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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매일경제신문과 공동으로 차세대 디지털혁명 시대 도시의 경제적 미래와 이것의 기반이 될 新문명의 가능성을 조망한 <신문명 도시가 미래다>시리즈를 기획,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신문명 도시가 미래다> 시리즈 순서 |
울산에 밀려 한때 황폐화…서비스·관광업으로 부활
이젠 울산이 배워야 할때
스페인의 대표적 문화도시 빌바오의 50대 이상 노인들은 ‘울산’이라는 한국 지명을 잘 알고 있다. 해운과 조선업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빌바오 경제를 1970년대 말부터 고꾸라뜨린 것은 울산을 비롯한 아시아 공업도시들의 발흥이었다. 빌바오 시내에서 만난 로베르토 산 살바도르 두이스토대학 교수는 첫인사로 “‘울산’의 나라(한국)에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울산’ 발음은 매우 정확했다.
울산에 밀린 1970년대 빌바오는 도시 전체 실업률이 20%대까지 치솟았고, 활기가 넘치던 도심은 급격히 슬럼화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변 공장과 조선시설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변한 게 그 즈음이었다.
1983년 최악의 대홍수가 밀어닥쳤고, 조선소와 공장은 물론 철도 도로 가옥 등 도시 인프라 대부분이 물에 잠겨 약 39억달러 피해가 발생했다. 산 살바도르 교수는 “매우 현실적 선택만이 남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죽느냐, 아니면 변화를 통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빌바오는 가보지 않은 혁신의 길을 택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빌바오가 속한 비스카야주 정부, 그리고 빌바오 시민과 기업, 대학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혹은 관에서 민으로의 일방적인 지원과 시혜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대화와 논의를 통해 주요 사안을 의사 결정하고,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민·관·산업계가 협력하는 수평적 소통 중심의 시스템이 구축됐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빌바오리아2000’ 과 같은 대규모 도시재생계획이 전개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오늘날 새로운 빌바오를 낳은 구겐하임미술관이다. 빌바오시는 공장이 즐비했던 강변을 보행자 중심 수변공간으로 재생시켰고, 조선소를 개조한 뒤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했다. 도시 각 주체는 여기에 희망을 걸었고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도 1억달러를 미술관 유치 자금으로 투자하는 데 동의했다. 또한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건축가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제조업에서 서비스·관광업 중심 신도시로 도시 정체성을 바꿨다. 오늘날 빌바오는 인구 35만명에 불과하지만 한 해 1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산 살바도르 교수는 “위기의 정점에서 빌바오와 빌바오 시민들은 이른바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극적 성취를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빌바오 효과’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 도시가 스마트시티로 거듭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빌바오시는 현재 구겐하임미술관을 비롯해 이베드롤라타워 등 문화유산을 3D(3차원)로 체험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30%(2005년 대비)까지 줄이는 계획도 도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바오의 몰락과 회생의 계기를 제공했던 울산은 30년 전 빌바오가 겪었던 몰락의 초입에 서 있다. 조선업 침체와 구조조정이 가시화하면서 20~40대 인구가 줄고 있다. 빌바오에서 만난 한 60대 퇴역 조선노동자는 “울산 때문에 고생했지만 울산 덕분에 오늘날 빌바오가 있다”며 “미래 울산도 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중소 도시 빌바오의 탈바꿈 과정에는 극심한 경제난과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빌바오 미래를 위해 1억달러를 구겐하임미술관 유치 자금으로 투자하는 데 동의한 도시 주체들의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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