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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 인터뷰 04] 안오성(항공기 엔지니어) – “과학분야 사업 지원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리더십을 발굴해야 합니다.”
사회 혁신의 맨 앞이기에 누구보다 먼저 겪는 어려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저희는 17인의 혁신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항공기 설계 전문 엔지니어이신 안오성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시리즈는 계속 이어집니다.)
안오성입니다. 항공기 설계 전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20여년간의 중요 대형 국책 사업을 직간접으로 경험해왔고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국가R&D 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거대공공과학기술 및 국가R&D의 효율화 방안, 산-학-연 연계체제의 강화 등이 관심대상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항공기 T-50 개발과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틸트로터 무인항공기의 기획 및 비행체 설계와 체계종합을 담당했습니다.
“기술적 성과를 홍보로 소비하는데 그치는 현실,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입니다.”
제가 직접 참여한 2개의 대형 국가 연구개발사업 (T-50개발, 틸트로터형 스마트무인기 개발)은 우리나라 항공기 개발사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성공사업입니다. 스마트 무인기의 경우에는 헬리콥터 부문에서 세계1위의 지위에 있는 미국 시콜스키사에서 국내에 3번씩이나 방문해서 참관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업은 한 2~3년 정도 언론을 장식하며 우리나라 대표적 성과라는 홍보용으로 소비되는 데에 그쳤습니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첨단기술개발 후 제품화 이전에 요구되는 시범운용개발 (기술의 안정화 및 신뢰성 향상, 운용성능 입증을 통한 전세계 대상 신규시장 창출)을 조용히 지원받을 수 있었다면, 사업 종료후 5년이 지난 현재, 굉장히 발전된 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주와 독도 (약 600km)를 단일 비행으로 왕복가능하고 서해안 해양경비 등 국가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무인기로서, 혹은 미사일이 탑재 가능한 무인전투 기종으로서 필요한 전략적 가치를 확실히 보여주었을 것이고, 해외 국방 시장과의 거래도 충분히 타진해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능을 보유한 무인항공기는 현재 시장에 존재하지 않지만, 수요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혁신적 기술에 기반하여 이러한 국가 사회적 문제해결 역량을 현실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기술 안정화 및 역량강화를 지원하기보다는, 그 성과를 “이용”하여 각 부처별 입맛에 맞게 개발 목적이 축소, 변형되었습니다. 또한 하나의 단일 과제로 추진해야 할 일을 여러 개로 쪼개어 지원 받게 됨으로써 행정적 부담 가증과 개발의 비효율성만 커졌고, 정작 이 성과를 활용해야 하는 국방부의 경직성과 이를 시기하는 (스마트무인기를 획득할 경우, 기존 계획 변경으로 손해보게 될 기업과 기관) 사람들의 방해활동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한 우리의 성과는 5년이 지나는 동안 기술진부화와 개발인력 와해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우리가 개발한 ‘틸트로터’ 개념의 고속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응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등도 이 기술의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국가 R&D 사업을 대하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연구 혁신, 창의적인 연구를 더디게 만들고 있어요.”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한가지 예만 들었을 뿐입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미래에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마디로 재앙입니다. 정부는 국가 예산으로 R&D 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고 이런저런 사업 벌린 것을 언론에 홍보하지만, 정작 정책적 일관성의 부재와 장기적/단계적 전략의 부재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연구자들의 문제로 축소하여, “연구생산성”에 문제가 있다며 연구원들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기지요.
이런 주장은 평가와 감사로 이어집니다. 단계적이고 전략적인 지원과 이를 지탱할 정책적 리더십 부재 혹은 그러한 역량 있는 리더십의 단계적 육성의 과제보다는 감시와 평가로 단기간에 연구자들을 옥죄이고 이런 상황에서 실패하고 실망한 고급 전문인력들은 결국 해외로 떠나고 맙니다.
