게 양자 개발 원조를 제공했다. 러시아의 ODA의 약 60%가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러시아 외무성과 재무성은 다른 정부 기관들과 협력하여 러시아 연방의 개발 협력 정책을 수립하고 그 이행을 감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의 다자간 ODA는 세계은행 그룹 (2015 년 다자간 ODA의 53% 차지)과 유엔 (36%), 지역 개발 은행 (1%)을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러시아 전체 ODA의 22%가 다자간 조직과의 협력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러시아의 양자 개발 협력의 우선 부문은 보건, 공공 재정, 식량 안보, 영양 및 교육 분야로서 G8 정상회담 의장국이었던 당시 형성되었던 우선순위는 현재도 유효하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개발협력은 공여국, 수혜국, 공여국으로 변경되는 구조속에서 개도국의 문제해결 혹은 체제전환 과정의 문제를 자국의 개발협력 프로그램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측면에서 개발협력이 진행되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고 개발협력의 개선과 발전에 대한 의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소련시기 개도국으로부터 반환받지 쌍무 채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되었던 양자관계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개발협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러시아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주변 핵심 협력국과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부채를 탕감해주고 새로운 협력을 추진할 준비가 된 상태이다. 북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로 대북제재 국면이 계속되고 있지만 향후 북핵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게 되면 러시아는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북한과 새로운 개발협력을 진행할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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