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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재정 역할이 중요한 때, ‘준칙’이 성장 투자 막아선 안돼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재정 역할 주목해야
2050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지금보다 두 배로 확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로 재정건전성 강화를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다.
정부는 COVID-19 대응을 위해 세 차례의 추경으로 59조원을 추가로 지출한데 이어 최근에는 홍수피해 복구를 위한 네 번째 추경 얘기를 꺼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을 반영한 2020년 재정수지가 공적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 112조 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GDP의 5.8% 규모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도 GDP의 43.5%인 840조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2.2% (42조 3000억), 국가채무가 GDP의 37.2% (731조 5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 해 만에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2019-205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한국의 2050년 국가채무비율(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85.6%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규모가 연평균 3.7% 성장하는 가운데, 국가채무가 이보다 빠른 연평균 4.0%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정부는 8월중으로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 발표를 예고했다. 국회에서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비율의 상한을 정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들이 발의됐다. 재정준칙(Fiscal rule)은 재정운용의 구체적 목표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96개 국가가 재정준칙을 운용중이다. 단일 준칙을 적용할 경우 국가채무준칙을, 두 개 이상의 준칙을 함께 채용할 경우에는 재정수지준칙과 국가채무준칙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재정준칙의 하나는 두 개 이상의 준칙을 정하는 것으로 재정수지적자 규모를 GDP의 3% 이하로, 국가채무를 GDP의 45% 이하로 유지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재정적자의 상한은 그 동안 정부가 중장기 재정운용에서 암묵적으로 설정해 놓았던 가이드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국가부채비율 45%는 정부가 ‘2019-23년 중기재정운용전략’에서 전망한 2023년의 국가채무비율 46.4%를 하회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45%의 국가채무비율을 적용한다면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정부의 향후 재정지출은 당초 전망보다 축소해야만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채무의 적정 유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재정건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정적자의 확대나 국가채무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의 재정적자 확대는 미래 혹은 다음 세대의 조세부담을 증가시키거나, 향후 정부 서비스 공급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국가재정법’을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제1장 제1조에서 그 목적을 ‘국가의 예산·기금·결산·성과관리 및 국가채무 등 재정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성과지향적이며 투명한 재정운용과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국가재정법’의 제5장 재정건전화 내용은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령의 개정은 5회계연도의 재정 수입지출에 대한 영향 분석 및 재원조달 방안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추가 재정지출을 위한 추경 편성의 조건 및 국가채무의 중기적 관리 계획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 발의된 법안과 같이 재정수지 규모나 국가채무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수준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GDP 대비 ‘COVID 재정 투입 비율’
미 13.9%, 유럽연합 11.0%, 일 21.3%
COVID-19는 경제위기가 미치는 영향에 따라 이러한 재정건전성 장치들이 항상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많은 국가들이 COVID-19 팬데믹으로 유발된 급속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GDP의 13.9%(3조 달러)와 11.0%(1조3000억 유로)의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이탈리아(28.0%)와 일본(21.3%)에서는 경제규모 대비 재정투입 비율이 더 높았다. 그 결과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2019년의 GDP대비 4.7%에서 2020년에는 16.9%로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의 재정수지 적자도 같은 기간 GDP의 3.4%에서 16.0%로의 악화가 예상된다.
유럽연합에도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에 따른 GDP 대비 3% 이하 재정적자와 GDP 대비 60% 이하의 국가채무비율에 대한 준칙이 있다. 이것은 거의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이번에 이 준칙을 유연하게 완화했다. 한국의 관리재정수지 적자(추경 포함)는 2019년의 2.2%에서 5.8%로 증가해 암묵적 재정적자 상한인 3%를 상회했으나 선진국의 적자 폭 확대 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시에는
통화정책 보다 재정정책이 유효
국가채무비율 상한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 2020년 예상되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109.2%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선진국 경제의 국가채무비율이 일반적으로 높지만, 특히 미국과 일본은 팬데믹 대응으로 2020년 국가채무비율이 각각 123%, 269%로 전년보다 16%p, 29%p나 상승할 전망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국회 예산정책처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30년 50%대에서 2050년에는 80%대 중반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국가채무준칙을 45%로 정할 경우, 정부와 국회는 경제충격이나 위기시에 수시로 준칙을 수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번 팬데믹 대응에서처럼 추경편성이나 재정준칙 완화와 같은 조치를 그때 그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준칙으로서의 역할이 의심스럽게 되는 대목이다.