더구나 정부투자의 본질인 고위험/고불확실성 사업에 대해 정책적 판단위에 선행 투자하는 것보다는, 성과지향형 투자형태(쪼개기 투자, 숟가락 얹기 투자, 단기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 우선)를 지속하고, 부처별로 정책적 목적을 뚜렷이 하고 잘 이뤄가는 경쟁이 아니라, 그저 산발적으로 사업을 벌리고 예산규모를 지키고 키워가는 경쟁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부문을 비롯하여 공공수요와 연계하여 다부처가 협력한 단단한 개발전략보다는 쪼개기식, “모양새만 한지붕”인 다부처 사업이 지배하고 있고 부처간/부서간 칸막이에는 아무런 개선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반복해야 할까요?
“과학분야 사업 지원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리더십을 발굴해야 합니다.”
첫째, 국가 대형R&D 사업의 발굴-선정 프로세스와 주체를 전면 개혁해야 합니다. 각 행정부처들 주도로 알아서 뜨는 주제, 될 만한 주제를 경쟁적으로 발굴하게 한 다음, 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들을 펼쳐놓고 평가해서 국가전략사업 발굴을 하는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사업이 중심이 아니라 산업경쟁력에 관한 국가전략과 정책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행정부처 주도의 경쟁적 국가 대형사업 발굴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현 체제는 한마디로 ‘덜 나쁜’ 국책과제 발굴시스템입니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현재의 대형사업 발굴 트랙을 4가지로 다원화 해야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제기하겠지만, 핵심은 두가지입니다. 민간 전문인들의 충분한 전략적 검토 (사업적 기술적)와 피드백의 반영, 그리고 다양한 혁신주체의 참여와 경쟁을 유인하는 단계적 확장이 그것입니다.
둘째, 출연연의 기본 인건비를 70 ~ 90%까지 보장하고 연구자들의 혁신역량을 국가혁신시스템 (국방, 산업, 사회문제 해결 등)과 통합할 수 있는 ‘혁신중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고 행정부처들의 대형사업벌리기 경쟁에 연구자들이 용병으로 소비되는 매커니즘이 강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다부처융합사업이나, 사회문제해결형 사업, 민군기술협력 사업 등도 사실상 기존의 중대형 사업의 기획부실, 연구경영부실을 해결할 인센티브를 혁신주체들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연을 통해 국가혁신역량을 결집하고 전략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희망은 ‘0’ 입니다. 국가인적규모, 경제규모, 그 외 혁신역량 관계된 자원 측면에서 볼 때 공급위주 경쟁형 R&D 구조로는 아무리 경쟁을 강화하고, 평가를 엄혹히 하고, 성과에 대해 높은 인센티브를 준다 하더라도 결코 미국 유럽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좇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인건비 보장은 연구환경 안정화와 몰입연구의 기초입니다. 특히, 이제는 일률적으로 인건비 70% 보장과 같은 목표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시장실패 속성이 크면서도 공적가치가 높은 국방 및 공공부문(에너지, 자원, 의학, 경제인문사회 전략연구, 항공우주) 등에 대해서는 90 ~ 100 % 수준을, 그 외의 영역(민간 산업의 성장에 따라 민간수탁을 확대하되, 국각기술혁신 역량의 허보와 산학연 연결의 거점 역할을 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70% 수준을 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인건비 보장을 통한 연구자율성 확대는 연구의 책무성 강화와 밸런스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책무성은 평가 기반의 ‘채찍과 당근’이라는 단순 방편을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 보다는 국가혁신시스템과의 연계성과 전략성이 강화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바로, 연구자들은 지식의 프론티어로 연구에 몰입하게 하되 국가전략과의 강한 결합을 보장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리더십을 공급하는 것이 그 시스템 설계의 핵심입니다.
