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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 (5) 유럽 - 고립주의에 관한 유럽 싱크탱크 보고서 주요 내용
저자: 고주현 (연세대 쟝모네 EU 센터 연구교수)
No.2017-050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입니다. 각국에서 진행하는 고립주의, 민족주의, 배타주의의의 양상들과 이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봅니다. 전 지구적 고립주의의 바람 속에서 이를 타개할 협력의 솔루션을 고민해봅니다.
트럼프 고립주의에 편승하는 유럽
트럼프 취임 이후로 유럽인들은 미국의 극단적이고 고립주의적인 일부 정책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다. 이민 규제의 즉각적 강화와 중동의 특정 이슬람교 국가들로부터의 입국 금지, 시리아 난민 재이주 프로그램의 철폐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것과 같은 조치들은 유럽의 극우주의를 추동하고 이보다 더욱 과감한 반 이민 조치들을 유럽국가들에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져왔다. 이는 세계 최대 이민국인 미국보다 유럽에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카네기 유럽의 스테판 렌은 미국과 유럽 양 지역 모두 최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고 있지만 두 지역의 상황은 극명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국가이지만 멕시코와 캐나다가 유일한 국경선인 탓에 이민 통제가 비교적 쉬운 반면, 유럽은 넓은 국경과 쉥겐조약 등이 있기에 이민자 통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양 지역은 이민에 관한 태도에서도 차이를 보여왔다. 미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민 문제에 대해서 양분되어 왔다. 미국에서는 이민을 국가의 기틀로 보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인 측면들을 강조하는 시민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한편 유럽에서는 유럽 국가들 간 이민에 대해서는 대개가 호의적이지만 역외 국가들, 특히 중동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은 부정적으로 여겨왔다.
최근 유럽에 불어닥친 난민위기는 공동체 이민정책의 문제점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된 공동체의 영향력이 정치·사회적인 방면으로까지 심화, 확대되면서 회원국간 다양한 의견 차이와 초국가적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일부 국가들은 벽을 쌓고 담을 치는 등 과거의 배척방법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EU 국가들간 결속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오히려 불신이 쌓이고 갈등이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은 미국과 비교해 이민의 역사가 깊지 않아 반이민 포퓰리즘에 더욱 취약하다. 또한 지금과 같은 저발전 고령화 사회에서 이민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는 더욱 어렵다. 이로 인해 현재로서는 인구유입을 막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보이지만 지속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또한 이주를 막기 위해 이민자들의 복지와 혜택을 줄이는 것은 이미 이주해온 자들의 사회적응을 막는 근시안적 처방일 뿐이다. 이는 또 다른 혐오와 극단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 것인가.
카네기 유럽은 최근 일련의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의 고립주의 경향과 통합 정신의 쇠퇴 및 이에 대한 극복 방안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의 잦은 테러로 통합정신을 품은 사람들이 감소하고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인해 많은 유럽국가들이 고립주의로 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지지하는 포퓰리스트 정당들 또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립주의적 조치들로 현대의 초국가적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60년 전 유럽은 참담한 전쟁의 폐허에도 불구하고 통합과 발전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마조약에 서명한 초기 국가들은 국가 간 장벽을 낮추고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또 다른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30년 후 공동체는 두 배로 커졌고 평화와 부흥, 안전을 상징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연합은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08년의 재정 위기, 이주민들의 증가 및 테러로 인해 유럽인들은 커져버린 상호의존성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 장기 침체와 인구의 감소는 이러한 경향을 가중시키고 있다.
카네기 유럽이 제시하는 유럽통합 정신의 부활을 위한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 상태를 과장 없이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수주의의 근거로 사용되는 유럽의 경제·사회적 상황의 퇴행은 많은 경우 과장되어 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 중 절반은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인 점이 이를 방증한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호도한 정보는 언론과 대중들에 의해 과장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따라서 현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유의해야한다.
둘째,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가져간 정치적 지분을 되돌릴 수 있어야한다고 지적한다. EU의 진정한 위기는 기존 정치인들의 패배주의에 의해 한층 심각해졌다. 극우정당의 인기와 미국의 고립주의 영향으로 유럽의 기존 정치인들은 극우 정치인들에 의해 잠식 당한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점차 극적인 행동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을 더 큰 위기에 빠트릴 것이다. 그들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많은 주장들이 사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유럽인 10명 중 7명은 유럽 국가들 간의 통합된 이주 정책과 공동 방위체제를 지지한다. 따라서 침묵하는 이 대중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략해야 한다. 나아가 독일과 프랑스 간의 합의와 주도가 우선되어야하며 회원국들의 협력과 책무성 강화 역시 초국가적 정책개혁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주민들을 배척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꾸준히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다.
