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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Twilight of Democracy] 세계 휩쓰는 권위주의 복고 물결, 민주주의의 황혼은 저무는가? - 미국 영국 스페인 등 민주주의 본산까지 「Twilight of Democracy: The Seductive Lure of Authoritarianism」

티테녹 안나 (SD)

2020.10.29

제3차 권위주의의 역물결

폴란드, 헝가리, 영국, 스페인, 그리고 미국.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OECD 회원국이라는 점 말고는 없을 것 같은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 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고 권위주의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820년부터 참정권 확대가 진행되어 1926년까지 29개 민주 헌정 국가가 등장했다. 새뮤얼 헌팅턴은 100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민주주의 제1물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22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정권이 수립되는 등 1942년까지 민주주의 국가가 12개로 줄어들었다. 소위 역물결이었다. 제2차 물결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뒤 1962년까지 진행됐다. 민주주의 국가 수가 늘어 36개에 도달했다. 작은 역물결을 거친 뒤 1974년부터 제 3의 민주주의 물결이 세계에 확산됐고, 냉전 후 이는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74년 이후에만 30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해 모두 60개 국가를 넘어섰다.

안나 뤼어만(Anna Lührmann) 및 스테판 린드버그(Staffan I. Lindberg)의 연구에 따르면 1994년부터 다시 권위주의로 전환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뤼어만과 린드버그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가 여전히 많고 전환 과정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1).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물결 (출처: Anna Lührmann & Staffan I. Lindberg (2019))

글로벌 민주주의 평균 점수 하락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렇게 말하기 힘들게 됐다. 민주주의 연구자인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2006년경부터 후퇴가 시작됐으며 구소련, 중동, 아프리카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재앙적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위기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경제시사주간지 ‘The Economist’ 계열 조사회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EIU)’이167개국의 민주주의 실태를 조사하여 작성한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글로벌 평균 점수는 2019년에 5.44점이었으며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한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2). 최근에 폴란드, 헝가리, 영국, 스페인,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위주의의 유혹에 맞서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IU 2019 민주주의 지수 (출처: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지난 6월 미국에서 출간된 ‘Twilight of Democracy-The Seductive Lure of Authoritarianism(민주주의의 황혼-권위주의의 유혹)’은 이 세계적 흐름을 다룬 책이다. 나오자마자 뉴욕타임스 및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1999년 연말 파티에 참석한 지식인들
지금은 정치적 입장 갈려 말도 안 섞어

이 책은 1999년 12월 31일 밤 폴란드 북서부 작은 도시의 한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시작한다. 밀레니엄의 여명을 앞둔 바로 그날, 영국 미국 러시아 폴란드 출신의 외교관, 기자, 저술가 등이 조촐한 모임을 열었다. 대부분 이른바 자유주의자라 불릴만한 사람들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 양극화로 인해 서로 대화하는 하는 것도 기피하게 되고 말았다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왜 이렇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권위주의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인, 기자, 블로거들

애플바움은 프랑스 철학가 및 에세이스트인 쥘리앙 방다 (Julien Benda)의 ‘지식인의 배반(La Trahison des Clercs, 1927)’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 방다는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에 집중했다. 그는 그들을 좌우익 입장을 막론하고 ‘clercs(clerks)’이라고 불렀다. 지식인들이 진리를 포기하고 권력에 허리를 굽히고 정치적 사업에 참가한다고 비판했다.

애플바움은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권위주의자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 대신 기존 체제의 기반을 훼손하고 새로운 체제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줄 지식인, 기자, 블로거, 작가, 아티스트를 필요로 한다. 새로운 세대의 clerc들은 지식도 풍부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대도시에 산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하다.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의 회귀는 경제적 위기를 기초로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동유럽, 영국, 스페인, 미국의 ‘clercs’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플바움은 자신이 아는 사람, 그들과의 개인적 경험을 곁들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국 브렉시트 배경에는
‘영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향수 있어

권위주의의 매력은 그 개념이 단순하다는 데에 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당이나 레짐에 충실한 자가 엘리트가 된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패자들은 언젠가는 게임의 룰에 도전하게 된다. 권력 배분에서 배제된 자가 특히 권위주의적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에서 성장한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 정당들과 지도자들이 음모론을 활동하고 사회를 양극화시키며 소셜 미디어 및 복고적 향수(restorative nostalgia)를 자극한다.

권위주의적 개혁이 동유럽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브렉시트 배경에는 향수를 느끼는 보수파를 깨우는 언론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영국이 세계 규칙을 만드는 것에 대한 향수라고 한다. 복고적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들이 ‘상실된 고향을 다시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애플바움은 또 다른 이의 표현을 빌어 ‘문화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동유럽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음로론이 돌아다닌다.

