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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술 경연의 장에서 인류 난제 해결 위한 기술 협력의 장으로: 기조연설로 본 CES 2024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4는 ‘All Together, All On(모두를 위한, 모든 기술의 활성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최첨단 기술 경연의 장이었던 그간의 분위기를 기술 협력의 장으로 완전히 뒤바꿨다. 현장에서 살펴본 지멘스, HD현대, 로레알, 월마트, 퀄컴, 인텔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 인사들의 기조연설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관찰되었다. 기술 혁신의 목적성을 인류가 직면한 도전 과제의 해결에 두는 것은 물론, 이를 구현함에 있어 당사의 기술 선진성만을 앞세우기보다는 기업 간 기술 협력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었다.
통상 CES 기조연설은 업종별 선도 기업이 미래 기술 트렌드를 전망하고 당사의 비전을 공유하는 무대로, 그해 주목할 만한 산업의 동향과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올해는 범용기술로써 AI의 확산성을 강조해, AI 그 자체에만 주목했던 지난해와는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일견 디지털과 무관해 보이는 전통 산업인 미용과 건설 분야에까지 접목되는 AI의 범용기술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AI가 허문 업종 간 경계에서 파생된 창의적 혁신으로 인류 난제를 함께 극복하겠다는 올해의 주제와 부합한다. 이 모든 핵심 내용이 기조연설에 잘 녹아있다.
지멘스와 HD현대는 가상 공간을 주축으로 한 제조업과 건설업의 혁신 가속화 및 지속가능성 강화를, 로레알은 미(美)의 추구를 인간 욕구의 본질로 내세우며 미의 사각지대를 기술로 해소하겠다는 포용성을, 월마트는 자동화된 쇼핑 서비스로 돈과 시간의 절약 더 나아가 삶의 질 제고를, 퀄컴과 인텔은 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에서 바로 생성형 AI가 구동되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를 모바일, PC, 자동차 등으로 확산 적용함에 따른 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아마존, 소니 등과 함께 산업용 메타버스 구현에 박차
CES 2024 기조연설의 포문을 연 독일 대표 제조업체 지멘스(Siemens)의 회장 겸 CEO 롤랜드 부쉬(Roland Busch)는 현실과 거의 구별감 없는 가상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의 기존 의미에 AI와 사람이 실시간으로 협업해 현실의 과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엔지니어링 공간이라는 의미를 더한 ‘Industrial Metaverse(산업용 메타버스)’가 기술 혁신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산업용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단 시간 내 광범위한 시뮬레이션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트윈’, 현실과 가상 세계를 동기화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Software-Defined Automation)’는 단순 데이터를 선별해 정보화하는 ‘AI’가 수년 걸리던 반복 작업을 단 몇 초만에 완료케 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잘 이해하고 정량화하여 더 적은 자원으로의 생산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장의 레이아웃서부터 공정 흐름, 수동 작업까지 이 산업용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지은 지멘스의 공장은 기존 공장 대비 제조 능력은 200%, 생산성은 20%가 증가했고, 에너지 소비는 20%가 감소했다.
더 나아가,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복잡한 설계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설계자와 엔지니어가 시공간 제약 없이 3D 설계도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콘텐츠 솔루션 NX™ Immersive Designer는 소니 코퍼레이션(Sony Corporation)과의 협업 결과물로 고품질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가 장착된 XR 헤드를 착용하면 3D 물체와 직관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어 몰입도 높은 엔지니어링이 가능해진다. 또한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의 고급 생성형 AI 기술을 앱에 간편하게 통합해 주는 서비스 Bedrock과 자사의 로우코드 플랫폼 Mendix를 통합해 적은 코딩으로도 생성형 AI 앱을 구축하고 확장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을 선보였다.
