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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 아베정권의 대러시아 전략과 북방영토 문제
저자: 이종원 (와세다대)
No.2017-03
지난 2016년 12월 15~16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방일해 아베(安倍晋三) 수상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2005년 이래 11년만의 일본 방문이다. 아베 수상과 푸틴 대통령 사이의 회담으로서는 다자외교 시의 접촉을 포함해서 16번째가 된다. 그만큼 아베 수상이 공을 들여 실현시킨 정상회담이었다. 장소도 자신의 정치적 터전인 야마구치현으로 설정해 국내 정치적 효과도 계산에 넣은, 일종의 승부수 격인 행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본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일본 사회의 오랜 염원인 북방영토 문제는 발표된 공식 문건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당초 북방영토 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고조되었던 탓에 그 반동 또한 컸다.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二階俊博) 간사장이 회담 직후 “국민 대다수가 실망했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잇달았다. 언론에서도 “외교적 패배”라는 단어와 함께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논조가 많았다.
정상회담 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도 전체적으로 실망감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가가 복합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상회담의 평가를 직설적으로 질문한 아사히신문 조사에 의하면 “평가한다”(45%)와 “평가하지 않는다”(41%)가 거의 같은 비율로 나타나 여론의 반응도 다소 혼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면 찬반이 크게 엇갈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교도통신이 행한 조사에서는 “북방영토에서 공동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협의는 개시하지만, 북방영토의 귀속문제는 진전이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정상회담의 평가”를 질문한 바, “평가하지 않는다”(54.3%)가 “평가한다”(38.7%)보다 많았다. 반면 “북방영토의 공동 경제활동과 구 도민(島民)의 자유왕래 검토에 합의했다”는 설명을 덧붙인 산케이 신문 조사에서는 “평가한다”(63.9%)가 “평가하지 않는다”(30.7%)를 크게 웃돌았다. 아베 수상에 가까운산케이 신문의 입장이 설문 작성에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여론의 다양한 반응은 이번 정상회담이 여러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방 영토 문제, 푸틴 ‘승’
아베 수상 자신이 주도해 온 대러시아 접근이 숙원인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것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경제적 이해 및 지정학적 전략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영토’, ‘경제’, ‘지정학’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번 러일 정상회담의 의미를 정리하고 향후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우선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서는 아베 외교의 좌절이자 패배라 해야 할 것이다. 올해 들어 교섭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아베 수상 자신이 북방영토 문제의 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최소한 2도(島) 반환”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었다. 적어도 북방영토 4개 섬 중 비교적 작은 두 섬 (시코탄과 하보마이)의 ‘인도’(引渡)를 약속한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을 재확인하는 정도의 성과는 있으리라는 희망적 관측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식 문건에는 ‘일소 공동성명’은 물론 ‘영토문제’ 자체에 대한 언급이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당초 예상되었던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은 합의되지 못하고, 공식성이 낮은 ‘언론 성명문’만이 발표된 것도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푸틴 대통령은 회담 후에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남쿠릴열도(북방4도의 러시아 명칭)은 제2차대전의 결과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며 “1956년 공동성명이 규정한 2도 인도도 그 조건은 명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종래보다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북방영토의 ‘반환’ 가능성은 크게 후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영토문제 진전에 일말의 희망을 남긴 것은 북방 4도에서 러일이 ‘공동 경제활동’을 하기로 합의한 점이다. 이것이 아베 수상이 제창해 온 영토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핵심이다. 즉 주권이나 영유권 문제를 일단 보류한 상태에서 러일 양국이 경제활동 면에서 사실상 ‘공동 통치’하는 특별한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영토분쟁을 우회하는 해결방식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경제력을 앞세워 ‘사실상의 영유권 회복’을 도모하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아직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일본측은 이러한 취지를 담은 ‘특별한 제도’라는 용어를 합의문건에 명시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측 반대로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베 수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특별한 제도’를 강조했지만, 러시아측 관계자는 “공동 경제활동은 어디까지나 러시아 주권과 법의 적용이 전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동 경제활동의 조건과 형태’는 향후 러일 양국이 협의하기로 했지만 양국의 입장 차이가 크고,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어 구체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주권에 일정한 예외를 규정하는 방식을 끌어낼 수 있으면, 영토문제 타개의 한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러시아 주권을 전제로 한 ‘경제특구’ 정도라면 북방영토 반환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 된다. 영토문제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지는 아직은 유보할 수 밖에 없으며 향후 협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경제협력 합의 돋보여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러일간의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두드러졌다. 당초 일본의 경제협력은 북방영토 문제와 연계된 카드라는 측면에서 보면 푸틴 외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영토문제에 일체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강경자세를 취하면서도,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대규모 경제협력를 이끌어냈다. 아베 수상이 제시한 8개항목에 걸쳐 총 82개의 협력사업이 합의되었고, 그 규모는 일본 국제협력은행이 출자하는 1000억엔의 공동기금을 포함해 총액 3000억엔에 달한다. 그중 68개가 민간사업이며, 14개는 정부간 협력사업이다. 8개항목은 ①건강및 수명 증진, ②도시개발, ③중소기업 협력, ④에너지 개발, ⑤산업 다양화, ⑥극동지역 산업 진흥및 수출기지화, ⑦첨단기술협력, ⑧인적교류 확대 등이다. 이들 협력분야는 크게 극동 러시아 주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기여하는 사업과 에너지 개발과 인프라 건설등 대규모 프로젝트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예로서는 최첨단 설비를 갖춘 의료설비 건설, 일본식 시스템을 도입한 도시개발, 하이테크 온실수경 재배방식으로 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생산할 수 있는 ‘야채공장’ 건설 등이 포함되었다. 경제협력의 혜택을 러시아 주민이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서 영토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여론 형성을 촉진한다는 취지다.
