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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제재∙COVID-19∙수해 ‘3중고’에 최악의 경제 전망
- 금속 및 화학 부문 국산화 성공 여부가 경제 지탱의 변수될 것
북한이 지난 2016년 내걸었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목표 달성이 실패했음을 공식 인정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가 주도했던 경제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만큼 북한 경제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고강도 대북제재 장기화에 전세계를 덮친 COVID-19의 충격, 수해까지 겹친 ‘3중고’에 북한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전망한 북한의 올해 GDP 성장률은 -8.5%로, ‘고난의 행군’기인 1997년 GDP -6%보다 더 낮은 전망치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알려 내부결속을 도모한 후 새로운 비전을 통해 고난을 돌파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 특유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내년 1월 당대회에서 새로운 경제발전 비전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과연 북한 경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심각한 상황인가.
(재)여시재는 현재 북한 경제가 놓인 현실을 세밀하게 진단하기 위해 북한 경제 전문가 세 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장혜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 최지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한국은행을 거쳐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역임했고, 최지영 연구위원 역시 한국은행에서 부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장혜원 연구원은 북한에서 재정회계를 공부하고 회계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한국에서 북한경제를 전공했다. 좌장은 YTN 통일외교전문기자를 역임한 왕선택 여시재 정책위원이 맡았다.
<좌담회 참석자>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장혜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
최지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
왕선택 여시재 정책위원 (전 YTN 통일 외교 전문기자) [좌장]
대북제재 강화: 예상하여 대비하고 대응했던 “1차 충격”
북중무역과 한국은행의 북한 GDP 추정치로 북한의 경제 상황을 평가한 최지영 연구위원은 2016년 대북제재 강화를 북한 경제에 가해진 ‘1차 충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전체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북중무역은 대북제재 강화 이후 급감, 특히 수출이 90% 가까이 줄어들며 무역에 큰 충격을 줬다. 북한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광업과 중공업이 타격을 입으며 2017년, 2018년 연이은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북한 GDP 추정치는 0.4%로 연이은 마이너스 GDP를 깨고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이 전환에 농림업과 관광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의 성장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제재 이후에도 북한의 비료 수입은 감소하기보다 오히려 증가했을 정도로 농림업 생산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북한 스스로 ‘대풍’이었다고 평했으며, 한국 농업진흥청도 북한의 농업생산량이 소폭 증가했다고 할 만큼 농업에서 양호한 수확량을 보여주며 플러스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대북제재 강화라는 ‘1차 충격’을 예상하고 대비하여, 자율과 통제를 동시에 강화하는 ‘김정은식 경제정책’을 통해 충격을 완화하려고 했다고 평가했다.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로 기업체에 자율적인 경영권을 주고, 다양한 소비품 전시회를 열어 업체 및 개인간의 경쟁을 강화하는 시장경제 요소를 북한 경제에 도입했다. 한편 금융과 유통 부분에서는 통제를 강화하여 대북제재의 장기화로 외화난이 가중되어도 내부 자금이 원활하게 순환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경쟁이 강화된 소비재 시장에서는 당국의 적극적인 과학기술 투자 및 인재육성과 맞물려, 생산량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국산화 방식이 자리잡았다. 이에 더해 장혜원 연구원은 상업은행의 독립 및 카드 사용 권장 등의 금융 기능 강화 조치로, 한때는 은행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북한 주민들이 최근엔 은행에 줄을 설 정도로 카드 사용이 늘며 은행의 위상이 올라갔다고도 전했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2019년 플러스 전환의 한 요인이었던 관광업 성장도 대북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제재 강화 이후 북한은 북중관광협력을 강조하며 2018년도에는 20만명, 19년도에는 30만명의 중국 관광객을 유치해 연간 약 1억불의 외화수입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북제재 이전과 비교하면 약 4-6배 증가한 수치다. 북한은 대북제재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를 상쇄하려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관광업에 투자 했고, 항간에는 관광객 100만명을 유치한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이는 약 5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규모다. 올 해 4월 완공 목표였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프로젝트도 북한의 관광업 투자 계획의 일부였다. 하지만 2020년 1월, COVID-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북한은 국경을 봉쇄했다. 점차 관광업을 확대해 나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4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완공은 연기됐고, 그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3월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했다.
