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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한반도 인식 (3) 일본 - ‘반일국가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저자: 박정진 (쓰다주쿠대 - 津田塾大学)
No.2017-25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유럽 국가들이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이다. 한반도는 주변국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각국에 있어 한반도와 관련된 중심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나아가 새로운 한국 정부에 대해 각국에서는 어떠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주요 현안 및 관련 정책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불편하고 불안한 한반도
지금 일본에서 한반도는 ‘특별히' 불편한 존재가 되어 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일본 미디어의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더 친일적인 후보 인가에 있었고, 각 후보를 친일과 반일로 분류하는 도표와 그래픽이 예외 없이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정권교체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일본 여론의 기본 논조는 '반일 대통령의 탄생'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현저하게 민감해져 있다. 헌법재판소 소장 임명식이 있었던 5월 19일. 일본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착용한 주황색 톤의 넥타이에 주목했다.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독도 강치’가 그려진 넥타이로, 한국에서는 미담으로 회자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의심할 바 없는 '무언의 메시지'로 인식되었다. 5월 19일이 2년 전 한일 위안부합의를 위해 한국의 특사가 일본을 방문한 날이었다는 사실을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장관으로 강경화 유엔 정책 특별 보좌관이 지명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유엔 인권위를 의식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곧 무효화시킬 것이라고 단정 짓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미 끝난 일을 다시 거론하는 한국인" 특유의 민족성을 문제 삼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논평들이 합을 이루었다.
이러한 논평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북한 위협론으로 옮겨진다. 올해만 10차례가 넘는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경계와 불안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도와 분위기는 한국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4월 한반도 전쟁위기설’의 발신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일본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은 ‘전후 최초 미증유의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 등 주요 일간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마저 호외로 발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진 등 주로 자연재해 대비해 구축했었던 전국순시경보시스템(全国瞬時警報システム; J−アラート) 의 운용과 경보의 문구도 바꾸었다.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일본 국민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즉시 피난 경보를 받고 피난해야 할 장소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주민 피난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경보 사이렌으로 진위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는 한편, 지하철이 일시 정지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엄중한’ 분위기에서, 한국에 "북한에 가고 싶어 하는”친북 대통령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더욱 우려할 만한 일이 된다.
마치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 일본을 적대시 하는(또는 할지도 모른다는) 반응은 물론 과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잉반응들은 일본 사회 내 에 친북・반일 한국이라는 의사현실 (擬似現実)을 형성시켜가고 있다. 이는 의도치 않은 오해인가? 아니면, 의도적인 프레임인가?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한 일본사회의 감회
일본 사회에서 반일 대통령, 또는 반일 국가 한국의 부상은, 한류 인기의 쇠퇴에 뒤이은 혐한론의 확산현상이 아니다. 특정 문화의 붐이 사그라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류 붐은 쇠퇴기에 있지만, 케이 팝은 음악의 한 장르로서 안착하여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ヘイトスピーチ解消法)’이 공표·실시된 이래, 혐한론자들의 조직들은 치안을 어지럽히는 과격단체로써 공안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어있고, 보수진영으로부터도 일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집단으로 비판받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반일 국가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일본 사회에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일단 미디어의 편향적인 보도 태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미디어의 한국 정세에 대한 보도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일상 속에 한국과 북한이 단골 화제 거리가 되어 있고, 강의실에서는 한국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미디어의 편향적인 보도보다, 이러한 보도를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촛불 집회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을 관찰해 보자. 여기서 가장 먼저 읽히는 것은 "대통령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나라”이다. TV에서 촛불 집회를 간접 목격하면서, 보통의 일본인들은 한국 민주주의에 감동하기보다, 일본과는 전혀 다른 정치문화와의 격차를 실감한다. 그리고 '데모 선진국', 즉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결론에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숙고보다 불안한 한국에 대비되는 안전한 일본이라는 자기 긍정이 강하게 묻어있다. 동시에 이웃 나라의 불안이 자신들에게까지 파급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를 매개하는 것이 촛불 집회와 동일 선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정서를 이용해 당선되었다는 황당한 뉴스 해설도 자주 목격된다. 이는 곧 일본 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을 당시,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지는 60~70%였다. 한국의 촛불 집회와 대선을 지켜본 후의 여론 결과를 보면, 한일 위안부 합의가 결국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을 바라보는 불안한 심리와 불신을 극대화 시키는 요소가 다름 아닌 북한이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대한 보도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분석기사가 나란히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어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남북한에 일본 사회의 관심이 동시에 집중되는 양상은 2002년도 일본 사회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당시에는 한류 붐과 북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공존하고 있었다. 배용준의 인기가 절정에 있을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과 평양 선언이 있었고, 뒤이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가 부상했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 북한 위협론은 익숙해져 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처럼 공세적인 문제 제기의 대상으로서의 북한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점이다. 공포의 대상인 '북한과 친화성을 보이는 대통령'이 등장한 한국에 대해서는 동병상련의 연대의식보다 자신들을 미워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강화해 준다. 마치 일본에 위협적인 북한에 한국이 공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반일 국가 한국' 프레임, 그리고 중국
반일 국가 한국’은 의도적인 생산과 유통을 동반하는 일종의 정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통 과정은 다수의 출판물과 매체에서 쉽게 확인되지만, 그 생산자는 특정하기 어려운데,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뿐만 아니라, 전직 한국 대사 및 관료, 언론사 특파원과 자칭 한반도 전문가, 그리고 일부 체념적 리버럴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인 또는 조선인에 대한 인종적 혐오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혐한론자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출발이 다른 논리 구조를 가진다. '반일 국가 한국' 프레임 발신의 본격적인 출발을 굳이 따져보면, 2015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여를 전후로 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에게는 한국이 일본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했다는 것이 확증으로서 이해된 사례였다. 지금도 '반일국가 한국’이라는 논리의 배후에는 한국 그 자체보다 중국의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 못지않게,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행동이 대단히 걱정인 것이다.
