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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트럼프에겐 모든 게 협상 가능 … 한국 “방위비 분담, FTA 재협상 못한다” 밝힌 뒤 물밑 대화를

김현종

2017.01.12

도널드 트럼프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전략을 구사해 절대적 지지층을 만들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한 이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위대한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슬로건으로 기득권 정치를 혐오하는 유권자들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미시간·위스콘신·오하이오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시절 첫 승리를 안겨 준 아이오와주, 심지어 조 바이든 부통령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낳았다. 기득권 정치인과 내용 없는 슬로건을 앞세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는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소수민족, 특히 아랍계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간주하고 히스패닉계를 범죄자로 간주하며 추방시켜야 한다는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 승리 직후 첫 연설에서 트럼프는 사뭇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당선 후 첫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전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얼굴 표정까지 격조 있게 변한 모습을 보여 줬다. 후보 시절 연설과는 달리 트럼프는 경제성장률 두 배 증대와 모든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강조하며 갈등보다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형적인 반기득권적 협상가 자질을 엿볼 수 있었다.

협상가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 첫째는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한다.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예측 불허다. 따라서 자기 본심과는 정반대로 발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째는 상대방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판을 벌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원칙을 이행하기 위해 자기만의 정보 수집을 한다. 트럼프의 반기득권적 경향은 마이클 펜스 부통령 후보 및 보좌관들이 전략이나 정책 수정을 제안해도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외교안보팀은 클린턴과는 매우 다른 접근방법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접근방법이 바뀌었는데 기존 틀과 방식대로 움직이면 백전백패한다.

트럼프 당선 후 정치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미국의 기존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클린턴의 보좌관들과 트럼프 쪽 전문가들의 생각·성향을 비교하는 것이다. 클린턴이 당선됐을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 입각할 예정이었던 톰 도닐런 전 외교안보실장 겸 인수위 부위원장,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 제임스 스태브리디스 전 제독 등은 북한 문제를 최우선순위 과제로 지목했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을 적극 이행했다. 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그의 e메일에 의하면 중국에 북한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을 경우 “미사일방어(MD) 체계로 중국을 포위하겠다”고 압박했다.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그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취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트럼프 측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활용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선 캠페인 당시 외교안보 정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주요 인물로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 의장, 그가 추천한 존 볼턴 전 유엔대사,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클 플린 전 국가정보국 국장, 왈리드 파레스 전 외교안보보좌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북핵 문제보다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 및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과 관련한 의제로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100%로 증대하는 것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또는 폐기가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공짜로 보호해 줄 수 없다”고 언급하며 “한국이 방위비를 더 많이 부담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미 FTA 때문에 “10만 개의 일자리를 뺏겼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대미 수출은 150% 급증했고 그 액수가 미국의 대한국 적자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에 심한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대한국 서비스 교역에서의 미국의 100억 달러 무역 흑자와 무기 수입 78억 달러(2014년 기준)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를 활용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외교안보팀은 트럼프 당선인 측에 군사비 분담을 하지 못하겠고 한·미 FTA도 재협상할 의사가 없으니 폐기하라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그 와중에 미국과의 타협 여지를 검토하면서 반대급부로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아마도 우라늄 고농축 재처리, 3000t급 핵잠수함 건조, 미 연방준비제도와의 통화 스와프가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통상 분야에서는 한국·북한·중국·몽골과 유라시아 관세동맹 5개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벨라루스·아르메니아)을 포괄하는 대규모 FTA를 출범시킴으로써 미국의 동북아 정책 수립에 있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재고하게 하여 한·미 FTA 폐기를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구입 역시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주둔비용 분담 증대를 요구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선수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처럼 “방위비 분담을 더 해야 되지 않을까?” 또는 “한·미 FTA 재협상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의 국익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고, 우리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필자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힐러리 캠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외교안보 전문가 여러 명과 토론을 했다. 다음은 토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당사자들의 요청에 의해 익명으로 문답을 정리한다. 괄호 안에 필자의 견해를 보충했다.

워싱턴의 정통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된 트럼프의 생각과 성향을 어떻게 가늠해 볼 수 있는가.

