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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미국 도시 문제의 현주소, 한국의 미래

나지원 (동아시아 연구원)

2018.01.03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도시 문제 (1) 미국 - [이슈브리프] 미국 도시 문제의 현주소, 한국의 미래
저자: 나지원 (동아시아연구원)
No.2018-001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도시문제 현황 및 대응방향’ 입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국가별 도시들이 당면한 상황과 과제들, 구체적으로 고속성장과 과밀집, 고령화에 따른 공동화 현상 등에 대해 알아봅니다. 또 각국이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도시 정책을 진행 중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21세기 세계 사회 문제의 축소판인 도시 문제

세계적으로 도시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되어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66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2014년 UN의 세계 도시화 전망 보고서는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마다 도시화의 진행 정도와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도시가 성장해나가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들은 이미 수 세기에 걸쳐 도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시의 성장보다는 유지관리와 보수, 나아가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도시화율이 90퍼센트를 넘어서 순수한 도시국가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수위(首位)의 도시화 국가인 한국 또한 머지않아 유사한 문제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선진국들의 도시 정책을 유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 선진국들 중에서도 미국의 도시 문제와 관련 정책은 특히 다양한 정책적,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300년이 넘는 도시화의 역사를 가진 동부에서부터 한때 지역 산업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산업의 쇠퇴와 함께 몰락한 중서부,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도시가 형성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도시가 태어나고 있는 서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도시 문제를 겪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 역시 각 지역마다 판이한 도시문제와 도시정책의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 최대이자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로 평가받고 있는 브루킹스 연구소(The Brooking Institution)가 도시 문제를 국내 연구 주제 중 독립된 한 분야로 지정하여 다루고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특히 미국 국내외의 거의 모든 연구 주제를 다루는 거대 연구기관답게 도시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또한 인구, 환경, 산업, 경제 등 다양한 인접 분야와의 연계를 통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분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익한 참고 자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도시 문제는 크게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과 물자의 흐름에 관계되는 교통이고 두 번째는 물의 흐름을 관리하는 상하수도이다. 도시 또한 인체와 같이 모든 것들의 흐름이 막힘없이 원활해야 삶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모든 도시에 공통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문제인 기반시설(인프라) 전반의 개량과 노후화는 도시화의 역사가 깊은 미국의 도시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어떻게 하면 도시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주요한 관심사다. 이는 비단 건물과 기반시설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람과 일자리, 그리고 도시의 행정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은 여전히 선진국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민자의 나라’라는 점에서 인구학적으로 젊으며 도시 지역은 특히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도시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롭게 태어나야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연방정부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하다. 각 도시가 보유한 인적, 물적, 금전적 자원만으로는 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 도시들이 직면한 네 번째 문제이다. 그러나 연방과 지방 정부 간의 입장과 관점 차이,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 부분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도로와 교통: 사람과 상품이 지나는 길

교통 문제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도로 설계와 운영, 교통량 관리 같은 도로 교통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보다 포괄적인 ‘접근성(access)’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프리 거트만(Jeffrey Gutman) 선임연구위원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프리토리아 대학(University of Pretoria) 크리스토 벤터(Christo Venter) 교통공학 교수가 제시한 접근성의 세 가지 측면을 언급한다. 첫 번째는 이동성의 품질(quality of mobility), 두 번째는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access to transport), 세 번째가 기회에 대한 접근성(access to opportunities)이다. 이 중 앞의 두 가지 요소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이동성의 품질은 소요시간, 교통수단 간 환승 절차의 간편함, 이동 수단의 안락함과 청결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은 대중교통 간 연계 정도 및 노선망의 구축범위(coverage)를 아우르는 요소다.

