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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선 진보정권이 노동 개혁 이끌었다”
100년 만의 노동 대전환
현대인 불안의 원천은 실업이다. 고용에서 밀려나는 순간 개인의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 고용보험이라는 것도 일시적이다. 고용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집단의 힘을 빌었다. 그것이 노동조합이다. 노조는 고용자에 대등하게 맞서는 피고용자(노동자)를 만들었다. 특히 수백, 수천 명이 모여서 일하는 공장 노조의 경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신, 고용자의 이익도 보호하기 위해 노동법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이다. 100년 전 2차 산업혁명에 의해 공장제 노동이 보편화된 이후 전 세계적 노멀이다.
100년 만에 질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난 데 이어,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긱 노동자 등)의 증가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보통 특고로 불리는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도 계속 늘고 있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퀵서비스 배달기사, 방문판매원, 대리운전자 같은 직종이다.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 3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이 사각지대가 더 이상 사각지대가 아니라 본류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과연 현재의 노동 3법으로 ‘노동 세계’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기본소득, 전국민고용보험 같은 얘기들이 COVID-19 팬데믹 때문에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근본 구조 변화 속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그것이 COVID-19 상황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현재의 노동법은 박물관에 들어갈 것”
“새로운 노동 기본법이 필요하다”
지난 6월 여시재는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공)를 초빙, 세미나를 열었다. 그가 당시 말한 것의 핵심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지금의 노동법은 전통적인 공장 노동 시대에 맞다. 말하자면 ‘공장법’이다. 이 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맞지 않다. 현재의 노동법은 곧 박물관에 가야 한다.”
“현재 공장에 모여 일하는 제조업이 20%도 안된다. 그런데도 노동법은 우리가 보통 블루칼라라 부르는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노동법으로 보호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점점 커진다. 앞으로 노동법이 적용되는 현장이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노동법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취업 형태를 포괄하는,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계약 중심의 새로운 기본법이 필요하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은 이미 노동법 전환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도 노동법 재편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한 번의 세미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묻고 더 듣고 싶은 게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언택트 시대 돌입으로 인한 노동 형태의 변화, 사회보험 및 복지 제도의 불균형, 노사정 기구와 전국단위 노동조합(민노총 등)의 한계…. 박 교수를 한 번 더 초빙, 노동과 고용, 그리고 제도를 둘러싼 여러 관련 이슈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묻고, 답을 들어봤다.
박 교수는 고려대 법대를 나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에서 노동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유일 노동전문대학원인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맡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교 바깥 활동도 활발하다.
인터뷰는 여시재 이명호 기획위원이 맡았다. 이 위원은 ‘노동 4.0’를 쓰는 등 4차 산업혁명기 고용과 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전문가다.
“경영자가 이제
모든 전문분야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Q. ‘노동 4.0 시대’라 한다. 이전 시대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는 의미일 텐데 어떻게 다른가?
A. 노동 4.0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탈경계’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와 비노동자를 구분하는 요소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였다. 사용자가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 ‘고용’이다. 이를 전제로 한 것이 우리 노동법이다. 그러나 디지털에 기반한 노동 4.0 시대에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노동 통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9시 출근, 6시 퇴근, 연장야간 근로, 이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에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노동관계는 근로자의 ‘충성적’ 요소에 대한 보상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근로시간, 업무량 같은 물리적 요소 대신 퍼포먼스(성과)가 새로운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이미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얼마나 프로페셔널로, 전문가로 인정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더 이상 경영하는 사람은 모든 전문 분야에 대해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노동법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쟁 중에 생긴 한국 노동법
Q. 앞으로 어떻게 개편해나갈지에 앞서, 현재의 노동법이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A. 우리 노동법의 시작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가던 1953년이었다. 미국, 특히 일본(1946년 제정) 등 외국 입법례 조합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노동법이 적용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없었다. 노동자 개념도 없었다. 산업 조직으로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이뤄지면서 물적 기반의 단초가 만들어졌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이 우리 노동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 효시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법과 자기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이 생겼다. 노동 세력이 비중을 가지게 되었고 그 노동자에게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하는 기업도 지위가 명확히 이뤄지던 단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신 시대로 전환했다. 외국에선 노동자 권리 의식 등이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우리는 반대로 갔다. 근로자들의 의식은 커나가기 시작했으나 반대로 억누르는 정치적 기제가 작동했다. 이게 1980년대 중반까지다. 그때의 노동법은 모든 정책의 방향이 국가 경제 지향에 맞춰졌다. 노동자는 참아야 한다는 기조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억눌렸던 것이 분출했다. 그 시점에 비로소 한국에서 노동법이 현대화된 모습을 갖게 된다. 1980년대 이전에는 노동조합도 기업단위로만 국한됐다. 국가와 기업이 통제하기 쉬운 형태였다. 제3자 개입금지 등으로 외부의 영향을 차단했다. 1987년 법 개정 이후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노동법도 거기에 맞춰나가게 됐다. 논란이 됐던 정치적 규제를 걸러내는 시기였다. 이 시대 노동법의 마지막 이슈가 복수노조 문제였다. 복수 노조는 1997년 IMF 이후 그 이슈가 어젠다화 되고 2011년 합법화됐다. 자유주의적 노동운동의 기초가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 고령화
노동의 토대가 바뀌는 상황
현재의 노동법은 이런 변화에 맞지 않아”
