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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여시재 특별연구원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 대연정 제안 고뇌 되새기며 차기 대선 화두 삼아야”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다들 말한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할 정치는 과거에 매인 채 갈수록 팬덤화 되어가고 있다. 중간은 없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진영 저편은 무조건 그르다. ‘평형수’ 없이 위태롭게 대양을 떠도는 배를 지켜보듯, 국가적 과제들이 유실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도개혁을 강조하며 양당의 대결구도를 넘어 줄곧 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던 김성식 전 국회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 전 의원은 18대 국회의원이던 2011년에는 ‘정치 쇄신’을 주장하며 당시 여당(한나라당)을 탈당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선 제3당(국민의당)으로 지역구(서울 관악갑)에서 당선됐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관악갑에 다시 나섰지만 여당 바람에 밀려 실패했다. 김 전 의원은 여야 모두로부터 인정받은 ‘경제통’이다. 국회의원 8년 동안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고,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야의 관련 논의와 입법을 이끌었다. 현재 여시재 특별연구원이다.
그를 만나 디지털과 COVID-19라는 전환기적 상황에서 우리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들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Q. 우리는 지금 어디 서 있는 걸까?
A. 지금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모든 담론이 코로나와 결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시대적 경고는 존재했고, 그 문제들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며 살아온 데 대한 근본적 성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과 함께, COVID-19 이전부터 제기된 구조적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중에 이런 국가가 어디있는가. 국민이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다.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 성공의 덫에 취해 경제 체질과 국가 운영방식을 제 때 바꾸지 못했다. 성공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까. 산업화, 민주화 이후에 갔어야 할 세 가지, 혁신경제로의 전환, 사회적 안전망 강화, 생산적 정치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뤄내지 못했다. 역대 정권에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땜질 처방에 그쳐 문제가 쌓이다 보니 이미 기저질환을 앓게 되었다.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어렵게 극복했음에도 그 이후 낡은 성장 엔진을 갈지 못해 반도체, 배터리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론 기회 축소 사회가 되어 가는데 사회적 안전망을 체계적으로 갖추지 못했다. 거기에 고난도의 조율과 타협이 필요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키기만 하는 대결적 정치 행태까지 겹쳐 있다. 그런 상황에서 COVID-19라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게 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배제와 독점의 정치론
국가적 과제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
Q. 지적한 세 가지 가운데 정치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분열의 시대의 중심에 정치가 있는 것 같다.
A. 지금과 같은 분열과 배제, 독점의 정치로는 더 이상 국가적 과제와 민생을 해결할 수 없다. 정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나는 제대로 된 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등 선진 국가에서는 낮은 차원의 정책 연합에서부터 장관 자리를 나누는 높은 차원의 연립 내각 등 다양한 형태의 연정이 이뤄져왔다. 수술을 하게 되면 고통도 따르고 위험도 따르기 때문에 그런 수술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없는 필수적 수술이라면 온 역량을 모아 제대로 해야 한다. 한 정당, 한 정권이 밀어붙인다고 해결이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고난도의 정책 과제가 지금 수두룩하다.
“굵직한 국가적 과제들을
연합정치로 한 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시기”
Q. 우리는 국민들이 대통령직선제를 만들었고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하기까지 했다. 그 자체로 발전 아닌가?
A.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새로운 상황, 새로운 과제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적대감이 더 강해졌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아홉 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평균 물갈이 비율이 40%가 넘는다. 대통령 선거도 일곱 번 했다. 정권 교체도 여러 번 이뤄졌다. 그 과정을 통해 정치가 좋아졌는가? 별로 아닌 것 같다. 그럼 생각을 바꿔봐야 한다. 정권교체도, 정치인 물갈이도 중요하지만 정치, 국정을 하는 방법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지금 우리는 그런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배제와 독점의 정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여야 할 것 없이 연합 정치를 통해 기저 질환에 해당하는 굵직한 과제를 한 번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 그런 시도가 이 나라에 절실하다.
정치가 행정과 다른 건 ‘막힌 곳을 국민적 에너지로 뚫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거 정치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과도한 이념 대립과 이분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정치로 심화되어 왔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문제를 키워갈 뿐이고, 사회적 분노의 수위는 높아지고, 국민의 불신과 분열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오죽하면 정치를 바꾸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했겠는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임기 중반 이후 중요한 정치 개혁 과제를 진행하려다 보니 대연정이 아니고선 안되겠다, 총리는 야당에서 가져가도 좋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난이도 높은 과제에 동력을 불어넣고, 책임도 나눠지는 방향으로 가자는 거였다.