후자는 보다 전략적인 개발 프로젝트로서 일본이 관심을 가져 온 석유 및 가스전 공동개발이 다수를 차지한다. 러시아측은 러일간의 철도 연결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송전선을 연결하는 ‘에너지 브릿지’ 계획 등도 제안했지만, 이번 합의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같은 구상에 관해서는 일본 산업계 일각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방대한 사업비용과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일본정부 내에 신중론이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경제협력 사업은 기본적으로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 러시아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교섭수단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원개발과 가스 파이프라인 구상 등은 일본에게도 일정한 경제적 및 전략적 이익을 가져오는 것들이다. 특히 러일을 연결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구상은 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일 뿐만 아니라 중동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는 전략적 함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대러시아 접근에는 지정학적인 전략 구상이 배경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2013년 12월 아베 정권이 발표한 ‘국가안전보장 전략’이라는 문서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보장 환경이 한층 어려워지는 가운데 안전보장 및 에네르기 분야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해서 러일관계를 전체적으로 강화해 가는 것은 일본의 안전보장 확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구절이 있다. 아베 정권이 미국의 시스템을 참고로 해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신설해 그 첫 작업으로 발표한 문서이며, 일본이 국가전략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는 최초라는 의미도 지닌다. 이 문서 작성을 주도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초대 사무국장(국가안전보장국장)에 취임한 것이 아베 수상의 책사라 불리우는 야치(谷內正太郞)전 외무성 차관이다. 야치 국장은 이번 러일 교섭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 견제’ 카드로서의 러시아 접근
이 문서에서 지적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보장 환경의 변화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을 의미한다. 즉 러일 접근은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는 지정학적 전략 체제의 한 축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구도가 유동적이고 다각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즉 중국이 대두하고 미국의 아시아 관여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중러관계의 긴밀화를 중화하기 위해서도 대러시아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러시아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경계하고 있다는 판단이 그 근거가 되고 있다.
위 전략문서에 규정된 대로 아베 수상은 2012년말에 제2차 정권이 출범한 이래 러시아와의 안전보장협력에 힘을 기울여 왔다. 2013년 2월 외무차관급의 전략대화를 신설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외교및 국방각료 회담(소위 2+2)를 개최했다. 일본으로서2+2회의는 미국, 호주에 이어 3번째이며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러시아는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영국에 이어 5개국째이나, 2014년 크리미아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대러제재로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이번 러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2+2회의의 재개를 제안했으나, 일본이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이 대러시아 제재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방영토 문제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향후 미러관계의 전개 여하에 따라서는 러일간의 안전보장 협력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베 정권의 대러시아 접근은 북방영토 문제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 러일 정상회담의 의미도 영토문제의 진전이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중장기적인 경제적 이익과 지정학적 관점에 입각한 포괄적인 전략체제 구축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트럼프 신정권은 오바마 정권과는 달리 미러협력으로 외교정책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기 국무장관에는 러시아의 자원개발에 깊이 관여해 온 엑손모빌의 틸러슨 대표가 내정되었다. 유라시아의 자원과 지정학을 둘러싼 국제정치 구도가 격변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을 비롯해 각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한국으로서도 하루빨리 정치를 정상화시켜 새로운 ‘북방외교’를 추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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