Q. 그러나 지금 노동법과 현실의 충돌 또는 괴리가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흐름의 변화가 무엇이라 보는가?
A. 문제의 기본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물적 토대의 변화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두 가지 축의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노동의 방식과 추구하는 이익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경제적 토대가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노동의 도구로 활용될 여러 새로운 기술이 다각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도구들이 노동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가 누구와 계약을 체결해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에 대한 약속이 바뀌고 있다. 과거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요구했던 계약 내용과 앞으로의 내용은 분명히 달라진다.
둘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다. 이제 나이 든 사람들은 더 오래 노동 시장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들에게 미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은 단순히 급여를 얼마나 주고, 근로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는가의 1차원적 문제가 아니다. 노동으로, 직업을 가지고 잘 살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매칭 시켜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 노동법이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 정책이 단기 과제 중심이라 장기적 관점에서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실과 조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최저 임금은 이미 높은 수준
노동은 이제 人權 문제 아니다”
Q. 현행 노동법이 머지않아 박물관에 가야 한다면, 어떤 방향에서 새로운 노동법을 설계해야 할까?
A. 지금까지 우리 노동법은 1970-80년대의 공식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인권 관점으로 접근해 노동존중정책을 펴겠다는 식이다. 앞으론,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은 과거엔 인권의 문제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시장의 문제다. 30년간 운영해오면서 근로자 중위임금의 55%에 이르렀다. 진보·보수 정권을 거쳐오면서 이룬 결과다. 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노동계는 중위 임금이 아니라 임금 평균에 맞춰 달라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나 합리적 결정을 인정하지 않은 주장이라 본다. 현 정부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노동과 자본, 기업과 노동의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586세대로 대표되는 정치권에서 노동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이 그들이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엔 맞았을 수 있다. 억압되어 있었고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똑같은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
“모두가 대기업 정규직이 될 수는 없다”
Q. 앞서 30년간의 제도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압축할 수 있을까?
A. 기업이 흥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나라 경제가 돌아간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 모두가 대기업 근로자가 될 수 있을까? 모두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한계산업이 몰락해갈 때 다른 성장산업이나 혁신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새로운 성장이나 혁신산업에서 고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한계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30%나 된다. 그 부분을 복지제도로 대신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복지정책을 펴고,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건 국민들에게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노동을 1980년대 민주화 시대의 시각에 갇혀 보고 있다. 그게 아니라 플랫폼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올 것인지, 취업 구조가 얼마만큼의 기간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따져 봐야 한다. 뉴이코노미 시대에 맞는 노동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20세기 말부터 그 고민을 시작했다. 플랫폼 노동이 가지는 개방성과 자율지향성을 어떻게 촉진시켜줄 것이며, 동시에 종사자들에게 어떻게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해 줄 것인지 고민했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법이 추진해야 할 과제와 상황이 이전의 근로기준법의 과제와 상황과 다른 점이다.
“사회안전망은 재정이 핵심
‘오늘 쓰고 내일은 없다’로는 곤란”
Q.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가 늘고 있다. 만약 현행대로 그냥 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A. 고용 사각지대는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고민해야 할 첫 번째 정책 과제다. 규제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사업주에게 어떤 노동 규제를 부과시킬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 많다. 보호를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물론 있다. 하지만 디테일한 고민이 쉽지 않다. 반면 사회안전망은 비교적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다. 지금과 같은 사회보험제도가 됐든, 선별적 복지 제도가 됐든 플랫폼 노동이 지속∙확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어느 지점부터 일반 근로자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구축돼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Q. 외국은 어떤가?