“내후년 대선 때 연정 논의 나와야”
Q.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여당 내부의 반발과 야당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A. 그 때 정치상황이 그랬다. 지금도 제대로 된 연정으로 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당제로 재편된 것도 아니고, 선거를 거듭하면서 대립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여당은 국회의 모든 상임위를 가져가는 초유의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하는 이런 이야기가 먹힐 리 없다. 나도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대선을 계기로 이런 연합정치 논의가 꼭 주요 화두가 되길 바란다. 어느 후보, 어느 정치 세력이 더 나은지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그 선택의 근거 중 하나로, 중요한 정치 덕목으로서 낮든 높든 수준을 막론하고 연합 정치를 할 자세와 비전, 정책 목록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는 최초의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 표가 되지 않는 건 하지 않고, 눈앞의 땜질에만 집중하는 정치를 뛰어넘어 구조적 변화와 통합을 가져올 수 있는 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책의 설득력과 집행력은 연합 정치로 갈 때 더 커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후에 국민들로부터 욕도 같이 먹고, 칭찬도 같이 받는 정치가 되었으면 한다.
“경제체제 혁신부터
노동시장 이중구조 전환
연정 외엔 방법이 없다”
Q. 연정의 최상위 정책 목록에 어떤 게 오를 수 있을까?
A. 경제 체제 혁신부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까지, 그리고 세금을 얼마 내고 복지를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지 등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굵직한 이슈가 많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정책도 여야의 극심한 정쟁에 빠질 수 있다. 고난도의 국가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연정이 필수적이다. 낮은 수준의 정책 연합이든 높은 수준의 연립 내각이든 연정 외엔 방법이 없다. 개헌하지 않아도 현행 헌법에 얼마든지 그 여지가 있다. 대통령은 큰 틀에서 국정을 이끌고, 내각 통할은 총리가 할 수 있다. 정치권 안에서도 속 깊은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할 거라 믿는다. 연정은 다음 대선의 화두어야 한다.
슈뢰더와 루스벨트
그리고 노무현
Q. 연정도 중요하지만 집권세력이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 지지층의 요구와 반대쪽으로 가서 국가를 일으켜 세운 사례도 있지 않나?
A. 합의된 정책을 바탕으로 연정을 하는 것, 또 자신의 지지 기반에게 선(先)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야 말로 국민 통합적 에너지를 모아 더 큰 개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좋은 선례가 많다. 독일 슈뢰더 총리의 하르츠 개혁(2002)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민당 당수였던 슈뢰더가 복지 수준을 낮추고, 노동 시장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지지층의 요구와 반대 방향이었다. 만약 그때 기민당에서 그런 개혁을 주장했다면 독일 사회는 분열로 치닫게 되었을 거다. 20세기 벽두 미국에선 공화당 출신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스탠다드 오일, JP모건 등 대규모 독과점과 계속해서 싸웠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과 복지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지지 기반이 격렬히 반대하는데도 한미 FTA를 추진했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지지 계층에게 먼저 양보하고 설득을 요구하면서 그를 토대로 사회 전체의 변화를 촉진한 정부들은 그 시대에 필요한 국가적 변화를 이끄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이후 국민들에게도 좋은 후생으로 연결됐다. 이런 사례가 많다. DJP 연합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사회 개혁의 견인차가 되었다.
“586,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걸림돌 될 것”
Q. 오늘날 정치의 핵심주체인 586에 대해 이제 퇴장할 때가 됐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A.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전자가 민주화 운동이라면 후자는 민주공화제 운영에 관한 문제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저항성과 정의의 문제라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책임윤리, 유능함, 궁극적으로 국민을 통합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이유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제도로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있지 못했다. 선거 민주주의로는 전환되었지만 대의 정치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가운데 이념과 지역 대립이 강했고, 선거 때마다 팬덤 문화를 토대로 편가르기를 해서 다수를 구성하는데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군사독재 정권이 끝난 1987년 이후에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속에서 상대방이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국정을 의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치 시스템이 정착되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청와대 권력 집중이 더 커졌다.