신기술이 민주주의 토양 확대했지만
사회 양극화 가져와

이 책에서 필자의 관심을 특히 끈 것은 신기술과 민주주의의 관계 부분이었다. 신기술은 민주주의 토양을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결과도 가져온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3G 인터넷 연결 이후 감소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3). 민주주의 제도는 원래 정보화 기술이 없던 시기, 분노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신기술 발전은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었다. 애플바움에 의하면 정보화시대는 Clerc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툴킷을 제공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자유롭게, 극단적인 입장을 밝히고 왜곡된 정보를 더욱 쉽게 확산시킬 수 있다. 실제 뉴스와 가짜 뉴스가 섞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판별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Clerc들은 단순한 언어, 상징성과 단일성이 있는 정체성을 활용하여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더욱더 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있다. 이 현상은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소셜 딜레마’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4).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민자 문제, 또 경제적 상황이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변수로 작동될 수는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복합성과 다양성 보다 단일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들에게 더 매력적인 것은 권위주의다. 호주 정치학자인 카렌 스테너(Karen Stenner)는 인간의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다양성을 선호하는 반면에 권위주의적 경향은 단일성과 질서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애플바움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규칙을 따른다면 결국에는 컨센서스를 달성할 수 있다. 현재의 토론장은 그렇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헝가리 등서
민족주의 우익 정권이 모든 기반 장악하고
적을 외부에서 찾아

애플바움은 폴란드 사례를 소개한다. 폴란드에서는 보수주의 경향이 강한 우익 정당이 가장 큰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사를 장악하고 미디어뿐만 아니라 공무원, 외교관, 엘리트 군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교체가 이루어졌다. 법원과 미디어의 기반은 훼손되었다.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 동성애자, 유대인 등에 의한 실존적 위협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적으로 강조되기 시작했다. 폴란드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 추락사고를 둘러싼 음모론들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헝가리에서도 민족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국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이민자, EU, 조지 소로스에 있다는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간 미디어와 헝가리 과학아카데미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강화되었다. 더 나아가 헝가리는 중앙유럽대학(CEU)을 부다페스트에서 쫓겨냈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레이건 시절 공화당과
트럼프의 공화당은
같은가, 다른가?

애플바움은 권위주의 부흥 조짐을 스페인에서도 찾는다. 최근 스페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정당은 Vox극우정당이다. 이 정당은 다른 정당들이 무시해온 이슈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즉 스페인의 분열 특히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독립에 반대하는 스페인 민족주의 강조, 그리고 동성결혼, 페미니즘, 이민자 반대 등에 집중했다. Vox는 스페인의 단일성, 조화, 전통을 회복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도 이제 국제적 이슈에 관여하기 전인 1920년대의 고립주의로의 회귀를 추구하고 있다. 애플바움의 지적에 의하면 트럼프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차이를 지우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권위주의와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허용된다. 레이건의 공화당은 트럼프의 공화당으로 변신하기 위해 정당의 Clercs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졌다.

<결론>

민주주의의 미래?
어느 나라든 후퇴할 수 있는 상황

프랑스 정치 만화가인 까렌다쉬(Caran d’Ache)의 만평 ‘어떤 가족의 만찬’이 있다. 한 가족 두 모습이다. 위 그림은 가족이 평화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5). 아래 그림은 가족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이 그림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랑스 정치 만화가인 까렌다쉬(Caran d’Ache)의 만평 ‘어떤 가족의 만찬’ (출처: 위키피디아)

최근 프랑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들은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결을 반영하고 있다. 법치와 유럽의 통합, 국제기구, 다양성, 민주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측과 우선주의와 민족주의, 애국주의, 통제와 영향력을 중시하는 측 간 대결말이다. 애플바움은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한다. 필요한 조건이 형성되면 어느 사회든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애플바움은 권위주의적 움직임의 주요 추진력인 정치인, 지식인, 활동가 등의 다양한 인사들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포기하고 권위주의적 입장을 가지게 되는 삶을 이야기해 준다. 복고적 향수, 능력주의에 대한 실망, 음모론 어필, 시끄러운 현대의 담론 등 다양한 변수들이 그들을 움직였고, 극우 정당들은 관심을 이끌기 위해서 이 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의 황혼의 시대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바움은 민주주의의 황혼의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처럼 새로운 글로벌 연대의 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COVID-19의 도전으로 자극을 받아 글로벌 제도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협력의 틀을 발굴하고 자유주의 개념을 재평가하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를 형성할 수 있다. 성공의 핵심은 함께 하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참고 문헌>
1)
Anna Lührmann & Staffan I. Lindberg (2019) A third wave of autocratization is here: what is new about it?, Democratization, 26:7, 1095-1113, DOI:10.1080/13510347.2019.1582029
2)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http://www.eiu.com/topic/democracy-index)
3) Guriev, Sergei & Melnikov, Nikita & Zhuravskaya, Ekaterina. (2019). 3G Internet and Confidence in Government. SSRN Electronic Journal. 10.2139/ssrn.3456747.
4) “소셜 딜레마”(2020)는 소셜 미디어의 중독과 가짜 뉴스에 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이다. 실리콘 밸리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주요 스토리로 하고 있다.
5)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후반에 드레퓌스의 무죄 여부를 둘러싼 프랑스 사회를 양극화시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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