문제는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다. 무엇보다 거트만 박사가 이 개념을 도시 교통 정책 입안, 실행,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란 시민들이 직장, 각종 서비스, 상업활동(소비 및 판매) 장소들과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리킨다. 이 개념이 교통 문제를 인식하는 기존 관점과 차별되는 부분은 주민이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수단과 경로를 고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 장소들의 입지와 상대적인 위치까지 검토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도시의 토지 사용과 도시 계획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각 지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잇는 방법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점들의 위치와 구조 자체를 효율적으로 변경, 개선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으로 교통 문제의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의 도시 및 교통 문제 전문가인 랜덜 오툴(Randal O’Toole)이 샌안토니오(San Antonio) 시의 철도(경전철 및 지하철) 시설 확충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광의의 접근성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여러 도시에서 진행 중인 신규 (경)전철노선 건설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전철은 교외와 시내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으로서 외곽에 거주하면서 중심부로 통근하는 중산층들의 차량 이용을 대체하도록 유도하는 방편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저유가 기조 지속과 함께 우버(Uber)나 리프트(Lyft) 등 승용차 공유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샌안토니오 시의 경우 2012년에서 2016년 사이 대중교통 이용객 수가 22%나 감소했고 2017년에도 감소세가 지속되었다. 샌안토니오 시만 예외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시애틀을 제외한 미국의 모든 대도시 광역권에서 동일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전철 개통의 효과가 의문시되는 지점이다.

대중교통 전체의 효용이 감소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토목사업인 전철노선 건설에 예산을 대거 투입한 반대급부로 또 다른 대중교통인 버스 서비스는 도리어 감축되고 있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경우, 경전철 개통 이후 버스 운행 감축 여파로 경전철 이용객 1인당 버스 승객은 4명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신규 전철 개통을 크게 홍보하면서 뒤로는 조용히 버스 서비스를 감축하고 결국 대중교통 전체 이용자 수는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패턴은 비단 로스앤젤레스만의 일이 아니라 애틀랜타에서 산호세에 이르는 미국 주요 대도시권에서 복사판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대도시권 전철 건설로 인해 대중교통 전체의 효율과 효용이 감소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세금의 낭비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오툴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대중교통에 더 많이 의존하는, 다시 말해 대중교통으로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저소득, 유색인종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철이 당초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던 중산층을 겨냥한 대중교통이라면 버스는 자가용이 없으며 시내(주로 슬럼가)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의 주요 이동수단이다. 결국 대규모 전철 공사의 대가로 버스 운행을 줄이는 것은 “대중교통 인종분리정책(transit apartheid)”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상하수도: 물이 지나는 길