일본에서‘반일국가 한국’이라는 프레임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대일외교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 유산과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는 적극적인 대중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대중 외교의 전개과정에서 일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단일의제로 공세적인 대일 압박이 동시 진행형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었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대중 접근은 외교적 외연의 ‘확장’이었겠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희생시키는 ‘선택’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참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역사문제에 대한 한중 공동전선의 형성으로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뒤이어 중국에 대한 위협의식에서 촉발된‘반일국가 한국’의 혐의는 비로소 실증되었다는 주장이 일본 사회에서 설득력을 갖게 되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기억하고 있던 일본 보수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한일관계는 전후 최악의 상태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진정으로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이해했다면, 한국의 정권교체는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켰어야 했다. 하지만‘반일국가 한국’의 프레임이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한일관계의 맥락에서만 문재인 정부가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적어도 ‘반일국가 한국’론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보다 더 친중국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역사문제에 더욱 엄격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반일 일본을 싫어하거나 적대시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해를 풀기 위한 외교적 시도는 필요하겠지만, 오해의 원인이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기원한다면, 논리적 설명을 통한 설득은 대단히 어렵다. 중국에 대한 견제 또는 경계의 문맥 속에 한국이‘반일’로 보이기 때문에, 이는 곧 '반미’ 또는 ‘친북'으로 비약되어 간다.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는 ‘진보'가 아니라 ‘혁신'이 되어 있었다. 일본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혁신’이라는 표현은 단지 ‘진보’라는 용어의 번역이 될 수 없다. 일본인들은 ‘혁신’이라는 용어에서 일본 공산당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 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과의 대화 시도는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으로 이해된다. 이미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유화정책으로 표현해 왔다. 그 배경에는 6자회담 전개 기간 중, 핵 문제와 납치문제를 둘러싼 한일 공조에 균열이 있다. 당시 일본이 보는 한국의 유화정책은 일종의 민족주의로 해석되었다. 북한의 핵은 곧 한국의 핵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자가 발전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일본 측의 오해는 적극적 설명을 통해 설득이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장기간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
아베 내각의 장기집권전략과 한반도
한편, 한반도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수상의 대응은 단호하고 명쾌한 것으로 비추어진다. 부산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철거가 무산되었을 때, 아베 내각은 주일 대사의 무기한 소환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녀상 철거의 여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위반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은 강력한 행정력 발휘가 어려운 대선 기간 중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비난과 제재를 주도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추진력은 앞서 언급한 불안해하는 여론과 위협을 호소하는 미디어이다. 그만큼 아베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반일 국가 한국의 프레임'을 가장 열심히 소비하는 우익적인 네티즌들-네토우요(ネトウヨ)의 지지와 성원은 매우 흥미롭다. 친북적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은 “콘크리트 같은 아베 내각의 지지율에 콘크리트를 더해준다”는 것이다. 소수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다수 대중의 분위기와 격리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현상의 정치적인 맥락을 찾고, 이것이 아베 내각에 가지는 의미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사실 정치인 아베 신조에게 한반도 문제는 줄곧 특별하고 중요한 자산이었다. 아베가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계기는 2002년 납치문제 부상 이후 전국적으로 전개된 북한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다. 아베에게 납치문제는 생존자의 생환을 고대하는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열망과 북한의 붕괴를 열망하는 구출회(救う会)의 야심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북한의 위협과 납치문제가 있었기에 수상으로서 아베가 집권할 수 있었고, 권력의 강화도 가능했다. 박근혜의 대일정책이 위안부 문제에 함몰된 원 트랙(One track) 외교였다면, 아베의 대북정책 또한 원 트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일 관계의 모든 의제는 납치문제로 일원화되어 있고, 대북 강경 기조는 크게 흔들림이 없다. 