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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COVID-19: 글로벌 미래대화 ⑨] “호랑이로 커진 중국... 고양이로 대하는 것은 비현실적” -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아시아연구소 특별연구원

이재영 (여시재 자문위원) ·김윤진 (여시재 SD)

2021.02.22

- ‘중국의 변화와 아시아의 미래’ 주제로 대담
- “중국은 14억 인구의 삶의 질 향상시킬 리더십 필요로 해”

키쇼어 마부바니(Kishore Mahbubani)는 아시아의 세기를 주창하며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강연과 기고, 저서를 통해 서구의 영향력이 줄고 아시아가 부상하는 국제 사회의 힘의 전환을 이야기해왔다. 지난해 출간한 저서 「중국은 이겼나(Has China Won?)」에서는 미중경쟁시대 미-중 양국의 전략적 오류와 공존의 가능성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

또 그는 싱가포르 외교관 출신답게 현실에 기반한 실용 외교를 강조해왔다. 그는 주유엔 싱가포르 대사를 비롯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2001~2002년)을 역임했으며, 싱가포르 국립대(NUS)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학장을 지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선정 100대 지성인으로 선정된 정치사상가이기도 하다.

여시재는 글로벌 미래대화를 통해 현재 NUS아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마부바니와 ‘중국의 변화와 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마부바니는 스스로를 ‘아시아와 중국을 대하는 더 좋은 방법을 미국에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이날 대담에서도 중국이 보여주는 모습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과 미국의 전략적 실수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특히 미-중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장기적인 전략을 기반으로 공존하는 것이 싱가포르와 한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에도 ‘팩트’에 기반한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목소리를 낼 것을 조언했다.

이날 대담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언론의 편향성과 근거 없는 희망을 걷어낸 마부바니의 주장을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현실’이라 평했다.

대담자로 나선 이재영 여시재 자문위원은 19대 국회의원, 세계경제포럼(WEF) 아시아담당총괄 부국장을 역임하였다.


서구 시각으로 편향된 중국 평가에 기대선 안돼
한국 현실에 기반한 객관적인 대중 정책 고민해야

Q. 교수님의 책을 통해 지난 3,40년간 중국의 변화와 중국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외부와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듯하다. 아니면 국격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을 모르는 것인가? 지난해 미국 PEW리서치센터가 선진 14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평판을 조사한 결과 평균 73%가 중국에 비호감이라는 입장 1) 을 보였다.

A. 중국과 세계의 역학관계에 대해 논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수치가 있다. 전 세계 인구 78억 명 중 12%만 서구권에 살고, 88%는 비서구권에 산다. PEW리서치의 조사 대상국은 대부분 서구권이다. 서구 선진국이 주도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따라가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대신 중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무대 중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서구 국가들이 권력 상실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전 세계 195개국 중 138개국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이 비인기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미권 미디어는 일대일로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 일색이지만, 실제 현실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및 아프리카 경제 전문가 드보라 브라우티함은 미디어에 보도된 중국의 일대일로 ‘부채함정외교’설은 사실과 다르다는 연구보고서를 공개했다.2) 이 논문은 채텀하우스로부터 연구의 객관성을 검증(동료평가) 받았다.

또 향후 1년간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을 것이다. 1년 후 전 세계 인구를 대상으로 평판 조사를 한다면 대다수가 ‘땡큐, 차이나’를 외칠 수도 있다.

Q. 편향된 시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건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열기는 이미 많이 식어버렸다. 앞으로 한국은 어떤 관점으로 중국을 바라봐야 할까?

A. 첫째, 국제관계에서는 언제나 ‘현실적’이어야 한다. 절대 ‘열정적(감성적)’이어선 안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영미권 미디어에서 말하지 않는 사실까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대중 정책과 한국의 대중 정책이 같을 수 없다. 상대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자비로운 거인은 없다. 로마제국도, 당나라도, 영국도, 미국도 자비롭지 않았다. 초강대국의 힘을 이용하여 한국의 핵심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국제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둘째, 대국의 이웃으로 산다는 건 불편한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옆에 사는 멕시코는 편안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국경 장벽을 건설하자 하면서, 장벽에 들어갈 비용을 멕시코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독특한 전략적 과제를 갖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이 중국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문제의 일부가 될 것이다. 즉 중국을 소외시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당신은 한국이 5천 년의 역사를 중국과 이웃으로 살았다고 말했는데, 앞으로의 5천 년도 중국과 이웃으로 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천 년 이상을 바라보는 긴 안목으로, 때때로 중국에 맞서며, 중국과 어울리는 자주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덩샤오핑의 중국이 고양이라면
시진핑의 중국은 호랑이.
강경한 리더십 보여주는 것”

Q.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과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패권을 어떻게 휘두를지 모른다는 염려가 크다.