그러려면, 보다 상위적 차원에서 국가의 과학기술 투자정책 (장기적이고 철학적 기반에 근거한)과 전략 (과학기술을 통한 산업혁신/국가문제해결에 관한 통합되고 안정적인 전략)이 뚜렷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프로세스와 리더십이 의미 있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즉, 연구자들의 연구환경이 몰입연구와 책무성 강화로 최적화 되어야하고, 연구자들과 국가혁신전략사이를 연결할 프로세스와 현장리더십이 선진화해야 하며, 그러한 선진화된 프로세스와 현장리더십의 활동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야 할 국가과학기술 정책과 전략이 깊은 철학적 기반 위에 통합적이고 명시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국가혁신시스템의 소프트웨어적 요소의 강화가 ‘혁신 중심 시스템’의 요체입니다.
셋째, 국가연구사업의 야전사령관을 다수 양성해야 합니다. 즉 DARPA PM형 최고위급 연구개발책임자를 다수 키워내고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도전적이고 성과가 높은 연구개발을 통해 국가첨단산업과 관련기술의 역량을 빠르게 축적하고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조해 가려면 현장의 야전사령관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신경 써야 합니다.
넷째, 과학기술분야 리더십의 단계적 육성이 절실합니다. 지금과 같이 정치권의 낙점에 의한 리더 인선시스템으로는 단계적 리더십 육성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과학기술계 내에서 합의된 리더십 모형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단계적으로 리더십을 발굴, 훈련해가는 체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기업과 기관들은 모두다 리더십 육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차기 리더십이 될 후보를 조직 내에서 모두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단계적인 차기 리더 “육성” 체제가 가동되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각자도생의 연구현장문화, 부처별 일 벌리기 경쟁의 하수인으로 활약하지 않고는 리더십이 자랄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되는 구조 속에서는, 과학기술계 리더십 인선에 관한 정치권의 개입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행정부처의 부처예산 지키기와 규모와 세력 확장형 행정에 적응한 리더십에서 크게 다른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시급성과 우선순위 관점에서는, 셋째와 넷째 개혁안이 선결조건으로서 중요도가 높습니다. 국가 정책을 실현할 현장의 중간리더급이 고도화되고 체계적인 연구사업 리더로서 훈련되지 않고는, 또한 그들이 활동할 공간을 열어주고 전략적으로 지원해줄 부문별 리더십이 발굴되지 않으면, 앞서서 언급드린 대형 사업발굴 프로세스의 개혁과 연구자율성 보장 등의 개혁은 그저 무늬만 개혁에 그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과 합의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관료독재사회를 지양해야 합니다. 정경유착의 본질도 행정관료와 경제인들의 유착이 뿌리에 있다고 봅니다. 행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갑니다. 대표적 사례가 ‘퍼주기식’ 신공항 난개발입니다. 여기엔 국회의 무능과 부패도 크게 작용하지요. 작년에는 드론 개발을 여기저기에서 떠들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각 부처와 지자체에 센터와 학계의 무슨무슨 단체들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국고를 빼먹고 있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관료독재사회가 되어가는 이면에는 국회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고, 국회의 무능에는 국회 진입 경로의 경직성 및 다양한 전문인을 수용할 수 없는 시스템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둘째, 인구절벽문제에 대한 해법을 전면적으로 재설계 해야 합니다. 과거 십년 간 저출산 대책으로 150조원을 사용했으나 효과가 없었다는 기사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교육문제와 취업과 관련한 산업생태계 문제도 관계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 이후의 다음 사회에 대한 합의와 비전이 부족한 것을 생각해 봅니다.
셋째, 국회의원 수를 줄일 게 아니라 특권을 대폭 줄여야 합니다. 다양한 전문인들의 진출경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생존 및 장기적 사회이슈인 국방개혁, 대체에너지기술, 첨단산업전략, 노인복지, 저출산, 통일 및 국가통합, 환경문제 등의 문제는 별도의 전문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속적으로 국회와 행정부에 싱크탱크 역할 및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넷째, 다양한 전문가 의견과 소수자 의견이 국정운영에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섭단체 정족수를 의원수 20명에서 10명으로 하향하고 선거연령도 현 20세에서 18세 수준으로 하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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