또한 명시적으로 상한이 정해진 재정준칙 준수가 재정정책의 경기조정기능(Countercyclical policy)을 제약하거나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하강할 때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충분히 증가시키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더욱이 향후 거시경제 안정이나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통화정책 보다 재정정책에 더 많이 의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러한 제약은 크게 우려된다. COVID-19 이후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 혹은 마이너스에서 운용하고 있으며, 선진국은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제약이 큰 통화정책 보다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지출 확대나 감세 등의 직접적인 지원이 가능한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COVID-19 경제위기와 저성장국면의 진입 초기는 재정준칙 보다는 정부 재정의 역할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우선 경제활성화를 위한 지출 여력에서도 한국은 가계나 기업보다 정부가 상대적으로 상황이 양호하다. 현재 한국의 가계와 기업은 부채부담이 크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말 가계와 기업부문의 부채는 각각 GDP대비 73.1%와 98.2%에서 10년이 지난 2019년 말에는 각각 95.5%, 103.1%로 확대되었다. 반면, 정부부채는 같은 기간 동안 25.4%에서39.6%로 상승하는데 그쳤다. 민간부문 보다 경제규모 대비 부채 수준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다르다. 선진국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디레버리지, 즉 부채상환으로 가계와 기업 부채의 GDP대비 비율이 각각 10.2%p, 1.2%p 낮아져 73.5%와 91.7%를 기록한 반면 정부부채는 109.3%로 18.5%p 상승했다. 민간부문의 지출여력이 개선된 것이다. 신흥시장국의 가계와 기업부채는2019년 말 기준으로 GDP 대비 43.1%와 98.8%로 한국보다는 부채비율이 낮다. 한국과 같이 민간부문의 부채수준이 높으면 부채상환부담을 증가시켜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를 제약하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경기부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경기회복이나 성장잠재력 제고가 시급한 경우, 민간 보다 부채부담에 여유가 있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재정지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속가능한 국가채무 관리를 위해서는 명목경제성장률이 적어도 채무상환 금리를 상회해야 한다. 명목 경제성장률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의 저금리는 새로 발행하는 적자재정으로 인한 국고채 발행의 이자부담을 상당히 낮추고 있다. 아마도 향후 10~20년 내에 최저 수준의 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래에 예정된 재정지출 계획이 있는 경우, 현재의 낮은 금리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는 최근의 경제부진이 가계와 기업의 디레버리지, 즉 부채상환으로 인한 저축과 현금보유 증가로 인한 구조적 수요 부족에 있다고 보고 이를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 처방으로 저금리 하에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어차피 개선해야 할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원 투자를 주문했다. 한국의 경우 경제의 하방리스크 원인이 과도한 레버리지에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의 디레버리지와는 반대의 경우다. 하지만 그 처방은 같다. 저금리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정부지출 확대인 것이다.
‘한국판 뉴딜’
투자 결정했다면 신속하고 과감하게
재정준칙의 강화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도 제약을 가할 수 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중장기 관점의 ‘국가대전환 혁신 프로젝트’라고 정의했다. COVID-19 상황에서 현금성 자금지원 및 유동성 공급 등의 구호정책으로 구조적 침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려던 데서 근본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세 가지 분야, 즉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고용안전망’에 향후 5년 동안 160조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 중 정부 투자는 114조 1000억원으로 뉴딜의 전반부인 2022년까지 49조원, 후반부인 2023~2025년 65조 1000억원을 투입할 전망이다. 이 후반부는 ‘대전환 착근기’라는 개념에서 설정했다고 한다. 명시적인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비율의 상한에 대한 재정준칙의 설정은 이러한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한국판 뉴딜에 대한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그린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성장잠재력 확보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의 우위 선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이러한 투자를 결정했다면 보다 더 신속하고 과감하게 집행될 필요가 있다. 투자 확대로 인한 성장잠재력 제고 등의 긍정적인 면을 조속히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준칙의 유연화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재정건전성 악화를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가채무비율의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인 신용등급의 하락과 국가부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정부의 ‘2019~23년 중기재정계획’에서는 연평균 GDP의 3.4% 재정적자로 2023년 국가채무비율이 46.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020년의 3차 추경과 재정적자를 반영하면 2023년까지 재정적자는 연평균 GDP의 3.9%로 늘어나고, 국가채무는 49% 내외의 상승이 예상된다. 여기에 한국판 뉴딜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포함하면 국가채무비율은 53%로 높아질 것이다. 적어도 중기적으로는 국가채무비율이 IMF 등이 권고하는 60%를 상회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망대로 국가채무비율의 추가 상승이 예상되지만, 실제로 어떤 수준의 국가채무비율에서 국가부도 위험성이 있는지는 상당히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가부도 가능성은 별로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채무비율과 국가부도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재정적자 확대와 채무비율 확대는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요인이다. 지난 7월 말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했으나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COVID-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직전 12개월의 재정적자가 GDP 대비 15%에 이르고 2021년 회계연도(2020년9월 말)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13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은 미국과 일본은 현실적으로는 부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부채가 자국통화인데다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채무의 부도 가능성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외화표시채무와 자국통화표시 채무의 외국인 보유비율이다. BIS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정부의 외화표시 채무는 70억 달러로 전체 국가채무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8월 7일 기준 국고채 잔고 691조 9,000억원에서 외국인 보유는 113조 2,000억원으로 16.4%이다. 7월 말 달러/원 환율 1191.3원을 적용하면 외국인 보유 국고채는 950억 3000만 달러로 외환보유액 4,165억 3,000만 달러의 22.8%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채권이 포함할 경우 외국인 보유 채권의 외환보유액 대비 비율은 31.9%로 상승한다.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의 투기성 단기 자금 유출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몇 번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확인할 수 있었어도 국가부도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다. 적어도 중기에 있어서는 외환보유액 확충과 통화스왑 등의 제도적 장치 등으로 국가부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재정준칙’ 강화 보다는
다이내믹한 운용이 중요
재정건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래세대로 전가되는 부담은 엄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을 위한 재정준칙이 거시경제정책으로서 재정정책의 경기조정 역할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더욱이 민간부문의 경제 활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가운데 경기회복이나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정부재정의 역할이 제약 받아서는 안 된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지출의 확대도 필요하나, 정부 재정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생산성 제고를 위한 투자 지출도 확대해야 한다.
COVID-19 이후 글로벌 경제는 다방면에서 이전과 많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정책도 패러다임 변화도 불가피하다. 통화정책 면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COVID-19 팬데믹 위기까지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이 지속되고 있으며,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상시화 되고 있다. 재정정책도 그간의 엄격한 재정준칙의 준수에서 다소 거리를 두고 보다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제의 구조적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재정을 활용,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 성장잠재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비율은 해당 회계연도에 대한 명시적 규제로 재정준칙을 강화하는 것 보다는 현행 ‘국가재정법’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5회계연도와 연계해서 다이내믹하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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