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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5) 유럽 -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대한 유럽의 입장
저자: 이대식 (여시재)
No.2017-056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러시아 신동방정책에 대한 각국의 입장”입니다. 지난 9월 6~7일에 있었던 동방경제포럼에 대한 각국의 반응을 살피고 최근 극동으로 진출하는 러시아에 대한 각국의 인식과 평가를 파악합니다.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은 각국에 어떤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2012년 이후 러시아가 추진하는 동방정책의 핵심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여 유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낙후한 극동지역을 개발하는 것이다. 에너지와 안보 면에서 러시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유럽에게도 이 동방정책의 성공 여부가 주요한 대외변수다. 동방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수출은 러시아와 유럽 간의 공급량 및 가격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최근 지중해와 북극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 군사훈련은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 등 러시아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실제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관련 기관들은 대체로 러시아의 동방정책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폴란드의 러시아 전문 저널인 ‘Intersection’은 동방정책이 사실상 중국에 한정되어 있고 실제 성과도 그리 크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4~16년 3년간 러시아의 대외 교역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이 49.4%에서 42.8%로 하락한 반면, 중국의 비중은 10.5%에서 14.1%로 증가했지만 러시아가 기대한 만큼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러시아가 동방정책의 주요한 파트너로 상정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과의 교역의 변화는 동방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미미하거나 부정적이다. 2012~16년 5년간 한국과의 교역은 겨우 0.2% 증가했고, 일본과의 교역은 오히려0.5% 감소했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사실상 ‘Pivot to East’가 아니라 ‘Pivot to China’이며 그 성과도 미미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루마니아의 싱크탱크인 ‘Global News Intelligence’는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은 단기적이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우선 현재의 양국 협력은 내부적인 필요성이 아니라 상황적인 필요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양국은 현재 미국의 고립정책에 공동대응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이 어느 한 국가와의 협력 모드로 전환할 경우 협력 관계는 바로 경쟁관계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중러 양국 간의 갈등과 경쟁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중국인들은19세기 중반 체결된 아이훈조약과 베이징조약 등 불평등 조약에 의해 빼앗긴 영토 회복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스탈린 사후 중소 분쟁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로 이어져 국제사회에서 소련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중러 양국의 협력을 제약하는 것은 역사적 유산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인들, 특히 극동지역의 러시아인들은 중러 협력이 극동 지역의 중국화, 나아가 ‘중국식 크림반도화’를 초래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극동지역에서 중러 양국 간의 극심한 인구 비대칭에 기인하고 있다. 중국과 직접 접경하고 있는 아무르주, 연해주, 유대인자치주, 하바롭스크주 등의 인구가 430만명인데 비해 이 인구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3성및 만주 지역의 인구가 1억 9백만명에 달한다. 특히 국경지역에 근접 상주하고 있는 중국 인구는 약 3548만 명이며 이 중 약 259만명이 러시아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극동 개발을 위한 러시아의 대중국 협력 전략은 그 근저로부터 한계를 배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U의 주요한 싱크탱크인 ‘The European Union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 (EUISS)’ 또한 중러 협력 관계의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딜레마에도 주목하고 있다. 우선 양국 관계가 떠들썩한 레토릭만큼 발전하지는 않고 있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근본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시너지에도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은 러시아는 중국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중국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대한 피벗,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포함한 균형 공조(balance rapprochement)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헤징과 균형의 전략을 펼치며 중국과의 협력 진전의 속도 조정을 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대러 경제제재는 한국, 일본 등 기타 아시아국가로의 피벗을 제약하고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중국의존도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EUISS는 러시아의 중국 딜레마가 지금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러시아의 동진정책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The Polish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는 중러 협력에 대해서 보다 실용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중러 협력이 불균형적이긴 하지만 유럽의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중국 주도의 중러 공조는 EU에게 오히려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러시아는 EU의 분열을 선호하지만 중국은EU 통합에 긍정적이며 EU 틀 안에서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지향한다. 중국도 러시아처럼 세계 패권을 추구하나, 주로 군사력 등 하드 파워를 활용하는 러시아와는 달리 주로 경제적 방법을 동원하다. 유럽의 현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펀딩, 특히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한 광범위한 대규모 투자는 EU의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독일의 제조업 기술, 영국의 금융 허브, 무엇보다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서 유럽과의 협력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가 갈등 위주의 대유럽 정책을 지속한다면, 러시아 못지 않게 EU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선호하는 중국이 이를 무한정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특히 중국 주도의 중러 관계 발전은 유럽에게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싱크탱크들이 러시아의 동방정책이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요인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이 러시아에게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동방 관련 정책에 집중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경제 성장과 유라시아 연합의 지속을 위해선 유럽이 필수적이다. 독일의 ‘The Koerber Foundation’은 러시아가 아시아에 대한 진출을 강화하지만 그 주요 교역대상은 여전히 유럽이 될 것이라는 점을 러시아 학자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주장한다. ‘아시아로의 석유와 가스 수출 비중을 30%로 올린다할지라도 이 30%는 30%이지 70%는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의 싱크탱크들은 유럽이 러시아에게 여전히 주요 시장으로 남을 것이며 러시아의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유럽의 중요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에게 중국의 중요성이 커진다 해도 중국이 유럽이 될 수 없다는 점, 즉 러시아 경제의 현대화를 위해 유럽이 해 줄 수 있는 것을 중국은 결코 해 줄 수 없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의 동방정책을 위협보다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경향은 독일 기업들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Thomas Graf 독일의 경제학자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이 지리학적으로 독일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초 인프라 건설과 같은 사업과 같이 독일 기업들에게 사업 기회가 많은 지역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2017년 상반기 독일과 러시아 간 무역 거래가 25% 증가하는 등 양국의 경협 관계는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게다가 과거 2014년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에 대한 제재가 가해졌을 때, 독일 기업들은 대러시아 제재 해지를 촉구했을 정도로 양국의 협려 관계는 매우 안정적이다.
이와 같이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대해 유럽은 경쟁과 위협보다는 협력과 활용의 모멘텀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방정책을 펼치는 러시아의 내적 동기와 목적을 이해하고 협력의 구조적 기반을 뿌리깊게 다지는 것이다. 이는2014년 5월EU 외교위원회의 보고서 ‘RUSSIA’S “PIVOT”TO EURASIA’에 언급된 것처럼 ‘러시아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라는 유라시아의 미래가 의미하는 바’를 유럽이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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