586은 역사적 기여가 분명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퇴장보다는 성찰하라는 것이 국민적 주문이다. 나아가 과거 운동민주주의 때의 경험과 비전을 넘어, 산업화 민주화 시대와 다른 새로운 문명 전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고민하고 설계해야 한다. 이런 고민들이 깊어져야 스스로 더 훌륭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 민주주의에 대한 수행자였을지라도 제도 민주주의의 심화를 이끄는 데에선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의를 독점하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성찰해야 한다. 오죽하면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가 촛불 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는 게 아닌지, 지금의 배제와 독점의 정치는 곤란하다는 우려를 표명했겠는가.
“야당은 국민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감수성이 지극히 낮아”
Q. 야당은 어떤가?
A. 야당도 마찬가지다.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시각과 정책 패러다임, 냉전시기에 형성된 이념형 패러다임, 국민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지극히 낮은 감수성, 젊은 세대의 개성에 대한 몰이해와 ‘꼰대’스러움, 지적할 것이야 많다. 이를 넘어 혁신을 해야 한다. 서로가 좋은 정치 변화 경쟁을 해야지, 상대방을 비난하는 태도로는 보수와 진보 모두 나아갈 수 없다. 다 낡은 보수, 낡은 진보로 평가받고 마는 것이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정치에 긍정적 변화를 추진하기는커녕 스스로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퇴출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지금은
재정건전성 얘기할 때 아냐
어떻게 잘 쓸지에 집중해야”
Q.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경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A. 양적 성장의 시기에는 추격형 모델을 잘 만들어 땀 흘려 일하면서 재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처럼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나라는 드물다. 특히 제조업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경제 시대, 소프트웨어 시대를 대비하지 못했다고 본다. 질적 성장 시대로의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장 재난지원금을 전부에게 주자, 아니 선별적으로 주자는 논쟁 수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돈을 잘 쓰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팬데믹이 오래 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혈과 부양의 단계를 넘어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 전환도 병행해야 한다. 지혈과 부양이 절실한 경제적 상황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상투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들이댈 때가 아니다. 대신에 앞으로는 어려운 국민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성장잠재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지출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 책임있는 중장기적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낭비와 저효율을 덜어내면서 지출을 알차게 프로그래밍하고, 예산별 성과 평가를 제대로 하는 일, 즉 재정시스템의 건전성이 필요하다.
글로벌 차원이나 국내적으로나 현재 일단 지혈과 부양이 중심이 되다보니 극단적인 저금리 정책과 재정 확장이 시행되고 있다. 어디서 터질지 모를 자산 버블에 대한 염려가 큰 상황이다. 그렇다고 부양 수준을 낮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곳곳에 청진기를 대고 모니터링하면서 위험 관리도 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특히 가계 부채가 뇌관이다. 현재 우리 국민의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160% 대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부동산과 연결되어 있고, 만성적으로 내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동시에 기저 질환 치유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거다. 기술 패권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에 대한 적응, 생산성 제고와 규제 개혁, 창업 생태계의 획기적인 개선 등을 포함해 미뤄놓은 숙제를 하반기엔 함께 해나가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랬을 때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잘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
Q. 체질 개선이 시급한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A. 먼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제도에선 정규직은 교섭력도 강하고 임금, 근로조건, 해고방지 조항 등 모든 걸 다 갖는다. 반면 책임과 과실은 하청회사나 비정규직에 전가한다. 이른바 ‘전가 사회’인 것이다. 이런 구조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사회적 갈등 비용을 너무 많이 치러야 한다. 괜찮은 사람이 도전하지 않고 전부 공무원 시험을 치르러 가니 인재가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한다. 인재 한 명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시대인데 지금 노동 생태계로는 안된다. 사회적 합의에 맡겨놓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가 여야를 넘어 합의된 해법을 내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경제혁신을 위해서라도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Q.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가 수반돼야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A. 경제든 사회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안전망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니 국민들이 믿을 구석이 없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나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도 생긴 게 아니겠나. 물론 소수 투기 목적도 있겠지만, 부동산이라도, 증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저금리 시대에 자산도 늘리고 미래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팔아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되지 않으면 혁신의 수용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미래는 막히게 된다. 