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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공세적’(assertive) 대외정책이 부지불식간에 논쟁 수준을 넘어 현실이 되었다. ‘친밀(親)∙성실(誠)∙혜택(惠)∙포용(容)’으로 대변되는 시진핑(習近平)의 주변국 외교 원칙은 의미 없는 외교적 수사로 전락한지 오래다. 중국은 이미 ‘힘의 외교’를 내세워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 같은 대국정치의 비극은 예견되어 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국의 반발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뿐만 아니라 정당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개념이 ‘핵심이익’(core interests, 核心利益)이다. 중국은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서, 국가이익 간의 ‘경중’(輕重)과 ‘선후’(先後)를 구분 짓기 위해서 이 개념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또한, 주권국가로서 핵심 국가이익의 수호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정책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과 파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부상이 논쟁이 되기 시작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s, 國家利益)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이를 더욱 세분화 시켜 핵심이익까지 규정하게 된다. 핵심이익 개념이 중국 지도층에 의해 처음 사용된 시점은 2003년이다. 2003년 1월 19일 미국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Colin Powell)과의 회담 자리에서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규정한 것이 시초이다. 하지만, 중국의 핵심이익이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9년 7월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U.S.-China 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 회의석상에서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구성 요소를 제시하고, 그 해 11월 북경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자는 문구가 삽입이 되면서부터이다. 이로 인해 핵심이익과 비(非)핵심이익의 구분이 생겼다.
중국 핵심이익 정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의 핵심이익 관련 외교적 언사와 행태를 보면 2011년 마이클 스웨인(Michael Swaine)이 분석한 대로 ‘공세적 행태’의 특징을 대부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중국은 지속적으로 핵심이익 개념을 공식화하고 있다. 2011년 9월 6일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국의 평화발전(中國的和平發展)』 백서를 통해 중국의 핵심이익을 공식적으로 규정하였다. 백서의 내용에 의하면, 중국의 핵심이익은 ‘국가주권’(國家主權), ‘국가안보’(國家安全), ‘영토완정’(領土完整), ‘국가통일’(國家統一),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와 사회의 전반적 안정’(中国宪法确立的国家政治制度和社会大局稳定) 그리고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经济社会可持续发展的基本保障) 등 여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시진핑은 집권 이후, 본인의 연설에 핵심이익을 빈번히 사용함으로써 이 개념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대한 분석 결과, ‘국가핵심이익’은 2004년에서 2012년 사이 연 평균 7회 거론 되었던 것에 반해, 2013년 28회로 급증하였고, 현재까지 연 평균 26회 정도 거론이 되고 있다. 또한, 후진타오(胡錦濤) 집권시기와 달리 시진핑의 관련 발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중국 학계 역시 핵심이익 개념을 중심으로 기존의 국가이익 등급을 재정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둘째, 중국은 핵심이익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핵심이익 수호를 위해서 ‘유리유거유절’(有理有據有節: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고, 절제가 있음)한 투쟁을 하여야 하고, 군사적 투쟁을 정치, 경제, 외교적 투쟁과 긴밀히 연계시켜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양권익’(海洋權益) 수호를 빌미로 남중국해 등지에서 보이고 있는 공세적 행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셋째, 중국은 쟁점이 있는 국제적 이슈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핵심이익의 외연을 확대시키고 있다. 시진핑 집권시기에 접어들어 기존의 다섯 가지 국가핵심이익과 관련이슈들이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 국가핵심이익과 관련 이슈들이 추가되고 있다. 인민일보에 거론된 이슈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12년까지 총21개의 포괄적 주제와 구체적인 이슈가 거론된 것에 비해, 2013년부터 2016년10월27일 사이에 31개의 포괄적 주제와 구체적 이슈(6개 주제와 이슈가 빠졌고, 16개 주제와 이슈가 새로 추가됨)가 거론되었다. 2013년 이후 새로 추가된 이슈에는 ‘중대형 국유기업의 핵심상업기밀’, ‘데이터 주권’, 사드배치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이슈 등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보이고 있는 핵심이익 정책의 특징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먼저, 핵심이익 수호라는 명분하에 중국의 힘의 외교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막강한 경제력에 명분까지 생겼기 때문에 ‘도광양해’(韜光養晦) 외교 방침을 고수하기 힘들어졌다. 민족주의를 대체할 지도사상이 부재하다는 점은 이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핵심이익 수호만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기 좋은 아이템도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민주화는 더욱 요원해 질 것이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서방국가와의 마찰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기존의 내정 불간섭 원칙에 핵심이익 수호라는 명분까지 더해진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주권’을 핵심이익의 첫 번째 구성 요소로 포함시켰다. 여전히 인권보다 주권을 우선시하는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와 사회의 전반적 안정’은 결국 공산당 일당 체제를 끝까지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우려가 되는 부분은 중국과의 경제∙사회적 협력이 갈수록 어려워질 거라는 점이다. 정치와 안보분야의 이슈들은 고전적인 문제이자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핵심이익에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기본보장’이 포함되었다는 점은 향후 중국이 타국과의 경제협력을 ‘상대적 이익’(relative gains)의 관점에서 접근할 개연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경제협력 과정에서 단순히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을 넘어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분야의 핵심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최근 10여년 동안 노르웨이, 일본, 필리핀, 그리고 우리나라 등을 상대로 중국이 보여온 각종 경제보복 조치는 이런 예상이 이미 현실화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참고자료
이민규, “중국의 국가핵심이익 시기별 외연 확대 특징과 구체적인 이슈”, 『중소연구』, 제41권 제1호, 2017, pp.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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