A. 지금 이 방 안에 고양이가 있다면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겠지만, 호랑이와 한 방에 있다면 무척 불안할 것이다. 1980년대의 중국은 고양이고, 2014년 이후의 중국은 호랑이다.

중국의 구매력평가기준 GNP(국민총생산) 규모는 덩샤오핑 시대인 1980년 미국의 10%에 불과했지만 시진핑 시대인 2014년에는 미국을 추월했다. 34년 만에 10배가 커진 호랑이를 여전히 고양이처럼 대하고 싶어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국제 관계에서 ‘희망 회로’를 돌리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다. 다시 말해 현실적이어야 한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중국은 이미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덩샤오핑이 살아 돌아와 오늘날 중국의 리더가 된다 해도 시진핑처럼 확신에 찬 강경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진행한 공산당리더십에 대한 중국여론변화 연구결과를 보면 지난 10년간 국민들의 지지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중국 국민의 생활수준을 크게 개선해 줬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강경한(assertive)’것이지 ‘공격적(aggressive)’인 게 아니다.3)

중국 부상이 미국에 위협된다는 인식 잘못돼
홍콩 통해 中 자극하는 것은 美의 전략적 오류

Q. 강경한 것과 공격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가?

A.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를 인용하자면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미국인처럼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처럼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은 1890년대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이때 루즈벨트가 펼친 팽창주의 곤봉 외교 전략은 막강한 힘이 공격적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예시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해외 전쟁에 5조 1천억 달러를 썼고, 175,000개의 폭탄을 투하했으며, 이 과정에서 80만 명이 전사했다.

“테디 루즈벨트는 워싱턴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고, 10년간의 전쟁 끝에 스페인을 서부지역에서 몰아내고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지배권을 획득했다.”,
“독일과 영국이 미국의 조건에 따르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파나마운하 경영권 획득을 위해 콜롬비아와 협상을 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자 파나마 독립을 배후에서 조장했다”
(「Has China Won?」, 페이지 88)

중국이 미국처럼 행동하면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 상상해 보았는가? 중국은 지난 40년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에 군사적 공격을 할 생각도 없고, 전 세계에 공산당 체제를 퍼트릴 생각도 없다.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를 침체시킬 생각도 없다.
중국이 미국에 위협적인가? 미국인 대다수의 답은 ‘YES’이겠지만, 정답은 ‘No’다.

Q. 홍콩 사태는 중국이 앞으로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닌가?

A. 우선, 일본인들이 한국 정부가 제주도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제주도가 한국의 일부이듯,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홍콩은 아편전쟁 시기 중국이 영국에게 무력으로 빼앗겼던 땅이다. 서구 열강의 손에 겪은 굴욕을 상징한다.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포르투갈에 빼앗겼던 고아 등의 영토를 무력 귀속시켰다. 그와 달리, 중국이 50년간 홍콩의 자치권을 허용한 것은 놀랍도록 관대한 일이다. 홍콩을 통해 중국을 자극하려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오류다.

홍콩에 있을 때,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직접 목격했다. 미국이 홍콩 사태 개입에서 남긴 가장 큰 오점은 폭력시위를 지지한 것이다. 미국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습격했을 때 격분하던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홍콩 시위대가 홍콩 의회를 습격했을 때 시위대를 지지했었다. 미국이 정녕 논리적이고 도덕적이라면 “우리는 홍콩의 평화시위를 지지한다. 우리는 홍콩의 폭력시위를 비난한다.”고 했어야 한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홍콩 사람들의 삶과 복지에 관심이 없다. 홍콩을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를 알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또 한 번 수단화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30년 전에 썼던 책 에서 이미 이런 내용을 다뤘었다.

미중 경쟁의 승부는 군사 아닌 경제에 달려있어
동아시아 영향력의 열쇠는 ‘무역협정’
미, 강해지려면 군비 줄여 복지부터 증대해야

Q. 「Has China Won?」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옹호하고, 미국이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 이 책은 미국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향후 수년간 해야 할 일에 대한 상세한 로드맵을 제공하고 있다.