고대 로마제국의 번영과 발전을 가장 잘 체현한 구조물은 콜로세움이나 판테온과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다름 아닌 도로와 수도(교)이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 수 있는 가도(街道)와 주민의 위생 및 의식주에 필수적인 상하수도 시설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축되었고 관리되느냐에 도시의 존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도로와 수도는 그 동맥과 정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생물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도시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주거-업무-생활양식이 등장해 도시를 대체하지 않는 이상, 그 중요성과 필요성은 변함없을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수재(水災)를 동반한 기상이변이 점차 빈발하고 있는 최근 상황은 도시의 수요에 부합하는 수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더욱 긴요한 과제로 만들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8~2009년의 금융위기로 인해 대다수의 주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재정에 타격을 입어 수도를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공급에 필요한 재원마련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이러한 상하수도 운영 및 수자원 수급 문제가 가중되었다. 디트로이트와 인접한 중서부의 도시인 플린트(Flint)에서 일어난 수자원 관련 사고는 미국의 많은 도시들이 직면한 상하수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4년 도시 재정이 위기상태에 빠지면서 플린트 시 당국은 디트로이트와 같은 주변 대도시로부터 상수도 공급을 받는 대신 인근의 플린트 강에서 직접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질 및 위생상태에 대한 검사를 소홀히 한 나머지 수원(水源)을 변경한 직후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수많은 건강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도시 중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곳은 플린트만아 아니다. 미국 전역에 약 51,000개의 지역이 각자의 상수도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연방 정부 차원의 관리가 되는 곳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상수도 관련 기반시설에 투입되는 공공 지출에서 연방정부의 비중은 25%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각 지방 정부는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하고 있다. 콜럼버스, 시카고, 볼티모어와 같은 대도시들은 최신 상수도 시설 설계와 투자를 위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공 인프라 펜베스트(PENNVEST) 프로그램은 1988년 시작된 이래 기부와 저리 융자 등으로 약 80억 달러를 유치하여 식수, 하수도, 빗물 등 수자원 관리 시설 전반의 개선을 위한 통합 재원을 확보했고 그 결과, 노후 상수도를 교체, 관리와 기술지원, 규제 효율성 제고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도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지역은 이러한 난제를 풀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4월 브루킹스 연구소(The Brookings Institution)의 도시정책프로그램(Metropolitan Policy Program)의 샬리니 바즈할라(Shalini Vajjhala) 연구위원과 아틀라스 마켓플레이스(Atlas Marketplace)의 공동설립자인 엘러리 멍크스(Ellory Monks)가 공동으로 집필한 글은 이들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전역에 위치한 약 800여 개의 지역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결합되어 있는 이 지역들은 시대에 맞게 우수와 가정, 상업, 산업폐수를 효율적으로 전달, 처리할 수 있는 새 시설을 마련하는 일이 당면과제임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대로 각 지방 정부가 겪고 있는 재정 문제에도 우선적인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기반시설들이 전반적으로 건설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노후 시설(legacy asset)이라는 점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즉, 완전히 새로운 시설을 설계하고 건설하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단계적으로 교체 혹은 수리해나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용은 적게 들겠지만 도시 수자원 관리에 관한 최근과 향후의 문제들에 즉각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는 부담이 존재한다.

이처럼 파편화, 노후화된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한 가지 급진적인 해법으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안이 바로 도시 수자원 시장(urban water market)이다. 이는 현재 약 52,000여개로 나뉜 미국 각지의 상수도 시스템을 (지역별로) 통합하여 수자원의 수요, 공급을 보다 원활히 조절하는 데에 목표를 두는 해법이다. 다시 말해, 지역별로 합작기구(Joint-powers authorities, JPAs)를 설립해 수자원의 공급, 처리, 공급을 보다 대규모로 넓은 지역 차원에서 관리함으로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다양한 장치들, 예를 들면 상수도 거래(water trading) 등이 가능해지고 기존 기반시설 재원 조달이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친환경적인 수자원 관리 시설 투자를 위한 인센티브를 키우는 방안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도시 상수도 운영 방안에 로스앤젤레스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 지역이 미국에서 가장 큰 대도시 광역권이자 가장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스앤젤레스 정부는 도시 수자원 시장을 통해 각 지역의 지속가능한 수자원을 물색함으로써 가뭄 빈발이나 기후 변화 등이 일으키는 수자원 문제를 보다 신속하게 해결하는 회복력(resiliency)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미래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각 소규모 지자체가 공동으로 표준화된 수자원 관리를 함으로써 효율을 제고하는 동시에 수자원 접근성과 긴밀히 연관된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에도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방안의 장점이라고 브루킹스 연구소의 도시정책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인 조셉 케인(Joseph Kane)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러스킨 혁신센터(Luskin Innovation Center)의 그레고리 피어스(Gregory Pierce) 선임연구원은 평가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 늙은 도시, 젊은 도시