COVID-19: 대비할 수 없었던 “2차 충격”
대북제재와 달리 전혀 예상치 못했던 COVID-19는 대북제재로 경제에 ‘1차 충격’을 받은 북한에 가해진 ‘2차 충격’이었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대북제재가 북한의 수출과 공공부분에 타격을 줬다면, COVID-19는 자본재를 제외하고 제재 후에도 유지되었던 수입에까지 타격을 주며 그 충격이 민간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의 급감이 외화 공급의 감소를 불러왔다면, 수입 급감은 물자 공급 감소로 이어져 북한 가계에 충격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북제재 후 안정되었던 물가와 환율이 2020년 상반기, 2월과 4월, 두 차례 급등락하며 변동성이 확대 됐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2월의 첫 번째 물가 및 환율 변동성 확대의 원인으로 실질적인 물자 공급 감소의 영향보다는 국경 봉쇄로 인한 시장의 심리적 요인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대북제재 강화 직후에도 나타났던 현상으로, 1월 하순 봉쇄 직후 2월에 곧바로 공급 감소의 영향이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4월의 물가 및 환율 급등은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원인으로 꼽았다. 시장의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외화표시 공채를 발행하는 등의 정책을 실시했고 필수 품목이 아니면 수입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북한 전문 언론 매체를 통해 지난 봄 보도 된 바 있다.
반면 5월 이후로 물가와 환율은 다시 안정세를 찾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이유로 최지영 연구위원은 2019년의 대풍으로 인한 수확량 비축과 당국의 통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 해의 물가 변동은 주로 전년도 식량생산량의 영향을 받는다. 북한 당국이 전년도에 비축해 둔 식량으로 금년도 배급량을 조절하여 물가 변동성을 낮추고 시장을 안정화하기 때문이다. 2019년이 풍년이었던 덕분에 비축량이 양호한 상태였고, 엄격한 배급량 통제로 두 차례 요동쳤던 상반기 물가를 안정화하는 데에 효과를 보았다는 분석이다. 또한 당국의 통제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북한 경제 상황이 속수무책이 아닌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영훈 수석연구원도 COVID-19의 경제적 피해가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COVID-19으로 무역 급감이라는 피해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공장이나 기업소, 상점 등의 폐쇄는 아직까지 감지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이랑 비교하면, 그때보다는 낫지”
대북제재 장기화부터 COVID-19에 더불어 올 여름 수해까지 악재가 겹쳐지며 북한의 현재 상황을 ‘고난의 행군’기에 비교하는 목소리가 있다. 좌담회에 참가한 세 전문가 모두 현재 북한의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고난의 행군’기와의 비교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90년대 중반의 북한 경제 위기는 원유 감소로 인한 산업분야의 위기, 그리고 비료 감소로 인한 식량 위기가 겹쳐지며 발생한 것이었는데, 대북제재 강화 이후 무역이 급감했음에도 원유와 비료 공급에는 차질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유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는 기존의 수입 규모를 상한선으로 하기 때문에 원유 공급은 꾸준히 이뤄져 왔고, 비료 수입은 오히려 증가했다. 따라서 원유와 비료의 공급이 큰 차질 없이 유지되는 한 90년대와 같은 식량위기는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또한 대북제재 이후 소비재 분야의 국산화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식료품의 경우 전체 소비량의 80%는 북한 내 생산량으로 공급하고 있어 국경 봉쇄로 몇 개월 간 수입이 중지되어도 식량 공급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장혜원 연구원 역시 시장화 30년으로 이루어진 북한의 자생적 경제기반이 90년대와 같은 상황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트라우마와 같았던 경험 이후 지난 30년동안 북한 당국과 주민 모두 어느 정도의 대응 노하우를 찾아 시장 물가 자체는 안정을 이루고 있어, 지속되는 경제난에도 90년대와 비교하면 주민들이 “그때보다는 낫지”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중간재 부문의 국산화 성공 여부가 경제 지탱의 변수될 것
다만 문제는 현 상태의 장기화다. 상반기까지는 2019년 수확량으로 시장을 통제하며 물가 및 환율의 안정을 이루었지만,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미지수라는 것이 세 전문가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COVID-19의 경우 선제적 대응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현재 전시 경제에 준할 만큼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북중무역 중단이 장기화 된다면 경제 불안이 증폭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비재 분야의 국산화 성공 이후, 새롭게 주력하고 있던 중간재, 특히 금속 및 화학부문의 국산화 성공 여부가 향후 대북제재 장기화 속에서 북한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게 될 핵심이라고 보았다. 최지영 연구위원 역시 무역 급감에 이은 무역 중단, 전염병으로 인한 생산활동 위축, 비료 수입 차질, 심각한 수해 상황까지 연이은 악재로 인해 2020년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여 2021년 북한 경제 불안정성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북협력 물꼬 틀 수 있을까
이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이 정부에 추천하고 싶은 남북협력 분야는 무엇일까.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현실적인 가능성을 감안할 때 보건과 환경분야에서의 협력을 꼽았다. 최지영 연구위원은 대북제재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 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협동농장의 현대화 사업이라고 꼽았다. 80%의 식량 소비를 자체 공급하면서도 생산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북한이 농업 생산량 향상 없이는 경제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편 장혜원 연구원은 한때 추진됐다가 무산된 인적교류 사업, 특히 학자와 전문가들의 교류를 추천했다. 대북제재와 무관하기 때문에 남북한의 의지만 있다면 당장 추진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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