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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유럽/EU의 농업정책: 공동농업정책(CAP)의 개혁과 새로운 식물배양기술 논쟁

김득갑 (연세대 쟝 모네 EU 센터)

2017.12.27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농업 정책 (4) 유럽 - 유럽/EU의 농업정책: 공동농업정책(CAP)의 개혁과 새로운 식물배양기술 논쟁
저자: 김득갑 (연세대 쟝 모네 EU 센터)
No.2017-071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농업 정책’입니다. 각국이 중시하는 농업정책의 우선 수위와 주요 현안에 대해 살펴봅니다. 빈곤, 식량 수급, 식품안전, 고부가가치 농업 개발 등 주요 이슈들에 대한 각국의 입장 중 주목할 만한 정책 및 논의를 알아볼 것입니다. 또한 신성장동력으로써 농업 육성을 둘러싼 각국의 정책들을 비교하고자 합니다.

EU 영토의 52%는 농촌지역이며, EU 인구의 약 1/5에 해당되는 1억 1,300만 명이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농업은 EU 전체 GDP의 1.6%, 종사자는 EU 인구의 약 5%(1,100만 농가, 2,200만명 고용)에 불과하다. 하지만 5억 인구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농업은 EU 전체 예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요한 정책 분야이다.

유럽 국가들의 농업정책은 EU의 공동농업정책(CAP)에 의해 조율된다. CAP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여서 1980년까지 CAP는 EU 예산의 70%를 차지했다. 이후 CAP의 예산 비중은 점차 감소했지만, 안정적인 식량 생산, 지속가능한 자원 관리, 농촌지역의 활력 제고를 위해 지출액은 3배로 증가해 현재 연간 600억 유로에 이른다. 현재 CAP는 EU 전체 예산의 38%(2014~2020년: 4,083억 유로)를 차지할 정도로 지출항목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EU의 공동농업정책은 ‘농가소득 보전정책’과 ‘농촌개발정책’이라는 2개의 분야(pillars)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농산물가격 변동과 기후 변화로 인한 농가소득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농가에 매년 현금을 직접 지급(Direct Payments)해주는 정책이다. 후자는 시장 상황을 개선하고 무역 촉진을 지원하기 위해 농지의 균형 개발과 농업의 경쟁력 제고 및 혁신 유도, 환경 친화적인 농업을 지원하는 정책(Rural Development)을 담고 있다. CAP 예산 중 3,087억 유로(76%)가 농가소득 지원정책에 할당되며, 나머지 996억 유로(24%)는 두 번째 정책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현재 EU 내 730만 이상의 농가가 생산량이 아닌, 경작하거나 보유 중인 토지 면적에 따라 소득지원 혜택을 받고 있다.