물리적 건설현장을 가상 세계로 확장... 지속가능 건설업으로의 대전환
한국 대표 종합 중공업 기업 HD현대의 정기선 부회장 겸 CEO는 인류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던 건설업이 현재는 전 세계 에너지 사용의 7.3%, CO2 배출량의 13%를 발생시키고 미국 내 작업장 사고가 운송업 다음으로 가장 많아 10년 내 320만 개의 미충원 일자리 문제를 안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언급하며, 이를 타개할 비전으로 ‘Xite Transformation(육상 대전환)’을 제시했다. Xite는 기존의 물리적 건설현장을 뜻하는 Site를 가상 세계로 확장한 개념으로, Xite 대전환은 X-Wise라고 하는 AI 기반 무인 자율 작업 지원 기능이 탑재된 건설 장비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최적의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능형 현장 관리 솔루션 X-Wise Xite을 통해 건설현장에서 무재해의 ‘안전성’과 무인자율화를 통해 유휴시간과 정지시간 없는 ‘생산성’, 탈탄소화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X-Wise Xite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전 세계 건설 현장에서 자유롭게 공유케 하는 개방형 아키텍처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건설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바라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뜻에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가 동참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음성 등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인 구글의 Gemini가 탑재된 구글 클라우드의 AI 플랫폼 Vertex를 기반으로 건설현장의 전방위 학습을 진행하여 다차원적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이용자를 돕는 건설 현장 특화 AI 모델로 거듭날 전망이다.
포용적 뷰티 기술로 미의 사각지대 해소
프랑스 대표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éal)의 CEO 니콜라스 히에로니무스(Nicolas Hieronimus)는 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당부하며 뷰티 테크 기업으로서의 비전을 발표했다. 로레알이 정의하는 미는 인간 욕구의 본질이자 보편적 추구로 전 생애 동안 계속되는 것이며, 자신감을 형성하여 사회로부터 방패 또는 연고(balm)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써 과학과 혁신을 이끌어 낸다. 이렇듯 뷰티와 테크의 조응은 피상적 의미의 아름다움 추구를 넘어 자신을 형성하는 근간이 된다. 그래서 로레알의 테크는 모두가 존중과 지지를 받는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포용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포용적 뷰티 기술의 하나로 선보인 HAPTA는 장애나 노화 등의 이유로 손이나 팔의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립스틱을 어디에서나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바를 수 있게 도와주는 휴대용 메이크업 기기로, 촬영 시 카메라를 고정해 주는 장치인 짐벌의 형태와 유사하다. 신체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에게 외모 압박이 더 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가 결코 사소하다 할 수 없다. 이들이 외출을 하는 데는 더 큰 자신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자립의 경험은 일상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적 참여를 증진케 한다. 이러한 혁신성을 인정받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는 HAPTA를 작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기도 했다. 이 외에도 문제성 피부 등으로 남들에게 받는 평가가 꺼려져 뷰티와 담을 쌓은 사람들도 터놓고 맞춤 뷰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생성형 AI 기반 뷰티 챗봇 Beauty Genius도 공개되었다.
더불어 지속가능성이라는 인류 난제에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여러 테크 스타트업들과의 협업 솔루션들도 발표했다. 스위스의 Gjosa와는 물거품을 많이 내는 특수 구조를 통해 수압은 강화하되 물 소비는 최대 69%까지 줄이는 샤워 헤드 Water Saver, 중국 드론 제조업체 DJI 출신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스타트업 Zuvi와는 열선 대신 적외선을 이용해 전력 소모를 최대 28% 줄이는 헤어 드라이기 AirLight Pro를 공개해 뷰티 기술이 물과 전력 소모를 극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동화된 쇼핑,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 아닌 사람을 섬기는 기술
미국 대표 유통 기업 월마트(Walmart)의 CEO 더그 맥밀런(Doug McMillon)은 자사가 추구해 온 자동화 기술의 궁극적 목적이 사람을 대체해 인건비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데 있음을 강조하며, 자동화된 쇼핑은 월마트의 직원을 포함한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할 것이라 전망했다.