하지만 좀 더 넓은 차원에서 본다면 도시 상하수도망 개선과 수자원 관리 혁신은 미국 (더 나아가 서구) 도시 대부분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근원적인 고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늙어가는 도시, 즉 도시 건축물과 시설의 노후화이다. 평균적으로 한 세기가 넘으며 경우에 따라서 2~3세기에 걸친 오랜 도시화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도시들은 그 역사에 걸맞게 외관상으로는 전통과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가 민속촌이나 박물관이 아니라 21세기의 사람들이 실제로 일상을 살아가는 터전임을 고려하면 오래된 건축물과 기간시설들은 새로운 기술과 생활방식을 도입하는 데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미국의 여러 도시 정부 당국자들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익히 인식하고 있고 그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스턴과 같은 유서 깊은 도시들도 이른바 스마트 시티 방안 공모(Smart City Request for Ideas)를 통해 신규 인프라 구축 및 조달을 위한 혁신적 방법을 널리 구하고 있다. 특히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자금이 각 지역의 필요에 맞는 사업에 제대로 쓰일 수 있게 하는 투자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도시 간, 지역 간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150개가 넘는 미국의 도시와 군(county)의 선출직 자치체장들은 미국 지역사회 재건 파트너십(Resilient Communities for America Partnership)을 맺고 기반시설 갱신 및 개선의 여러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기로 확약했다.

그러나 늙어가는 것은 건물과 시설뿐만이 아니다. 도시화가 진행된 국가들은 대체로 선진국이며 선진국은 현재 대부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이다. 이는 미국과 미국 도시에도 해당되는 문제다. 또한 생활양식의 변화와 지가, 환경, 생활비 등의 요인이 작용하면서 도시 인구가 교외로 유출되는 결과, 공동화로 인한 도시 인구 감소가 선진국 도시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cKinsey Global Institute)는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세계 대도시 인구가 6% 감소했음을 지적하면서 향후 10년간 선진국 도시지역의 인구가 17%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동 보고서는 일본,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미국은 이들 지역에 비해 인구 구조상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나 서유럽에 비해 출산율이 높고 이민 인구도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 도시가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도시의 인구 구성 자체가 도시마다 다양하고 이에 따라 성장 전략도 서로 다르다는 점도 인구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애틀랜타, 댈러스, 휴스턴, 피닉스와 같이 최근 빠르게 인구가 늘고 있는 도시들의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이민자 인구이다. 이 도시들에서 최근 일어난 인구 증가 중 1/4 가량이 이민자인 것이다.

사람이 젊은 도시는 아이디어도 더 젊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성장동력과 산업을 위한 혁신이 필요한 최근 추세에서 젊은 인구가 유리한 또 하나의 이유다. 미국의 도시들 또한 이러한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도시 내에 이른바 혁신 특별 구역(innovation district)을 세우고 있다. 혁신과 최첨단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실리콘밸리에서 핵심 연구개발을 진행하던 구글이 세계 각지의 대도시에 연구 거점을 새롭게 연 것 또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보스턴, 브루클린, 시카고,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과 같은 도시에서 과거 제조업이 융성했던 지역에 남은 폐공장과 창고들이 혁신과 실험의 장으로 탈바꿈하면서 부활하고 있는 모습은 혁신 구역의 효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이러한 구 공업지역은 도심과 해안 또는 강변에 가깝고 교통시설이 완비되어 있다는 점도 첨단산업의 이주에 매력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구 구성이 다양하고 인구 유출입이 유동적이며 문화생활, 편의시설 등 업무, 생활, 여가의 모든 면에서 거주 환경이 유리하다는 점에서 도시 지역은 젊고 창의적인 인구를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다는 것이 세계 도시화 전문가이자 브루킹스 객원 연구원인 브루스 캣츠(Bruce Katz) 런던정경대(LSE) 교수와 줄리 웨그너(Julie Wagner) 선임연구위원은 진단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혁신 구역으로 이미 유명해진 덴버, 포틀랜드, 샌디에이고와 같은 도시들만이 아니라 버펄로, 클리블랜드, 피츠버그와 같이 한때 공업으로 흥했으나 현재 침체에 빠진 중서부의 공업도시들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혁신과 신기술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되살리고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일으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신기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시민들이 도시 행정과 정치과정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지기도 한다. 시카고 시정부의 혁신기술부(Department of Innovation and Technology)는 (쥐 등) 설치류의 창궐을 사전에 막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적, 물적 자원 할당과 배치를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에서 세대별, 성별, 계급별로 벌어지는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좁히고 정책 기획과 실행에서의 불평등을 줄이게 된 것도 긍정적인 효과다. 미국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른바 혁신 실험실(Innovation Labs)을 열고 기술을 활용해 공공 부문의 성과를 제고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험하고 있다.