CAP에 힘입어 유럽 국가들의 농업 경쟁력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IU와 BCFN (Barilla Center for Food and Nutrition)이 공동 발표하는 식품지속가능성지수(FSI; Food Sustainability Index)에 따르면 EU의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43%를 차지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3개국이 조사 대상 25개국 중 상위 6위에 올라 있다. 참고로 FSI는 농산물 손실과 폐기, 지속가능한 농업, 영양 수준 등 3개 분야를 평가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EU의 공동농업정책은 학자, 소비자단체, 농가,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CAP는 대형 농가와 기업농을 우대해 농업의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아 왔다는 비난을 듣고 있으며, 저개발국의 농산물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로 빈곤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농산물의 소비자가격 인상, 일부 농산물의 과잉생산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CAP의 농가소득 보전정책이 농촌개발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환경보호 성과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제기되어 왔다. 또한 소득보전이 영세한 개인농가보다 기업농에 집중되다보니 ‘환경과 건강’이라는 공공재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CAP를 근본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AP의 예산 규모는 물론 자금이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마침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CAP 개혁 논의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EU집행위원회는 CAP의 개혁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문절차에 착수했다. 1999년과 2013년에 이루어진 두 번의 개혁과 달리 이번에는 유럽 농업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3년까지 지난 10년간 유럽의 농지 규모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같은 기간 EU 농가의 약 1/4가 사라졌다. 이는 중소 영세 농가의 어려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농가 소득은 EU 평균을 밑돌고 있는데, 대부분의 농가는 최종 농산물 소비자가격의 극히 일부만을 지원받고 있을 뿐이다. 유럽인들의 66%가 농가소득을 향상시키는데 직접적인 소득보전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CAP는 소규모 농가 지원뿐만 아니라 농촌의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호, 수자원 관리, 토지의 지속가능한 사용(토양오염 방지), 경쟁력 확보 등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EU예산을 부담해 온 영국의 EU 탈퇴로 2020년 이후 EU예산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인해 CAP의 개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오는 2024년까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 CAP를 개혁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CAP 제도의 간소화 및 현대화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득 지원을 위해 이루어지는 농가에 대한 현장 조사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2017년 5월 EU 감사원은 농업 지출을 개선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EU는 CAP 개혁 차원에서 보조금을 부정 수령하는 농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EU집행위원회는 CAP와 같은 EU정책의 이행과 모니터링을 지원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Copernicus programmes)을 도입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앱이나 드론을 이용한 항공사진 등 첨단기술이 CAP 자금지원 관리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U는 6기의 인공위성(Sentinel satellites)에서 찍은 항공사진 등 다양한 데이터를 매주 EU 전역에 무료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첨단기술이 도입되면 CAP의 관리와 통제가 간소화되고 현장조사 횟수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첨단기술은 ‘적게 투입해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생산요소의 최적 사용을 지원하고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첨단기술 덕분에 유럽에 스마트 농업(Smart farming)의 확산이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유럽 농가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유럽우주항공사진서비스(EGNOS)는 낭비요인 제거 및 수확량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유럽 농가의 72%가 농지모니터링서비스(Land Monitoring Service)를 통해 유기농 농업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30%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앞으로 CAP 개혁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농업이 주요 화두로 부상할 전망이다. 농업 분야의 첨단기술 도입을 통해 ‘경제적 성과와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U는 스마트 농업이 농업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GPS와 같은 인공위성위치시스템(GNSS), 센서, 스마트폰, 태블릿, 애플리케이션, 컴퓨터를 통한 데이터 기반 기술과 드론, 로봇을 이용한 정밀농법(Precision farming technologies)은 농작물의 효율적 관리는 물론 비료, 살충제, 물의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수확량 증대, 환경 보호, 농산물 품질 제고, 농가 복지 향상을 동시에 실현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농업 분야의 첨단기술 적용과 관련하여 최근 유럽에서 유전자공학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식물배양기술’(New Plant Breeding Techniques; NPBTs)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NPBTs는 유전자공학을 통해 동일한 표본에서 가뭄에 대한 내성이나 해충 저항력과 같은 바람직한 특성은 극대화하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특성은 제거하는 바이오 기술을 말한다. NPBTs는 유럽 농업이 현재 직면해 있는 여러 문제들(농산물 생산량 증대, 환경 보호, 농촌지역 발전 등)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혁신기술이 GMO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그래서 엄격한 GMO 승인절차를 거쳐야 하는지가 법적 논쟁거리다. NPBTs를 통해 얻어진 식물에 대해 EU의 엄격한 GMO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현재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만약 GMO 규정을 적용받지 않을 경우 NPBTs를 통해 만들어진 씨앗은 시장 판매 전에 리스크 평가나 안전성 검사, 추적, 라벨링 등과 관련된 엄격한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NPBTs를 옹호하는 측은 제한된 자원으로 증가하는 세계 인구와 가뭄과 홍수 등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이변에 대처하기 위해 농가와 배양업자는 보다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술을 통해 획득한 식물은 자연공법과 유사한 전통적인 배양기법의 산물이므로 GMOs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9월초 비공식 장관회의에서 GMO 지침에 유전자변형 식물에 대한 예외조항을 삽입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NPBTs를 통해 생성된 식물이 전통적인 배양을 통해 얻어진 식물처럼 안전하다면 GMO 지침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GMO 규정과 상관없이 NPBTs 씨앗을 승인하겠다는 뜻을 EU집행위원회에 이미 전달했다. 미국의 씨앗 제조회사인 다우듀폰(DowDuPont)도 EU가 NPBTs 분야의 혁신을 결국 수용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법을 지지하는 환경론자들과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최종 제품은 자연적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NPBTs가 자연공정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수의 NPBTs을 결합하고 이를 반복할 경우 무엇이 생성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새로운 유전자공학기술은 GMOs를 생산하는 유전자변형기술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 때문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GMO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에 프랑스 정부는 NPBTs를 통해 획득한 제초제에 강한 씨앗들이 GMO 승인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판결해줄 것을 유럽사법재판소에 요청하였다. 2018년 상반기에 유럽사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이 나올 때까지 EU집행위원회는 NPBTs의 법적 지위에 대한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다. 다만, EU집행위원회는 모든 신기술을 ‘감춰진 GMOs’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배양기술과 종묘산업의 혁신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6년 3월에 발표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식물배양기술의 혁신으로 EU 곡물농업의 생산성이 74% 향상되었으며, EU경제에 140억 유로의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준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곡물농업 분야에서 약 7만명의 고용이 창출되었고 곡물생산 농가의 연간 소득 중 약 30%가 식물 배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만약 식물배양기술의 혁신이 없었다면 EU 전체적으로 동일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데 1,800만 헥타르의 농지가 추가로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식물배양기술의 혁신이 EU 농업의 경쟁력 제고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NPBTs에 대한 의사결정의 지연이 혁신과 성장을 저해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 단체들은 식품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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