쇼핑 자동화 기술로 소개한 서비스들은 경쟁사 아마존이 내놓은 세 가지 서비스의 ‘사람 중심 버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계산대 없는 무인점포를 목표로 내놨던 Amazon Go는 상품을 담고 나오기만 해도 결제가 되는 Just Walk Out 기술의 구현을 위해 매장 규모와 상품의 가짓수를 제한해 오히려 쇼핑 경험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중단되었고, 이를 보완한 모바일 연동 스마트 카트인 Dash Cart는 공산품처럼 QR 코드 스캔이 안 되는 신선품은 직접 품목을 입력해 별도의 장바구니에 구분해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만 가중시켰다. 또한 상품별 원클릭 쇼핑 서비스로 출시한 Dash Button은 실제 필요보다는 정해진 구독 주기에 맞춰 상품별로 주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한편, 월마트의 Scan & Go는 카트에 물건을 담을 때 모바일로 셀프 스캔과 결제가 이루어져 셀프 계산대의 줄 서기조차 하지 않도록, In Home은 구매 패턴을 학습해 소비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갖가지 물건들을 앱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구매를 제안하고 허가 시 냉장고 안까지도 배송해 주는 서비스로 구독 모델의 단점을 상쇄하여,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에 맞추는 것이 혁신임을 역설했다.
이외에도 7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인 15분 드론 배송 등을 언급하며 원활한 전력 공급이 유통∙물류업의 경제성과 접근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해 청정에너지 생산으로의 사업 다각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쇼핑의 자동화로 기존의 단순반복 및 몸이 힘든 일자리를 잃게 되는 월마트의 직원들은 모국어 지원이 가능한 AI 비서 My Assistant를 제공해 관리의 영역으로의 일자리 전환을 대비하고 있다고 밝히며 사람을 전방위적으로 섬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모바일, PC, 자동차에 장착된 AI:
언제 어디서나 맞춤형 의사결정 지원으로 생산성 향상
미국 대표 반도체 기술 기업 퀄컴(Qualcomm)의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Cristiano Amon)과 인텔의 CEO 패트릭 겔싱어(Patrick Gelsinger)는 공통적으로 AI 시대에 기기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써 온디바이스를 제시했다. 온디바이스는 인터넷에서 호스팅되는 원격 서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클라우드와 달리 모바일, 태블릿, PC 등 사용자의 기기에서 직접 수행되는 방식이어서, 인터넷 연결과 관련된 지연과 보안 문제에서 자유롭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상시로 접촉하는 기기에 AI가 장착되면서 AI가 사용자의 환경을 함께 경험하여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더욱 적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AI가 탑재되면 도로 사고와 관련해 발생하는 추측과 스트레스를 줄여 운전자와 법 집행기관, 보험회사 등과의 해결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온디바이스가 모바일과 PC를 넘어 자동차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기 위해서는 반도체 칩의 성능 향상과 LLM(거대언어모델)의 경량화가 필수다. 이에 퀄컴은 전체 시스템을 칩 하나에 담은 기술집약적 반도체(System on Chip)인 Snapdragon을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통합 플랫폼 Digital Chassis를 소개했다. 자동차의 뼈대에 해당하는 섀시(Chassis)처럼 두루 적용가능한 차량 통합 플랫폼으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및 자율주행 솔루션 등을 포괄하여, 자동차 고장 시 원인과 수리처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사례로 들기도 했다. 한편 인텔은 와이파이를 탑재한 인텔의 노트북 Centrino의 출시 이후 카페, 호텔, 사무실 곳곳에서 와이파이가 보편화된 것처럼, 올해 말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반도체 Gaudi 3를 필두로 한 AI PC의 보편화도 이끌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라는 기술 혁신의 목적을 제대로 묻고 답했다
CES 2024는 기술 혁신의 방향을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이러한 조짐을 보였으나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는 못했다. 1994년 UN이 주창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전면에 내세운 탓이다. 인간안보는 무력으로 국토를 수호한다는 전통적인 안보개념을 경제, 식량, 보건, 환경, 개인, 공동체, 정치 등의 발전을 통해 인간을 보호한다는 포괄적 안보개념으로 전환해 전 세계에 지적 충격을 안겼던 개념이다. 올해에는 안보라는 개념이 주는 경직성과 모호성에서 벗어나 인류가 매일매일의 삶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 과제들을 ‘모두 함께 AI를 중심으로 한 모든 기술의 활성화(All Together, All On)’로 해결해 보자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했는데, 이는 미래 기술을 인류 공멸의 위기에서 인류 공생의 기회로 반전시킬 열쇠로 여겨 온 태재의 비전과 일치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류가 염원하는 지속가능하고 포용력 있는 세계로의 대전환에 모두 함께 이뤄 갈 기술 혁신이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 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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