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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2017.03.14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동북아 정세 변화와 일본사회의 대응 -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저자: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No.2017-10


한국 경제가 예사롭지 않다.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최순실 사태로 경제 수장조차 정해지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는 신보호주의 정책을 강하게 주창한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전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져 있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 보면 두 현상 모두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크게 높여 놓았지만 일반 국민들의 경제적인 삶까지 뒤 바꾸어 놓을 일은 아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장사가 잘 될 것인지, 월급이 더 오를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다. 2012년부터 지속되어 온 2%대의 저성장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미 익숙해진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저성장의 고통이 이제 본격적으로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저성장이 한국 경제의 큰 위기일까? 그럼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어떻게 하면 저성장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의 고통을 경험한 일본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장기 저성장

(1) 인구 절벽과 소비 절벽

일본 경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과 내수 경기 침체로 장기 저성장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경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엔화가 급속히 강세가 됨으로써 수출이 먼저 타격을 받기 시작하였고 내수 또한 1990년 초에 부동산과 주식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침체 국면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장기 저성장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은 인구절벽이 오기 시작한 1995년경부터이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이란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2차 세계 대전이후 늘어만 가던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1995년을 피크로 줄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장기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왜 그 나라 경제는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일까? 생산가능 인구는 말 그대로 생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인구이기 때문에 이들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 그 국가의 생산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준 것은 바로 이들이 핵심 소비가능 인구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줄기 시작하자 일본 국내의 내수 소비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내수 소비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백화점이나 할인점이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하자 일본에서는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이 줄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점포들의 매출 하락을 그룹 내의 다른 점포들의 매출 증대로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영역의 매출이 타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동네 술집과 노래방(일명 가라오케), 옷 가게, 식당, 이 미용실, 세탁소들의 매출이 시차를 두고 줄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동네 가게들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기에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하자 이들의 매출이 함께 줄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매출이 줄면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나서 이들 기업들을 핀 포인트로 도와 줄 수 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가게들은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제가 마치 만성병 환자처럼 알게 모르게 이들 가게들의 쇠퇴와 도산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병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2) 복합 불황과 사회 양극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시작된 소비절벽(Consumption Cliff)은 일본 경제를 악순환 구조에 빠뜨려 버렸다.

소비가 줄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줄일 뿐만 아니라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인력을 구조조정하기도 하고 임금을 삭감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이것이 가계 소득에 영향을 주어 소비를 더욱 줄이는 계기가 되었다. 즉 가계발 불황이 기업발 불황을 유발시키고 또 기업발 불황이 가계발 불황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일본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복합 불황이라고 하였다.

[도표1] 일본의 복합불황

어느 나라든 경제가 구조적인 악순환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이것은 경제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 문제가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도 만찬가지였다.

먼저 기업발 불황과 가계발 불황이 뒤엉켜 나타나자 사회의 한계 계층들이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들이 길거리의 노숙자가 되기도 하였고 조기 퇴직하여 가게를 시작한 샐러리맨들이 파산하여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취업 빙하기를 겪게 되었고 어렵게 취직을 하더라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성장기 때만 하더라도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고 일컬어지던 일본 사회가 양극화(social polarization)되기 시작하였다.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회 병리 현상도 수반하였다. 젊은이들 중에는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고 일부 젊은이들은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집에 틀어박혀 외출을 삼가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정 폭력이나 학대, 자살, 고독사와 같은 일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것은 일반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고 시민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들에게 염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수상이 매년 바뀌는 사태가 일어나 국가의 리더십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일부 정치가들은 국민의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일시적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Populism)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국가 재정은 계속 무너져 내려 세계 최고의 재정 건전 국가가 단 20년 만에 선진국 중 최악의 재정 불건전 국가로 전락하는 일마저 일어났다.

결국 전후에 계속 유지되어 오던 자민당 일당 독재가 종식되고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정권을 잡은 민주당조차도 경험 부족으로 경제를 더욱 악화시켜 버렸다. 이것을 기화로 정권을 재탈환한 것이 현재의 아베 수상이다.

아베 수상은 아베노믹스를 통하여 어려움에 빠진 일본 경제를 정상 상태로 되돌려 놓음과 동시에 미래 성장 산업을 육성함으로서 일본 경제가 다시 한번더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생산가능 인구는 물론이고 총인구조차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이 지난 20년간의 일본의 경제, 소위 잃어버린 20년이었다.

한국의 인구절벽과 소비절벽

한국이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버블 붕괴 등으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구절벽도 똑 같이 따라가고 있다.