A. 프랑스에서는 2016년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보호법을 만들었다. 산재보험 등 몇 가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그 기준을 연간 소득으로 잡고 있다. 약 5,000~6,000 유로 이상을 버는 플랫폼 노동자를 의미 있는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다 간주하고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독일에도 ‘미니잡(Minijob)’이라는 개념이 있다. 저소득 기준점을 월 450 유로(또는 연간 3개월 이하의 단기 근로)로 두고, 그 이하의 소득 밖에 올리지 못하는 이들에겐 사회보험료를 감면하는 제도다.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세금, 사회보험료 등을 패키지로 묶어 놓아 사용자로서도 비용상 장점이 있다. 또한 일시적인 주문 급증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근무형태이기도 하다. 본격적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나 경력단절 여성과 같은 사람들이 시험 삼아, 혹은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한시적으로 일해 버는 금액을 기준으로 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다르게 우리는 사회안전망 적용 기준을 소득 수준이 아니라 ‘근로 시간’(15시간)으로 잡아 놨다. 전문직 종사자의 15시간과 최저임금 노동자의 15시간은 다르지 않은가? 기준에 대한 문제는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테일한 계산법이 필요하다. 사회안전망은 결국 재정이 핵심이기에 지속가능해야 한다. ‘오늘 쓰고 내일은 없다’ 식의 접근 방식은 옳지 않다.
“정규직 비정규직
인권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돼”
Q.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이 있었다. 현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A. 미래가 보장되는 직장,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논란 등과 관련해 우리 정책이 가져야 할 ‘디테일’ 부족의 문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금 더 세심히 살펴야 하는 자세가 부족했다고 본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하나의 사회적 신분 개념으로, 인권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과연 미래의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이분법적 구조에 우리가 계속 헤매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 농담 삼아 하는 표현이 있다. 노동계가 노동 정책과 사법 판결 상에서 프레임을 가장 잘 잡은 게 있다면 정규직 대 비정규직 논리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나눈 것과 같은 개념 아닌가?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분류할 수 있는가? 이건 고용 형태일 뿐인데. 고용관계 당사자의 문제로 봐야 한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말하는 순간
또 다른 적폐가 시작되는 것”
Q. 그럼에도 비정규직에 대한 상대적 차별은 존재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도대체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소위 제한된, 불안정성이 강한, 상대적으로 근로 환경이 열악한 고용 형태의 근로자가 왜 탄생했을까? 그건 결국 상대적인 것이라고 본다. 비정규직을 상징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자. 먼저 ‘불안정성’이다. 그에 대비되는 개념은 안정성인데 정규직은 특성상 고용이 안정적인 반면 경직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키워드는 ‘저임금’이다. 상대적으로 정규직이 고임금이라는 건데, 과거 양질의 노동력을 선점하는 게 중요했던 완전고용 체계에선 공채 제도 등을 통해 인력을 충원하고, 연공형 호봉제로 관리해왔다. 그래서 정규직이 고연봉이었다. 그러나 노동 시스템이 변화하면서 이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연공형 호봉제로 근무하고 있는 기존 인력이 있으니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에 과다 지출되는 부분을 어딘가에서 상쇄시켜야 하는 거다. 그 대상이 비정규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인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런 구조적인 부분이다. 여기에 대한 고민 없이 불합리한 신분, 부도덕하고 인간을 갑을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원시적 사회적 신분관계로 보는 것이 우리 정책 입안자들이 비정규직에 대해 가진 시각이다. 노동 문제를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만 접근하는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는 대통령의 인본주의적 사고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최고 결정권자가 정책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말한 첫 마디가 ‘비정규직 제로’였다. 그럼 실무자들은 그 한 마디를 실현하기 위해 무리하게 된다. 그 순간 또다시 적폐가 반복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문제에 대해선 어떤 접근이 필요했을까?
A. 인천국제공항은 엄청난 네트워크가 모인 세계의 허브공항이다. 다양한 기술과 업무가 결합된 곳인 만큼 이런 대형 공항은 70~80%가 외주 형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보안검색 업무의 경우 향후 과학기술을 통해 전환이 가능한, 변화가 가능한 형태의 직무다. 이들에게 고용 불안 문제, 근로조건의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열악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과연 그 해결방안이 정규직화밖에 없었을까?