박근혜 정부가 그러한 것처럼, 아베 내각에 있어 대북정책은 거의 전적으로 국내정치의 논리에서 전개되어 온 결과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대한정책과 대북정책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베 내각의 대한반도 정책은 한일관계 개선보다는 장기집권 전략에 경사되어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아베의 정치적 야망은 ‘전후 레짐의 탈피’, 특히 개헌에 있다. 그동안 아베 내각은 이를 위한 국민적인 논의를 회피하는 한편, 평화헌법의 토대를 차례로 약화시켜왔다. 전후 최초로 국가안보전략을 기안하고, 그 기조 하에 집단적 자위권, 안보법제 등을 현실화시킨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유사(朝鮮半島有事) 가능성이 공통으로 적시되어 있다. 아베 내각의 대북정책에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보다 적극적 제재가 우세했던 이유이다. 2014년에 북일 간에는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스톡홀름 합의가 있었지만, 지금의 아베 내각에 필요한 것은 합의의 이행이 아니라 대북 위협의 존속이다. 아베 내각의 높은 지지율에 비해, 전략 목표인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쉽게 약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있어서 한반도의 불안은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백지화 또는 개정을 요구할 경우, 아베 내각은 유연함보다는 원칙적 대응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한일관계가 냉각되어도, 북한 위협이 지속되는 동안 한국은 일본과 안보협력을 지속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다만 아베 내각의 이러한 전망과 판단은 한국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의 전개와 이로 인한 남북관계가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한반도와 일본: 비정상을 정상으로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수상은 두 번의 전화 회담을 가졌다. 아베 수상은 첫 번째 통화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존중을, 두 번째 통화에서는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장 한일 양국이 중장기 비전을 공유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 시절처럼 누가 더 터프한 리더인가를 가름하는 힘겨루기를 전개해서는 안 된다. 일본 사회의 변화를 조망하면서, 아베 내각의 의도를 고려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 사회의 대한반도 인식은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 집합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여기에는 의도적인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서 확인되는 일본 국민의 불안과 불신의 정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장에 반일 국가 한국이라는 프레임을 생산하는 이들의 대 중국관에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 대한 일본 사회의 오해는 정서적인 호소로 해소될 수 없다. 일단 비정상적으로 전개된 한일관계를 정상적으로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먼저,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고려한다면, 대일외교에서 '투트랙’은 불필요한 용어이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처럼 역사문제 일변도의 외교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안전보장 문제를 다른 축으로 두고 양자의 손익계산만으로 한일관계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 아베 내각의 대한반도 외교는 국내정치에 종속시켜 왔다.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 납치 일변도의 정책은, 앞서 지적 한 대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외교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북일 양국에 납치문제는 관계 회복의 장애 요인만은 아니다. 납치문제가 있었기에 북일 양국은 두 번의 정상회담과 다양한 수준의 공식, 비공식 접촉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관계개선이 필요할 때에는 투 트랙이 선별적으로 적용되어왔다. 적대국에 가까운 비정상 미수교 상태인 북일 관계에서 이러한 접근방식은 효과적이고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역사와 안보 만이 아니라, 한일 간에 미루어 두었던 다양한 의제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정부는 대북포괄접근, 즉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오랫동안 가동되지 않았던 국제공조 패키지를 부활시켜야 한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일 공조에서의 주도권 회복은 여기서 시작한다. 한일 안보협력이 북한의 위협과 제재에 대한 공동 대응에만 머물러 있을 경우, 일본에게 항상 설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기 십상이다.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본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대북 관여와 이에 수반된 남북관계의 회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래야만 북일 관계의 변화도 시야에 들어온다. 물론 아베 내각의 대응은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대북정책이 궤도에 진입한다면, 아베 내각 또한 협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대일외교 성공은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적 여건을 만드는 것에 있다. 단기적으로 아베 내각의 장기집권전략과 상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의 수정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북정책에 한일관계를 종속시키자는 주장이 아니다. 대북정책은 한국외교의 특정 영역이 아니라 안전보장 정책의 근간이다.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의 외교안보전략에서 일본이 고려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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