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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터뷰 04] 이재호(한국행정연구원) - “변화된 환경과 혁신생태계에 맞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필요해”

정서은

2017.09.21

[전문가 인터뷰 04] - <혁신을 키우기 위한 정책제안 프로젝트> 연구팀은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의제를 구체화 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만난 분은 이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이재호 연구위원님께 혁신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이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지금 문제는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환경과 생태계에 맞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합니다.

정부 혁신을 논하면서 여야,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를 떠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 바로 현재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지요. 브렉시트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도 국가 거버넌스의 한계, 거버넌스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현재의 기술 변화 등을 고려해보면 이는 단순히 우연하게 발생한 현상이 아닌, 지속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한국도 그 예외가 아닐 수 있는 것이죠.

현재 거버넌스 체계가 원활히 기능하지 못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속도의 문제입니다. 기존에 정부가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이와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를 굉장히 긴 호흡을 갖고 활용하고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이나 정보의 흐름 속도가 상당히 빠르게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광우병이나 세월호 촛불 시위 때 정부가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해서 그 내용을 방송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기자나 시민들이 정부 발표에 이의제기하고 이에 대해 정부는 이미 정보와 지식에 대한 속도에서 밀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죠.

두 번째는 정부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동안의 거버넌스 체계라는 것은 분업에 기반한 것인데 이 틀에 근본적인 균열이 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산업사회 이후 큰 틀을 보면 막스 베버의 관료제와 같이 모든 사회구조가 분업화 되었습니다. 쪼개진 사회라 할 수 있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고, 계층화된 사회에서 상부층 사람들의 수요를 대변하는 체제로 흘러왔습니다.

그런데 정보나 지식의 기술적, 속도 측면에서 융합이 발생하면서 그러한 체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존 분업 체계의 거버넌스가 해체되면서 복잡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부처기관이 해당 부처가 담당하는 분할된 업무만 해결하면 됐으나 이제는 분업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졌거든요. 그러다보니 중첩 문제, 이중규제 문제가 발생하고 책임질 일을 서로 피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사회 전체적으로 나타나면서 새로운 거버넌스,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거버넌스 혁신 모델의 하나로, ‘상설 합의제 행정기구’를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연구팀에서 정책과제로 제안하려는 신산업과 사회혁신의 클러스터 ‘혁신도시 2.0’은, 지방분권과 밀접하며 따라서 지방 현장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봐요. 사실, 청와대에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 은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인데, 이는 지방분권, 현장의 소리를 중시하는 시대정신과 대치되기 때문이죠. 청와대가 안 하면 안 돌아간다는 식의 사고를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 중심제의 청와대에 혁신 비서관이나 컨트롤 타워를 놓게 되면 일은 빨리 진행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뻔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돼요.

해서, 저는 청와대 소속의 위원회를 두되, 예산 편성, 인사 조직 등의 권한을 가진 상설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위원회를 두는 방법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때 위원장은 총리나 민간이 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위원회는 비상설치기구였습니다.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고 위원장인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죠. 권한을 상당히 위임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그런 모델로 방송통신위원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권한을 가진 위원회가 큰 어젠다를 세팅하고, ‘혁신도시 2.0’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중앙부처의 지방정부로의 권한 위임을 어디까지 하고, 어디에다 줘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할 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지요.

이 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담론을 형성하는 구조가 중요해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면 그 뼈대는 쉽게 흔들리지 않거든요. 정권이 바뀌어도 사회적 합의로 이루진 담론과 정책, 그리고 민간의 자율적 추진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데올로기 편향성으로 인해 권력을 잡으면 자기편만 논의 구조에 들어오게 하여 합의된 사항이 아닌 편향된 정책을 밀어붙입니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 기존 정책이 뒤집혀 일관성이 결여되고 비효율성은 높아지죠. 물론 시간은 오래 소요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위원회에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이를 조정하면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그 결과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 때, 각 영역 또는 과제에 따라 적절한 정부 모델을 상정하고, 명확한 우선순위에 따른 방향성이 있어야 해요.”

이제 정부조직은 기존 관료제 분업 체계에서 벗어나 협력, 공동지식 생산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습니다. 이에 맞춰 지금부터 조직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죠. 또한 거버넌스 체계는 권력구조와 정부구조의 측면에서 권한 위임과 협력의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검토해 볼 만한 정부 모델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현상유지가 있는데 사실 이를 원하는 정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활용 가능한 모델이 나머지 세 개입니다. 그 중 첫 번째로 ‘적극적 관리정부’가 있는데 이는 정부가 강하게 통제하고 규제와 진흥을 같이 갖고 있는 정부예요. 두 번째, ‘시장친화정부’는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면서 시장 기반으로 가는, 영미식에 가까운 시장자유주의 정부 유형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적극적 협력정부’입니다.

그런데 모든 국가 어젠다가 하나의 정부 모델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모델은 이처럼 다양하고, 국가의 과제들 또한 ‘적극적 협력정부’ 모델에 맞는 과제가 있는 한편, ‘시장친화적 정부’ 모델에 맞는 것, 혹은 ‘적극적 관리정부’에 맞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과제들을 살펴보면서 각각의 과제가 어떤 정부 모델에 해당되는지 분류할 필요가 있어요.

그 다음에는 정부가 추구하는 정부 모델에 따라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실천해야 합니다. 가령, ‘적극적 협력정부’ 모델에 맞는 과제들을 우선 일선으로 수행하고 이후에는 ‘시장친화적 정부 모델’, 그 다음에는 ‘적극적 관리정부’ 모델에 맞는 과제들을 수행하겠다는 식의 명확한 우선순위에 따른 방향성이 있어야 해요.

‘시장친화적 모델’에 맞는 과제라 판단되면 과감히 시장에 넘겨주면 되고, 국가 대(大)개조를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 되는 과제라면 이에 대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위원회와 같은 공간에서 협의에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 사회의 미래를 결정해 나가는 논의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혁신도시 2.0을 ‘적극적 협력정부’ 모델에 따라 구현할 경우,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시민들을 아우르는 위원회를 두고 앞으로 우리 지방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지방자치는 어떻게 할지 등을 논의하는 거죠. 이러한 논의가 단순히 1-2년 안에 끝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전에 비해 나은 성과가 나오고 방향과 방법이 올바르게 갈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적극적 협력정부’ 모델이든 ‘시장친화적 정부’ 모델이든 큰 틀에서 보면 권한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이는 권력을 나누고 나아가 그 권한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율적으로 같이 협력하는 거예요. 따라서 자율과 책임성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 다음, 권한 행사를 위한 국정운영 원칙이나 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죠. 정책이나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러한 추진 체계를 어떤 식으로 잘 바꿔 나갈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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