끝으로 보호주의의 조장을 막고 상호 신뢰 속에 서로를 보호해주는 국가들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든다. EU는 닫혀가는 시민들의 마음을 되돌기기 위해 대담하고 새로운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포퓰리스트들이 퍼뜨리는 괴담에 맞서기 위해 정치인들은 상호의존성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야 한다. 또한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은 되돌릴 수 없는 톱니바퀴와 같은 것임을 대중들로하여금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에 퍼지는 반극우, 반고립주의 움직임
한편 카네기 유럽의 또 다른 보고서는 최근 유럽에 부는 반고립주의, 반극우주의 움직임에 대해 소개한다. 상당 기간 유럽 국가들의 정치판을 뒤흔들었던 반 세계주의, 유로회의주의와 반이민 등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에 시민들이 맞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올해 초 오스트리아를 필두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선거에서 극우정당 출신 후보들이 패배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과연 통합 유럽을 찬성하는 집단이 활성화되어 그들의 소속 국가와 EU 차원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유럽의 맥박’(Pulse of Europe)이라 불리우는 집회가 이러한 집단화의 대표적인 예다. 통합된 유럽연합을 원하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은 올해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첫 집회를 시작으로 현재 13개 유럽 국가, 100개 도시들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소수의 극우 세력들에 의해 유럽연합의 존속을 원하는 대중들의 의견이 묵살되어왔다고 믿는 시민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에서도 하나의 유럽을 도모하는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구체적인 이슈에 집중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보다 광범위한 정치적 목표를 위해 캠페인에 참여한다.
흥미롭게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이 운동의 시작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에서 시작되었다. 극우정당인 스위스 인민당(SVP)은 1990년대 중반부터 스위스에서 가장 큰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총선에서 이주민 수에 제한을 두는 공약을 내세운 인민당이 적은 표차로 승리하자 EU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인민당이 범죄를 저지른 외국 국적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추방하는 법 또한 밀어붙이자 스위스 대학생들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Operation Libero’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은 인터넷 상의 인터뷰와 글 등을 통해 반대 캠페인을 펼쳐나가면서 결국 법안을 막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올해도 귀화 과정을 쉽게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기여했다. 스위스 사례로부터 영감을 받은 네덜란드 학생들도 집단을 형성하여 극우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결국 승리했다.
젊은이들의 자발적 조직과 참여를 가능하게 했던 가장 큰 동기는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만을 대상으로 정치활동을 해온 포퓰리스트 극우정당들에 대한 시위로 볼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이어진 유럽통합의 기대감이 점차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불만과 분노로 바뀌자 국수주의와 배척주의가 극우정당의 형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극우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20-30%의 시민들을 제외한 대중들을 대표해줄 마땅한 정치세력이 없었기에 이와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 캠페인을 통한 반극우주의 운동들이 유럽 곳곳에서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얼마 동안 지속될지,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 지는 알 수 없지만 마크롱과 반 데어 벨렌의 승리에서 볼 수 있듯 유럽에서 국수주의와 고립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당선이 포퓰리즘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EU의 미래를 논의할 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의 고립주의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 강화를 가능하게 할 수도
한편, 올해 초 채텀하우스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을 강화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이 현재까지 여러 국제조약에서 ‘예외적인’ 대우를 받아왔지만 만약 미국의 참여가 줄어든다면 이 특별대우의 자리를 중국이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정부가 오래전부터 미국의 국제법 역량을 모방하려고 했다는 점과 외교부의 국제법 전문가 채용과 파견의 증가 등 중국의 행보를 강조한다.
7개월이 지난 현재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감지되는데, 7월 8일 종료된 G20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이 보여 준 행동들은 중국기반의 세계정세가 형성될 수도 있겠다는 유럽인들의 우려 섞인 전망이 일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무역과 환경 분야에 있어 미국과 유럽 그리고 그 외 참가국들 간의 입장차이가 여실히 확인되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파리기후협정에 대한 태도와 무역에 있어 특정 입장을 고수했던 점 등이 미국과 그 외 참여국들 간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를 가져왔고, 이러한 차이가 고스란히 회의 결과에 반영된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무대에서 일방주의와 다자주의를 오가는 정책결정을 취해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들은 2차 대전 이후 수립된 서구 중심의 국제조약과 기구들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네기 유럽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상황을 유럽이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다면 서양이 아닌 중국 기반의 세계정세가 형성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있는 EU가 세계무대에서의 힘을 키우려면 메르켈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독일이 9월 총선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유럽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 당분간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올해 당선된 마크롱 역시 유럽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여전히 많은 아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방적인 고립주의를 향해가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다자간의 협력을 도모하는 무역 협정과 국제기구의 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 또한 세계화에 있어서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 유럽에서 반이민 정서를 없애기 위한 방안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이민자들과 그들의 노동력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회원국들의 협력과 공동 행동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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