“트럼프가 저술한 책 『회귀의 기술(The Art of the Comeback)』에 언급된 내용을 분석해 보면 트럼프를 이해할 수 있고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접근방법 또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파악해야 한다. 상대방의 정서와 동기를 파악하지 못하면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고 언급했다. 북한 문제에 있어 트럼프는 전형적인 미국 외교안보 사고방식이나 틀에서 벗어나 기업인의 입장에서 김정은을 연구해 분석한 뒤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직접 대면해 핵 문제를 해결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만들겠다는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유세 중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만들겠다’며 ‘그 비용은 멕시코가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 발언을 통해 미국 대중과 멕시코 정부의 관심은 장벽을 세우느냐 여부가 아니라 비용 부담으로 옮겨졌다. 미국 유권자들 생각에는 장벽은 이미 세워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큰 그림들은 있지만 각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은 아직 고민 중이라는 뜻이다. 일단 우리는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핵심 이익이 문제가 되는 지역에선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트럼프의 생각이다.”

한국이 미국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과의 안보 동맹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이다. 트럼프의 선거 연설 중 미군 주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발언이 한국 사회에 큰 뉴스가 된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100%(한국이 주둔비용 전부를 부담한다는 의미)’라는 그의 표현이 이슈가 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가 집권하면 주한 미군기지가 한국 사회에 가져다주는 혜택에 비례해 공정하게 부담하기 위한 대화(혹은 협상)를 요구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무역 균형이 한국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도 우리(미국)가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한·미 동맹의 큰 틀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필자의 의견으로는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에 어느 정도의 혜택을 주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주둔이 미국 측에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는지 역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이슈 중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이다. 우리(미국) 시각에서 볼 때 중국에는 미국 시장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 상품에 대해 45% 징벌적 관세를 검토할 것이다. 중국이 우리 국채 1조4000억 달러어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중요치 않다. 남중국해에서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매우 우려된다. 미국은 1947년부터 91년까지 전 세계를 운영하는 방침과 시스템이 있었는데 소련이 붕괴한 이후 새로운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세계를 운영하는 보다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예정인가.

“5차 핵실험은 질적으로 과거와 다르다고 보고 있다.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동맹국에 가하는 위협 수위, 둘째 김정은의 불안정한 판단력, 셋째 소형화를 포함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보유, 넷째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핵무기를 개발한 위반행위와 확산 위험이다. 미국 본토를 칠 수 있다는 것은 위협의 차원이 다르다. 미국 정치 시스템은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을 허용할 수 없는 체제다.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지만 배제할 순 없다. 동맹국인 한국·일본과 상의해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으로 향한 위협을 최소화하는 방도를 찾아볼 것이다. 북한이 테러집단에 핵무기를 확산하는 것도 미국은 허용할 수 없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다. 핵전쟁은 진짜 더 끔찍하다.”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대표적인 매파는 존 볼턴 전 유엔대사다. 볼턴 전 대사는 북한을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간주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아마도 북한이 성층권에서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 엄청난 고열을 극복할 수 있는 탄두를 제작해 전면 배치하기 전에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정밀타격을 가해 핵시설을 제거할 수도 있지만 동맹국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피해를 고려할 때 도저히 이행할 수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오늘날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문제는 한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과 이를 반영하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으로 인해 미국 내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수단을 더 이상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와 다른 전 국무부 장차관 출신들은 한국이 자국의 목소리를 내서 미국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폴락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 입장에 서서 대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이 북한을 관리하고 문제 해결방안과 전략을 수립해 이행해 나가는 것이다. 전략이 없어 보이면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대북 전략을 수립해 이행하면 미국이 한국을 지지하고 따라오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이 한·미 동맹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가 있는지.

“한국이 수용한다면 트럼프는 평화협정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보면 신뢰할 수 없다. 워싱턴에서는 북한에 대한 피로도가 높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핵시설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가 필요한데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평화협정을 협상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북한이 우라늄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는가. 크리스 힐 차관보가 보여줬듯이 워싱턴에선 북한 입장을 대변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많은 국무부 관료가 인식하고 있다. 평화협정에는 재래식 무기 등의 군축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은 무엇인가.