답이 없는 연방정부, 답을 찾는 지방정부

교통과 상하수도를 포함한 기반시설의 재정비와 혁신 성장 동력 마련 등 미국 여러 도시들의 이러한 자구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지방자치의 전통이 깊은 미국이기에 각 지역이 시행하는 이러한 실험적 정책의 효과가 증대되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연방정부의 적절한 지원은 해가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밖의 여러 환경 문제에서 파생되고 야기되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의 규모가 커지면서 특정한 지역만이 책임을 지고 수습과 해결을 담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어난 오로빌 댐(Oroville Dam) 사태는 연방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강수량으로 인해 댐이 범람 위기까지 몰렸던 이 사건에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공조가 없었다면 하류에 거주하던 약 18만 명이 주민이 신속하게 대피하고 댐의 보수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브루킹스 도시 정책 프로그램(Metropolitan Policy Program)의 조셉 케인(Joseph Kane) 선임연구위원은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마다 필요한 지원과 협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대상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은 지방정부가 각자의 필요와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시하며 협업 과정에서도 이러한 소통을 원활하고 반복적으로 이어나가는 데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예를 들어, 미국 각지에 있는 댐의 경우 텍사스 주에는 무려 7,395개가 있는 반면 델라웨어 주에는 고작 83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국 차원에서 각 지역에 필요한 규제, 개입, 유지보수, 투자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댐을 위시하여 각 지역에 건설 혹은 배치된 기반시설과 공공구조물의 소유권 및 관리 책임이 대체로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 지방 정부, 심지어 민간에 있다는 점도 중앙과 지역의 협업이 기반시설 노후화 등의 문제 해결에 필수적임을 방증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정부의 발언과 행보는 이러한 협업의 전망 자체를 불투명하고 어둡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후보 유세 당시에나 취임 이후 일관되게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와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지만 정작 환경보호국 등 이러한 정책을 실제로 집행할 정부 기관의 예산과 규모는 대폭 축소하면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의회에서도 각 지역의 상하수도 설비 등 기반시설 재정비에 관련된 예산안 편성과 정책 입안의 세부사항을 확정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도시 정책 프로그램의 비상근 선임연구위원인 린 브로더스(Lynn Broaddus)와 조셉 케인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연방의 결정만을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 선제적으로 혁신을 주도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특히 수자원 관리 문제와 관련하여 경제활동에서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청정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도입함으로써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이를 통해 강수 패턴의 급격한 변화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후 변화가 강수량을 비정상적으로 변화시키고 이로 인해 기반 시설을 포함한 도시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가 영향과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오로빌 댐 사태는 앞으로 수없이 되풀이될 위기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더불어 이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자체를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기반시설의 유연성(flexible infrastructure)을 담보해야 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가장 큰 수자원 소비 산업이자 수질오염의 최대 근원이기도 한 농업 분야를 이러한 정책 수립과 집행 논의과정에 포함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조치와 무관하게 지방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미국의 지방자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짐작하면서 한국의 상황과 대비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기반시설 노후화와 재정비,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도시 차원의 대응방안, 도시인구구조의 고령화와 공동화, 혁신산업의 유치와 개발 등 지금까지 미국의 도시문제를 돌아보면, 세부사항에서 미국의 특수성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총체적으로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움을 깨달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압축적인 도시화를 통해 이미 미국보다 높은 도시화율을 달성한 한국에게 더욱 절실하고 긴요한 사안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각 지역과 연구기관들을 더욱 세심하고 성실하게 살펴보면서 미국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존재로 알아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처럼 미국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고민과 문제가 생각보다 많고 그런 점에서 서로에게 배울 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 문제야말로 그처럼 수많은 공통의 관심사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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