A. 나는 반미 인사가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오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미국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미중 수교의 주역 헨리 키신저 말했듯 미국은 대중국 장기 전략이 없다. 책에서는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으로 미국에 위해가 된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해 장기적이고 사려 깊은 전략을 가져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고위 인사들도 내 책을 좋게 평가했다.

Q.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에 대해 비판한 기사도 봤다. 한국도 쿼드 가입 여부를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쿼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우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모든 나라는 자신의 참여 의지에 따라 국제기구에 참여할 수 있는 주권이 있다. 한국의 쿼드 참여 여부 역시 명확한 참여 의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쿼드를 비난한 건, 미중 경쟁의 승부는 군사가 아닌 경제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점을 짚은 것이다. 미국이 군사적 수단으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구상하는 전략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잘못된 게임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군사적 동맹을 강조하느라 경제적 스탠스를 잃으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힘은 점차 약해질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키는 무역협정이다. 미국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하 RCEP)을 체결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중국의 힘을 상쇄시키고 싶다면 쿼드는 잊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하 TPP)에 복귀해야 한다. 인도가 RCEP을 체결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의 저지른 가장 큰 전략적 실수 중 하나는 국방에 어마어마한 돈을 낭비한 것이다. 9.11테러 이후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와의 전쟁에 5조 1천억 달러를 사용하고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그 세월 동안 노동자계급은 절망의 늪에 빠졌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배경이 되었다.

미국은 소득 하위 50% 계층의 평균 소득이 3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한 유일한 선진국이다. 미국처럼 매우 부유한 나라가 어떻게 ‘다리(소득하위계층)’를 잃게 되었을까? 5조 달러는 소득 하위 50% 계층 개개인에게 3만 달러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현재 미국인의 60%가 400달러의 실업수당도 받지 못하는 걸 생각하면, 3만 달러는 큰돈이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제트전투기, 탱크, 항공모함에 쓰는 모든 돈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훔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국방비 지출을 유도하는 군수산업 집단이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다시 강해지려면 국방 지출에 돈을 그만 허비하고, 그 돈을 국민경제와 복지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Q. 미국의 전략적 사고의 부재와 사회시스템 고장에 대해 지적했다. 미국이 ‘U턴’을 할 수 있을까?

A. 「Has China Won?」을 쓴 이유이다. 책을 통해 미국이 U턴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Has China Won?」을 읽은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 책을 추천하곤 한다. 왜 미국인들이 내 책을 좋아할까? 내가 그들이 다시 강해지게 도우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대로 가라고 해야 하는가? 그만 멈춰 서라고 말해야 하는가? 한국도 미국의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미국이 다시 강해질 수 있도록 솔직한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 하버드총장이자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래리 써머스(Larry Summers)가 최근 블룸버그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2020년에
읽은 최고의 책 BEST 3 중 하나로 「Has China Won?」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블룸버그 인터뷰 영상 4) )

Q. 하지만 책에서 트럼프가 떠나고 다음 대통령이 와도 미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바이든이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가?

A. 바이든은 좋은 대통령이 될 것 같다. 트럼프 정부와 달리 신중하고 예측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4년 후 바이든 대통령 나이가 82세다. 연임은 어려울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또는 트럼프와 비슷한 후보가 경쟁한다면, 트럼피즘이 다시 승리할 수도 있다. ‘미국이 4년마다 바뀌지 않는 초당적 대외전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던질 수밖에 없다.

Q. 미국의 문제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로 범위가 확장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한국에서도 핵심가치이자 원동력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의문은 이해가 되지만, 민주주의 시스템과 제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가?

A.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의 집권당이 두 번 바뀌었지만, 소련에 대한 정책은 초당적 차원에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대소련 봉쇄정책을 주창한 조지 캐넌은 국가경쟁력은 군사력이 아닌 정신적 동력(영적 활력소, 공동의 가치관)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누가 더 건강한 사회 공동체, 흔들리지 않는 경제를 갖췄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신적 동력이 부족한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분열된 미국은 한국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미국이 스스로 치유하고 다시 강해질 수 있도록, 신뢰할만한 장기적 전략을 채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 전략이 있어야 하나의 컨센서스, 초당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저자는 조지 캐넌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냉전봉쇄정책의 대부, 강대국경쟁전략에 통찰력을 보였던 조지 캐넌은
미국이 도덕적 우위를 앞세워 전면전을 벌여 상대국과 경쟁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캐넌이 말하는 봉쇄정책은 세력균형을 통해 상대국을 견제하되, 제한전으로 파국을 피하려 했다.
(참고: 「조지 캐넌의 미국 외교 50년」)

미국은 북한을 인정하고
북한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Q. 이야기를 분단된 한반도로 이어가 보겠다. 지난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아무런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외교와 통상 분야에 30여 년간 몸담았던 외교 전략가로서 한국이 북한 문제,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조언을 하자면? 미국과 중국에 조언을 하자면?