“미국외교협회에서 샘 넌 전 하원 의원과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이 작성한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평양으로 가는 길은 중국을 통해서’이다. 중국에 압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하면 난민 문제 등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행동을 취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상상할 수도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파악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금융기관들을 달러 시스템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물자를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훙샹(鴻祥)그룹을 미국은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고 자산 몰수를 검토 중이다. 또한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통치 스타일이 변화했다고 보나.

“중국의 정책이 변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협조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협조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매우 불편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미국은 MD 체계와 한·미·일 간의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아시아 지역의 우방국들과 안보 체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중국의 대북 정책이 변했다는 것은 레토릭이나 시 주석의 통치 스타일 때문이지 근본적인 정책은 변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은 핵을 소유한 북한도 원하지 않지만 동북 3성과 국경을 맞댄 북한의 불안정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미국이 외교 정상화, 평화 체제, 제재 중단과 같은 수단으로 북한 체제 보장을 하지 않는 이상 북핵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중국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5차 핵실험 후에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통한 입장은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은 타협점을 찾아가면서 한반도 문제를 양국의 이해관계에 맞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즉 영구적인 분단 한반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커다란 도전이 존재한다.)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과 관련, 피벗(pivot)이라는 단어를 조사해 봤더니 미 국무부는 이 표현을 1904년 처음 사용했다. 당시 국무장관은 엘리휴 루트(Elihu Root)였다. 그 당시 이 단어의 뜻은 러시아의 남진과 영향력 확장을 차단하는 정책이었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란 것을 중국 지도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마당에 자기네 체제가 미국 체제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무슨 이유로 미국과 대북 문제와 관련해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특히 중국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 붕괴에 목표가 있음을 알고 있는데 왜 자국의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정책에 순순히 협조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회귀(Pivot)라는 표현 대신 ‘재균형(Rebalance) 정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일본이 국방력을 강화해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장벽이 될 것임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그 외에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중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달러 시스템에서 제외시키면 정상적인 상거래가 불가능해질 것이다.”(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중국 관련 자문에 응해온 브루킹스연구소의 챙 리 박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략을 숙지하고 있는 시 주석은 절대로 미국과 북한이라는 2개의 전선을 만들어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챙 리 박사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영토 분쟁,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유사시 대책을 협의한다는 것은 시 주석에게는 자살행위라고 지적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 요청대로 중국이 국경을 폐쇄하고 북한의 석탄·철광석·금 및 기타 자원의 수입을 차단하며 10만t의 원유 무상 공급을 철회하기로 결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북한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낮고 이미 제재로 인한 높은 수준의 고통도 감내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중국이 북한에 제재의 고삐를 더욱 조인다고 해서 북한이 견디지 못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국이 북한 국경 1400㎞를 완전히 폐쇄하면 북한 경제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더 강화하고 북한의 외화 획득 창구인 노동자들의 외국 파견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북한이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냉소적인 생각일 수도 있으나 미국에 북핵 문제는 꽃놀이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공조로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중국도 대북 문제에 강경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MD 체계, 한·미·일 군사동맹 구조를 강화해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고 한국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한·중 관계가 밀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며 한국과 일본에 고부가가치의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기에 매우 좋은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과 협조하고 싶어도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 때문에 북한이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나.

“미국은 위에서 언급한 6가지 계기를 의도적으로 염두에 두면서 북핵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이런 부수적 측면들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에는 도전인 동시에 기회다. 트럼프에게는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하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이뤄 동북아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아마도 주둔비용 증대뿐 아니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연기된 전시작전권 반환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전작권을 우리가 넘겨받는다고 해서 동맹국인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자주 국방을 할 수 없고 자기 군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국가가 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우리 정부가 전작권을 미국이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또한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북한 유사시에 자위대 진출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우리가 과연 그것을 저지할 수 있을까.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의 논리를 무용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 관계의 호전이다. 6·15 및 10·4 합의문을 이행해야 하고 5·24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시켜야 한다.

새로운 미 행정부에 “당신들의 대북 정책은 어떤 것인가”를 물어보기 이전에 “우리의 대북 정책은 이런 것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전의 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트럼프가 미 대선을 승리로 이끈 전략을 눈여겨봐야 한다. 트럼프의 목표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그 불확실성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사고의 틀에 머문다면 위기이고 역발상의 틀을 이용할 수 있다면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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