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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화의 현장을 둘러보는 ‘르포-세계의 도시’를 연재합니다. 현재 전 세계 도시화율(도시에 살고 있는 총 인구비율)은 54%. 그러나 기존의 도시들은 서구의 ‘메가시티’ 식 일변도로 개발되어 오늘날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 인도 등 현재 급속한 도시화가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목표로 도시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인도와 중국, 덴마크, 영국 등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도시들의 현재를 돌아보고 향후 도시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연구원들의 현지 취재를 통해서 점검해봅니다.
창업과 혁신의 도시 선전(深川)
‘중국의 실리콘 밸리’ ‘중국판 한강의 기적’ ‘ 혁신능력 순위 1위 도시’...중국 선전(深川)시의 눈부신 성장을 일컫는 찬사들이다. 인구 1,200만명의 선전 시는 현재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이어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러나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던 이들 세 도시에 비해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중국 최초의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에서야 성장하기 시작한 선전의 1인당 GDP는 이미 이들을 앞질렀다. 지난해 GDP는 316조원 규모로 아시아 최대 항구 도시 홍콩과 거의 맞먹는다. ‘개혁•개방의 1번지’가 된 이래 35년 동안 GDP규모를 약 9,000배 가까이 늘린 것이다. 같은 기간 상주인구는 36배, 그리고 1인당 GDP는 246배 증가했다.
선전의 오늘을 상징하는 두 단어는 ‘창업’과 ‘혁신’. 선전은 이미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창업도시로 자리잡으며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해에만 20만개의 스타트업이 태어나고 있으며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인 ‘유니콘’이 10개가 넘는다. 시가총액 2,770억 달러로 세계 10위에 오른 IT기업 텐센트와 스마트폰 세계 시장 점유율 3위의 화웨이, 드론 시장 70%를 점유하고 있는 DJI 모두 선전시에서 탄생했다.
2013년~2015년 3년 동안 선전에서 창업한 사람은 54만명, 총 기업 숫자는 2010년 36만개에서 2015년에 114만 4,000개로 세 배 이상 폭증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창업을 강조하며 했던 ‘대중창업 만중 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 대중이 창업하고 만인이 혁신에 참여한다)’을 말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창업 천국이다. 새로 개발된 지역의 ‘창업 거리’ 카페는 미래를 위해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선전의 평균 연령은 약 33세로 낮으며, 인구 1,000명 당 기업이 73.9개, 인구 8.5명 당 창업 주체가 1명 꼴이다.
선전은 현재 바이오테크놀러지, IT, 신에너지, 신소재, 무선통신, 문화, 창의혁신적인 분야의 7개의 산업을 선정해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7개 산업들은 2016년 기준 선전 총 GDP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선전의 R&D 투자액은 2016년 기준 800억 위안을 초과해 전체 GDP의 약 4.1%를 차지했으며, 이는 선진국 평균 R&D 투자비중인 2.5%를 넘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IT와 혁신의 도시로 급부상하는 선전의 2016년 PCT 특허 출원량 1만 9,648건에 달했는데, 이는 중국 전체 PCT 출원수의46%를 차지한다.
선전에서 혁신은 도시 인구의 일상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았다. 시민들은 텐센트의 메신저 ‘위챗’이나 ‘알리페이’로 쇼핑 결제부터 공과금 납부, 병원 예약까지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선전은 전기 자동차의 인프라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곳 중 하나로서 길거리에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이 절반 정도 전기 자동차다. 역시 선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업체 비야디(BYD) 제품이다.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수십만대의 공유자전거로 거리를 오간다.
인구 30만의 작은 소도시에서 인구 천만의 도시로
그렇기 때문에 선전이 불과 몇 십년 전인 1980년대에는 인구 30만명의 소규모 도시였다는 사실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당시 선전에는 변변한 산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근접한 홍콩과의 경제적 격차는 사회적인 불안으로 연결될 정도로 극심했다.
선전과 홍콩을 왕래하는 사람으로 인해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록마차우 지역은 1970년대 중국 당국에 큰 골칫거리였다. 1977년 선전 록마차우 지구 주민 평균 월소득은 134위안이었다. 하지만 경계 넘어 홍콩 록마차우 지구 주민 평균 월소득은 무려 1만 3,000위안으로서, 두 지역간의 소득 차이가 약 100배의 차이가 났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소득을 위해 중국에서 홍콩으로의 무모한 탈출을 감행했다.
선전과 홍콩이 맞닿는 곳에 위치한 록마차우 지구. 얼마전 홍콩 정부와 선전 정부는 록마차우 지구에 아시아판 실리콘밸리인 ‘강선(港深) 창의과학원’ 건설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한때 100배 이상의 소득 차이가 존재했던 지역에서 이제는 두 도시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장점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개혁개방을 선택했다. 1980년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산토우, 그리고 샤먼을 중국 최초의 경제 특구로 하는 법안을 비준하였다. 개혁개방을 선도한 셔커우 공업구 설립을 시작으로 토지사용제도 개혁을 시행했으며, 상품과 노동의 가격 규제를 풀었다.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시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시장지향 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개혁개방의 중심이었던 선전 국제무역센터는 사흘에 한층을 올리는(三天一层楼) 선전속도(深圳速度)를 뽐내며 1985년 완공되었다.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의 경제특구 정책이 옳은 것임을 증명한다’와 ‘개혁개방은 반드시 따라야 할 도리’와 같은 덩샤오핑의 발언은 선전이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동력으로 작용했으며, 이를 반증하듯 선전 국제무역센터에서는 아직도 그의 사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개혁개방과 경제 발전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현재의 선전에서는 1980년대의 느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홍콩과 맞닿아 있는 지역은 높은 빌딩들이 가득히 들어서 있으며, 새로 건설된 지역의 카페는 미래를 위해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중국판 한강의 기적을 통해 창업과 혁신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타 지역에 비해 빠른 속도로 비싸지는 부동산 가격이 도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선전의 평균 주택가격은 2014년 12월 평방미터당 약 532만원에서 2016년 약 1,010만원로 불과 2년 동안 두 배 가까이 급등했으며, 선전은 지난해 전국 집값 상승률 1위의 불명예를 달성했다. 치솟는 가격은 부동산 버블에 대한 불안감도 조성하는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말 사회과학원이 중국 35개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대비 가계 수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인용해 선전시의 부동산 위험도가 중국에서 가장 높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선전 내 호적인구와 비호적인구 간 차별이 불공평 상태를 초래한다. 농민공(農民工)으로 대표되는 비호적인구 구성원들은 농촌 출신의 도시 상주인으로서 도시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이들은 도시 호구를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을 비롯한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선전은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원주민, 즉 원래부터 선전에서 거주했던 사람보다 타지에서 비교적 최근 유입된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도시호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선전 인구의 1/4정도 수준이다. 나머지는 도시호적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각종 불공평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 인구발전 규획 2016~2030>에 따르면 향후 15년 간 약 2억여 명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주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선전 또한 앞으로 많은 수의 농촌 인구가 유입될 것이 분명하다. 상존하는 두 계층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선전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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