현 야당이 복지 강화에 각별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최소한 빈곤을 대처하지 않고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고, 제대로 된 국가적 발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이 고용보험, 산재보험 제도를 마련했다. 우리 복지 제도도 우선순위와 실효성, 수요자의 실질적인 도움을 중심으로 확장하면서도 재편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고민이 더해진다. 과거엔 일자리가 복지의 상당 부분을 커버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일자리 내에서 복지와 안전망을 가지곤 충분치 않을 정도로 불완전 취업자의 수가 늘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더 검토하되, 일정 수준 이하 소득자에 대해서 마이너스 소득세 방식의 맞춤형 소득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청년들에겐 생애기초자산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사회적 안전망 업그레이드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M&A 걸림돌 해소해주어야”
Q. 앞으로 21대 국회에서 집중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20대 국회에서 4차산업혁명특별위원장을 맡아 일하면서 여야의 뜻을 모아 데이터3법을 포함해 개인정보보호도 이뤄지고 동시에 익명화된 정보 활용이 가능하게 하는 작업을 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법이 통과되고 지금은 후속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빅데이터 시대를 열어 가는데 있어 빅데이터 형성, 유통에 대한 가능성이 실제로 넓혀지고 있는지, 또 다른 장벽을 만드는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 점은 없는지, 개인정보 보호와 연관해 부족하거나 다시 짚어 볼 건 없는지, 주요 위원회 구성에서 왜곡은 없는지 세심하게 점검되고 추가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지 않는 한 행정자료 및 클라우드 개방과 데이터화 촉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지주회사에 대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논의가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른바 힘센 대기업이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인력을 빼오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데 관심이 없었다. CVC가 옛날 산업화 시대의 발상으론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처럼, 비록 실패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M&A를 통해 상생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초기 단계에선 잠재력만 보일 뿐 고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스케일업 단계에서 고용이 늘어나게 되는데, 경제 생태계 내에 진입해 수익구조를 만들어 내고 돌아가게 하는데 M&A가 큰 역할을 한다. 그때 기술 시너지도 나온다는 점에서 스타트업 M&A에 대기업이 적극 나설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의 미래 경쟁력도 커질 수 있다. 불공정 거래는 시정해야 하지만 사업 형태나 영역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줄여서 기업들이 뛰어다니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오픈 이노베이션 시대에 맞는 경제 제도 정비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규제혁파도 찔끔찔끔 할 게 아니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제대로 하면 좋겠고,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고자 하는 상법 개정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하면서 CVC는 풀어주는 패키지 접근이 좋을 것이다.
“정부는 촉진자에 머물러야
민간의 선구안과 역량이 관건”
Q. 최근 한국판 뉴딜 등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정부가 다 하려고 하면 안된다. 정부는 촉진자 역할을 해야지 8대 선도산업, 5대 중점사업이라 이름 붙여 특정 산업, 특정 기업을 넣고 빼는 일을 주도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민간 혁신 역량이 커지도록 하고,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를 바꿔 기업이 고용하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때론 비효율적으로 눈먼 돈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것 보단 스타트업에 도전한 사람들이 실패해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평생에 걸친 안전망 기회를 제공하는데 투자하는 게 맞다. 학교 이후의 교육과 직업훈련도 획기적으로 재편해서 새로운 기술을 계속 습득하게 하고, 국민들이 개인의 인력 역량을 키우는데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고 투자해주어야 포용적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최저임금 급격히 올리는 게 그 길이 아니다.
그동안 굵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숙제로 넘겨 기저 질환이 제법 깊다. 치유와 극복을 위한 고통스런 과정을 협력해서 같이 넘어가고자 하는 호소 없이 그럴듯한 청사진만 늘어놔서는 우리 사회가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 각계의 노력에 결국은 정치가 매듭을 풀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이기도 하고, 기존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켜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갈등도 크다. 그래도 연합 정치, 연정의 방향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게끔 다음 대선을 계기로 논의가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 사회 정책 논의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한 편에선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은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강화하면 된다. 낡은 보수와 진보 관점에서 싸울 일이 아니다. 둘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민 개개인의 인적 역량을 키우는 게 성장에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큰 틀에서 국가를 학습 사회로 전환시키고, 필요한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국가가 디딤돌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데, 사실 표에 도움도 안되고 생색도 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표시가 나지 않고 갈채와 인기를 받지 못해도 지속가능한 성장의 씨앗이 되고, 상생하고, 미래도 대비하기 위한 몇 가지 숙제들이 더 표면에 올라오는 과정이 과감히 시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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