[도표2] 인구절벽을 맞이하는 한국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올해가 피크이다. 내년부터 줄기 시작한다. 일본이 1996년부터 줄기 시작하였으니 거의 20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이 인구절벽을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일본처럼 소비절벽이 올 것이다. 일본처럼 백화점 매출이나 할인점 매출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있는 수많은 식당과 술집, 이 미용실, 옷 가게 등의 매출도 줄 것이다. 그러면 복합불황이 오고 사회 양극화와 정치적 불안이 올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바로 앞에 다가오는데도 정부도 사회도 개인도 준비가 없다. 준비는 고사하고 위기 의식 조차 없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절벽을 맞이하게 된다. 경제 규모도 1990년대의 일본보다 못하고 국민의 소득조차도 일본보다 못하다. 국가 재정도 일본보다 못하고 기업의 경쟁력 또한 일본보다 못하다.

그런데 고령화의 속도는 당시의 일본보다 더 빠르고 인구절벽의 속도마저 일본의 2배나 된다. 노인 빈곤율은 벌써 50% 가까이 되고 사회 양극화는 지금의 일본보다 더 심하다.

더욱이 장기 저성장의 직격탄을 맞게 될 가게들은 골목 곳곳에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600만을 넘고 있고 이들이 전체 사업체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6%나 된다. 인구 1천명당 숫자로 보면 일본이 27명인데 비하여 한국은 60명이다. 앞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이들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특히 기업들이나 가게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좀처럼 좋은 해법은 없지만 일본기업들의 사례를 살펴 볼 경우 다음과 같은 돌파 전략이 있다.

첫 째는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내수는 구조적인 악순환에 빠져들기 때문에 애초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는 전략이다. 일본의 식당들의 예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식당들의 매출은 단가 곱하기 고객 수이다. 일본도 1995년부터 젊은 층 인구가 주는 인구절벽이 찾아 왔기 때문에 당연히 고객 수는 매년 줄었다. 문제는 단가이다. 줄어드는 고객 수에 비례하여 단가가 역으로 상승하면 식당의 매출은 그나마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단가가 거꾸로 매년 하락한다는 점이다. 저성장으로 소득이 줄게 되니 고객들이 점점 싼 식당을 찾게 되고 이것이 식당 간의 경쟁을 유발시켜 단가를 하락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식당들의 매출은 매년 하락하게 되고 못 버티는 식당들은 폐업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일부 식당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해외로 나갔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식집, 선술집, 라면집 등이 들어와 있는데 이것은 일본 식당들의 생존 전략의 하나이다. 한국도 식당들은 물론이고 술집, 세탁소, 심지어 취직 못한 대학 졸업자 조차도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저성장 시대의 첫 번째 생존전략이다.

두 번째 전략은 국내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이다. 국내 시장은 정체되고 축소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틈새시장이 있다. 일본 식당만 보더라도 고급 식당은 그 나마 장사가 되었다. 인구절벽과 소비절벽이 오더라도 소득과 계층이 양극화되면서 부자들은 더 잘 살게 된다. 그러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식당은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밖에 노인들을 위한 배달 음식 식당이나 절약 족들을 위한 포장 전문 식당,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문 식당도 있다. 문제는 이들 식당들은 어디까지나 틈새에 조그맣게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가게 규모를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 국내의 대중 시장, 즉 메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 번째가 저 가격 전략이다. 대중들은 소득이 정체되거나 감소하기 때문에 싼 것을 찾는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저 가격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 가격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원가를 절감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대단히 힘들다. 하지만 원가를 낮추지 않고는 저 가격 전략을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피를 깎는 노력을 해서라도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원가를 절감하더라도 품질까지 낮출 수 없다는 점이다. 식당을 예로 들면 가격을 낮추었다고 해서 맛까지 떨어뜨리면 고객들은 다시 오겠는가? 따라서 대중 시장을 위한 두 번째 전략이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싸고 동시에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전략이다.

세 번째가 영업 전략이다. 일본 식당의 경우 2가지 방향으로 영업 전략을 구사하였다. 하나는 찾아 온 고객에게 깨끗한 식당 분위기와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 줌으로써 다시 오게 하는 전략이다. 고객의 방문율을 높이면 매출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영업 전략이 거리로 나서는 전략이다. 오고 가는 고객들에게 광고지를 뿌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무실을 방문하여 사장을 만나고 부장을 만나서 식당에 고객들이 오게 하는 전략이다. 이렇게 보면 대중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원가도 낮추면서도 가치도 올려야 하고 영업까지 해야 하니 매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모두 해야 생존할 수 있다. 고 성장기나 버블 기에는 가격이 비싸도 장사가 되었고 맛이 없어도 손님이 왔었다. 가게가 지저분해도 손님이 있었고 식당 주인이 영업을 뛰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가 오히려 비정상(Abnormal)적인 시대였다.

저 성장 시대를 영어로 New Normal(새로운 정상상태)이라고 한다. 싸고 맛있고 또한 열심히 파는 전략은 어떻게 보면 정상이다. 비정상 시대의 감각으로 보면 매우 어려운 전략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사의 기본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전략이다. 식당뿐만 아니다. 기업들의 전략도 마찬가지다. 좋은 시절, 비정상 상태를 빨리 잊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열심히 파는 전략, 이것이 저성장 시대의 생존 전략이자 돌파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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