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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中央外事工作領導小組
요약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의 상설형 영도소조로, 외교와 국가안보 업무를 영도하는 비공식 의사협조기구(議事協調機構)다. 1958년에 설립되었으며, 2016년 현재 공산당 중앙 총서기 겸 국가주석 시진핑이 조장을 맡고 있다. 2000년에 설립된 중앙국가안전영도소조와 ‘하나의 기구, 두 개의 명패’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당 중앙이나 국무원 등의 대외관계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상설형 영도소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당 중앙 소속 소조이기 때문에 국무원, 중국인민해방군 등 다른 부문의 소조보다 영향력이 크다. 또 협조소조나 공작소조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접근도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고 단계성(Term-oriented) 소조나 업무중심(Task-oriented) 소조가 아닌 상설형 영도소조이다. 한편, 독립된 사무기구로 당 중앙 직속의 공식기구인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판공실(辦公室)을 갖추고 있다.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주요 역할은 부문 간 정책과 의견 조율, 정책 집행 감독, 지도자 자문 등이다. 기본적으로 당 중앙이나 국무원 등의 외교 업무나 대외관계 관련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보좌와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를 통해 대외관계 관련 당의 노선이나 구체적인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 중앙의 각 계통과 국무원 각 부문 간 대외 사무를 협조한다.
둘째, 국제정세와 대외정책 관련 중대한 문제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제정하며, 당 중앙에 결책(決策) 건의사항을 제출한다.
셋째,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결책, 결정, 실천을 위한 협조사항을 감독하고 촉진한다.
넷째,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전국성(全國性) 규정을 제정하고, 당 중앙과 국가기관 각 부문과 지방에서 제정한 중요 외교 규정을 심사 및 비준한다. 그리고 이들 기관이 보내오는 중요 외교 문제의 지시와 보고 등을 처리한다.
2000년 이후 중앙국가안전영도소조와 ‘하나의 기구, 두 개의 명패’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1958년 6월 10일 중공중앙의 <재경, 정법, 외사, 과학, 문교 소조 설립에 관한 통지>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는 당이 정부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조직적 안배 차원에서 마련된 조치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중공 중앙정치국 상임위원회 설립과 함께 중국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에서의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편, 이러한 제도적 조치는 마오쩌둥(毛澤東)이 현실 정치의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여전히 당의 큰 비전과 노선을 제시할 수 있음과 동시에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당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창립 이후 중국 내의 정치적 상황 또는 지도부 교체에 따라 개편되어왔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폐지되었다가, 1981년 재건되었으며, 1987년을 기점으로 그 위상에 변화가 생겼다. 1987년 이후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중앙서기처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중앙정치국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당 관련 기구가 재편성되었는데, 1998년 8월에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 설립이 결정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3월 29일 <국무원 기구 설치에 관한 통지>(國發[1998] 5號)를 통해 “국무원의 외사 판공실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의 명의를 보존하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구체적인 업무를 승계하여 담당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9월에는 중앙국가안전영도소조(中央國家安全領導小組)의 설립으로 조직적 구조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영도소조는 유고 대사관 폭격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하나의 기구, 두 개의 명패(一個機構,兩塊牌子)’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한편, 2012년 중국 주변 해양 영토분쟁이 촉발되고 해양권익 보호 문제가 부상하면서 중앙해양권익공작영도소조(中央海洋權益工作領導小組)가 설립되었다. 이 소조 역시 판사기구인 판공실을 설립했는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과 합동 근무를 하고 있다. 즉,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중앙국가안전영도소조, 중앙해양권익공작영도소조 판공실을 겸하는 멀티태스크형 사무기구가 되었다. 그 업무 역시 국가안전과 대외관계 관련 중요 정책 보좌와 의사협조로 확대되었다.
시진핑 집권 시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구성원
현재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조장은 중국 공상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구성원은 1997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보인다. 1981년 소조가 재건된 이후 국가주석이 조장을 맡아왔으나, 1997년부터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그 역을 맡고 있다. 대외정책을 당의 공식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당의 최고지도자인 총서기가 조장을 맡는 것과 국가주석이 맡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기부터(구체적으로 1993년부터) 당의 총서기가 국가주석을 겸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9년 6월 장쩌민이 총서기가 된 후에도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국무원 총리가 계속해서 조장을 맡은 것을 보면, 1997년부터 총서기가 조장을 맡게 되었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은 세계화, 분권화, 전문화, 그리고 다원화 등의 특징을 보이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의사결정과정에서 관련 행위자 간 협의와 조정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고,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당정 간 협의와 조정’의 장 역할은 더욱 강화되게 된다. 최고권위자인 총서기는 협의 과정에서부터 참여를 하게 됨으로써 회의를 주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협의 내용이 당의 공식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승인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게 됨을 의미한다.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의 실질적인 업무는 판공실에서 담당하는데, 1998년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이 설립된 후의 주임은 다음과 같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는 류화츄(劉華秋), 2005년부터 2013년까지는 다이빙궈(戴秉國), 2013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는 양제츠(楊潔篪)가 맡고 있다.
초대 조장 천이부터 2016년 현재 조장 시진핑까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비공식기구이기 때문에 조장과 주요 조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기존 연구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1958년부터 문화대혁명 이전까지는 국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었던 천이(陳毅)가 조장을 맡고, 국무원 외사판공실 부주임 랴오청즈(廖承志)이 부조장을 맡았다.
1981년 재건된 이후 1987년까지는 국가주석 리센녠(李先念)이 조장을 맡고, 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자오즈양(趙紫陽)과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 지펑페이(姬鵬飛) 등이 부조장을 맡았다.
중앙서기처와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 1987년 이후 1997년까지는 국가주석 양상쿤(1987~1992)과 국무원 총리 리펑(1993~1998: 1997년까지가 아닌 1998년까지라는 연구 결과가 있음)이 조장을 맡았고, 정치협상회의 주석 겸 국무원 부총리 우쉐첸(吳學謙)이 부조장을 맡았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중국 공산당 중앙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장쩌민이 조장을 맡았고,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와 국무원 부총리 첸치천(錢其琛)이 부조장을 맡았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는 총서기 겸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가 조장을 맡았고, 국가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부조장을 맡았다.
2012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는 총서기 겸 국가주석 시진핑이 조장을, 국가부주석 리위안차오(李源潮)가 부조장을 맡고 있다.
참고도서 및 관련 사이트
Alice Miller, The CCP Central Committee’s leading small groups, China Leadership Monitor, No.26.
Alice Miller, More already on the Central Committee’s leading small groups, China Leadership Monitor, No.44.
양갑용, 「시진핑 시대 중앙영도소조의 역할 변화 가능성 연구」, 『중국연구』 제60권, 2014.
김애경,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에서의 공산당의 역할」, 『현대중국연구』제15집 2호, 2014.
*이 글은 HK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와 네이버가 공동기획하고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가 제공한 <네이버 지식백과-중국현대를 읽는 키워드 100>에 수록된 글입니다. (원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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