자회사로 정규직화하는 것이 혜안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면 초임이 3700만 원이라 한다. 공채 통해 들어온 일반직은 4500만 원 선이라며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초봉이 3700만 원이면 굉장히 좋은 일자리다. 또 정규직이 되면 호봉제가 적용된다. 10년, 15년이 지나면 7000, 8000만 원이 된다. ‘이건 그런 일자리가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는 식의 정부의 태도가 또 한 번 국민들의 화를 돋우는 거다. 무리하게 직고용을 하라고 하니 일반직 구직자가 갈 일자리까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양쪽 모두에게 비난받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차라리 제대로 된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면 좋지 않았을까.
“정규직 기득권 해결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 절대 해결 안 돼”
Q. 언제까지 정규직-비정규직 논란이 계속될까?
A. 정규직이 안고 있는 아주 근본적 문제들, 정규직으로 상징화된 일자리 기득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도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상태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이분법적 구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정규직이 주된 근무 형태로 이어질 것인가. 근본적 원인을 직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공감이 이뤄질 때 앞으로 이뤄질 교섭에서는 재분배 과정에서 조금 더 의식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소득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그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 노동단체와 정부가 갖춰야 할 자세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 논리를 빼야 한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앞으로는 어떤 기업이 됐든 그 기업의 정규 부대로 편성이 되어야 대접받는 게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으면 그곳이 내 직장이 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과제다.
“민노총은 이미 기득권화
투쟁 프레임 아직도 극복 못하고 있어”
Q. 민노총이 얼마 전 노사정 기구 합의안을 거부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단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 시점, 우리 노동운동과 노조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A. 민노총은 이미 기득권화됐다. 국민에게도 자기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게 한 세대를 거쳐 온 것이다. 그들의 역사적 역할 전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아직도 현장에서의 투쟁 노선 프레임이 이어져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에서의 세대교체가 큰 이슈다. 경사노위 합의는 정부가 잘 리드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사회적 대화를 하려 했지만 결국 좌절되지 않았나.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거다. 민노총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리더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새로운 환경이나 젊은 세대와 동시대적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리더십을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민노총 리더십 대체할 필요”
Q. 현 상태로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나.
A. 인식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부적 모순이 이번 COVID-19와 같은 외적 요인과 결부됐을 때 주도 세력이 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렸다. 둘째로는 사회의 다원화된 요구와 이해관계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자세다. 향후 합의를 이끌어낼 대화의 미래를 결정하는 큰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같이 논의하고 협상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좋은 제도도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젊은 세대가 민노총의 리더십을 대체할 때까지는 우리 노동계와 사회 모두에게 큰 손실이 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플랫폼 노동자들 위한
공제조합, 협동조합 고려할 필요”
Q. 플랫폼 노동자의 조직화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A. 플랫폼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동의 복지를 추구하고 플랫폼 운영자에 대한 관계에서 자신들의 입장과 요구 사항에 대해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것이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 3권의 보장까지 이뤄져야 하는지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추이, 플랫폼 노동의 전개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공제조합의 설립, 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협동조합의 설립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국가적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자율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플랫폼 사업자와 대등한 주체로서 취업 조건을 협의,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보험제도
유일무이한 제도일 수 없다”
Q. 기본소득, 전국민고용보험, 참여소득 등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고용보험을 포함한 사회보험을 고용 중심에서 소득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A. 영원한 제도는 없다. 사회보험 제도가 19세기 말 세상에 나온 뒤 긍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또 앞으로도 일정 기간 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유일무이한 제도라고 말할 수 없다. 재정이 고갈될 수도 있다. 취업형태가 변해가는 추세에 맞춰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토대인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등등.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으니 당분간은 논쟁을 이어가야 한다.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기본소득적 관점에서 제도 보완이 있을 수 있다. 고용보험 같은 경우는 신규 구직자에겐 그림의 떡이니 말이다.