A. 외교는 2천여 년 전에 적대국과 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동맹국과의 외교관계만 중시하고, 적대국과는 외교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는 외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국이라면, 미국이 북한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최우선 전략 미션은 외교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선 미국에 두 가지 조언을 하자면 첫째, 북한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북한은 1953년부터 실존해온 나라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사라지지 않을 것(한순간 붕괴하지 않을 것)을 자각하고, 대화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게 원하는 것이 체제 전환인지 태도 전환인지 확실히 하는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설립(KEDO)에 관한 협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 협정에 참여했던 미국 관료들의 회고록을 통한 변론은 ‘북한 정권이 와해될 것이라고 믿고 협정에 서명했던 것’이다. 이는 정직하지 못하고, 명예롭지 못하다.

한국은 북미외교수립을 주창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미국이 합리적인 대북장기전략을 갖는 게 한국에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하는데, 폼페이오가 북한의 항복을 고집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다시는 연출되지 않아야 한다.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
지속적 대화 중요해

33년간의 외교 경험을 빌어 말하자면, 사람들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 베트남과 비공산주의 싱가포르는 적대국이었다. 1984년부터 6년간 나는 베트남 대사들과 치열한 토론을 했다. 소련 붕괴 후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연합(이하 ASEAN)에 가입했는데, 아세안 어느 나라와 가장 친밀하게 지낼까?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도 베트남에 공단을 지었다. 지속적으로 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일어난 미얀마 사태 역시 제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부와 마주 앉아 ‘쿠데타는 효과가 없다. 군사정권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제재로는 알려줄 수 없다. 역내 모든 국가가 함께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공동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은 ASEAN 활용해 일본과 중국 견제할 수 있어
‘미중 양자택일은 할 수 없다’는 입장 확실히 밝혀야

Q. 마지막으로 아시아가 가진 힘에 대해 묻고 싶다. 아시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시아는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문화, 종교, 민족이 공존하는 만큼 단결도 어렵다.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아시아적 가치가 존재하는가? 만들어내야 하는가?

A.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보편적인 아시아적 가치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다양하다. 꼭 얘기하고 싶은 점은 ASEAN이 아시아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아세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역 기반의 국제기구다. 이들이 다양성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이유는 “Musyawarah and mufakat(협의와 합의)”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한-일, 중-일, 한-중 국가 간 불신과 갈등의 뿌리가 깊다. 한중일 3자 간 FTA 체결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3개국 모두 ASEAN이 만든 RCEP 체결을 하게 되어 한중일 FTA 협상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한중일 3국이 함께 공개적으로 감사 인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미권 미디어는 늘 동아시아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영미권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ASEAN을 통해 일본과 중국의 힘을 견제하고 활용할 수 있다. ASEAN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Q. “협상 테이블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 교수님 책에 나오는 말이다. 미중 협상 테이블에도 갈등보다 평화를 이끌어낼 분들이 앉게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A. 우리 모두 바이든의 성공을 바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이든이 실패하면 트럼피즘이 이전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바이든이 성공하도록 돕는 방법은 솔직하게 조언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 필요한 건 군대가 아닌 경제 파트너라고, 미중 무역전쟁을 잠시 멈추고 TPP에 합류하라고, COVID19을 없애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라고 말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쟁에 낭비하지 말고, 경쟁의 분야와 협력의 분야를 구분하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미국과도 친구이고 싶지만, 중국과도 친구이고 싶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1) Pew Research Center, October, 2020, “Unfavorable Views of China Reach Historic Highs in Many Countries”
2) Deborah Brautigam. (2019). A critical look at Chinese ‘debt-trap diplomacy’: the rise of a meme. Area Development and Policy. 5. 1-14.
3) Edward Cunningham, Tony Saich, and Jessie Turiel. (2020). Understanding CCP Resilience: Surveying Chinese Public Opinion Through Time. Harvard Kennedy School Ash Center for Democratic Governance and Innovation.
4) Bloomberg, January, 2021, “Can’t Think of Better Political Memoir Than Obama’s: Sum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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