“제도의 핵심 경쟁력은 실용성
적과 아군 나누는 식으론 안돼”
Q. 새로운 노동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역시 핵심은 정치다. 정치권에 주문하고 싶은 얘기는?
A. 너무 이념적으로, 마치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여야 따로 없이, 같이 고민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생각하길 바란다. 제도의 핵심 경쟁력은 실용성이다. 얼마나 국민들이 빠르게 현실에 적용해 쓸 수 있는가,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재원조달이 얼마나 원활하게 가능한가 등이 포인트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건 옳지 않다. 사회보험제도를 보완해나가면서 사회안전망에서 누락되는 국민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선 진보정부에서
노동개혁이 이뤄졌다”
A. 노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이익충돌세력이다. 때문에 특별한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스스로 양보와 타협을 만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의 노사관계는 그 대립적·갈등적 양상이 다른 나라보다도 심각하다는 평가가 많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개혁의 방향, 즉 기업 경쟁력과 근로자의 고용안정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혁신과 자율의 내용을 어젠다화 할 수 있는 주체는 노사 당사자가 아니라 정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치는 노동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한정해서 이해하든가, 기업 활동에 대한 종속적 요소로만 이해하는 단견을 보여줬다. 노동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노사의 타협이나 양보에 의존해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다 보니 개혁의 길을 잃어버리거나 매우 빈약한 성과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동법 제도, 노동 규칙의 개혁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고용 창출을 위한 핵심적 전제조건임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때문에 노동개혁을 당면 과제로 다룬 선진국 사례를 보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대담한 개혁을 추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그러했다. 네덜란드나 스웨덴처럼 정치 리더가 노사 대표자들을 끊임없이 불러내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상호 신뢰를 높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사례도 있다.
어느 경우든 정치적 리더십이 노동개혁의 전제 조건이 된다. 특히 진보 정권이 노동계를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유럽의 노동개혁이 대부분 진보 정부에서 이뤄진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기업과 근로자는 종속관계 아냐
공동의 설계자로 재정립해야”
Q. 다음 대선까지 2년도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최소한 노동 문제에서 우리 사회에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며, 그때까지 뭘 준비해야 할까?
A. 노동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혁신 방안이 있다.
첫째 근로기준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근로기준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 부분을 ‘노동법의 현대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업장에 조금 더 자율 공간과 자치 공간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 주체가 기업이고, 기업과 근로자는 과거의 수직적 종속 관계가 아니라 혁신 측면에 있어 공동의 설계자,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근로시간, 휴식제도 등을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것부터 개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둘째는 취업형태의 다양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 중심으로 모든 게 흑백논리에 따라 움직여왔다. 플랫폼 노동, 긱 노동 등 다양한 형태가 점차 늘어가는 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면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20세기 유럽에서는 그 중간 형태가 더 많았고,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는 추세다. 우리도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자율형 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동시에 근로계약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안별로 특별법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경우 각기 다른 법마다 적용 대상을 가리는 신분 평가를 별도로 해야 한다. 여간 까다롭고 민감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계약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ground floor, 1층에 해당하는 기본법을 만들면 어떨까. 일하는 사람은 여기에 모두 편입되고, 최소한의 보호 규칙과 분쟁 조정을 위한 합리적 조정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앞으로 노동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법을 난립시키는 것보다 이게 나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유럽식 ‘노동평의회’ 도입
검토할 필요 있다”
Q. 노동조합은 어떤가?
A. 노동조합은 ‘노동 2.0 시대’에 만들어졌다. 대량생산, 대량노동 양식에 따라 모든 근로 조건을 표준화‧획일화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다 모일 수 있을까? 노동조합 결성은 자유다. 자유이기 때문에 비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유럽에는 ‘노동 평의회(Works Council)’라는 조직이 있다. 다양성을 가진 종업원 집단별로 각기 대표하는 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이들이 사업주이 여러 의사결정에 대등하게 참여하는 제도이다. 사업주와 근로조건에 대해 협상도 하고 직원의 인사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역할이다. 근로자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로 활용되고, 자연스럽게 경영 과정에도 참여한다. 우리도 그런 새로운 근로자 대표제도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 미만이다. 법으로 강제해서라도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인사와 경영, 근로조건 논의 테이블에도 참여하는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
“국민은 신중하고 객관적인 접근에 호응
나는 미래를 낙관한다”
Q. 이 과도기적 상황이 순조롭게 전환될 수 있을까?
A. 국민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보다 논리적이고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에 국민들이 더 호응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의 선호도와 지지에 종속되기 때문에 결국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분명 지나간 과거보다는 지금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낸 우리 국민들은 훨씬 더 논리적이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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